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은혜를 베푸소서(10월 6일 오전 예배 설교)
시편 26:1-12(구약 820)
어느 덧 10월이 되었습니다. 10월이 되니까 날씨가 갑자기 쌀쌀해 지는 것을 느끼게 되고 더위가 물러간 것 같습니다. 금 년 여름은 너무 더워서 언제 여름이 지나가나 했는데 벌써 10월이 되었습니다.
제발 무더위가 물러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쌀쌀함을 느낍니다. 더위가 안 물러갈 것 같더니 물러간 것처럼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언젠가는 끝날 때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영원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욕심을 부리며 살아가지만 돌아보면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언젠가는 사라질 것을 영원할 것처럼 생각하면 살아갑니다.
우리가 시편을 살펴볼 때 때론 다윗이 자신이 겪는 고난의 원인 자신의 죄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고 눈물로 회개하는 것을 보기도 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다윗은 ‘하나님 나는 아무런 죄가 없음에도 왜 이런 고난을 당하게 하십니까?’ 라고 하소연하고 있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은 지금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기를 “하나님 나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 라고 간구하고 있습니다. 은혜란 말 자체가 값없이 주는 선물이란 뜻으로서 비록 내가 하나님 앞에 부족한 사람이지만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지금 겪고 있는 모든 어려움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고 간구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하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한다는 것 자체가 값없이 거저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은혜에 근거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행한 일이 없지만 그래도 기도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은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 우리의 삶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우리가 어려움을 겪는 것은 우리의 죄 때문인 경우도 있지만 죄가 없지만 어려움과 고난을 겪을 수 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 나는 악을 행하는 자들과 같이 살지 않았고 오직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셨습니까?
이제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다시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옵소서. 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힘든 상황에서도 찬송해야 하지만 문제가 해결되고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고 하나님께 마음을 다해 찬양하겠습니다. 이런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12절을 보면 “내 발이 평탄한 데에 섰사오니 무리 가운데에서 여호와를 송축하리이다.” 라고 고백하고 있는데 이 고백은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내 발이 평탄한 데에 서게 됨으로 많은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을 송축하겠습니다. 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오늘 다윗의 간절한 기도를 중심으로 해서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오늘 다윗의 간절한 기도를 통해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 나를 판단하소서
다윗은 하나님께 자신을 판단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다윗이 이렇게 기도하는 것은 자신이 처한 상황이 마치 하나님이 원하지 않는 삶을 살았기 때문에 겪는 시련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시련을 겪는 것을 보면서 사람들이 다윗이 하나님 앞에 온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런 시련을 겪는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따라서 다윗은 먼저 하나님 앞에 나를 판단해 달라고 기도한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나를 판단해 달라고 기도하면서 나의 완전함에 행하였습니다. 라고 고백했습니다. 1절을 보면 “내가 나의 완전함에 행하였사오며 흔들리지 아니하고 여호와를 의지하였사오니 여호와여 나를 판단하소서”
11절을 보면 “나는 나의 완전함에 행하오리니 나를 속량하시고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라고 고백했습니다.
여기서 ‘완전함’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תֹּם‘톰’은 여호와의 언약의 말씀에 따라 사는 의인의 순수한 상태를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그렇다고 하나님 앞에서 완전 무죄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일반적인 기준에서 윤리적으로 악한 일을 행하는 악한 원수들과 비교해 볼 때 상대적으로 보다 완전한 하다는 의미입니다. 다윗이 자신의 완전함을 말하고 있는 것은 현재 당하고 있는 부당함을 하나님께 강하게 호소하기 위함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완전함을 주장하면서도 여전히 하나님의 긍휼에 호소하고 있습니다(11절). 다윗은 자신이 완전하다고 말하는 것은 나는 아무 것도 부족함이 없는데 왜 이렇게 고난을 당해야만 합니까 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여전히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나는 하나님 앞에 완전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1절 마지막 부분에 나를 판단하소서 라고 한 것은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서 나는 하나님 앞에 믿음으로 살려고 노력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은 완전함에 행한다고 말하면서 나는 흔들리지 않고 여호와를 의지합니다. 라고 말하면서 내가 흔들리지 않고 여호와만을 의지하는 것을 보시고 판단해 주옵소서라고 기도한 것입니다.
이어서 다윗은 나는 진리 중에 행합니다. 라고 고백했습니다. 2-3절을 보면
26:2 “여호와여 나를 살피시고 시험하사 내 뜻과 내 양심을 단련하소서”
26:3 “주의 인자하심이 내 목전에 있나이다 내가 주의 진리 중에 행하여”
나를 판단하소서 라고 말한 다윗은 나를 살피시고 시험하사 내 뜻과 내 양심을 단련하소서라고 간구했습니다. 2절을 우리말 성경으로 보면 “오 여호와여, 나를 살피시고 시험해 내 마음과 내 생각을 알아보소서.” 라고 번역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살펴보시고, 내 마음과 생각도 보시고 내가 하나님 앞에 신실한지 아닌지 확인해 보시라고 기도하면서 주의 인자하심이 내 목전에 있습니다. 라고 고백했는데 ‘주의 인자하심’(헤세드)이란 하나님의 언약적 사랑을 뜻합니다.
