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심에 합당하게 행하자(8월 4일 오전 예배 설교)
에베소서 4:1-16(신약 313)
 
성경을 분류할 때 바울 사도가 감옥에 갇혔을 때 쓴 편지를 옥중서신이라고 합니다. 바울의 옥중서신으로는 에베소서를 비롯해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가 있습니다.
 
에베소서는 에베소 교회와 그 주변 지역의 교회들을 향해 쓴 편지로, 교회의 본질과 그리스도인의 생활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1-3장까지는 교회의 본질과 그리스도 안에서의 신앙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1-3장까지 에서는 하나님의 계획과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된 구원의 비밀을 강조합니다. 특히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며, 모든 신자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로 연합되어 있음을 강조합니다.
 
4-6장 까지는 그리스도인의 생활에 대해서 기록했는데 그리스도인들이 살아감에 있어서 실천적인 권고와 교훈이 담겨 있으며, 성도들이 믿음 안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지침을 제시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은혜를 나누려고 하는 4장은 성도의 연합과 성도로서 살아갈 새로운 삶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에베소 교회 성도들에게 그리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하나님께서 부르신 부름에 함당하게 살아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에베소 교회를 부르셨고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목적이 있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그 목적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성도의 의무요 존재 목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우리가 찬양을 드린 것처럼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것에 대해서 후회하지 않으십니다. 롬 11:29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후회하심이 없다는 말에 대해서 현대어 성경은 “철회되는 일이 없습니다.” 라고 번역을 하고 공동 번역은 “거두어 가시지 않습니다.” 로 우리말 성경은 “번복될 수 없다.” 로 번역을 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셨으니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해야 한다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것에 대해 후회하지 않으십니다.
 
로마서에서 부르심과 은사를 같이 이야기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셔서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하기 위해서 은사를 주셨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봉독한 에베소서에서도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해서 이야기 하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와 선물을 이야기 하는데 이것이 곧 은사이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셔서 은혜와 선물을 주신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직분자로 일하게 하심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를 부르시고 은사와 달란트를 주시고 후회하지 않으시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각자 부르심을 받은 대로 부르심에 합당하게 행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을 중심으로 해서 “부르심에 합당하게 행하자” 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부르심에 합당하게 행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말씀하셨는데
 
1. 이런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1절에서 이렇게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바울은 주 안에서 갇힌 내가 즉 감옥에 갇혀 있는 내가 너희에게 권한다고 말하면서 무엇을 권하느냐 하면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해야 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부르심에 합당하게 행하기 위해서는 이런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데 우리가 부르심에 합당한 성도로서 살아가기 위해서 겸손과 온유함으로 해야 합니다. 2절을 보면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가기 위해서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는 겸손과 온유라는 것입니다. 겸손과 온유는 서로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겸손한 사람이 온유함으로 다른 사람을 대할 수 있습니다. 겸손이 아닌 교만한 사람은 온유함보다는 자신을 드러내는 포악함이 나타나게 됩니다.
 
여기서 사용된 겸손이란 단어는 헬라어ταπεινοφροσύνη(타페이노프로쉬네)인데 이 단어의 의미는 “마음이 낮은”, “겸손한 마음을 갖다.”란 의미입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겸손은 나 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마음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내가 남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교만입니다.
 
빌 2:3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이 구절이 성경이 말씀하는 겸손을 가장 잘 설명한 구절입니다.
 
