허락하시길 원하노라(11월 17일 오전 예배 설교)
성경 : 사무엘상 1:9-20(구약 408)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키는 추수감사절은 칠칠절 또는 오순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우리처럼 쌀을 먹는 것이 아니라 밀과 보리를 주식으로 삼기 때문에 밀과 보리를 거두어서 드리는 감사절은 우리의 표현대로라면 맥추 감사절이고, 유대인의 절기로는 칠칠절 또는 오순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드리는 추수감사절을 성경에서 찾는다면 ‘초막절’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초막절은 장막절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수장절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초막절은 이스라엘 민족이 출애굽 후 광야 생활을 하던 시절을 기억하며,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보호와 인도하심에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이 절기는 가을 수확이 끝난 후에 열렸으며, 이스라엘 백성들이 농작물의 수확을 기념하며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현대 추수감사절이 가을에 정해진 것은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미국에 정착한 청교도들이 가을 걷이를 한 다음에 추수감사절을 지킨 것이 유래가 되어서 미국이나 캐나다에서 11월 넷째 목요일에 추수감사절을 지키고 우리나라는 대부분의 교회가 11월 셋 째주에 지키고 있습니다.
일부 교회는 추석을 추수감사절로 지키는가 하면 교회의 상항에 따라서 추수감사절을 다르게 지키기도 합니다. 현대 사회에서는 농업에 종사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기 때문에, 추수감사절의 의미는 더욱 넓게 해석되고 있습니다.
현대적 의미에서 추수감사절은 한 해를 마무리 하면서 한 해 동안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에 감사하면서 드리는 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회력으로 하면 다음 주가 왕이신 그리스도의 주일이고 12월 첫 주 부터 대림절이 시작되기 때문에 교회력에 의해서는 다음 주에 한 해가 끝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교회력으로 보면 오늘 우리가 드리는 추수감사절은 올 한해 우리에게 베풀어 주시는 은혜에 감사하고 새롭게 우리에게 주어질 2025년에 하나님께서 더 크신 은혜를 베풀어 주시길 소원하면서 드리는 예배라고 할 수 있습니다.
2024년 추수 감사절으로 맞이해서 오늘은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의 기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려고 합니다. 시 126:6에 보면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라고 시인이 노래하고 있는데 오늘 한나의 이야기는 울며 씨를 뿌리는 사람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한나의 간절한 기도에 대해서 엘리 제사장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네가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고 선포했는데 엘리의 선포가 한나에게 현실이 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울며 기도한 한나의 기도가 응답되었습니다. 오늘 한나의 기도가 응답 될 것을 선포한 엘리 제사장이 선포한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 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 눈물로 기도의 씨를 뿌린 한나
한나는 엘가나와 결혼을 했습니다. 그런데 엘가나는 한나와 결혼을 했지만 브닌나도 아내로 맞이했습니다. 엘가나가 한나를 더 사랑했지만 하나님은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브닌나를 불쌍히 여기셔서 브닌나에게는 자녀들을 주셨지만 남편의 사랑을 많이 받는 한나는 자녀를 주시지 않았습니다.
한나는 남편의 사랑을 받았지만 아이를 낳지 못하므로 브닌나에게 괴롭힘을 당했습니다. 한나는 브닌나의 괴롭힘으로 인해서 힘들어 했는데 엘가나 가족이 매년 절기가 되어서 하나님의 전에 나아갈 때 브닌나의 괴롭힘이 더 심했습니다. 그래서 한나는 하나님의 전에 나아가서도 음식도 먹지 못하고 눈물로 시간을 보냈습니다.
한나는 울면서 음식도 먹지 못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전에 올라가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어떤 때보다 간절하게 눈물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한나는 마음이 괴로워서 통곡하며 기도했습니다. 9-10절을 보면
1:9 “그들이 실로에서 먹고 마신 후에 한나가 일어나니 그 때에 제사장 엘리는 여호와의 전 문설주 곁 의자에 앉아 있었더라”
1:10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한나는 브닌나의 괴롬힘으로 울고 먹지도 않았지만 다른 가족들은 먹고 마시고 즐거워했습니다. 한나는 그들이 모두 먹고 마신 다음에 혼자 일어나서 성전으로 올라가서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가족들은 모두 즐거운 시간을 갖고 있지만 한나는 그들과 같이 즐거워할 수가 없었습니다.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지 못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아프고 힘든데 브닌나가 속을 박박 긁어 놓고 괴롭히고 놀리고, 힘들게 하기 때문에 더 견딜 수 없었습니다.
