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지어져 가느니라(7월 21일 오전 예배 설교)
에베소서 2:11-22(신약 311)
 
“사해 동포주의” 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사해 동포주의는 “모든 사람은 형제”라는 뜻으로, 보편적인 인류애와 동포애를 강조하는 개념입니다. 이 개념은 국적, 인종, 종교, 성별 등 어떤 차별 없이 모든 인간이 평등하고 서로를 도우며 살아가야 한다는 사상을 담고 있습니다.(ChatGPT)
 
예수님 시대에 유대인들에게는 메시아 대망 사상이 강했다면 로마가 세계를 지배하면서 공식적으로 사해 동포주의라는 표현을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모든 나라와 민족은 하나라는 개념을 강조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선민 사상을 강조하면서 유대인들만이 하나님의 특별한 선택을 받은 민족이라는 자부심을 가졌다면 예수님은 유대주의를 넘어서 모든 나라와 족속에게 복음을 전하고 제자를 삼으라고 말씀하시므로 선민 사상을 넘어서 사해 동포주의의 개념을 복음 안에 담아서 전하셨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글로벌 시대라고 하지만 여전히 나라와 민족 간에 갈등이 존재하고 강대국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더 강력하게 추구하는 현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에는 사해 동포주의의 요소가 강하게 담겨 있는데 기독교인들은 오히려 집단 이기주의적인 모습을 보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에베소 교회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전에는 너희가 이방인이었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와 우리가 하나가 되었다고 말하면서 너희와 우리가 성령 안에서 성전으로 함께 지어져간다고 말했습니다.
 
교회는 함께 지어져 가는 곳입니다. 교회는 예수님을 머리로 하고 성도들은 각 지체로서 하나 된 하나님의 성전인 교회를 세워가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누구는 중요하고 어떤 사람은 필요 없는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는 참빛교회를 세워가는 지체들입니다. 우리 중에 한 사람, 한 사람은 참빛 교회를 세워가는데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지체입니다. 물론 어떤 지체는 더 귀하게 보일 수도 있고 어떤 지체는 보잘 것 없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지체중에 하나라도 부족하면 건강한 몸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교회는 지어져 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함께 모여 예배를 드리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함께 교회를 세워가는 것이고 거룩한 하나님의 성전을 지어가는 것입니다.
 
건축할 때 일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일치하지 않으면 좋은 건물을 지을 수 없고 튼튼하고 견고한 건물을 지을 수 없습니다. 서로 마음을 같이하여 하나 된 마음으로 함께 교회와 성전을 세워가야 합니다. 우리가 교회를 세워가는 것은 우리가 지어져 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바울 사도를 통해서 에베소 교회에게 하신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1. 생각하라(그 때에 너희는)
바울 사도는 에베소 교회 성도들에게 과거에 너희는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생각해 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과거에 즉 복음을 듣기 이전에 즉 예수님을 믿기 이전에 너희는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생각하라는 말입니다.
 
바울은 생각하라고 말하면서 그 때에 너희는 이런 사람이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에베소 교회에게 하는 말은 우리에게 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어떤 존재였는지에 대해서 이야기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기 이전에 내가 어떤 존재였는지 영적으로 어떤 사람이었었는지를 생각하면서 지금 나는 어떠한 영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 때에 나는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그 때에 육체로는 이방인이었습니다. 11절을 보면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는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를 받은 무리라 칭하는 자들로부터 할례를 받지 않은 무리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
 
이 구절은 유대인의 관점에서 본 에베소 교회 성도들에 대한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관점에서 보면 에베소 사람들은 그리고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육체로는 이방인입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은 선민이고 다른 민족은 이방 민족이고 이방인이라고 표현하는데 바울은 선민 사상을 가진 유대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너희는 이방인이다.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또한 선민 사상으로 바라보는 유대인들의 입장에서 너희를 할례 받지 않은 무리라고 말한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은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민족이란 자부심이 있었고 자신들이 선민이란 증거가 할례라고 믿었습니다.
 
따라서 이방인이고 할례가 없는 에베소 사람들은 선민의 관점으로 보면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전통 유대인들의 관점입니다. 선민 이스라엘의 관점에서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유대인이 아니고, 할례를 받은 사람들이 아닙니다.
 