나보다 남을 여기는 마음이 있을 때 다른 사람들을 온유함으로 대할 수 있습니다. 온유라는 헬라어는 πραΰτης(프라위테스)로 온유, 친절, 동정심이란 의미와 겸손이란 의미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성경에서 “πραΰτης”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며, 다른 사람들을 부드럽게 대하고, 자신을 낮추며 겸손하게 행동하는 태도를 의미합니다. 이는 자신감과 강한 성품을 가지면서도 타인을 배려하고, 화를 내지 않으며, 부드럽고 인내하는 성품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성도로서 자신감을 갖고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고 화를 내기 보다는 부드럽게 대하는 태도를 지녀야 한다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오래 참음과 사랑으로 용납해야 합니다. 2절 뒷부분을 보면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오래 참는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에 대한 성도들의 태도를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오래 참음은 하나님과 관계에서도 적용됩니다. 우리가 기도하고 소망하는 일이 이루어지기 위해서 오래 참음이 필요합니다. 또한 사람과의 관계에서 우리가 부르심에 합당하게 행하기 위해서 오래 참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오래 참는다는 것은 일상생활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성질나는 대로 살지말고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용서하고 기다려 주라는 의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성질 나는 대로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가 오래 참음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 가운데서 용납해 주어야 합니다. 용납한다는 것은 서로 다른 성격과 행동을 받아들이고 수용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상대의 단점과 실수를 사랑으로 인내하고 용납하라는 말씀입니다.
 
박정화라는 시인이 목련 꽃이 빨리 피고지는 것을 보고 성질머리라는 시를 썼는데 그 시를 쓴 배경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을 했습니다. 성질 급한 목련꽃이 나 자신 같았다. 조금 천천히 피었으면 좀 더 오래 살지 않았을까? ‘성질머리 죽이라’ 던 어머니 말씀을, 어머니의 나이가 되어서야 알았다. 예수님을 믿는다면 성질머리를 죽입시다.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가기 위해서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켜야 합니다. 3-6절까지를 보면
4:3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4:4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4:5 “주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4:6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부르심에 합당하게 행하기 위해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심을 힘써 지켜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우리가 하나 됨을 지켜야 하는데 왜냐하면 우리는 몸이 하나이고, 성령도 한 분이시고, 우리를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뿐만 아니라 주님도 한 분이시고, 믿음도 하나이고. 세례도 하나이고, 하나님도 한 분이시고, 모두가 하나라고 말하면서 교회는 믿음 안에서 성령으로 하나 된 신앙의 공동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심을 지켜야 합니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 배려하고, 존중하면서 하나됨을 지키는 것이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2. 우리가 받은 은혜(은사)와 직분
우리가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라고 말한 바울은 부르심을 받은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은혜와 직분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셔서 우리에게 합당한 은혜와 직분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받은 은혜와 직분에 대해서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다고 말합니다. 7-8절을 보면
4:7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
4:8 “그러므로 이르기를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혔던 자들을 사로잡으시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하였도다.”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다고 로마서에서 말씀했는데 여기서는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다고 표현했습니다. 7절을 공동 번역으로 보면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들에게 각각 다른 은총을 알맞게 나누어주셨습니다.” 라고 번역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선물을 분량대로라는 말을 공동 번역은 그리스도께서 우리 각자에게 알맞는 은총을 나누어 주신 것이라고 번역했습니다. 성경은 모든 사람이 다 똑같은 은사를 받은 것이 아니라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의 선물인 은사를 주실 때 각자의 분량대로 즉 각 사람에게 알맞은 은사를 주셨습니다. 우리가 받은 은사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나에게 맞기 때문에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 다른 은사를 받았습니다. 나에게 주신 은사는 하나님께서 보실 때 나에게 필요하고 맞는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 다르기 때문에 서로 다른 은사를 주신 것입니다.
 
바울은 우리에게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다고 말하면서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몸으로 오셨다가 하늘로 가셨다고 말했습니다. 9-10절을 보면
4:9 “올라가셨다 하였은즉 땅 아래 낮은 곳으로 내리셨던 것이 아니면 무엇이냐”
4:10 “내리셨던 그가 곧 모든 하늘 위에 오르신 자니 이는 만물을 충만하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다음에 승천하시고 이 땅에 있는 사도들과 오늘 우리들에게 은혜의 선물을 주신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성육신 하신 것이 사실이고 승천하심으로 이 땅에 남아 있는 그리스도의 사람들에게 은사를 주셨다고 설명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성육신하신 것을 믿지 않는 것은 진정한 믿음이 아니고,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고, 마지막날 다시 오심을 믿지 못하는 것은 진정한 믿음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같은 몸을 입고 오셔서 우리의 아픔과 고통과 절망을 경험하셨습니다.
 