남편 엘가나는 한나의 마음을 알아서 어쨌든 위로하고 달래보려고 노력을 하지만 한나에게는 아무런 위안이 되지 않았습니다. 한나는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통곡하면서 기도하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누구도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답답하고 마음이 괴롭고 너무나 힘들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기도하는데 얼마나 그 마음이 힘들었던지 통곡하며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힘든 일을 당하게 될 때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우리를 위로해 주려고 하지만 우리가 너무 힘들 때 주변에서 아무리 위로를 해주려고 해도 위로가 되지 않고 어떤 말을 해도 위로가 안 되는 상황이 있습니다. 한나는 그런 상황에서 하나님 앞에 나와서 눈물로 통곡하면서 기도한 것입니다.
한나의 기도는 하나님 나의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잊지 마옵소서라는 기도였습니다. 11절을 보면 “서원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기억하사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한나의 기도는 먼저 자신이 겪고 있는 인간적인 고통에 대해서 하소연을 했습니다. 하나님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기억하시고 잊지 아니하시면 이라고 기도한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힘들고 어려울 때 속으로 삭히지 말고 있는 그대로 하나님께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아름다운 미사여구를 사용해서 기도해야 된다는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진솔한 고백을 더 기쁘게 들으십니다.
우리 자녀들이 우리에게 말을 할 때 아름답게 포장된 말만 하는 것보다 있는 그대로 이야기 하는 것을 더 기뻐하듯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도 우리가 겪는 일들에 대해서 있는 그대로 우리의 마음을 기도로 내려놓는 것을 더 기뻐하십니다.
한나는 간절히 기도하면서 아들을 주시면 나실인으로 드리겠습니다. 라고 서원을 했습니다. 11절을 다시 보면 “서원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기억하사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한나는 눈물로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서원을 했습니다. 한나의 서원은 나에게 아들을 주시면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 머리에 대지 않겠습니다.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이렇게 한다고 하는 것은 나실인에 대한 서원입니다.
성경에서 나실인은 특정한 서약을 통해 자신이나 자녀를 하나님께 바쳐진 사람을 뜻합니다. 히브리어로 ‘나실(Nazir)’은 “구별된 자” 또는 “헌신한 자”라는 뜻을 가집니다.
나실인의 서약에는 다음과 같은 주요 규칙이 있었습니다:
1)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기 – 나실인은 서약 기간 동안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으며, 머리가 길게 자라는 것은 그가 하나님께 구별된 사람이라는 상징이 됩니다.
2)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않기 – 나실인은 포도주뿐 아니라, 포도에서 나오는 모든 것을 먹거나 마시지 않았습니다. 포도즙, 포도 껍질, 씨, 포도즙과 관련된 음료 등도 금지되었습니다.
3) 시체에 가까이 가지 않기 – 나실인은 시체를 만지거나 가까이 가지 않아야 했습니다. 심지어 가족이 죽은 경우에도 시신을 가까이하지 않음으로써 자신을 깨끗하게 유지해야 했습니다.
한나는 아들을 주시면 하나님께 드리고 삭도를 대지 않겠다고 서원했지만 나실인으로 드리겠다고 서원한 것이기에 다른 조항들도 사무엘이 지켰을 것입니다.
한나는 기도 응답을 받아서 사무엘을 낳고 성장한 다음에 하나님의 전으로 데리고 가서 서원한대고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 저의 마음을 쏟아 놓고 있었습니다.
