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게 되는 날이 이르리라(7월 21일 오후 찬양 예배 설교)
성 경 : 사도행전 3:11-26(신약 191)
 
지난 주에는 베드로 요한 사도가 제 구 시 기도 시간에 성전으로 올라가던 중에 나면서부터 한 번도 걸어 본 적이 없는 장애 때문에 미문에 앉아서 구걸하면 살던 사람을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고쳐준 사건에 대해서 나누었습니다.
 
오늘 말씀은 그 사건이 있은 후에 베드로 사도가 모인 사람들에게 말씀을 증거 하는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내용을 우리는 베드로의 두 번째 설교라고 이야기 하기도 합니다.
 
베드로 사도는 나면서부터 걸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치료 받은 사건으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이 솔로몬 행각이란 곳에 모여서 이 사람이 고침 받은 것에 대해서 알고 싶어하는 상황에서 이 사람이 고침을 받은 것은 사람의 능력이나 경건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고 말하면서 예수님에 대해서 증거 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두 번째 설교에서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것은 모세를 비롯해서 구약 성경에 기록된 선지자들이 예언한 대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말하면서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고 죄 사함을 받으면 새롭게 되는 날이 이를 것이라고 선포했습니다.
 
우리 개역 개정에서 ‘새롭게 되는 날’ 이라고 번역한 헬라어는 ‘ἀνάψυξις’ 라는 단어인데 이 단어  아납쉭시스는 신약성경에서 여기에 딱 한번만 나오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이 단어는 새롭게 된다는 의미와 함께 ‘상쾌하게 함, 휴식, 해방’ 이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가 말한 새롭게 되는 날이란 말의 의미는 예수님을 믿고 진정한 회개로 인해서 죄 사함을 받으면 죄로부터 해방되고 죄로부터 해방되면 마음에 진정한 휴식이 오게 되고, 몸과 마음이 상쾌하게 된다는 의미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가 말한 새롭게 되는 날이란 예수님을 믿어 구원을 받고 구원을 받으므로 주님 안에서 진정한 쉼을 얻게 되고, 그러므로 몸과 마음이 상쾌하게 됨으로 인해서 기쁘고 즐겁게 살아갈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마 11:28-29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11: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마태복음 11:28-29절의 말씀은 베드로 사도가 말한 새롭게 되는 날과 같은 의미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은 성도가 되는 것은 새롭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서 회복과 희망에 대한 예언의 말씀을 주셨는데 렘 31:25에 “이는 내가 그 피곤한 심령을 상쾌하게 하며 모든 연약한 심령을 만족하게 하였음이라 하시기로” 라고 기록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이 새롭게 되는 날 즉 상쾌하게 되는 날을 누리게 될 것이고 새롭게 됨으로 인해서 연약한 심령이 만족하게 될 것이라고 선포한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새롭게 되는 날이 이르리라” 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우리가 받을 은혜의 말씀을 보면 베드로 사도는
 
1. 너희는 이 일을 왜 놀랍게 여기느냐?
오늘 말씀은 나면서부터 걸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 구걸하던 중에 베드로와 요한을 만나서 걷게 된 사건에 이어지는 것으로 제 구 시 기도 시간에 기도하러 성전에 왔던 사람들이 이 사건을 보고 매우 놀랐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놀라서 솔로몬의 행각이란 곳에 모였습니다. 11절을 보면 “나은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을 붙잡으니 모든 백성이 크게 놀라며 달려 나아가 솔로몬의 행각이라 불리우는 행각에 모이거늘”
 
구걸하다가 베드로와 요한이 우리를 보라 하매 돈을 주려나 하는 기대를 가지고 바라보다가 베드로가 은과 금은 내게 없지만 내게 있는 이것을 내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고 말하면서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매 걷게 되었습니다.
 
평생 일어서 본 적이 없던 사람이 기적으로 일어나 걷게 되자 걷고 뛰면서 성전으로 가서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너무 기쁜 나머지 베드로와 요한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지 못하고 성전으로 들어갔던 것입니다.
 
그리고 조금 지나서 흥분이 가라 앉은 다음이었을 것입니다. 이 사람은 아 나를 일어나게 해 주신 기적을 행하신 분들이 있었지 하면서 베드로와 요한을 찾았을 것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자리를 벗어나서 다른 곳으로 가지 않고 성전에 여전히 있었습니다.
 
칼빈이 해석한 대로라면 전도가 목적이었기 때문에 전도를 위해서 그곳을 떠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기적을 경험한 사람은 베드로 요한을 찾아서 붙잡았습니다. 이 사람이 붙잡은 것은 자신을 고쳐주신 것에 대해 감사하려고 했을 것이고 사람들에게 이 분들이 나를 고쳐주셨다고 말하기 위해서 였을 것입니다.
 
