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있으리라(10월 13일 오전 예배 설교)

성경 : 마가복음 10:17-31(신약 71)

우리는 우리가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우리가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하기 위해서는 돈이 많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선교를 위해서, 교회를 위해서 무엇인가 큰 일을 하고 싶은데 그러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한데 나에게는 돈이 없다고 말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물론 어떤 일을 하려면 돈이 필요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일을 할 때에도 돈이 우선이 되는 것일까요? 먼저 예산을 세우고 어떻게 예산을 채울 것인가를 생각하고 나서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일이 아니라 사람의 일입니다.

모든 것은 주님의 능력으로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힘과 돈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능력으로 주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단지 어떤 일을 하는데 있어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은 돈이 많은 사람입니다. 돈이 많은 사람이 예수님에게 와서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 하고 질문을 했습니다. 예수님은 먼저 계명을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그는 이것은 어려서부터 다 지켰습니다. 라고 당당하게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그 사람에게 네게 있는 것을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네게 보화가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시자 그는 재물이 많은 고로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돌아갔습니다.

물론 재물을 팔아서 나누어 주는 것이 영생을 위한 필요조건은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사람이 재물과 영생 중에 어느 것을 선택할 것인지 시험하신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에게 나와서 영생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나요? 라고 물었지만 재물을 팔아서 나눠주라고 하셨을 때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돌아갔습니다. 결국은 영생과 재물 중에서 재물을 선택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마도 오늘 우리에게도 같은 말씀을 하신다면 많은 사람들이 재물을 선택할지도 모릅니다.

현대 사회에서는 돈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 시대이기 때문에 더 돈에 대한 애착이 강할 것이고 영생과 돈을 택하라고 할 때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 돈이 없으면 살아가기 힘들기 때문에 돈을 택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을 수 있습니다.

오늘 예수님은 성경의 중요한 법칙을 말씀하셨는데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있으리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있으리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1.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구약의 율법에 익숙한 질문입니다. 구약은 무엇을 하면 무엇을 준다는 계약의 형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을 찾아온 사람은 구약적인 개념으로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 라고 질문한 것입니다. 17절을 보면 “예수께서 길에 나가실새 한 사람이 달려와서 꿇어 앉아 묻자오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같은 내용을 마태복음에서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라고 질문한 것으로 기록했습니다.

마 19:16 “어떤 사람이 주께 와서 이르되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이 질문은 자기가 어떤 행위를 함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행위 구원의 개념이라고 할 수 있는데 특별히 어떤 선한 일을 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나요? 라고 질문한 것입니다.

돈이 많은 사람이니까 선한 일을 하는 것도 돈으로 하면 된다고 생각했을 수 있습니다. 모든 일을 돈으로 할 수 있다는 기본적인 생각을 가지고 그렇게 질문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19절에 “네가 계명을 아나니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 하지 말라, 속여 빼앗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 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선한 일을 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을까요? 라고 질문했는데 예수님은 먼저 계명을 지키라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 하지 말라, 거짓 증언하지 말라, 속여 빼앗지 말라, 부모를 공경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20절에 “그가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켰나이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10 계명 중에서 사람과의 관계와 관련한 계명을 말씀하신 것이고 그 사람은 자신이 이 계명들을 다 지키었다고 자신 있게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네게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고 말씀하시면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고 하셨습니다. 21절을 보면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이르시되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 사람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당당하게 이 모든 것은 내가 어릴 때부터 다 지켜왔습니다. 라고 대답을 했고 예수님은 대답을 들으시고, 그를 사랑하사 라고 한 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렇게 대답한 것은 웬만한 사람들에게는 볼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그런 신앙으로 살았다고 고백한 것에 대해서 그리고 예수님이 그를 볼 때 그렇게 대답한 것이 진실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사랑하는 마음으로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신앙으로 살았다면 네게 있는 것을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계명을 잘 지킨 사람이라면 당연히 이런 것도 충분히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너는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이니까 네가 가진 것을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팔아서 나누어 주면 하늘에서 보화가 있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1절을 다시 보면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이르시되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사람은 당황스러웠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재물을 다 나누어 주고 나중에 하늘에서 보화를 받는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당장에 돈이 있어야 하고 당장에 돈을 가져야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데 있는 것을 다 팔아서 나누어 주면 무엇을 가지고 살지 하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하늘 나라에 가서 보화가 있다고 하신 것은 당장에 실감 나지 않는 말씀입니다. 당장에 보이지 않고 당장에 누릴 수 없는 것을 위해서 현재의 삶을 희생해야 한단 말인가 하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지금 이 세상에서의 삶을 봅니다. 이 땅에서 잘 되고, 이 땅에서 부자가 되고, 이 땅에서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다면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세상의 것보다 하늘의 것을 생각하고 하늘에 보물을 쌓으라고 말씀하십니다. 마 6:19-20절을 보면

