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9월 29일 오전 예배 설교)

야고보서 5:7-20(신약 376)

야고보 사도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과 같은 것이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다고 선포했습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 분명하지만 야고보는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니라고 말했습니다.

믿음과 행함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참고 인내하는 것과 기도에 대한 이야기를 함으로 야고보서를 마무리 했습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을 다르게 말한다면 믿음으로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문화는 원래 여유 있는 문화였습니다. 그러나 근대화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 문화와 생활 패턴이 매우 급하고 바쁘게 변화되었습니다. 과거에는 참고 기다리는 문화였다면 지금은 잠시라도 늦는 것이 용납되지 않는 문화로 바뀌었고, 이런 생활의 변화로 인해서 택배라든지 음식 배달이라든지 하는 것에도 나타납니다.

우리는 빨리빨리 문화에 너무 익숙해져 있습니다. 이런 빨리빨리 문화가 신앙생활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우리를 돌아보아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야고보 사도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참고 인내하면서 기도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을 급하게 생각하고, 급하게 결정하고, 급하게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역사하실 때가지 기다리는 신앙이 필요합니다.

또한 기다리면서 기도를 계속하는 믿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기도해도 응답하시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과 왜 하나님은 빨리 응답하지 않으시는 걸까 하는 조바심이 아닌 참고 인내하면서 기도하는 참빛 교회 성도가 됩시다.

오늘 우리가 함께 봉독한 말씀은 세 가지로 주제로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주제는 참고 인내하라는 주제이고

두 번째 주제는 기도에 대한 것이고

세 번째 주제는 진리를 떠난 자들을 돌아오게 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세 가지 서로 다른 주제인 것 같지만 기도와 관련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야고보는 의인은 간구하는 힘이 크다고 말하면서 엘리야의 이야기를 예로 들었습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야고보 사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 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받을 수 있는 은혜는

  1. 길이 참고 마음을 굳건하게 하라

야고보는 1-6절 까지에서 물질을 따라 사는 자들이 울고 통곡하게 될 날이 오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세상에서는 돈이 최고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돈을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살아가고 돈을 따르는 사람들은 의인을 정죄하고 죽이기까지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모은 재물은 악에 대한 증거가 되고 불같이 살을 먹게 된다고 말합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이런 날이 올 것을 알지 못한 채 돈을 쫓아가고 있습니다. 어리석게 돈과 명예와 권력을 따라 살아가는 인생들에게 하나님은 야고보 사도를 통해서 종말의 때가 온다고 경고하십니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종말의 날이 있다는 것을 믿는 성도들은 길이 참고 마음을 굳건하게 하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해야 하는데 길이 참는 농부를 보라고 말씀합니다. 7절을 보면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께서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농부가 밭에 씨를 뿌릴 때는 씨를 뿌리자 마자 즉시 열매를 거둘 것이라고 생각하고 뿌리는 것이 아니라 뿌린 씨가 열매를 맺고 추수하기 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알고 씨를 뿌립니다.

우리나라는 주로 봄에 씨를 뿌려서 여름이나 가을에 열매를 거두지만 이스라엘과 중동 지역은 밀과 보리를 주식으로 삼기 때문에 가을에 씨를 뿌려서 우리 계절로 하면 초여름에 열매를 거둡니다.

밀과 보리 씨앗을 뿌릴 때 비가 적당하게 내려주어야 싹이 나고 자라게 되는데 이 때 내리는 비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이른 비입니다. 그리고 열매를 거두기 전에 곡식이 좋은 열매가 되기 위해서 비가 내려야 하는데 이 때 내리는 비가 늦은 비입니다.

팔레스틴 지역의 농부들은 씨를 뿌리고 하나님께서 이른 비를 내려주시기를 기다립니다. 그리고 추수하기 전에 늦은 비를 내려 주시길 기다립니다. 비를 내리는 것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적당한 때에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내려주시길 간절히 바라면서 기다립니다.

하나님은 참고 기다리는 그들을 위해서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적당한 때에 내려주셔서 메마른 광야 같은 팔레스틴에서 농부들이 풍성한 소출을 거두게 하십니다.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들에게는 농부의 기다림과 같은 기다림의 신앙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믿음으로 살아갈 때 이른 비와 늦은 비와 같은 말씀과 성령의 은혜를 내려 주셔서 영적인 결실을 거두게 하십니다.

