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자가 된 사울(11월 10일 오후 찬양 예배 설교)

성 경 : 사도행전 9:10-22(신약 202)

길리기아 다소에서 태어나서 예루살렘에서 가말리엘에게 교육을 받은 사울은 바리새인이었고 종교적인 열심으로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는 교회를 핍박하고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을 박해하는 것이 하나님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누구보다 열심히 교회를 핍박하고 성도들을 핍박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성도들을 잡아서 옥에 가두기도 하고, 성도들을 죽이는 일에 찬성하면서 열심히 박해했는데 예루살렘에 있는 성도들만이 아니라 다른 도시에 있는 성도들을 잡아들이는 일에 앞장을 섰습니다. 바울은 대제사장에서 다메섹 회당에 보내는 공문을 받아 가지고 사람들을 데리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잡아서 예루살렘으로 끌고 오기 위해서 다메섹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메섹에 도착하기 전에 강한 빛이 임하고 예수님께서 친히 사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울이 주님 누구십니까? 하고 묻자 예수님은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고 대답하셨습니다.

그리고 사울에게 “너는 일어나 시내로 들어가라 네가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울은 앞을 볼 수 없는 상태에서 사람들에게 이끌려서 다메섹으로 들어갔으며 사흘 동안 먹지도 마시지도 않았습니다.

핍박자였던 사울이 다메섹으로 가던 중에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고 그리고 오늘은 핍박자였던 사울이 변하여 전도가 된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울이 변화되는 과정에서 아나니아라는 분이 기도해 주었고 그 후로 사울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전하는 전도자이자 이방인의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을 중심으로 해서 “전도자가 된 사울”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1. 아나니아를 보내셨습니다.

사울이 다메섹으로 가던 길에서 예수님을 만났지만 앞을 볼 수 없는 상황에서 다른 사람 손에 이끌려 다메섹으로 들어가서 사흘 동안 금식하고 있을 때 하나님은 아나니아를 부르셔서 사울에게 보내셔서 안수하여 눈을 뜨게 하셨습니다.

주께서 환상 중에 아나니아를 부르셨습니다. 10-12절을 보면

9:10 “그 때에 다메섹에 아나니아라 하는 제자가 있더니 주께서 환상 중에 불러 이르시되 아나니아야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9:11 “주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의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사람을 찾으라 그가 기도하는 중이니라”

9:12 “그가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들어와서 자기에게 안수하여 다시 보게 하는 것을 보았느니라 하시거늘”

아나니아에 대한 더 자세한 정보는 제공하지 않았지만 그는 성령 충만한 사람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나니아라는 제자가 있었는데 그에게 환상 중에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아나니아는 성령 충만한 가운데 늘 기도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평소에 성령 충만한 가운데 주님의 음성을 듣기도 하고 환상을 보기도 하는 영적인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늘 성령 충만한 가운데 기도하면 하나님의 성령이 눈을 열어 환상을 보게 하시고 주님의 음성을 듣게 하시고, 마음에 감동을 받게 하십니다.

예수님은 환상 중에 아나니아에게 너는 직가 라는 거리로 가서 유다의 집을 찾아가라고 하셨습니다. 그 집에 다소 사람 사울이 하는 사람을 찾으라 그가 지금 기도하는 중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사울이 기도하는 중에 아나니아라는 사람이 들어와서 자기에게 안수하여 다시 보게 하는 것을 보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울은 앞을 볼 수 없는 상황에서 사흘간 기도하고 있었던 것이고, 기도하는 가운데 주님께서 아나니아가 와서 안수하여 다시 보게 될 것을 알게 하셨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갑작스럽게 환상 중에 사울에게 가서 기도해 주라고 하신 말씀을 듣고 주님 그가 예루살렘에서 성도들에게 해를 끼쳤다고 들었습니다. 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13절을 보면 “아나니아가 대답하되 주여 이 사람에 대하여 내가 여러 사람에게 듣사온즉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의 성도에게 적지 않은 해를 끼쳤다 하더니”

예루살렘에서 다메섹까지의 거리는 약 215~240킬로미터 정도라고 합니다. 오늘날은 자동차로 약 5시간이 걸리는 거리이며, 직선 거리로 계산하면 약 215킬로미터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고대 시대에는 나귀를 타고 5일 정도 가는 거리라고 합니다.

