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8월 11일 오전 예배 설교)
에베소서 4:17-32(신약 314)
 
2주간 파리에서 올림픽이 열렸습니다. 이번 올림픽 개막식에서 ‘기괴했던 최후의 만찬 패러디’로 인해서 기독교계가 거센 반발을 했고, 그로 인해서 그 영상은 삭제된 상태라고 합니다.
 
우리가 소속되어 있는 한국 교회 총 연합회도 비판적인 성명서를 발표했고, 전 세계 많은 기독교 단체에서 그런 이상한 패레디에 대해서 비판을 했습니다. 저는 개막식을 보지 않아서 그런 일이 있었는지 몰랐는데 나중에 한국 교회 총연합회에서 올린 성명서를 비롯해서 여러 언론에서 보도된 것을 보고 알았습니다.
 
저는 그 영상을 보면서 제게 뭐지 하는 생각보다 올림픽의 원래 시작이 우상을 섬기는 것에서 유래된 것이라 그렇게 당황스럽지는 않았습니다. 프랑스 사람들이 고대 올림픽의 우상 숭배를 흉내 낸 것인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고대 올림픽은 기원전 776년에 그리스의 올림피아에서 처음 개최되었습니다. 이 대회는 제우스 신을 기리기 위한 종교적 축제의 일환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고대 올림픽의 주된 목적은 신에게 경의를 표하고, 각 도시국가 간의 평화와 화합을 촉진하는 것이었습니다. 대회 기간 동안에는 전쟁도 중단되었습니다. – ChatGPT)
 
하나님에 대한 온전한 믿음이 없으면 그런 일을 하면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오늘 바울 사도를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성도로 그리스도인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말씀을 들려주셨습니다.
 
우리가 신실한 믿음의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과거의 생활을 벗어버리고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과거의 내가 여전히 남아 있으면 우리는 거듭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요 3: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바울 사도는 고후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라고 선포했습니다.
 
오늘 22-24절에서도
4:22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4:23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4: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과거의 내가 아닌 새로운 사람을 입은 거듭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거듭난 새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과거 즉 예수님을 믿기 이전의 일들을 버려야 하고, 특히나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바울 사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우리가 마귀에게 틈을 주지 않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믿음으로 살아가야 하고 우리의 삶이 과거와는 다른 믿음 안에서 새로워진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마귀에게 틈을 주지 않기 위해서는
 
1.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하지 말라
‘허망한 것’의 헬라어 ματαιότης(마타이오테스)는 신약성경에서 때때로 우상 숭배와 관련된 단어로 사용되었습니다. 허망한 것이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생명으로부터 분리된 삶에서 비롯된 것으로 ‘쓸모 없는 생각’이란 의미입니다.
 
바울은 에베소 교회 성도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으므로 하나님을 모르고 살았던 과거의 삶처럼 목적 없이 헛된 것을 따르므로 무익하고 공허한 것을 위해 살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로 허망한 것으로 행하지 말라고 권면한 것입니다.
 
마음에 허망한 것으로 행하는 것은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난 것입니다. 17-18절을 보면
4:17 “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언하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 같이 행하지 말라”
4:18 “그들의 총명이 어두워지고 그들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그들의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하는 사람들은 총명이 어두워집니다. 총명이 어두워진다는 것을 현대어 성경은 “그들은 분별력을 잃어버리고 혼란에 빠져 있습니다. 그들은 마음을 닫고 깜깜한 어둠에 갇혀 지냅니다. 하나님을 향해 마음을 닫아 버렸기 때문에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에서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길을 깨닫지 못합니다.” 라고 번역했습니다.
 
총명이 어두워진다는 것은 분별력을 잃어버림으로 마음이 어둠에 갇힌 상태가 되어서 무엇이 옳은 것이고 진리인지를 분별하지 못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하나님을 향한 마음이 닫혀 졌고, 하나님을 향한 마음이 닫히게 되면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마음이 굳어졌다는 말의 의미는 돌같이 딱딱한 상태가 되었다는 것으로 ‘마음이 굳어짐’이란 말은 자신의 잘못에 대해서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하는 무감각한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굳은 마음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습니다. 우리 안에 굳은 마음을 제하시는 성령님의 임재하심과 말씀의 검을 통해서 굳은 마음이 부드러운 마음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겔 36: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성령으로 마음이 부드러워지면 말씀을 믿고 의지하게 되고 말씀을 믿고 의지함으로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이 나의 구세주이심을 믿고 하나님의 생명 안에 거하게 되는 것입니다.
 
허망한 것으로 행하는 사람들은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합니다. 19절을 보면 “그들이 감각 없는 자가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
 
‘감각 없는 자’에 해당하는 헬라어 ἀπαλγέω(아팔게)는 신약성경에서 본 절에만 나타나는 것으로 앞절에서 언급한 ‘마음이 굳어짐’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이 단어는 문자적으로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무감각한’이란 의미로 양심의 가책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상태라는 것입니다.
 