전도서 재미있는 표현이 있습니다.

전 11:4 “풍세를 살펴보는 자는 파종하지 못할 것이요 구름만 바라보는 자는 거두지 못하리라”

현대어 성경으로 보면 “바람을 피하다가는 씨도 뿌리지 못하고 구름을 살피다가는 추수도 하지 못한다는 말처럼 완전한 조건이 갖추어지기를 기다리다가는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할 것이다.”

모든 조건이 갖추어지길 기다리는 사람은 아무 것도 못하지만 농부들이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주심을 믿고 씨를 뿌리듯 하나님이 하실 것을 기대하고 도전하면 하나님이 이루게 하십니다.

참고 인내하며 기다리는 사람들은 서로 원망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8-9절을 보면

5:8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건하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5:9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보라 심판주가 문 밖에 서 계시니라”

농부가 참고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는 것처럼 우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건하게 하라고 말씀합니다. ‘굳게 하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στηρίξατε ‘스테릭사테’ 는 ‘받침’, ‘지지’를 의미하는 단어로 70인 역에서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아말렉과 싸울 때 아론과 훌이 모세의 손을 받쳐 주고 지지한 상황에서 이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이 말은 확실한 신앙에 온전히 서서 핍박 가운데서도 인내할 뿐만 아니라 흔들리지 않는 내적인 자세를 지녀야 한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주님이 다시 오실 날이 가까왔으니 확실한 신앙으로 마음을 굳게 붙잡고 믿음을 지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참고 마음을 굳건하게 하는 사람들은 서로 원망하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서로 원망하지 말라는 말에 대해서 현대어 성경은 “남을 헐뜯지 마십시오.” 공동번역은 “서로 남을 탓하지 마십시오.”, 우리말 성경은 “서로 불평하지 마십시오.”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서로 원망하지 말라는 말은 그리스도인들은 악한 동기에서 일어나는 불평과 핍박자들을 향한 원한의 탄식을 하지 말아야 할 뿐만 아니라 도리어 온전히 기뻐하고, 그리스도를 소망해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겪게 되는 모든 어려운 상황들을 다른 사람 탓으로 돌리거나 서로 책임 전가를 하거나, 서로에 대해서 불평하지 말고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그 모든 상황에서 하나님이 하실 일을 바라보면서 오히려 기쁨으로 참고 인내하면서 기다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서로 원망하고 주어진 상황에 대해서 불평하고 남 탓을 하면 심판을 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적 가치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 교회와 성도들이 이 말씀을 마음에 담아야 합니다.

과거에 한국 교회는 모여서 기도할 때 내 탓입니다. 라는 슬로건으로 회개의 기도를 했다면 지금은 연합 예배의 주제가 남을 탓하는 것처럼 들려집니다. 우리가 회개하고 겸손한 자세를 갖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합니다.

야고보는 인내하는 자를 복되다 하나니 라고 말씀했습니다. 10-11절을 보면

5:10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을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으로 삼으라”

5:11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직접적인 계시는 물론 선지자들이 살아가던 시대의 역사적 상황에 대한 영적 의미를 백성들에게 전했기 때문에 박해를 받았습니다. 그런 고난과 박해 속에서도 인내하면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온 선지자들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고난’과 ‘인내’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본이 된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다양한 이유로 고난을 당하는 상황 가운데서 인내한 선지자들을 바라봄으로 현재의 고난에서 위로를 받을 뿐만 아니라 그 위로 가운데 인내해야 한다고 말씀했습니다.

선지자들이 받은 고난 속에서 오래 참음의 본을 배우고 그 본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 즉 인내하는 자들을 복되다고 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소망하면서 고난과 핍박 속에서 인내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복을 받게 된다고 말한 야고보는 실례로 ‘욥’을 제시했습니다.

야고보는 어려움 속에서도 오직 하나님만을 소망한 욥을 예로 제시한 후 인내의 결과인 욥의 결말 즉 갑절의 축복을 받은 사실을 언급함으로 모든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인내하는 믿음으로 참고 인내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인내하는 사람이 복되다고 말한 야고보 사도는

  1.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크다.