한나는 너무나 간절하게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는데 그런 한나의 모습을 본 엘리 제사장은 하나님을 책망했습니다. 한나는 엘리 제사장에게 나는 나의 아픈 마음을 하나님께 쏟아 놓았습니다. 라고 대답을 하는데
제사장 엘리는 한나가 취한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12-13절을 보면
1:12 “그가 여호와 앞에 오래 기도하는 동안에 엘리가 그의 입을 주목한즉”
1:13 “한나가 속으로 말하매 입술만 움직이고 음성은 들리지 아니하므로 엘리는 그가 취한 줄로 생각한지라”
하나님 앞에 간절하게 기도하는 한나의 모습은 마치 술취한 것 같이 보였다는 것입니다. 간절하게 통곡하며 기도하는데 입술만 움직이고 소리는 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너무 힘든 상황에 처하게 되면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하고 속앓이를 하면서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기도할 때가 있습니다.
한편으로 성령의 강하게 임하실 때는 마치 술취한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오순절 날 성령을 받는 사도들의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은 새 술에 취한 것 같다고 조롱하기도 했습니다.
한나의 이런 모습을 본 엘리 제사장은 나이가 많고 영적으로도 침체되어 있었던 상태였습니다. 그런 엘리가 본 한나의 기도하는 모습은 주님의 전에 와서 술취해서 술주정하는 것처럼 보였다는 것입니다.
엘리 제사장은 한나에게 언제까지 취해 있겠느냐? 고 말했습니다. 14절을 보면 “엘리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언제까지 취하여 있겠느냐 포도주를 끊으라 하니”
엘리는 영적으로 둔감해졌기 때문에 영적 분별력이 약해져 있던 상태였습니다. 그런 엘리의 눈에 한나는 술취해서 한탄하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래서 언제까지 술에 취해서 횡설수설하려고 하느냐 정신을 차려라 그런 의미로 말한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 대해서 엘리 처럼 잘 알지 못하면서 내 관점에서 평가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그 사람의 상황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당장에 눈에 보여지는 것을 가지고 사람을 판단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우리는 사람을 판단하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바울은 우리에게 이렇게 경고합니다. 롬 2:1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누구를 막론하고 네가 핑계하지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그런 엘리에게 한나는 내 심정을 통한 것입니다.(여호와 앞에 저의 마음을 쏟아 놓고 있었습니다.- 쉬운 성경) 라고 대답했습니다.
엘리가 언제까지 술에 취해 있겠느냐라고 책망을 들은 한나는 하나님 앞에 내 심정을 통한 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15-16절을 보면
1:15 “한나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 주여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나는 마음이 슬픈 여자라 포도주나 독주를 마신 것이 아니요 여호와 앞에 내 심정을 통한 것뿐이오니”
1:16 “당신의 여종을 악한 여자로 여기지 마옵소서 내가 지금까지 말한 것은 나의 원통함과 격분됨이 많기 때문이니이다 하는지라”
15절을 쉬운 성경으로 보면 “한나가 대답했습니다. “아닙니다, 제사장님. 저는 포도주나 술을 마시지 않았습니다. 저는 큰 괴로움 중에 있는 여자입니다. 여호와 앞에 저의 마음을 쏟아 놓고 있었습니다.”
통한다는 말은 히브리어 שָׁפַךְ(샤파크)인데 이 단어는 ‘쏟아 붓는다.’는 의미입니다. 한나는 자신이 브닌나에게 당한 일로 인해서 원통하고 분한 마음을 하나님 앞에 있는 그대로 쏟아내고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엘리 제사장은 한나의 말을 듣고
- 네가 기도한 것을 허락하시길 원하노라
라고 말하면서 한나를 위로했습니다. 엘리 제사장이 한나에게서 한 말을 보면
평안히 가라고 선포했습니다. 17절을 보면 “엘리가 대답하여 이르되 평안히 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네가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
한나의 해명을 듣은 제사장 엘리는 자신의 섣부른 꾸중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한나에게 축복을 빌어 주었습니다. 엘리는 제사장으로 한나에서 평안하기를 선포했습니다. 지금 한나에게 필요한 것은 마음의 평안을 누리는 것입니다.
자신이 당한 일들로 인해서 마음이 상했고, 괴롭고 힘들어 하는 상황이라는 것을 안 엘리 제사장은 한나에게 평안을 선포했습니다. 평안히 가라고 한 것은 제사장으로 백성들을 축복할 때 사용하는 선언입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서 제사장이 백성들을 향해 복을 빌어줄 때 평강을 선포하라고 하셨습니다.