예루살렘과 다메섹의 거리는 오늘날로 생각하면 먼 거리가 아니지만 고대 시대에는 상당히 먼 거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에서 사울이 한 일에 대해서 다메섹에 살고 있던 유대인들도 알고 있었고, 특히 다메섹에 있는 교회와 성도들이 사울이란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어떻게 했는지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교회를 핍박하고 성도들에게 박해를 가하던 사울의 이야기는 다메섹 교회 성도들에게 알려졌는데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박해를 피해서 다메섹으로 온 성도들이 많았을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사울이 한 일에 대해서 더 잘 알 수 있었을 것입니다.

사울이 대제사장에서 공문을 받아 가지고 왔다는 것도 알았고 그래서 아나니아는 주님께 그가 성도들을 결박할 권한을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14절을 보면 “여기서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사람을 결박할 권한을 대제사장들에게서 받았나이다 하거늘”

사울이 다메섹으로 온 이유에 대해서 다메섹 교회 성도들이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나니아는 사울이 온 이유가 믿는 모든 사람을 결박해서 예루살렘으로 끌고 가려는 것인데 어떻게 내가 그 사람에게 가서 기도해 줄 수 있습니까? 하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다메섹의 그리스도인들이 사울을 위해서 기도했을 가능성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사울이 예루살렘에 교회를 핍박하고 성도들에게 박해를 가했고 다메섹에도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을 결박해서 예루살렘으로 끌고 가려고 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교회와 성도들은 사울을 위해서 기도했을 것입니다. 박해자인 사울의 마음에 성령께서 감동하셔서 핍박이 멈추어지게 되기를 위해서 기도했을 것이고 그의 영혼을 위해서 기도했을 것입니다.

성경에 그런 이야기를 기록하지 않았지만 기독교인들은 자신을 핍박하는 자를 위해서 기도하라는 주님의 말씀대로 기도했을 것입니다. 마 5: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바울 사도는 롬 12:14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고 말했습니다. 박해자였던 자신이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은 많은 성도들이 자신을 위해서 기도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또한 자신이 교회를 박해했음에도 교회는 자신을 축복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이렇게 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고 저주하지 말고 축복해야 합니다. 사울을 위한 보이지 않는 기도와 그를 축복한 교회들이 있었기에 하나님에 의해 쓰임 받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1. 사울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

아나니아가 주님께 사울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 주님께서는 사울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가 핍박자였지만 그런 핍박자를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할 자로 계획하셨다는 것을 아나니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택한 나의 그릇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5절을 보면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사울은 극단적 유대주의자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그는 나의 택한 그릇이라고 말씀하시면 세 가지 계층에 대해서 말씀하시는데 가장 먼저 이방인들을 위해 택한 그릇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먼저 이방인을 위한 택한 나의 그릇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교회에 적대적인 태도를 취한 것처럼 이방인에 대해서도 적대적인 태도를 보였을 사울을 하나님께서는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 가장 적합한 사람이라고 보시고 그를 이방인을 위해서 택한 나의 그릇이라고 표현하신 것입니다.

교회에 대해서도 극단적인 태도를 보였지만 주님을 만난 다음에는 가장 적극적인 복음주의자가 된 사울은 이방인에 대해서 가장 적극적인 전도자가 되어 자신의 목숨도 아까워하지 않고 이방인들에게 가서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

나는 그것이 정말 싫어 라고 하는 사람들에게 주님은 자신이 너무 싫어하는 것을 하게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극과 극은 통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울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주님의 부름을 받았고, 주님을 받은 다음에는 자신이 경멸했던 대상을 사랑하고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임금들을 위해서 택한 그릇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울은 유대인이지만 로마 시민권을 가지고 있고 헬라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사울의 배경은 당시 상장한 지위를 지닌 배경이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가 쓴 글이나 그의 말과 행동은 평범한 사람의 모습이 아닙니다.

그런 사울이었기에 하나님은 임금들에게 복음을 전할 자로 사울을 선택하셨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아그립바 왕(26장), 가이사(딤후 4:16, 17)등 집권자들 앞에서 재판의 과정일지라도 복음을 전했습니다. 따라서 그는 세상 임금들에게 복음을 전할 하나님이 선택한 그릇이고 선교사였습니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택한 나의 그릇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울은 자기 민족에 대한 깊은 애정을 지녔으며 회심 후에도 그 애정을 잃지 않았습니다(롬 9:1-3). 사울이 비록 이방인의 선교사로 사역했지만 자기 동족인 유대인들을 위해서는 자신이 버려질지라도 원하는 것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사울은 택한 나의 그릇이라고 말씀하시고 내 이름을 위하여 고난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6절을 보면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니”

사울이 주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핍박자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주님을 만난 다음에 자신이 교회를 핍박한 것과 같은 고난을 받았습니다. 유대인들에게 그리고 이방인의 땅에서도 복음을 전한다는 이유로 수없이 많은 핍박을 받았습니다.