참고 인내하는 성도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도하는 것입니다. 고난의 상황 속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의 이름을 의지해서 기도하면서 참고 인내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야고보를 통해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크다고 말씀하시면서 기도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기도하고 찬송해야 합니다. 13절을 보면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찬송할지니라”

고난을 당하게 될 때 일반적으로는 낙심하게 되거나 절망하게 되는 경우가 많지만 믿음으로 사는 성도는 고난을 당하게 될 때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살아가면서 고난을 당하는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탄이 공중 권세를 잡고 있기 때문에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을 넘어뜨리기 위해서 고난을 줍니다. 믿음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믿지 않을 때보다 더 많은 고난의 상황을 겪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고난을 받는 상황이 될 때 해야 할 일은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들고 기도할 때 고난의 상황에서 하나님의 돕는 손을 만나고 경험하게 됩니다. 고난을 당함에도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돕는 손이 우리에게 임하지 않습니다. 고난 당하고, 어려울 때 모든 것을 잠시 내려놓고 간절하게 기도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또한 즐거워하는 자는 찬송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일반적으로 고난당할 때에 기도하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는데 즐거워할 때에는 방종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야고보를 통해서 즐거워하는 자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찬송을 드려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고난이 올 때 간절히 기도하고, 즐거운 일, 감사할 일, 기쁜 일이 있을 때 하나님 앞에 찬양하며 살아가는 참빛 가족이 되시기 바랍니다.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합니다. 14-15절을 보면

5:14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그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그를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5:15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

예수님을 믿는 성도도 질병에 걸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병에 안 걸리고 사고도 안 당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살지만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는 질병에 걸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질병에 걸리게 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교회의 장로들을 청하라고 말씀했는데 교회의 장로는 오늘날로 해석하면 목회자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 때는 영적 지도자들을 장로라고도 표현했기 때문에 우리가 육체적인 질병으로 어려움을 당할 때 교회의 지도자를 초청해서 치유를 위한 기도를 받아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그들은 즉 교회의 지도자들은 기름을 바르며 그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말씀하는데 기름을 바른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로 볼 수 있는데 그 시대에 기름을 바른다는 것은 일종의 의료행위였다고 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질병에 걸릴 때 의술의 도움을 받는 것을 거부할 필요가 없습니다.

또 하나는 기름을 바르며 기도하는 것은 신유를 위한 기도의 한 방법으로 기름을 바르며 기도하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치유를 위한 기도는 본인의 기도와 함께 교회 지도자들이 치유를 위한 기도를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혼자서 병이 낫기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보다는 함께 기도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질병으로 어려움 겪는 성도를 위해서 교회의 지도자들과 성도들이 함께 질병이 고침 받기를 위해서 기도할 때 즉 믿음의 기도를 할 때 믿음으로 하는 기도로 병든 자가 구원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구원은 질병에서 고침을 받아 육체적으로 건강하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질병에 걸리는 경우가 죄로 인한 것일지라도 믿음으로 함께 기도하면 질병에 고침을 받게 되고 질병을 위한 기도를 하고 받을 때 마음에 죄가 생각나서 고백하게 되고 그러므로 죄 사함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야고보 사도를 통해서 서로 죄를 고백하고 낫기를 위해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6절을 보면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

치유 기도를 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가 죄를 고백하는 것이라는 의미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질병으로 고통 당할 때 가장 먼저 나 자신을 돌아보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죄를 고백하라는 말씀이고 그렇게 고백하고 서로의 병이 낫기를 위해서 서로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서로 죄를 고백하는 것은 자발적 고백이란 의미로 무조건 죄를 고백하라는 것이 아니라 죄가 생각나거든 스스로 자발적인 고백을 하라는 의미입니다.

자발적 고백이란 의미는 죄 문제를 고백하는 것이 큰 문제가 되지 않을 때를 말씀하는 것이고 고백하는 것이 어려운 경우라도 무조건 고백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질병의 반드시 죄의 문제로 오는 것만은 아니기 때문에 본인이 죄를 깨달았을 때 고백하라는 말씀입니다.

