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을 아끼라(8월 18일 오전 예배 설교)
에베소서 5:1-21(신약 313)
 
‘세월’에 해당하는 헬라어 καιρόν(카이론)은 ‘중요한 시기’ 또는 ‘금방 지나가 버리는 특별한 기회’를 의미합니다. ‘아끼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ἐξαγοραζόμενοι(엑사고라조메노)는 ‘도로 사다’ ‘속량하다’라는 의미로 신약성경에서 율법으로부터의 구속과 관련하여 사용되었습니다.
 
세월을 아끼라는 말은 ‘금방 지나가 버리는 중요한 시간을 도로 사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다르게 표현한다면 우리에게 주어진 지금이라는 시간은 금방 지나가 버리는 것이지만 우리에게 지금은 우리 인생에 있어 아주 중요한 시간이기 때문에 헛되게 흘려보내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들을 돈을 주고라도 다시 사는 심정으로 매 순간순간을 귀하게 여기면서 헛되게 살지 말아야 한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주어진 시간을 의미 없이 보내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내게 주어진 하루 하루를 소중하게 여기고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자녀들의 삶의 자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세월을 아끼는 것 즉 지금 나에게 주어진 하루하루를 귀하게 여기며 살아가는 것일까요?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아끼는 방법을 이야기 한다면 이런저런 방법들을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세월을 아끼는 방법에 대해서 즉 지금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소중하게 사용하고 나에게 주신 기회를 돈을 주고라도 사기 위해서 해야 할 일들에 대해서 하나님은 바울 사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바울 사도는 에베소 교회 성도들에게 그리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세월을 아끼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주었습니다. 오늘 바울 사도를 통해서 하나님이 말씀하신 “세월을 아끼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우리가 세월을 아끼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은
 
1. 하나님을 본 받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본 받는다는 것을 다르게 표현하면 닮아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은 내 앞에 있는 믿음의 사람을 본 받으며 살아가는 것이 일반적인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히 13:7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일러 주고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을 생각하며 그들의 행실의 결말을 주의하여 보고 그들의 믿음을 본받으라” 고 말씀했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인도하고 가르친 분을 본 받아야 합니다.
 
이렇게 하면 제일 끝에는 예수님이 계시는 것이고 결과적으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을 본받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라고 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본받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닮아간다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실 때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신 그 형상을 회복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지만 아담과 하와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으므로 하나님의 형상을 상실했다고 볼 수 있고, 예수님은 우리가 상실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게 하신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을 닮아간다는 것은 형상을 회복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본 받아 살아가기 위해서
 
사랑을 받는 자녀같이(자녀답게) 살아야 합니다. 1절을 보면 “그러므로 사랑을 받는 자녀 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내가 사랑하는 자녀들이다. 그러니 너희는 나의 사랑을 받는 자녀로서 자부심을 갖고 살아가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분명하게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나는 너를 사랑하는 너의 아버지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꾸 하나님께서 정말 나를 사랑하는 걸까? 하는 의심을 하고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녀답게 살아가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나의 아버지로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분명하게 믿고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자녀를 사랑하시지만 때로 자녀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라고 하시면서 나를 사랑하신다고 하시면서 지금 내가 겪는 이 어려움에서 나를 건져주시지 않으실까? 하나님이 정말 나를 사랑하시는 걸까?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한 번도 우리를 버리신 적도 없고, 우리를 외면하신 적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아버지이시기 때문에 더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해서 우리에게 기다리게 하시는 것입니다. 히 11:40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답게 살아가는 것은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고, 사랑받는 자녀답게 언제나 믿음으로 감사함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은 사랑 받는 자녀답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에 대해서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고 말씀하십니다. 2절을 보면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하나님은 사랑 이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닮아간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우리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 같이 우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자신을 버리사 우리를 위한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드린 사랑입니다. 우리가 사랑 가운데 행한다는 것은 나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가는 것이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사랑이 없는 믿음은 진정한 믿음이 아닙니다. 내 욕심을 따라서 나만을 위한 삶을 살아가는 것은 하나님을 본 받는 것이 아니고 주님을 따라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주님이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서로 사랑하며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고린도 전서 13:1-3절 까지를 보면
13:1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13:2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13:3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사랑이 없으면 아무 유익도 없습니다. 사랑이 없으면 우리 안에 하나님의 형상도 없습니다.
 
