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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인의 세대에 계신 하나님
(7월 28일 오전 예배 설교)
시편 14:1-7(구약 811)

시편 14편은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라고 되어 있습니다. 다윗이 이 시를 지었을 당시의 상황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내용을 보면 시편 14편은 당시 사람들의 도덕적, 영적 상태에 대한 평가로 볼 수 있습니다.

시편 14편은 하나님을 부인하고 악을 행하는 자들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으며, 이는 다윗이 목격한 사회의 부패와 관련이 있을 수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다윗은 사무엘 선지자에게 기름 부음을 받았지만 왕이 되기 까지는 상당히 긴 세월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그 기간동안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하기 때문에 다윗은 도망을 다니는 신세였습니다. 그 기간 동안 다윗이 경험한 것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의 어리석음에 대한 것이었을 것입니다.

사울은 사무엘에 의해서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지만 권력을 갖게 되면서부터 마음에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점차 약화되고 자신의 힘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져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울의 모습은 많은 사람들의 보편적인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역대 왕들에 대한 성경의 기록을 보면 처음부터 우상 숭배에 빠진 왕들이 더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유다의 왕들 중에는 처음에는 하나님에 대한 순수한 신앙으로 통치를 시작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권력의 힘을 의지하면서 자신을 드러내려는 교만과 하나님 보다는 자신의 권력을 앞세우려는 경향을 보이는 왕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열왕기나 역대기를 읽으면서 우리가 느끼는 것은 자신의 힘과 권력을 앞세워서 악을 행함으로 나타난 결과를 보면 어리석고 미련한 통치자였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다윗은 오늘 시편 14편을 통해서 어리석고 미련한 사람들은 자신의 힘을 의지하고 자신의 방법을 따라 살려고 하지만 결과는 실패와 절망과 하나님께 버려지는 것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이 세상을 사는 사람들 중에 어리석은 사람들의 삶의 모습이 어떤 것인가를 간략하게 설명하면서 하나님은 의인 세대에 계신다고 노래하면서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가 되신다고 노래했습니다.

오늘 다윗의 고백을 통해서 “의인의 세대에 계신 하나님”이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다윗의 찬양의 시를 통해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1. 어리석은 자
어리석은 자라는 말의 히브리어는 나발(נָבָל)이란 단어를 사용합니다. 이 단어는 ‘어리석은, 무감각한, 분별없는’이란 의미가 있습니다. 어리석다는 말은 지혜가 없어 어리석고, 마음이 무감각해서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를 모르고 분별력이 없어서 무엇이 옳은 것인지 잘못된 것인지 분별을 못한다는 뜻입니다.

다윗은 어리석은 사람들의 특징에 대해서 노래했습니다. 어리석은 사람의 특징은 마음에 하나님이 없습니다. 1절을 보면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 그들은 부패하고 그 행실이 가증하니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성경 전체에서 살펴볼 때, 어리석은 자 히브리어 ‘나발’은 외면적으로 부귀영화를 최고 목표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마음에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다른 사람들의 생명을 위협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는 어리석은 사람은 자신의 힘과 권력을 이용해서 타인을 죽여서라도 자기가 갖고 싶은 것을 빼앗는 사람입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고 자기 이익만을 위해서 자기 마음대로 살아갑니다.

히브리어 ‘나발’의 또 다른 의미는 내면적으로는 하나님과 언약 관계에 있지 아니한 자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은 스스로 언약 백성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어리석은 자들은 하나님과 언약 관계인 것을 스스로 부정합니다.

그들의 마음에는 하나님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도 말씀이 없습니다. 이렇게 사는 사람이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우리의 마음에는 언약의 말씀이 있고, 우리의 삶의 목표는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이것이 지혜로운 사람의 삶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마음에 하나님이 없기 때문에 선을 행하는 자가 없다고 노래했습니다. 1절 뒷부분을 보면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 그들은 부패하고 그 행실이 가증하니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3절 뒷부분에도 “다 치우쳐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리석은 자는 마음에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선을 행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합니다.

물론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선을 행하려고 노력 하는 사람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마음을 사탄이 주장하기 때문에 아무리 선을 행하고 싶어도 선을 행할 수 없습니다. 선은 오직 하나님께서만 온전하게 이루실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도움이 없이는 선을 행할 수 없고 온전한 선을 이룰 수도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을 때,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우리의 죄와 악을 제하여 주시고 우리가 그 이름을 의지하며 살아갈 때 선을 행할 수 있는 능력과 힘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선’ 은 포괄적인 의미에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어리석은 자는 마음에 하나님 없기 때문에 마음이 부패하고 행실은 가증하다고 말씀했습니다. 부패하고 행실이 가증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지 않고 자신이 목적하는 것을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마음에 없는 사람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살기 때문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지 않기 때문에 마음에 부패하고 가증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자들은 마음에 하나님이 없기 때문에 다 치우쳐 함께 더러운 자가 됩니다. 2-3절을 보면
14:2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살피사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14:3 “다 치우쳐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

요즘 인터넷과 유튜브에서 이슈 중에는 사이버 렉카들이 저지른 추악한 범죄들에 대한 이야기들 있습니다. 겉으로는 사법부가 하지 못하는 일을 한다고 표방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불의하고 악을 행하는 자들이 한 일을 공개하고 자동차 사고가 나면 렉카가 처리하듯 자신들이 사회의 악을 처리한다고 말하면서 실재로는 뒤에서 돈을 요구하고 더 추악한 짓을 저질렀다는 이야기입니다.