다윗은 자신의 삶 가운데 항상 이 하나님의 사랑을 마음속에 기억하며 간직하여 살아왔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주님의 인자 즉 헤세드가 항상 나와 함께 하심으로 언제나 내가 주의 진리 중에 행하고 있습니다. 라고 고백했습니다.
여기서 진리라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하는 것으로 진리이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고 있습니다. 라는 고백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항상 진리 가운데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그 믿음 안에 살아가는 것이 진리 안에 살아가는 것이고 생명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다윗은 진리 가운데 행한다고 고백하고 간사한 자와 동행하지도 않고 악한 자와 같이 앉지도 않는다고 고백했습니다. 4-5절을 보면
26:4 “허망한 사람과 같이 앉지 아니하였사오니 간사한 자와 동행하지도 아니하리이다.”
26:5 “내가 행악자의 집회를 미워하오니 악한 자와 같이 앉지 아니하리이다.”
‘허망한 사람’ 이란 그 마음과 행위가 가치 없는 자를 의미합니다. 이러한 사람의 영적 상태는 하나님과 단절되어 있으며 사악한 행위를 서슴지 않고 행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윗은 비록 그에게 해를 당한다 할지라도 진리의 말씀에 입각하여 이러한 자들과 자리를 함께 하지 않았다고 고백했습니다.
‘간사한 자’ 는 진리의 탈을 쓴 위선자를 의미합니다. 이들은 거짓과 허위를 일삼는 사람들입니다. 다윗은 그런 사람들의 위선을 따르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그렇게 행할 것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행악자의 집회’ 는 모임의 목적이 악한 일을 위한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아니라 모여서 악을 도모하는 일에 참여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세상에는 많은 모임이 있습니다. 우리는 모임이 어떤 목적으로 모인 것인가를 알고 악한 일을 위한 목적으로 모인 모임에 참여하지 말아야 합니다.
‘악한 자’ 는 모든 악을 행하는 자들이란 의미로 온갖 악을 행하는 자들과는 자리도 함께 하지 않았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시편 1:1절에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라고 노래했는데 다윗은 악인들과 꾀와 죄인들의 길과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않았다고 말한 것입니다.
- 주의 전을 사모합니다.
다윗은 하나님 앞에 당당하게 나를 판단하시고 시험해 달라고 고백하면서 나는 하나님 앞에서 말씀을 의지하고 흔들림 없는 믿음으로 살았다고 고백을 하면서 악한 자들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진리 중에 거했다고 고백을 했습니다.
계속해서 다윗은 언제나 나는 주의 전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살았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언제나 주님의 전을 사모하는 신앙으로 살아야 합니다.
다윗이 지은 많은 시들 속에서 한 결 같이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주의 전을 사모하고는 마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어떤 사람은 세상의 부귀영화를 향하고 있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건강하게 장수하는 것에 마음이 가 있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자녀들이 잘 되는 것이 모든 마음이 가 있기도 합니다. 우리의 마음은 오직 주의 전을 사모하는 마음이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을 다른 것에 빼앗기면 근심이 생기고, 걱정이 생기고, 두려움이 생기는 것입니다. 다윗이 고백한 것처럼 오직 주의 전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살아갈 때 두려움도, 걱정도, 염려도 내 마음에서 떠나게 되고 주님의 전을 사모하며 살아갈 때 강 같은 평화가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의 전을 사모하고 주의 전을 향해 나아갈 때 다윗은
손을 씻고 나아갑니다. 6절을 보면 “여호와여 내가 무죄하므로 손을 씻고 주의 제단에 두루 다니며” 여기서 다윗은 하나님 전에 나아가서 주의 제단에서 두루 다녔다고 고백하는데 이 말은 온갖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 주의 제단에서 두루 다녔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 손을 씻었다고 고백을 합니다.
그 앞에 무죄하므로 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 말은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도록 철저하게 회개하고 나아왔다는 의미입니다.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완전하게 무죄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죄를 고백하면 의로운 주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해주시고 의롭다고 인정해 주십니다. 우리가 주님을 믿고 믿음으로 고백할 때 우리의 죄가 사함을 받고 의롭다고 인정을 받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전에 나아갈 때 우리는 주님을 구세주로 영접하고 우리의 죄를 고백하므로 의롭다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손을 씻어야 합니다. 여기서 손을 씻는다는 말은 정결한 마음으로 주님 앞에 나아간다는 의미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제사장들이 제사를 집전할 때 손을 씻고 제사를 집전했습니다. 손을 씻으므로 지금까지 하던 일을 내려놓고 진실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입니다.