그리고 승천하시고 이 땅에 사는 우리들에게 성령을 부어주시고, 은혜와 은사를 주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선물을 주셨다고 말하는데 이것은 각기 다른 은사를 주셨다는 의미이고 이 말씀과 연결해서 우리에게 주신 직분이 다르다고 말합니다. 11절을 보면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사가 다르듯이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직분도 다릅니다. 바울 사도는 오늘 말씀에서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다고 말씀했습니다.
 
이 말은 이 직분이 어떤 것인지 설명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교회에서 섬기는데 있어서 다양한 직분이 있다는 것을 말하면서 교회에서 모든 성도가 다 같은 은사와 직분을 받은 것이 아니라 각자의 분량대로 은사를 받았고 또한 각기 다른 직분을 받은 것이라고 설명한 것입니다.
 
공동체가 건전하게 유지되기 위해서는 서로 다른 직분을 받은 사람들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야 합니다. 모두가 같은 직분과 은사를 받아서 같은 일만 하면 건전한 공동체로 세워지기가 어렵습니다. 각기 다른 달란트와 은사와 직분으로 각자에서 주신 분량대로 주님의 나라를 위해서 헌신할 때 그 공동체가 견고하게 세워져 갈 수 있습니다.
 
3. 은사(은혜)와 직분을 주신 것은
하나님께서 각자의 분량대로 은사(은혜)와 직분을 주셨다고 말씀하면서 은사(은혜)와 직분을 주신 이유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와 은사와 직분을 주신 것은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기 위함이라고 말씀했습니다. 12절을 보면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성도를 온전하게 한다는 말의 헬라어는  πρὸς τὸν καταρτισμὸν(프로스 톤 카타르티스몬)인데 이 말은 외과 의학에서 부러진 뼈를 맞추거나 찢어진 그물을 수리할 때, 또는 범죄한 자를 바로잡는다는 뜻으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성도를 온전하게 한다는 말은 복음을 선포하고 가르쳐서 성도들이 온전하게 되도록 회복시키고 훈련시킨다는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러진 뼈가 온전해 지듯 우리의 신앙이 영적으로 육적으로 온전해 지고, 또한 잘못된 것을 바로 잡아서 신실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게 하도록 돕는 일을 하는 것이 우리에게 직분을 주신 이유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도를 온전하게 함으로 인해서 온전해 진 성도는 봉사의 일을 하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단순히 예배만 드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주신 달란트와 은사를 가지고 주님의 나라와 교회를 위해서 이웃을 위해서 봉사해야 하고 그렇게 하도록 직분자들이 이끌어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함으로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게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2절을 다시 보면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그리스도께서 은사를 주신 궁극적인 목적은 성도 각자의 특별한 직분을 사용하여 교회를 성장시키고 온 성도들을 영적으로 성장시켜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비록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세워 가는 것은 교회의 모든 지체들이 해야 할 일이지만 특히 은사와 직분을 받은 사람들은 교회의 지체들이 함께 마음을 모아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세우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존재 목적은 그리스도의 몸을 세워가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사랑 안에서 그에게까지 자라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3-16절까지를 보면
4: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4:14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4:15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4:16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장성할 분량에 이르도록 자라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에 이르도록 자라야 하고, 직분자들은 교회의 다른 지체들이 그리스도에게 이르도록 자라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자라는 것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 안에서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라야 하고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운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 이른다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을 올바로 알고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셔서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성도이며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습니다. 우리를 부르신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고 부르심에 합당한 복을 받아 누리는 참빛 교회 모든 성도와 가족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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