선과 정의를 내세우면서 뒤에서는 돈을 요구하고 심지어는 자신들에게 돈을 주지 않는 사람들은 죽어도 상관없다는 듯한 태도를 보여서 결국 자살로 몰고 가면서 자살한 사람을 이용해서 돈벌이를 하는 짓도 서슴치 않았다는 것입니다.

마음에 하나님이 없는 어리석은 사람들은 다 치우쳐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기 보다 자기 이익을 따라 살아갑니다. 하나님께서 인생을 굽어 살피시는데 어리석은 자들 중에는 하나님을 찾는 자가 없고 다 치우쳐라고 말씀하는데 치우치다는 말은 제 고집대로 한다는 의미입니다. 자기 고집대로 자기 생각대로 하면서 더러운 짓을 하는 것이 어리석고 마음에 하나님이 없는 사람들의 특징입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결과적으로 하나님이 함께 하실 수 없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에 대해서

2. 의인의 세대에 계신 하나님
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4-5절을 보면
14:4 “죄악을 행하는 자는 다 무지하냐 그들이 떡 먹듯이 내 백성을 먹으면서 여호와를 부르지 아니하는도다.”
14:5 “그러나 거기서 그들은 두려워하고 두려워하였으니 하나님이 의인의 세대에 계심이로다.”

계속해서 어리석어 그 마음에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떡 먹듯 하나님의 백성들을 먹는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떡 먹듯 이란 말은 우리말로 밥 먹듯 이란 말입니다.

이 말은 밥을 먹듯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먹어 치운다는 말인데 우리 말에서 밥 먹듯 이라고 하는 것은 자주 반복적으로 어떤 일을 하는 것을 표현한 것인 반면 여기서 떡 먹듯 이란 말은 식사를 하듯 먹어 치운다는 의미로서 먹어 치우듯 괴롭힌다는 의미입니다.

이렇게 악한 자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밥 먹듯 괴롭히는 상황에서 하나님은 그들이 거기서 두려워하고 두려워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거기서”라는 말은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데 ‘거기서’ 라는 말을 심판의 장소에서라고 해석할 수 있고, 그들이 악을 행하는 그곳에서 라고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뒤에 나오는 말씀을 참고해서 해석한다면 하나님께서 의인의 세대에 함께 계시는 곳에서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악한 자들이 득세하고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면서 온갖 악한 일들을 일삼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괴롭히는 그 상황에서 악한 자들이 무엇을 보게 되는가 하면 하나님께서 의인의 세대에 함께 계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의인의 세대에 함께 계신다고 하실 때 의인의 세대가 의미하는 것은

첫째, 자녀라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사용된 세대라는 말은 하나님의 자녀들 속에 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의인의 세대 즉 하나님의 자녀들 속에 함께 계시기 때문에 악을 행하는 자들이 악을 행하다가 하나님의 자녀들 속에 계시는 하나님을 보게 되고 결국은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자녀들을 괴롭게 하지만 어느 순간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들과 하나님께서 함께 계신 것을 발견하게 되고 두려움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둘째, 공동체(집단)를 의미합니다. 세대라는 말은 특정한 공동체를 의미하는 말로 해석 할 수 있는데 여기서는 앞에 의인이라고 말했으니까 의인 공동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의인 공동체란 교회 공동체를 말하는 것입니다. 사탄이 제일 두려워하는 곳이 교회 공동체입니다. 따라서 사탄이 가장 먼저 공격 대상으로 삼는 곳이 교회이기도 합니다. 교회 공동체가 진정한 믿음의 사람들의 공동체일 때 사탄은 그 공동체를 절대로 쓰러 뜨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보면 많은 교회들이 성령 충만한 공동체일 때는 강한 힘을 발휘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성령의 능력을 잃어버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권세를 잃어버리게 될 때 교회가 영적 능력을 상실하게 될 때 사탄에 의해서 무너질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올바른 신앙고백이 있고 성령 충만한 교회 공동체는 절대로 사탄에게 무너지지 않습니다.

참빛교회 공동체는 사탄이 감히 공격할 수 없는 예수님을 구세주로 고백한 고백 공동체이고 성령 충만한 공동체인 줄 믿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구세주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성령을 주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질병을 치료하십니다.
예수님은 다시 오실 재림의 왕이십니다. 예수님은 오늘 우리의 영혼과 육신과 삶의 모든 문제에서 우리를 구원해 주십니다.