자신이 한 것보다 더 심한 핍박을 받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핍박자였던 사울을 부르셔서 자신이 교회에게 한 것과 같은 고난을 받으면서도 복음을 전하는 사도로 세우셨고, 핍박과 고난 속에서 주님의 복음을 전한 위대한 사도가 되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들은 아나니아가 사울에게 안수했습니다. 17절을 보면 “아나니아가 떠나 그 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이르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셨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아나니아는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을 위해서 선택 받은 그릇이자 복음을 위해서 고난을 받아야 할 사람이라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사울이 금식하며 기도하고 있는 집으로 찾아가서 사울에게 안수했습니다.

아나니아는 가서 안수하면서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셨던 예수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고 선포하면서 안수했습니다.

  1. 전도자가 된 사울

아나니아를 보내서 주님의 뜻을 전하게 하셨는데 이 사건을 계기로 해서 핍박자였던 사울은 곧 바로 예수님이 구세주라고 전하는 복음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아나니아가 사울에게 안수하매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18절을 보면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세례를 받고”

아나니아가 예수님께서 나를 너에게 보내서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고 선포하면서 안수하매 사울의 눈에서 비닐 같은 것이 벗어지면서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사울이 다시 보게 된 사실을 언급하면서 그가 보지 못하게 된 원인이 제거되었다고 묘사하고 있는 본문은 의학적 표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글을 기록한 누가는 의사이기 때문에 의학적인 표현을 사용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사울에게 나타나는 기적은 사울이 경험한 주관적 느낌이나 상징적 표현이 아니라 사실적 현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상징적 의미만을 전달하려 했다면 단순히 ‘눈을 뜨게 되었다’는 표현만으로 충분했을 것인데 비닐 같은 것이 벗어졌다고는 사실적인 묘사를 통해서 이 사건은 사울의 눈이 치유되는 기적이 실제로 있었던 사실이라는 것을 강조한 것입니다.

사울은 긴 시간이 아니라 짧은 시간 주님을 만나고 볼 수 없던 상황과 다시 보게 되는 상황들을 겪으면 주님이 자신에게 하신 말씀이 모두 진실인 것을 알게 되었고 그러므로 예수님이 구세주이시고 그리스도라는 것을 깨닫고 믿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사울은 이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라고 전파하기 시작했습니다. 19-20절을 보면

9:19 “음식을 먹으매 강건하여지니라 사울이 다메섹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며칠 있을새”

9:20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사울은 율법에 대해서 정통한 사람이고 메시아 대망 사상에 대해서도 잘 알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경험한 모든 사실들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그리스도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알게 되고 깨닫게 된 사실들을 주저하지 않고 즉시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울은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서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의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그리스도이시다. 라고 전파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는 것으로 깨닫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알고 깨달은 것을 즉시 전하면서 복음 전도자의 삶을 시작했습니다.

사울의 이런 변화는 유대인들을 당혹하게 만들었습니다. 21-22절을 보면

9:21 “듣는 사람이 다 놀라 말하되 이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이 이름을 부르는 사람을 멸하려던 자가 아니냐 여기 온 것도 그들을 결박하여 대제사장들에게 끌어 가고자 함이 아니냐 하더라”

9:22 “사울은 힘을 더 얻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언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당혹하게 하니라”

사울의 갑작스런 변하는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당혹스럽게 만들었습니다. 사울이 다메섹에 온 것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잡아서 예루살렘으로 끌어가기 위한 것이었는데 오히려 예수님을 증언하는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당시 유대인들이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었을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사울은 힘을 더 얻어서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증거 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잡으러 왔다고 예수님을 만나고 오히려 예수님을 증거 하는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되자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인 당황하게 되었고 당혹하게 되었습니다. 개역한글은 이 구절을 “사울은 힘을 더 얻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명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굴복시키니라” 라고 번역했는데 굴복시켰다는 표현보다는 당혹하게 했다는 말이 더 원어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울은 핍박자였지만 주님을 만나고 볼 수 없다가 보게 되는 과정을 통해서 예수님이 구세주이심을 확실하게 알고 믿게 되었고, 자신이 알고 믿게 된 것을 즉시 유대인들에게 전했습니다.

알고 믿게 된 예수님을 전하고, 항상 성령 충만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참빛 성도가 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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