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라(11월 3일 오전 예배 설교)

성경 : 마가복음 12:28-34(신약 77)

예수님께서 공생애 사역을 하시는 동안 많은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에게 나와서 질문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질문은 대부분 예수님에 대해 트집을 잡으려는 의도에서 하는 질문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봉독한 말씀 앞에 13절에 예수님의 말씀을 책잡으려고 바리새인과 헤롯당이 결탁을 해서 사람을 보내서 질문하게 했습니다. 그들의 질문은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쳐야 되나요? 바치지 않아야 되나요? 라는 질문을 했습니다.

이 질문을 한 의도는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라고 하면 유대인들을 자극하는 것이고 바치지 말라고 하면 로마 정부에 대항한다고 하면서 로마 정부에 예수님을 고발할 수 있기 때문에 이렇게 대답해도 저렇게 대답해도 예수님이 어려움을 겪을 수 있는 질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고 말씀하심으로 그들이 할 말을 잃게 하셨습니다.

계속해서 부활을 믿지 않는 사두개인이 칠 형제가 있었는데 맏이가 결혼을 하고 죽어서 모세의 율법대로 둘째가 결혼했는데 죽고 그렇게 일곱 형제가 다 한 여인과 결혼을 하고 죽으면 부활 때에 누구의 아내가 되는 것입니까 하고 질문 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부활 후에는 이 세상에서 사는 것처럼 결혼하는 것이 아니고 천사와 같이 된다고 말씀하시면서 부활을 믿지 않는 사두개인들의 질문에 대해서 부활은 이 세상의 삶과는 다른 차원이라고 대답하셨습니다.

대부분의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찾아와서 하는 질문은 어떻게 해서든지 예수님을 올무에 걸리게 하려는 불순한 의도로 하는 질문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질문의 의도를 아시고, 그들이 더 이상 질문하지 못하게 대답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 기록된 서기관은 지금까지 예수님을 찾아와서 질문한 종교 지도자들과 다르게 진지하게 율법에 대해 계명에 대해 질문을 하고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이 옳다고 인정을 하고 받아들이는 태도를 보여주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유대 주의자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예수님을 어떻게 해서든 제거하려고 했습니다.

그런 분위기였지만 예수님을 찾아온 서기관은 예수님에게 열린 자세로 말씀을 듣고 말씀하신 것을 긍정하고 수용했습니다. 기독교가 마음을 열고 수용적인 자세를 갖지 않으면 율법주의처럼 됩니다.

기독교 역사를 보면 교회가 부흥하고 주도 세력이 되면 고집불통이 되어서 자신들이 주장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옳다는 자세를 취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은 개혁자들을 통해서 교회를 개혁하셨습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우리의 신앙을 개혁하고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나를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수용하고 매일 나를 변화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바울은 자기 개혁을 나는 매일 죽는다고 표현하고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항상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말했습니다.

오늘 서기관의 질문에 대해서 예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서기관의 질문과 예수님의 대답을 중심으로 해서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은

  1. 하나님은 유일하신 주시라

오늘 말씀은 한 서기관의 질문으로 시작을 합니다. 서기관은 예수님에게 와서 계명 중 첫째가 무엇입니까? 하고 질문을 했습니다. 28절을 보면 “서기관 중 한 사람이 그들이 변론하는 것을 듣고 예수께서 잘 대답하신 줄을 알고 나아와 묻되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이니이까”

서기관 중 한 사람이 예수님께서 사두개인의 질문에 대해서 답변하시는 것을 듣고 사두개인들이 더 이상 뭐라고 할 말이 없게 된 것을 보면서 예수님의 대답에 감명을 받았을 것입니다. 이것은 서기관이 바리새인이었음을 암시 한 것입니다.

그는 서기관들이 토론하는 중요한 주제를 가지고 예수님에게 질문했습니다. 전통적으로 서기관들은 모세의 율법에 관한 613가지의 개별적인 율법(365가지는 부정적인 것이고 248가지는 긍정적인 것이다.)으로 구분해서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들은 모든 율법이 구속력 있는 것으로 믿으면서도 더 무거운 것과 가벼운 것으로 구분하여 생각하였고 전체의 율법을 단 하나의 계명으로 요약 하려는 시도를 했을 것입니다.

서기관들 사이에 어느 것이 제일 중요한 계명인가에 대한 다양한 논쟁이 있었을 것이고 이러한 논쟁에 대한 해답을 얻지 못했기 때문에 서기관은 이 모든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가장 중요한 계명이냐고 물었던 것입니다.

서기관의 질문에 대해서 예수님은 하나님은 유일하신 주시라고 먼저 대답을 하셨습니다. 29절을 보면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서기관의 질문에 대해서 예수님은 첫째는 이것이니 라고 말씀하시면서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고 먼저 말씀하셨습니다. 계명 중에 첫째 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면 먼저 하나님에 대해서 바로 알아야 한다는 의미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유일하신 주님이시라고 말씀하셨는데 이 말은 하나님 외에는 신이 없다는 말입니다. 세상에는 많은 종교가 있습니다. 예수님 시대에도 지역 신의 개념들을 이방인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특히나 그리스 로마 신화는 많은 신들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시대에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들은 다양한 신들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오늘날도 많은 종교가 있고 많은 신들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진정한 신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시라는 것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이 세상에 신들이라고 불려지는 존재들은 엄격하게 말하면 참신이 아니라 귀신과 같은 존재들입니다. 성경은 그리고 예수님은 귀신의 존재를 인정하셨습니다.