셋째, 시기를 의미합니다. ‘세대’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도르’(דּוֹר)는 시간적인 개념으로 출생에서 죽음까지의 한 인간의 생존 기간을 의미하거나 단순히 한 기간, 또는 시기를 나타냅니다.

시기란 때를 말하는 것으로써 하나님이 의인들의 시간과 어느 특정한 시기에 함께 해 주셔서 악한 자들이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을 보고 두려움을 느끼게 하신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함께 하십니다.

여기서 시기는 악한 자들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계시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 시기가 있다는 뜻입니다. 악한 자들이 어느 특정한 시기에 하나님의 자녀들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지금이 그 때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저와 여러분의 삶의 현장에서 지금 이 시기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악한 자들이 발견하게 되는 때가 되어서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들로 인해 두려움을 느끼고 자신들이 하려는 모든 악한 일들과 억울하게 만드는 일들을 멈추게 되는 역사가 일어날 줄 믿습니다.

3. 피난처 이신 하나님
어리석어서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로 인해서 고통당하는 현실을 본 다윗은 그런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 의인의 세대에 함께 하시므로 악한 자들이 두려움을 느끼게 될 것이라고 선포했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는 자들에게 “너희가 가난한 자의 계획을 부끄럽게 하지만” 이라고 말한 다음에 “오직 하나님은 그의 피난처가 되신다.” 고 선포했습니다. 여기서 피난처가 되신다는 말의 의미는

악한 자들의 손에서 벗어나게 하신다. 는 의미입니다. 6절을 보면 “너희가 가난한 자의 계획을 부끄럽게 하나 오직 여호와는 그의 피난처가 되시도다.”

여기서 너희가 가난한 자의 계획을 부끄럽게 한다는 말은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는 자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가난한 자들이 가진 것 까지 빼앗아 가기 위해서 세운 계획을 부끄럽게 한다는 말인데 계획을 부끄럽게 한다는 말의 의미는 ‘창피를 주다.’, ‘박살을 내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이런 일들은 얼마든지 볼 수 있습니다. 악한 자들이 의인과 가난한 사람들의 계획을 창피하게 만들려고 하지만 하나님은 악한 자들의 그런 악한 계획에서 또한 그들의 손에서 마침내 벗어나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악한 자들의 손에서 악한 자들의 계획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우리고 하여금 피난처이신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아가게 하십니다.

시온에서 구원이 나온다. 7절 앞부분을 보면 “이스라엘의 구원이 시온에서 나오기를 원하도다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포로된 곳에서 돌이키실 때에 야곱이 즐거워하고 이스라엘이 기뻐하리로다.”

이 말의 의미는 시온에 좌정하신 하나님께서 성전에서부터 세상으로 향해 나오셔서 모든 주의 백성들을 구원하시기를 원하신다는 말로서 하나님의 성전으로부터 구원이 온다는 의미입니다. 사탄의 전략 중에 하나가 성전을 무력화 시키는 것입니다. 현대인들이 예수님을 믿지만 교회는 다니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의 성전에서부터 구원을 위해서 임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옵니다.

그런데 이 구원 신앙은 교회에서 흘러나오는 생수입니다. 하나님은 성전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게 하시고 성전에서 구원의 은총이 넘치게 하시고, 성전에서 응답을 주십니다. 성전으로부터 구원이 나오고 성전으로부터 은혜의 강과 축복의 강이 흘러나옵니다.

포로 된 곳에서 돌이키신다. 7절 뒷부분을 보면 “이스라엘의 구원이 시온에서 나오기를 원하도다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포로된 곳에서 돌이키실 때에 야곱이 즐거워하고 이스라엘이 기뻐하리로다.”

포로 된 곳이란 말의 의미는 현재 억압받고 있고 고통당하고 있는 상황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의 노예가 되고 바벨론의 포로가 되었던 것처럼 우리는 속한 직장에서 또는 세상에서 포로와 같은 처지에 놓여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 우리들에게 시온에서 구원이 나와서 포로 된 곳에서 해방되게 하시고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십니다.

영적으로 또는 정신적으로 억눌리고 억압당하고 있다면 오늘 이 말씀을 약속의 말씀으로 받아서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생수와 은혜의 강물로 억압당하고 무시당하고 마음을 아프게 하고 힘들게 하는 모든 상황에서 해방되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축원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현장에서 자신이 어리석은 줄 모르고 스스로 지혜롭다고 생각하고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안하무인격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이 피난처 되시는 하나님 앞에서 굴복 당하고 믿음의 사람들이 그들의 손에서 구원받는 역사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다윗은 어리석은 사람들은 마음에 하나님 없기 때문에 선을 행하지 못하고, 치우쳐 더러운 자가 되고 하나님을 찾지 않지만 하나님은 의인의 세대에 즉 믿음의 자녀들과 믿음의 공동체와 믿음의 사람들의 삶의 시간에 함께 하시면서 피난처가 되시고 모든 얽매인 것들에서 풀어 자유하게 하시고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하고 기뻐하십니다.

참빛 교회 모든 성도와 가족들이 의인의 세대에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며 살아가는 삶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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