뿐만 아니라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12절을 보면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여기서 그리스도 밖에 있었다는 말은 그리스도에게 속하지 못한 자라는 의미보다는 유대인들의 선민 사상과 관련해서 유대인들은 자신들만이 언약 백성이고 자신들만이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민족이기 때문에 다른 민족들은 이방인이고 또한 자신들이 가진 그리스도에 대한 약속이 없는 사람들이고 구약의 약속에 의하면 외인이고 소망도 없고 하나님도 없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유대주의자들은 그리스도는 자신들을 위해서 오시는 분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온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셨지만 유대인들은 그리스도는 자신들만을 위해서 오시는 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유대인의 관점에서 우리도 그리스도 밖에 있고 이스라엘 나라 밖에 있고, 약속의 언약에서 외인 즉 관계가 없고, 소망도 없고 하나님도 없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라고 믿지 못하는 유대주의자들에게 유대인 이외에는 다 하나님의 언약 밖의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그 때에 너희는 어떤 존재인가를 생각해 보라고 말하면서 유대주의의 관점에서 이야기 한 다음에 그러나
 
2. 십자가로
우리가 이방인이고 외인이고 소망도 하나님도 없는 존재였다고 말한 바울은 그러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우리의 영적 신분의 변화가 일어났다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없다면 우리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가 있기에 우리는 새로운 사람으로 즉 새로운 영적 신분의 사람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바울은 먼저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다고 말했습니다. 13절을 보면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바울은 그리스도가 오셔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주심으로 인해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로 전에는 멀리 있던 우리들이 이제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가까워졌다고 말하는데 이 말은 하나님에게서 멀리 있던 이란 의미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알기 이전에 하나님과 우리는 멀리 떨어진 관계였습니다. 유대인들은 선민 사상에 입각해서 태어나면서부터 자신들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자부심으로 갖고 살았지만 그외에 모든 민족은 하나님에게서 멀리 있던 존재들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그 피가 우리를 하나님에게 가까이 나아갈 수 있게 하신 것이고 그리스도의 보혈이 우리가 하나님에게 가까이 나아가서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에게 멀리 있던 존재들이었지만 그리스도의 보혈로 가까워졌다고 말하면서 그리스도는 우리의 화평이시라고 말했습니다. 14-16절을 보면
2:14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2:15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2:16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것은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가로막고 있던 담을 헐어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는 존재였습니다.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는 허물과 죄라는 담이 있어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었습니다.
 
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우리들은 하나님과 원수의 관계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피 흘려 돌아가심으로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해 주셨고 하나님과 우리를 막고 있던 담이 무너진 것입니다. 바울은 예수님께서 자기 육체로 담을 허셨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은 법조문으로 되어 있는 계명과 율법을 폐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과 우리를 가로 막고 있는 또 하나의 담은 계명과 율법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로 계명과 율법을 폐하시고, 우리에게 복음을 주셨고 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새로운 피조물로 다시 태어났다는 것이 거듭남이고 중생입니다. 우리가 새로운 신분의 사람으로 다시 태어남으로 이제는 유대인과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하나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화목과 화평을 이루셨고, 선민이라고 생각하는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하나가 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에서 바울이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 유대주의 그리스도인들이 이방인들에게 할례를 받게 하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게 해야 한다고 주장할 때 예루살렘 교회는 이방인에게 할례와 율법을 강요하지 않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이것은 유대인과 이방인의 담을 허는 일입니다. 유대인과 이방인은 할례와 율법이란 담이 있었지만 예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할례와 율법으로 가로 막혔던 담이 헐리고 화평과 화목의 관계가 되었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평안을 전하셨습니다. 17-18절을 보면
2:17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2:18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 즉 이방인들에게 평안을 전하셨고 가까운데 있는 자들에게도 평안을 전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모든 사람들에게 평안을 전하셨고 평안을 주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오셔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요 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고 말씀하셨고
 
요 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먼데 있는 우리들에게 그리고 가까운데 있는 유대인들에게 평안을 전하셨고 평안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고 수없이 많은 사건과 사고가 일어나고 모든 것이 불안하지만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평안을 전하셨고 하늘의 평안을 주셨습니다.
 