6:19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6:20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우리가 이 세상에서 나누고 베푸는 것은 하늘에 보화를 쌓아두는 것입니다. 지금 당장 나에게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지만 내가 나누고 베푸는 만큼 하늘에서 보화가 쌓이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1절을 다시 보면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이르시되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돈을 포기하지 못하면 예수님을 따를 수 없기 때문에 재물을 팔아서 나누어 주고 나를 따르라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세상 것을 마음에 두고서는 할 수 없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진정한 제자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주님을 따라야 합니다. 포기하지 못하면 주님을 따를 수 없기 때문에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신 것이고, 우리가 주님을 따르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은 생각의 변화 즉 관점의 변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세속적인 관점으로 주님을 따를 수 없습니다. 세속적인 생각으로 믿음을 지킬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따르고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는 세상 적이고 세속적인 관점에서 벗어나서 하나님 나라의 관점으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요구하신 것입니다. 세상에서 출세하고 잘되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주님의 제자가 되는 것이고 예수님을 믿는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그 사람은 슬픈 기색을 하고 근심하며 떠났습니다. 22절을 보면 “그 사람은 재물이 많은 고로 이 말씀으로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가니라” 결국 포기할 수 없는 것들이 있어서 슬픈 기색을 하고 근심하면서 예수님을 떠나서 돌아갔습니다.

  1. 하나님으로서는 할 수 있느니라

재물을 팔아 나누어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있으리라고 말씀하시고 나를 따르라 하셨지만 슬픈 기색을 하고 근심하며 돌아간 뒤에 예수님은 재물과 천국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렵다고 말씀하셨습니다. 23절을 보면 “예수께서 둘러 보시고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도다 하시니”

재물이 많은 사람은 경건한 신앙으로 살아가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재물을 많이 얻기 위해서 또는 많은 재물을 지키기 위해서 원하지 않는 일을 해야 할 때가 있고 때론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일도 해야 할 상황이 올 수 있습니다.

물론 모든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려운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일반론적으로 물질을 많이 쌓는 것은 선한 방법으로 만으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렵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눅 16:13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하나님 앞에 신실한 믿음으로 살면서 재물을 많이 얻은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하나님이 물질의 복을 주셨다고 이야기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 물질의 부요함은 선한 방법 만이 아니라 선과 악이 공존하는 가운데 얻는 부라고 볼 수 있기 때문에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어렵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에 대해서 말씀하시면서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쉽다고 말씀하셨습니다. 24-25절을 보면

10:24 “제자들이 그 말씀에 놀라는지라 예수께서 다시 대답하여 이르시되 얘들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10:25 “낙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

바클레이는 바늘귀란 말을 해석함에 있어서 성곽을 두르고 있는 도시에는 문이 두 개가 있었는데, 그 중 큰 문은 낮에 사람이나 짐수레 등이 다니는 것이며 작은 문은 밤에 사용되는 것으로써 사람이 서서는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작은 것으로 흔히 ‘바늘귀 문’이라고 불렀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비유는 당시의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장 큰 짐승 중의 하나로 이해하고 있는 낙타가 이 작은 문으로 통과하려는 것처럼 어려운 일을 이라고 해석했습니다.

한편 칼빈은 낙타를 가리키는 말의 헬라어가 ‘카멜로스’이며 배에서 사용되는 ‘밧줄’의 헬라어는 ‘카밀로스’인 것을 들어서 낙타가 아니라 밧줄이 바늘귀를 통과하기 어렵다고 말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랑게(Lange)는 육중한 몸무게의 낙타가 부자를 상징하고 있고, 눈으로 볼 수 있는 가장 작은 통로인 바늘 구멍이 하늘나라로 가는 영적 통로를 상징하고 있다고 함으로써 문자 그대로의 해석했습니다.