마음에 감각이 없기 때문에 자신을 방탕에 방임한다는 것입니다. 방탕에 방임한다는 말은 자신의 육체의 쾌락에 자신의 몸을 맡긴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하는 일이 선한 것인지, 악한 것인지 구별을 못할 뿐 아니라 자신의 욕심과 쾌락과 즐거움을 채우기 위해 살기 때문에 더러운 일도 불결한 일도 서슴치 않고 행한다는 것입니다.
 
마음에 감각이 없는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악한 방법이나 더럽고 추한 방법도 마다하지 않고 행하고 삶의 목적이 자신의 욕심을 충족시키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마음의 허망한 것을 행하는 사람들과 다르게 우리는 그같이 배우지 않았다고 말씀했습니다. 20-21절을 보면
4:20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그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
4:21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 너희가 참으로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진대”
 
여기서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이 말은 학교에서 공부하는 것 같은 학습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제자가 되어 철저한 훈련으로 배우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는 ‘그리스도’를 배운다고 되어 있는데 그리스도를 배우는 것은 단지 그리스도에 관해 지식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제자가 된다는 것은 스승을 닮아가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배운다는 것은 예수님을 닮아간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마음에 허망한 것으로 행하는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닮아가지 않고 자기의 욕심을 따라 세상 즐거움을 따라갑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닮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바울 사도는 에베소서에서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과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자라가는 것을 말씀했습니다. 내게 주신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가고 닮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2. 새 사람을 입으라
우리가 마귀에게 틈을 주지 않으려면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하지 말아야 하고, 새 사람을 입어야 합니다. 우리가 새 사람을 입지 못하면 마귀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마귀에게 틈을 주게 됩니다. 우리가 새 사람을 입기 위해서
 
옛 사람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22절을 보면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여기서 옛 사람의 특징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는데 옛 사람은
 
유혹의 욕심을 따라서 썩어져 가는 구습 즉 옛 습관으로 사는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유혹이란 단어의 뜻은 속임수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유혹이란 사람들을 속이는 것입니다.
 
사탄은 속이는 자입니다. 따라서 속이는 자인 사탄은 사람들을 속임수로 유혹을 해서 자기 욕심을 채우게 하는데 욕심이란 단어는 물질적인 탐욕과 육체적인 쾌락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사탄은 인간의 가장 큰 즐거움을 돈과 권력과 육체적 쾌락이라고 사람들을 속여서 유혹을 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옛 사람은 그런 유혹을 넘어가서 썩어져 가는 구습을 아무렇지도 않게 따라간다는 것입니다. 썩어져 가는 것은 파괴 되다는 의미입니다. 유혹의 욕심을 따라가면 그 결과는 자신의 모든 것이 파괴된다는 것입니다. 육체적으로도 파괴되고 정신적으로도 파괴되고 영혼이 파괴되어 영원한 사망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기 이전에는 이렇게 살아왔는데 이제는 예수님을 믿기 이전의 삶을 벗어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구습이란 말은 이전에 살아왔던 생활 습관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성도로서 예수님을 믿기 이전의 옛 생활 습관들을 과감히 버려야 합니다.
 
31절에 우리가 벗어야 할 옛 습관에 대해서 추가로 말씀했습니다.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옛 사람을 벗어야 하는데 벗어야 할 습관 들 즉 버려야 할 습관들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악독(πικρία-파키아) 이것은 과거에 당한 손해나 모욕에 대한 원한을 버리지 않고 마음 속에 품고 있다가 이웃과 화해하기를 거부하는 마음 상태를 말합니다.
 
노함(θυμός-뒤모스) 과 분냄(ὀργή-오르게) 이 두 가지는 일반적으로 동의어로 사용됩니다. 그러나 엄밀히 구별하면, ‘노함’은 걷잡을 수 없이 타오르는 분노로서 급격한 감정 폭발이며, ‘분냄’은 악독한 적의가 마음에 자리 잡아서 지속적이고 습관적으로 표현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떠드는 것(κραυγή-크라우게) 이것은 신약에서 본 절에서만 악한 덕목으로 나타나는 것으로 분노를 자제하지 못하고 소리지르는 것을 의미합니다.
 
비방하는 것(βλασφημία-블라스페미아) 이것은 상대방을 비방하거나 모욕적인 말을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옛 사람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이어서 심령이 새롭게 되어야 합니다. 23-24절을 보면
4:23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4: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옛 사람을 벗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심령이 새롭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심령이 새롭게 되기 위해서는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굳은 마음과 옛 습관을 따르는 마음을 변화시켜 주셔서 새롭게 해 주십니다.
 