거기에 모인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금은 걷고 있지만 원래 그 사람은 걷지 못하는 사람으로 미문에 앉아서 구걸하던 사람인 것을 다 알고 있었고, 그 사람이 갑자기 걷는 것을 보고 신기하게 생각하던 차에 베드로와 요한이 자신을 고쳐주었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 모두가 놀라게 되었고 베드로와 요한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 많은 사람이 모일 수 있는 솔로몬 행각이라는 곳으로 갔습니다.
 
솔로몬 행각은
(1)성전 바깥 뜰 동편 끝에 있는 기다란 집채 곧 회랑(回廊)으로 교사들이 자유롭게 강론하던 곳이었다고 합니다.
(2)대중 집회를 할 만한 장소로서 초대 교인들이 이곳에서 자주 집회를 가졌습니다.(5:12).
(3)예수님께서 이곳에서 설교하신 일도 있었습니다.(요 10:23)
 
회랑이란 기둥이 있는 통로와 같은 곳으로 한쪽에 벽이 있고 반대편은 트여 있고 지붕이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입니다. 제 구 시 기도 시간에 성전에 왔던 사람들은 이 일에 대해서 알고 싶어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베드로는 많은 사람들이 모인 것을 보고 왜 놀랍게 여기느냐? 고 말했습니다. 12절을 보면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백성에게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놀랍게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나면서부터 걸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 갑자기 일어나서 걷고 뛰는 것을 보고 놀라지 않을 사람은 없습니다. 도대체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한 거지? 그런 궁금증을 갖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 놀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너희는 왜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놀랍게 여기느냐고 말한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너희가 생각하기에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이 놀라운 것일지 모르지만 이런 일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의미의 이야기를 한 것입니다.
 
이 일은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말을 한 것입니다.
 
베드로는 이어서 이 일은 우리 개인의 권능이라 경건으로 된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12절을 다시 보면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백성에게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놀랍게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베드로 사도는 너희는 왜 놀랍게 여기고 우리가 이 일을 한 것처럼 생각하면서 우리를 주목하느냐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들이 생각할 때 나면서 걸어본 적이 없는 사람을 고친 것이 베드로와 요한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베드로 사도는 이 일은 즉 이런 기적은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된 것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이런 일을 보면 그 일을 한 사람에게 시선을 집중하면서 어떤 목사님이 어떤 은사자에게 놀라운 능력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베드로 사도는 단호하게 사람의 권능이나 경건으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능력을 얻기 위해서 금식을 하거나 아니며 수도사들처럼 어떤 특별한 훈련을 하면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기적을 행하는 것은 사람의 능력이 아니고, 경건의 훈련을 많이 한 결과로 나타나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또한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것을 드러내시기 위해서 이루어주시는 것입니다.
 
2. 그(예수님의) 이름이 낫게 하셨다.
사람들이 베드로와 요한을 바라보는 상황에서 베드로는 이 일은 우리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고 선포하면서 이 일은 오직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선포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일어난 기적이라고 말하면서
 
너희가 생명의 주님을 죽였다고 선포했습니다. 13-15절까지를 보면
3:13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그의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너희가 그를 넘겨 주고 빌라도가 놓아 주기로 결의한 것을 너희가 그 앞에서 거부하였으니”
3:14 “너희가 거룩하고 의로운 이를 거부하고 도리어 살인한 사람을 놓아 주기를 구하여”
3:15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라”
 
베드로는 기적으로 일어서게 된 사람을 낫게 한 것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된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너희는 그분이 생명의 주님이신데 그분을 너희가 죽였다고 거기에 모인 사람들을 향해서 말했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의 무죄함을 알기에 죽이지 않으려고 했으나 너희는 거룩하고 의로우신 예수님을 거부하고, 오히려 살인한 사람 즉 바라바를 놓아달라고 하고 예수님을 십자가게 못 박으라고 외침으로 빌라도는 정치적인 판단으로 예수님을 십자가 처형을 언도했는데 빌라도가 예수님을 죽게 한 것이 아니라 너희가 생명의 주님을 죽인 것이라고 책망했습니다.
 