엘리는 제사장으로 모세가 말한대로 한나에게 평강을 선포했습니다. 엘리의 이 말 한마디가 한나의 마음을 평안하게 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나는 제사장이 선포한 평안히 가란는 말을 믿음으로 받았습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주일마다 교회에 와서 예배 하고 예배가 끝나고 민수기의 축복 선언을 제가 선포하는데 믿음으로 받으면 믿음으로 평강이 임하고 하나님의 복이 임합니다.
엘리는 하나님이 네가 기도하고 구한 것을 허락하시길 원하노라고 선포했습니다. 17절을 다시 보면 “엘리가 대답하여 이르되 평안히 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네가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
이 구절을 현대어 성경으로 보면 “엘리는 한나의 딱한 사정을 듣고 그녀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자, 이제는 안심하고 편안히 돌아가 있으시오. 이스라엘을 돌보시는 하나님께서 부인의 기도를 들어주실 것이오’”
엘리는 한나의 말을 듣고 안타깝게 생각하고 하나님의 평안을 구함과 동시에 당신이 그렇게 통곡하며 눈물로 기도한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어주실 것입니다. 라고 한나에게 말했습니다.
엘리가 무엇인가를 해 줄 수는 없지만 하나님은 당신의 기도를 들어주실 것입니다. 그리니 이제 걱정하지 말고 집으로 가서 하나님이 하실 일을 기대하라고 말한 것입니다.
한나는 제사장의 말을 듣고 다시는 근심 빛이 없었습니다. 18절을 보면 “이르되 당신의 여종이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하고 가서 먹고 얼굴에 다시는 근심 빛이 없더라”
한나는 아픈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통곡하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엘리의 위로와 네 기도가 이루어지기를 원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 말을 믿음으로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엘리 제사장의 입을 통해서 말씀하신 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엘리가 그런 영적 권위로 말한 것은 물론 아닙니다. 그러나 한나는 그것을 하나님 주시는 말씀으로 받았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근심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를 반드시 들어주신다고 믿었습니다.
하나님은 한나의 눈물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사무엘을 주셨습니다. 19-20절을 보면
1:19 “그들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여호와 앞에 경배하고 돌아가 라마의 자기 집에 이르니라 엘가나가 그의 아내 한나와 동침하매 여호와께서 그를 생각하신지라”
1:20 “한나가 임신하고 때가 이르매 아들을 낳아 사무엘이라 이름하였으니 이는 내가 여호와께 그를 구하였다 함이더라”
한나는 엘리 제사장의 선포를 듣고 하나님의 응답이라고 생각하고 모든 근심을 내려놓고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그가 눈물로 기도한 응답으로 사무엘을 낳았습니다.
마음에 근심과 두려움과 염려가 있을 때는 임신이 잘 안되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마음이 평안하고 하나님이 주실 것을 확신하면서 살았기 때문에 하나님은 한나에게 아들을 주셨습니다.
한나는 그 아이의 이름을 사무엘이라고 불렀습니다. “사무엘”은 히브리어 이름 “שְׁמוּאֵל” (Shemuel)이고, 그 뜻은 “하나님이 들으셨다” 또는 “하나님이 응답하셨다” 입니다.
며칠 전에 어느 목사님 부부와 같이 식사를 했습니다. 이 부부는 결혼해서 한동안 아이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남편이 목사 안수를 받기 위해서 찾아왔고 제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 안수를 받으면 임신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부부를 위해서 기도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목사 안수 과정을 다 끝내고 어느 날 아침에 사모님에게 전화가 왔어서 ‘저 임신했어요’ 병원에서 임신이 됐다는 말을 듣고 전화하는 것이라고 그 아들의 이름이 사무엘입니다.
하나님은 간절히 기도하는 성도들의 기도를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단지 우리가 믿지 못하거나 의심하기 때문에 응답이 늦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분이심을 믿고 걱정하지 말고 평안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서 주시는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서 기도하는 일들이 현실이 되는 복이 임하길 축원합니다.
2024년 추수감사절에 한 해 동안 울려 뿌린 기도의 씨가 풍성한 열매로 기도 응답으로 기도한 것이 현실로 이루어지는 복을 누리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