주의 할 점은 남의 고백을 듣게 된 경우에는 그것을 반드시 비밀로 지켜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어렵기 때문에 개신교에서는 죄의 고백은 자신과 하나님과 일대일 기도로 하라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우리는 병이 낫기를 위해서는 서로 중보 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서로를 위해서 중보 하며 기도할 때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크다고 하셨는데 이 말은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한 성도는 의롭다고 인정을 받았고,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면 죄 사함을 받기 때문에 우리는 의롭게 된 성도이기에 우리가 서로 함께 기도할 때 역사하는 힘이 크다는 것입니다.

혼자 하는 기도보다 함께 하는 기도에 더 큰 역사가 나타납니다. 특히 질병을 위해서 함께 기도할 때 더 큰 역사가 일어납니다.

하나님은 야고보를 통해서 엘리야는 우리와 같은 사람이지만 간절히 기도할 때 역사가 일어났다고 말씀하셨습니다. 17-18절을 보면

5:17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그가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오지 아니하고”

5:18 “다시 기도하니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맺었느니라”

하나님은 야고보 사도를 통해서 기도의 사람 엘리야를 예로 들어서 말씀하셨습니다. 엘리야는 우리와 전혀 다른 특별한 사람이 아니고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라도 말씀하셨습니다.

성정이란 단어는 고난이란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와 성정이 같다는 말은 우리와 같은 인간이라는 뜻으로 엘리야도 다른 일반 사람과 마찬가지로 동일한 괴로움을 가지고 있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엘리야도 아합과 이세벨 때문에 마음에 괴로움을 느꼈지만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더니 3년 6개월 비가 오지 않았고 다시 기도하니 비가 오고 땅이 열매를 맺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도 간절한 기도는 기적을 이루는 능력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기도는 치유와 능력이 있고 응답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1. 진리를 떠난 자들을 돌아오게 하라

의인의 기도는 역사하는 힘이 크다고 말씀하고 이어서 진리를 떠난 자들을 돌아오게 하는 것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진리를 떠난 자들을 돌아오게 하는 것도 기도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진리를 떠난 자들을 위해서 돌아오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믿음 생활을 하다가 세상으로 나간 사람들을 생각할 때 가슴 아픔을 느껴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 즉 진리를 떠난 사람들을 돌아서게 해야 합니다. 19절을 보면 “내 형제들아 너희 중에 미혹되어 진리를 떠난 자를 누가 돌아서게 하면”

당시에는 그리스도를 영접한 이후에도 유대교나, 이방의 신비 종교 혹은 이교 철학으로 되돌아가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구원의 길에서 떠나 방황하는 형제 자매들을 사랑으로 서로 권면하여 다시 돌아와 복음 안에 거할 수 있도록 하라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다가 세상으로 나아가거나 이단에 미혹 당하거나 다른 종교를 믿게 된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다시 주님 안으로 돌아오도록 권면하고 이끌어 주어야 합니다. 그들이 다시 주님의 복음 안에 돌아오도록 진실한 마음으로 기도하면서 이끌어 주어야 합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전도도 중요하고 미혹을 당해서 진리를 떠난 사람들이 주님께 돌아오도록 도와주는 것도 중요한 일입니다.

미혹된 길에서 돌아서게 함으로 그의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해야 합니다. 20절을 보면 “너희가 알 것은 죄인을 미혹된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 자가 그의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할 것이며 허다한 죄를 덮을 것임이라”

미혹되어서 하나님을 떠난 자는 영적인 죽음의 상태에 있는 자였으나 하나님께 돌아옴으로 영적 죽음에서 구원을 얻어 영적 생명을 소유하게 되는 것이고 우리가 미혹을 당해 진리를 떠난 사람들이 주님께 돌아오게 하는 것은 그들의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하는 것이고 허다한 죄를 덮게 해 주는 것입니다.

현대어 성경은 “그를 하나님께로 다시 돌아오게 한 이 사람은 방황하던 영혼을 죽음에서 구원하고 또 그 사람이 저지른 많은 죄를 용서받게 하는 일을 해낸 것입니다.” 라고 번역했습니다.

오늘 하나님은 기도에 대한 말씀을 주셨습니다. 어려움을 당하고 고난을 당할 때 참고 인내하며 기도하는 사람이 복된 사람이고 병들고 힘든 일이 있을 때 마음을 같이 하여 기도할 때 크고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우리의 기도는 역사하는 힘이 큰 기도가 됨을 믿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함께 마음을 모아 기도함으로 큰 역사를 이루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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