한 주간도 주님이 주시는 평안을 가지고 세상에 나아가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3.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전통 유대주의자였던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난 다음에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을 받아서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들에게 보냄을 받아서 선교 여행을 하면서 깨달은 것은 유대인과 이방인이 함께 지어져 가는 것이 신앙이라는 것입니다.
 
누구보다 열심이 있던 바리새인이었던 바울은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자신의 열심은 잘못된 열심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바울은 주님을 만난 다음에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함께 지어져 간다고 말하고 있는데
 
바울은 우리는 동일한 시민이라고 말합니다. 19절을 보면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바울은 에베소 교회 성도들에게 그리고 오늘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는 이제 이방인이 아니다. 그리고 나그네도 아니다. 너희와 우리는 즉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 하나님 나라의 성도이며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고 하나님의 권속이라고 말했습니다.
 
현대어 성경으로 보면 “이제 여러분은 하나님 보시기에 더는 낯선 나그네도 이방인도 아닙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가족이며 하나님 나라의 백성입니다.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하나님의 집안을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유대인과 이방인에게만 하시는 말씀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들에게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을 대할 때 지옥에 갈 저주받은 인생들이라고 말하지 말고 그들도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사람들이고 언제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우리는 다 같은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 되고, 성도요 한 가족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지나친 예정론을 경계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구원 받기로 예정되었고 어떤 사람을 버려지기로 예정되어 있다고 믿는다면 다른 사람들을 전도해서 구원 받은 성도가 되게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선택된 사람들만 사랑하신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십니다. 이것에 복음의 정신입니다.
 
우리가 함께 지어져 가야 한다고 말한 바울은 예수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다고 말했습니다. 20절을 보면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우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성도가 된 것은 예수님의 보냄을 받은 사도들과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예언을 한 선지자들의 헌신 위에 성도로 하나님 나라의 시민으로 세워진 것입니다.
 
오늘날도 사도와 선지자 같이 전도하는 성도들과 말씀을 전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영혼들이 주님께 돌아와서 함께 세워져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세워져 가는 것은 모퉁이 돌이 되신 예수님 위에 세워져가는 것입니다.
 
모퉁이 돌이란 단어를 두 가지로 해석하는데 우리가 알고 있는 모퉁이 돌이란 의미와 건물의 꼭대기에 얹은 돌이란 의미가 있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모퉁이 돌이란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희생이 모퉁이 돌이 되어서 그 위에 교회가 지어져 가고 우리가 성도로 세움을 받게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꼭대기에 있는 돌이란 의미는 교회의 머리는 예수님이란 의미로 우리는 예수님을 머리로 삼은 교회를 세워가고 지어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도가 된 것은 우리 위에서 우리를 이끄시는 예수님의 인도하심을 받고 머리된 예수님을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서로 연결하여 성전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21-22절을 보면
2:21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2:22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여기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되어 라는 말은 각기 다른 건물들이 연결된다는 의미보다는 하나의 건물을 세우기 위해서 서로 연결되는 것이란 의미로 지역적 교회가 아닌 우주적 교회를 이야기 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교파는 달라도 우주적인 교회는 하나 뿐입니다. 천국에서도 장로교회, 감리교회, 성결교회, 침례교회, 오순절 교회가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의 교회만 있는 것이고 우리는 서로 다르지만 서로 예수님을 구세주로 고백하는 신앙으로 연결되어 하나의 우주적인 교회를 세워가는 것입니다.
 
서로 다른 우리가 같은 신앙의 고백으로 서로 연결해서 성전으로 지어가는 것입니다. 유대인과 이방인이 하나되고, 장로교회와 감리교회와 성결교회와 침례 교회와 오순절 교회들이 모두 하나로 연결되어 성전으로 지어져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세워가는 거룩한 성전에 거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을 세워가기 위해서 서로 다름을 인정하면서 같은 신앙고백으로 함께 지어져 가는 신앙이 되고, 함께 성전을 세워가야 합니다.
 
주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는 성도가 되고, 참빛교회가 되고 참빛 교회 모든 가족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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