그런데 귀신은 영적인 존재이기는 하지만 참신이 아닙니다. 어떤 계명이 중요한 것인가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참 신을 알아야 한다고 말씀하시면서 유일하신 하나님만이 주님 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유일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란 말 자체가 오직 하나이신 분이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 이외에는 신이 없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들은 서기관은 예수님의 말씀에 동의하면서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없다는 것이 옳습니다. 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32절을 보면 “서기관이 이르되 선생님이여 옳소이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그 외에 다른 이가 없다 하신 말씀이 참이니이다.”

지금까지 예수님을 찾아온 종교인들은 대부분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리려는 질문을 한 반면 이 서기관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긍정하면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옳다고 인정하고 하나님은 한 분이시고, 하나님 외에는 다른 신이 없다고 하신 말씀이 참되다고 말했습니다.

이 서기관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이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 말씀에 동의하고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이 진리라는 것을 인정한 것입니다.

  1.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라

서기관의 질문에 대해서 예수님은 먼저 하나님은 유일하신 주시라고 말하므로 하나님 외에는 신이 없다는 것을 말씀하시고 그러므로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30절을 보면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예수님의 대답은 어느 것이 크냐 작으냐의 문제를 뛰어넘어 전체 율법을 요약해 주는 가장 중요한 계명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라는 계명은 인격적으로, 포괄적으로, 그리고 전심으로 하나님께 자발적으로 헌신하여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먼저 네 마음을 다하여 사랑하라고 말씀하셨는데 여기서 마음은 감정적인 생활, 지적인 생활, 의지적인 생활 및 종교적 생활을 포괄한 인간 생활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마음을 다해 사랑한다는 것의 의지적으로 사랑하려고 노력한다는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기 위해서 마음으로부터 하나님을 사랑하려는 의지를 가지고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하고 싶은 것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하고 싶은 많은 것들 중에서 가장 먼저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의지적인 노력을 해야 합니다. 저절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우선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마음을 다해 즉 의지적인 노력으로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열정이 필요한 것입니다.

목숨을 다하여 사랑한다는 것은 생명을 받쳐서라도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말씀으로 하나님을 위해서 순교도 각오할 수 있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목숨을 내어 주시면서 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우리의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뜻을 다하여 사랑한다는 것은 지적인 능력과 생각하는 힘을 의미하는 것으로 무지한 가운데 맹목적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분명한 이해와 통찰력을 가지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무지해서 잘못된 이단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람을 하나님이라고 믿고 구세주라고 맹목적으로 믿는 이단에 빠진 사람들처럼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사랑하는 것은 맹목적인 신앙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분명한 이해와 통찰력을 가지고 뜻을 다하여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힘을 다하여 사랑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있는 모든 힘을 다해서 다르게 표현한다면 온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과 목숨과 뜻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31절을 보면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십계명을 보면 1-4계명 까지는 하나님에 대한 계명이고 5-10계명 까지는 사람과의 관계에 대한 계명입니다. 1-4 계명까지를 한 마디로 하면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말씀이고 5-10 계명을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웃을 사랑해야 하는데 먼저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이웃을 사랑할 수 없다는 의미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지나치게 자학적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신은 너무 쓸모없는 존재라고 자신은 이 세상에 없어져야 할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 자기 학대와 지나치게 자기 비하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하나님이 독생자를 주시면서까지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녀라는 인식을 가져야 합니다. 나를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도 사랑할 수 없습니다.

물론 지나친 자기애에 빠지면 안 되지만 자기를 귀한 존재로 여길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웃을 나를 사랑하는 것처럼 사랑해야 합니다. 자기 자신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이웃을 사랑할 자리가 없으면 안 됩니다.

네 이웃에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소외된 사람들, 절망하는 사람들, 어려운 가운데 있는 사람들,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들의 소리를 외면하지 말고 힘들고 어려운 일을 겪는 사람들에게 주님의 사랑을 나누고 베푸는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1.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서기관의 질문에 대해서 예수님은 마음과 목숨과 뜻과 힘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31절을 다시 보면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마태복음에는 22:40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라고 기록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모든 율법과 계명의 완성이라는 의미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롬 13:10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고전 13:1-3절 까지에서

고전 13:1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고전 13:2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고전 13:3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고 사랑이 없는 믿음은 진실한 믿음이 아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랑은 전체로 드리는 모든 제사의 제물보다 나은 것입니다. 33절을 보면 “또 마음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또 이웃을 자기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전체로 드리는 모든 번제물과 기타 제물보다 나으니이다”

서기관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맞습니다. 라고 말하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모든 제사의 제물을 드리는 것보다 나은 것이라고 고백했습니다.

당시 유대주의자들은 형식적이고 의식적인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서기관은 제사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사랑의 실천이 제사의 제물을 드리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라고 고백했습니다.

고린도 전서 13장에서 바울이 말한 것처럼 우리에게 성령의 능력이 나타나고 온갖 기적을 행한다고 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고, 아무리 많은 제물을 드린다고 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제사보다 귀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서기관의 대답을 들으시고 네가 하나님 나라에서 멀지 않도다 라도 말씀하셨습니다. 34절을 보면 “예수께서 그가 지혜 있게 대답함을 보시고 이르시되 네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지 않도다 하시니 그 후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

예수님은 서기관의 대답은 성경에 대한 바른 이해에서 나온 것이고 예수님이 하신 말씀의 의미를 바로 이해한 것이라고 인정을 하고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바른 이해를 한 사람에게는 하나님 나라가 멀지 않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말씀에 대한 바른 이해와 올바른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이웃에게 나누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성경을 바르게 이해하고 살아가는 것이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고 이런 신앙으로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 나라에 이르는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 받는 것은 예수님의 이름을 믿으므로 받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함으로 믿음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교회 공동체를 사랑하는 참빛 교회 모든 성도가 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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