이 구절은 말씀 그대로 낙타가 바늘 구멍으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늘 나라에 가는 것보다 쉽다고 하신 그대로 이해해야 합니다. 그만큼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힘들다는 의미인데 진실한 믿음이 없이 오직 부자가 되기 위해 노력한 사람들은 부를 축척하는 과정에서 악을 저지르기 때문에 천국에 갈 수 없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계속해서 그러나 하나님으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6-27절을 보면

10:26 “제자들이 매우 놀라 서로 말하되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 하니”

10:27 “예수께서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당황했을 것입니다. 그러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을까요? 그러자 예수님은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하신 것은 부자가 되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기 때문에 천국에 갈 수 없다고 말씀하시고 나서 그러나 구원은 하나님에게 속한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람들의 생각에는 천국에 갈 수 없을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는 은혜로 우리에게 구원을베풀어 주십니다. 그래서 악을 행했을지라도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고 진실한 믿음을 나누고 베풀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하나님은 능히 구원하신다는 의미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악한 사람도 부자도, 의롭게 산 사람과 가난한 사람도 모두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단지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그 이름을 의지해서 회개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구원에 이르게 하십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말씀하신 구원의 진정한 의미입니다.

  1. 예수님과 복음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면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 어렵지만 하나님은 능히 구원을 베푸실 수 있다고 말씀하시자 베드로가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나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28절을 보면 “베드로가 여짜와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나이다.”

베드로의 고백과 같이 제자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다녔습니다. 직업도 포기하고 가정도 포기하고,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나를 따르라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예수님을 따라다녔습니다.

어쩌면 베드로는 부자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어렵다고 하신 말씀으로 위로를 받았을지도 모릅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예수님을 따르는데 자신들은 여전히 빈손이고 여전히 가진 것이 없었기 때문에 마음으로 원망하는 마음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부자는 천국에 가기 어렵다는 말을 들었을 때 제자들은 마음으로 우리는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을 얻은 것 같다고 생각했을 것이고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다고 하는 말에 안심했을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교회들 중에 70% 정도가 미자립 교회라고 합니다. 미자립 교회 목회자들이 어떤 때는 자괴감이 들 때도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가난한 교회로 살아가야 하는가? 교회를 포기해야 하나?

그러면서도 베드로처럼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습니다. 많은 미자립 교회 목회자들이 고백하고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습니다. 라고 고백한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나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버린 자는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29-30절을 보면

10:29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10:30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모든 것을 버리면 현세에 즉 이 세상에서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 배가 받되 이 말씀은 실제로 물질적인 보상이 있을 것이란 의미라기 보다는 영적인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을 백 배나 받는 것과 같은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게 되는데 박해를 겸하여 받는다고 말씀하셨는데 이것은 초대교회의 사도들이 성령이 충만해서 놀라운 기적을 행했지만 박해를 겸하여 받은 것에 대한 암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세상에서가 아니라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세상을 것을 포기할 때 성령과 은사를 충만하게 받게 될 것이고 내세에 영생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모두 가난한 그리스도인이 되라는 말씀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나라와 교회와 선교와 나눔을 위해서 필요한 물질을 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주시는 물질의 복을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믿음 안에서 의로운 방법으로 부를 추구해야 합니다. 믿음이 없는 부가 아닌 오직 믿음의 방법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부를 누려야 합니다.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될 자가 많다고 말씀하셨습니다. 31절을 보면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하나님의 원리는 세상의 원리와는 다릅니다. 지금 먼저 된 자처럼 보일지라도 나중 된 자의 자리에 있을 수 있고 지금 나중 된 자 인 것 같지만 먼저 된 자의 자리에 있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는 서로 존중하고,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하나님 나라 백성의 마음을 지니라는 경고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오늘 우리에게 가지려 하지 말고 주는 자가 되라고 말씀하시면서 주는 자는 하늘에서 보화가 있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참빛 교회와 우리 모두 주는 자가 되고 서로 존중하면서 다른 사람을 낫게 여기는 겸손의 믿음으로 살아가는 삶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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