2. 감사하는 말을 해야 합니다.
세월을 아끼는 것은 하나님을 본 받는 것으로 시작하는 것이고 이어서 말을 할 때 어떤 말을 하는가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언어 생활은 신앙생활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의 언어생활 즉 우리의 말은 감사하는 말을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이름조차도 부르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3절을 보면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조차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에게 마땅한 바니라”
 
여기서 이름조차도 부르지 말라는 말은 입 밖에 내지 말라 그런 것에 대해서는 입으로 말하지 말하는 의미입니다. 성도의 입에서 이런 것과 관련된 말이 나와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입에서 나와서는 안 되는 것들에 대해서 음행을 가장 먼저 언급했는데 합법적인 결혼 이외의 모든 성적인 관계를 말하는 것으로 성도는 그런 것과 관련된 말을 입으로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온갖 더러운 것이란 윤리적으로나 종교적으로 추악한 모든 행위들을 말하는 것으로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들 앞에서 올바르지 못한 일들은 생각하지도 말고 입으로 말하지도 말라는 것입니다.
 
탐욕은 물질적 욕심보다는 성적은 욕망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이 물질적인 탐욕을 부르거나 성적인 탐욕을 추구하지 말고 그런 것과 관련된 말은 입 밖으로 말하지도 말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성도에게는 이런 것들이 대화의 주제가 되어서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적당하지(마땅치) 않은 말이 있습니다. 4절을 보면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오히려 감사하는 말을 하라” 누추함은 천하고 속되고 더러운 말을 가리키며 ‘부끄러운 말’과 같은 의미입니다.
 
어리석은 말은 죄악의 성향을 지닌 좋지 못한 말로서 바보 같이 중얼거리거나 분별없이 뇌까리는 군소리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희롱의 말은 외설적인 내용을 포함한 ‘상스러운 농담이나 독설’을 의미합니다. 이런 말들은 성도들에게는 적합하지 않은 언어 이고,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하나님을 본 받는 성도들이 마땅히 하지 말아야 할 말들입니다.
 
하나님을 본 받으려는 성도는 감사하는 말을 해야 합니다. 4절을 다시 보면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오히려 감사하는 말을 하라”
 
하나님은 바울을 통해서 하나님을 본 받으려는 그리스도인의 언어 생활에 있어서 가장 좋은 말은 감사하는 말을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감사하는 말’로 번역된 헬라어 εὐχαριστία(유카리스티아) 좋은 이란 뜻의 εὐ(유)라는 단어와 은혜 라는 뜻의 χαρισ(카리스)가 합쳐서 만들어진 단어입니다.
 
칼빈은 εὐχαριστία(유카리스티아)를 ‘은혜스러운 말’로 해석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사용한 εὐχαριστία(유카리스티아)는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경험한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감사하는 말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하는 말을 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베풀어 주시는 좋은 은혜에 감사한다는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감사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것으로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신 것에 대한 감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의 입에서는 항상 감사가 나와야 하는데 우리가 감사하는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우리 마음에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모든 은혜를 늘 마음에 담고 살아가야 가능한 것입니다.
 
마음에 원망과 불평이 있으면 감사하는 말이 나올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해 예수님을 보내주셔서 구원해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 삼아 주신 은혜를 생각하며 살아가면 항상 감사하는 말을 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3.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세월을 아끼기 위해서 하나님의 자녀 즉 빛의 자녀들처럼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빛의 자녀들처럼 살아가기 위해서
 
빛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9-13절까지를 보면
5:9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5:10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5:11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둠의 일에 참여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5:12 “그들이 은밀히 행하는 것들은 말하기도 부끄러운 것들이라”
5:13 “그러나 책망을 받는 모든 것은 빛으로 말미암아 드러나나니 드러나는 것마다 빛이니라”
 
빛의 열매를 맺어야 하는데 빛의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어둠의 일에 참여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둠의 일이란 은밀히 행하는 것들이기에 말하기도 부끄러운 것들이라고 말씀하면서 어둠의 일은 결국 빛으로 말미암아 드러나게 되고 모든 부끄러운 것들이 드러나게 됨으로 책망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빛의 열매를 맺는다는 것은 어둠의 일에 참여하지 않고 어둠의 일을 책망하고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빛의 열매라고 할 수 있는데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입니다.
 