이어서 감사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7절에 “감사의 소리를 들려 주고 주의 기이한 모든 일을 말하리이다.” 다윗은 하나님의 전에 나아가면서 회개하고 정결한 마음으로 세상의 모든 것을 잠시 내려놓고 예배에 집중했다고 고백한 다음에 감사의 노래를 불렀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감사의 소리를 들려준다는 말은 주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를 찬송으로 고백한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다해 감사의 찬양을 고백하기를 원하십니다.
시 50:23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우리가 드리는 예배는 감사로 드리는 예배가 되고, 감사 찬송으로 가득한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계속해서 다윗은 주의 기이한 모든 일을 말한다고 고백했는데 이 말을 오늘의 말로 표현한다면 간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베풀어 주신 기이한 일들 즉 기적 같은 일들을 많은 사람들 앞에서 선포하겠다는 뜻입니다.
초대 교회 예배는 기도와 찬양과 그리고 고백이 있었습니다.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는 고백과 기이한 일을 고백 하는 즉 간증의 고백이 예배에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우리의 예배 속에 언제나 간증의 고백이 넘쳐나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다윗은 주의 영광이 머무는 곳을 사랑했습니다. 8절에 “여호와여 내가 주께서 계신 집과 주의 영광이 머무는 곳을 사랑하오니” 다윗의 평생소원이 성전을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언제나 다윗의 마음에는 하나님이 계시는 곳 성전을 향한 사모함이 있었습니다.
특별히 다윗은 여기서 주님의 영광이 머무는 곳을 사랑한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주의 영광이 머무는 곳은 구약의 개념에서 성전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주님의 영광은 우리의 삶에서 믿음이 고백 되는 곳에 임하십니다.
오늘 이곳이 주님의 영광이 머무는 곳이고 믿음으로 하나 된 성도의 가정이 주님의 영광이 머무는 곳이고, 믿음의 사업장이 주님의 영광이 머무는 곳이고, 믿음의 고백이 있는 직장이 주님의 영광이 머무는 곳입니다.
주님의 영광이 머무는 곳을 사모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살아갈 때 우리의 발걸음 닿는 곳마다 주님의 영광이 임하는 축복의 자리가 되리가 믿습니다.
- 은혜를 베푸소서
다윗은 오직 진리 가운데 행하고 하나님의 전을 사모하는 열정으로 예배하며 살았다고 고백했습니다. 다윗은 이제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시길 기도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은혜를 구하는 기도를 보면
내 영혼을 구원하소서 9-10절을 보면
26:9 “내 영혼을 죄인과 함께, 내 생명을 살인자와 함께 거두지 마소서”
26:10 “그들의 손에 사악함이 있고 그들의 오른손에 뇌물이 가득하오나”
다윗이 내 영혼을 죄인과 함께, 내 생명을 살인자와 함께 거두지 마옵소서라고 기도한 것은 다른 말로 하면 나의 영혼을 구원하옵소서라는 기도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영혼이 죄인과 살인자와 함께 한다는 것은 영원한 사망이 이르는 것입니다.
따라서 죄인과 함께 하지 않게 해 달라는 것은 내 영혼을 구원하셔서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가게 하여 주옵소서라는 기도입니다. 죄인들의 손은 사악하고 그들의 오른손에는 뇌물이 가득합니다. 라고 말하면서 나는 의롭고 진리를 따라 살아왔으니 그들과 같이 사망이 아닌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구원하여 주시옵소서라고 간구한 것입니다.
11절을 보면 “나는 나의 완전함에 행하오리니 나를 속량하시고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속량이란 말은 구원이란 말입니다. 나는 완전함에 행하오리니 내 영혼을 죄인들과 같이 하지 마시고 속량하옵소서 라고 간구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다윗은 속량 즉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라는 말과 나를 속량하시고라는 말은 같은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나에게 은혜를 베푸서 속량 즉 구원하옵소서라고 간구한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받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무 공로 없지만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함을 받아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다윗은 은혜를 베푸사 나를 구원하옵소서라고 간구한 다음에 그러면 내가 평탄한 데 섰사오니 무리 가운데서 여호와를 송축하리이다라고 고백합니다. 12절을 보면 “내 발이 평탄한 데에 섰사오니 무리 가운데에서 여호와를 송축하리이다.”
우리가 구원 받은 성도로서 할 일은 무리 가운데서 하나님을 송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그 은혜를 찬양하고 고백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구원 받은 성도가 해야 할 일입니다.
다윗의 고백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고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은혜에 감사하면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영광 돌리는 삶이 되시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