우리가 성령 충만을 받고 성령으로 인도하심을 받을 때 하나님의 말씀이 꿀과 같이 달고 말씀으로 우리의 심령이 새롭게 변화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우리의 심령이 즉 우리의 영혼이 변화를 받아 새롭게 되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는 말씀은 하나님에 의해서 새롭게 다시 창조된다는 의미로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므로 하나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새로 태어난다는 것은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실 때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는데 인간이 범죄함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상실하게 되었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상실되었던 하나님의 형상대로 재 창조되었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골 3:10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
 
옛 사람을 벗고 새 사람을 입은 우리는 참된 것을 말해야 합니다. 25절을 보면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
 
마귀는 속이는 자요 거짓말 하는 자입니다. 마귀는 사람들이 거짓말을 하고, 속이는 말을 하게 뒤에서 조정을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면 마귀의 조정을 받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를 받습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참된 것을 말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거짓과 속임수를 버리고 진실한 마음으로 참된 것을 말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거짓말 하시는 분이 아니고 거짓말을 좋아하시는 분도 아닙니다. 우리가 새 사람을 입은 그리스도인이라면 예수님을 믿는 성도로 참된 것을 말하고 진리를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3. 선한 말을 하여 은혜를 끼치게 하라
마귀에게 틈을 주지 않기 위해서 옛 사람을 벗고 새 사람을 입어야 한다고 말씀하고 계속해서 마귀가 좋아하는 말을 하지 말고 선한 말을 하여 은혜를 끼치게 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선한 말을 하기 위해서는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아야 합니다. 26절을 보면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우리가 살다보면 화가 나는 상황이 옵니다. 우리가 사람이기 때문에 마음에 분노가 생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새 사람을 입은 그리스도인이라면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화가 나면 말이나 행동으로 나타나게 되는데 말이나 행동으로 분노를 표출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거룩한 분노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악을 행하는 것을 보고 분노하는 것은 거룩한 분노입니다. 여기서 분을 내지 말라는 것은 거룩한 분노도 안 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서 분노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올바른 삶의 모습이 아니라는 것이고, 우리가 분을 내고 화를 참지 못하고 말을 하거나 행동을 하면 그것은 마귀가 틈을 탄 것이고 마귀가 좋아하는 일입니다.
 
화가 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화가 난다고 해서 다른 사람의 마음에 상처를 주거나 다른 사람을 저주하는 말을 하거나 악담을 하는 것은 죄를 짓는 것입니다. 화가 나고 분노한 상황이라도 마음으로 절제하면서 자신을 잘 다스려야 한다는 것이고 하루가 지나도록 분을 마음에 품고 있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정말 쉽지 않은 말씀입니다. 화가 몇 시간만에 가라앉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우리 대부분을 그렇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스스로 분노를 절제하지 못하고, 화를 참지 못할 가능성이 많기 때문에 성령을 의지해야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해야 합니다. 화가 나도 말로 화를  풀거나 타인에게 해를 가하거나 하지 말고 참고 인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해야 합니다. 28절을 보면 “도둑질하는 자는 다시 도둑질하지 말고 돌이켜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수 있도록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도둑질이란 말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의 것을 빼앗거나 훔치거나 부당한 방법으로 남의 것을 자기의 것으로 만드는 모든 행위를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난 성도라면 남의 것을 내 것으로 만들어서 부요하게 되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수익을 얻어서 선한 일을 위해 사용해야 하고 특히나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는 일을 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손으로 하는 일에 복을 주십니다.
 
부당한 수익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정당한 수익을 얻기 위해 노력하고 정당한 수익으로 나누고 베풀고 선을 행할 수 있는 복을 받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신 12:7 “거기 곧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먹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의 손으로 수고한 일에 복 주심으로 말미암아 너희와 너희의 가족이 즐거워할지니라”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29-31절 까지를 보면
4:29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4:30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4:31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4:32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더러운 말은 악의가 있는 험담과 중상 모략을 의미합니다. 또한 더러운 말은 부패하고 쓸모없는 말과 마음을 더럽게 하는 말들을 이야기 하는 것이기에 더러운 말은 성도들의 입에서 나오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 덕을 세울 수 있는 선한 말을 해야 합니다. 선한 말은 덕을 세우는 말이고 듣는 사람들이 은혜를 받는 말입니다. 우리가 하는 말을 들었을 때 사람들이 은혜를 받는 말을 하라는 것이고 우리가 하는 말은 누가 들어도 덕이 되는 말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선한 말을 하여 은혜를 끼치기 위해서 성령님을 근심하게 하지 말아야 하고, 친절하고,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친절하게 대하고, 영혼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대하고, 화를 내고 분노하기 보다 용서하는 마음으로 살아갑시다.
 
우리의 말과 행실에서 마귀가 틈을 타지 못하게 하고 옛 사람의 옷을 벗고 그리스도인으로 새사람의 옷을 입고 말과 행동으로 은혜를 끼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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