착함이란 관대한 정신으로 온유하고 도덕적인 성품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관대한 마음으로 사람들을 대하고 항상 온유한 마음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의로움은 하나님과 사람에 대한 자신의 의무를 이행하는 공정하고 올바른 행위를 의미하며, 새 사람이 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에 의해서 ‘의’로 지으심을 받은 자로서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이 된 그리스도인들의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의롭다고 인정을 받았기에 거듭난 성도로 살아가야 합니다.
 
진실함은 말과 행위에 있어서 순수하고 정직함을 의미합니다.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으로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빛의 열매입니다.
 
잠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14절을 보면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너에게 비추이시리라 하셨느니라”
 
어둠의 밤이 지나고 아침이 되면 빛이 비추듯이 어둠에 살던 우리들에게 참빛 되신 예수님의 빛이 임했기에 어둠에서 즉 잠에서 깨어나야 하고 잠에서 깨어난다는 것은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빛의 자녀가 되기 전에 어둠에 속해 있었지만 우리에게 빛이 임하심으로 우리는 죽음과 어둠의 영적 잠에서 깨어난 생명의 빛 가운데 살아가야 합니다.
 
지혜 있는 자 같이 살아야 합니다. 15절을 보면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기 위해서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자세히 주의해서 살아가야 하는데 자세히 주의 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살지 말고 지혜 있는 자 같이 살아가야 합니다.
 
지혜가 없다는 것은 어리석다는 의미이고 지혜는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지혜가 없다는 것은 그 마음에 하나님이 없는 사람이고 지혜 있다는 것은 그 마음에 하나님이 계시기에 조심스럽게 살펴서 하나님의 뜻을 잘 이해하고 따르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시 14:1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 그들은 부패하고 그 행실이 가증하니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시 111:10 “여호와를 경외함이 지혜의 근본이라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다 훌륭한 지각을 가진 자이니 여호와를 찬양함이 영원히 계속되리로다.”
 
강대호 집사님 딸 강연호                                                                                                             
4. 세월을 아끼라
하나님은 바울 사도를 통해서 세월을 아끼라고 말씀하시면서 앞에서 한 모든 말씀은 결과적으로
 
주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6-17절을 보면
5:16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5:17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하나님을 본 받는 것과 감사하는 말을 하는 것과 빛의 자녀로 살아가는 것은 결과적으로 주님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위해서 자기 뜻대로 살아가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주님이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고 주님의 뜻을 따라 살아갑니다.
 
주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 세월을 아끼는 것이고, 주님의 뜻을 따르지 않는 것은 이 세상의 공중 권세 잡은 악한 세력에게 굴복당해 살아가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성령으로 충만을 받으라고 말씀하십니다. 18-19절을 보면
5: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5:19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세월을 아끼는 사람은 즉 지금 나에게 주어진 것을 잡는 사람은 성령으로 충만을 받아서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살아갑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본 받는 것과 감사하는 말을 하는 것과 빛의 자녀로 살아가는 것도 성령 충만한 성도일 때 가능한 것입니다. 오직 성령으로 충만을 받아서 성령 안에서 예배하는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해야 합니다. 20-21절을 보면
5:20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5:21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우리는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와 예수님의 사랑과 성령님의 사랑을 기억하면서 범사에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경외하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성도로서 교회 공동체 안에서 서로 존경하는 마음으로 섬겨야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표현은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라는 표현입니다. 예수님을 경외함이 없는 복종은 잘못된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경외하는 믿음 안에서 서로 존중하고 서로를 섬겨야 합니다.
 
이단들이 말하는 것처럼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이단의 교주들에게 복종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경외하는 같은 믿음의 공동체이기에 존중하고 존경하고 주님의 겸손을 본받아 서로를 섬기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과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잘 잡아서 지금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받아 누릴 수 있습니다. 주님이 주시는 은혜의 기회를 주님이 주시는 축복의 기회를 주님이 주시는 새로운 비전의 기회를 잡고 현실로 이루어지는 복을 누리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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