너희는 의롭고 거룩하신 생명의 주님을 죽였지만 하나님께서 살리셨다고 말했습니다. 15절을 다시 보면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라”
 
베드로는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예수님을 다시 살리심으로 영화롭게 하셨다고 선포하면서 너희가 죽인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살리셨다고 말하면서 하나님은 죽은 자도 살리실 수 있는 분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런 일은 사람은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창조주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실 수 있다고 말하면서 고침 받은 이 사람도 하나님은 능히 고치실 수 있기에 놀라운 일이 아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죽으신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살리셨고,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그 분의 이름 즉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나았다고 말했습니다. 16절을 보면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가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베드로 사도는 고침을 받는 것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고침을 받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모두가 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무런 조건 없이 고침을 받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고침을 받으려면 먼저 그 이름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믿고, 예수님이 나의 구세주이심을 믿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오늘도 기적이 일어날 수 있다고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이 사람을 고친 것이듯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기적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우리에게 일어나기 위해서 예수님의 이름이 우리에게 기적을 행하고 능력으로 나타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나아갈 때 우리가 생각한 것 보다 능히 더 넘치게 하시는 기적의 하나님께서 다양한 방법으로 역사하십니다.
 
3. 새롭게 되는 날이 이르리라
베드로 사도는 너희가 생명의 주님을 죽였지만 하나님께서 살리셨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오늘 이 사람에게 기적이 일어나게 한 것이라고 말하면서 너희가 예수님을 믿으면 새롭게 되는 날이 이를 것이라고 설교했습니다.
 
새롭게 되는 날이 이르기 위해서 회개하고 죄없이 함을 받으라고 말했습니다. 17-19절까지를 보면
3:17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여서 그리하였으며 너희 관리들도 그리한 줄 아노라”
3:18 “그러나 하나님이 모든 선지자의 입을 통하여 자기의 그리스도께서 고난 받으실 일을 미리 알게 하신 것을 이와 같이 이루셨느니라”
3:19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베드로 사도는 설교를 듣는 사람들에게 너희가 예수님을 죽게 했지만 그러나 너희는 알지 못해서 그렇게 한 것이다. 라고 말하면서 너희는 알지 못하고 그렇게 했지만 예수님의 죽으심은 선지자들을 통해서 예언하신대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베드로는 그렇다고 할지라도 이제 너희가 할 일은 회개하고 돌이켜 죄 없이 함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회개한다는 것은 먼저 믿음의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 믿음의 고백이 먼저 이루어져야 하고 그리고 회개하는 것입니다.
 
회개라는 단어의 성경적인 의미를 보면 구약에서 회개를 나타내는 단어는 “슈브” (שׁוּב)입니다. 이는 “돌아가다.”, “돌이키다.”를 의미합니다. 이는 단순히 행동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과 삶의 전체적인 방향을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신약에서 회개를 나타내는 주요 헬라어 단어는 “메타노이아” (μετάνοια)입니다. 이 단어의 뜻은 “마음을 바꾸다.”, “생각을 바꾸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 단어의 의미는 내적인 변화와 더불어 외적인 삶의 변화를 포함합니다.
 
베드로는 회개하고 돌이켜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즉 죄를 고백하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돌이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돌이킨다는 것은 생각을 바꾸고 삶을 바꾸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회개입니다.
 
잘못했습니다. 라고 고백하고 똑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은 회개가 아닙니다. 잘못을 깨닫고 고백하고 다시는 그런 일을 하지 않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으로 돌아서는 것이 진정한 회개입니다.
 
이렇게 회개하고 돌이키면 하나님께서 죄를 용서해 주시고 도말해 주십니다. 그렇게 함으로 죄없이 함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계속해서 예수님이 오신 것은 성경의 예언대로 이루어진 것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20-24절까지를 보면
3:20 “또 주께서 너희를 위하여 예정하신 그리스도 곧 예수를 보내시리니”
3:21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거룩한 선지자들의 입을 통하여 말씀하신 바 만물을 회복하실 때까지는 하늘이 마땅히 그를 받아 두리라”
3:22 “모세가 말하되 주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너희 형제 가운데서 나 같은 선지자 하나를 세울 것이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그의 모든 말을 들을 것이라”
3:23 “누구든지 그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아니하는 자는 백성 중에서 멸망 받으리라 하였고”
3:24 “또한 사무엘 때부터 이어 말한 모든 선지자도 이 때를 가리켜 말하였느니라”
 
예수님이 오신 것은 하나님께서 예정하시고 선지자들이 예언한 대로 그리스도로 오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그렇게 기다리던 구약에 예언된 메시아 즉 그리스도이시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예수님은 그리스도 이시기에 우리가 그분을 믿고 회개하고 돌이켜 죄 사함을 받으면 새롭게 되는 날이 우리에게 오는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새로운 날을 주신 것은 그리고 그리스도를 보내주신 것은 우리에게 복을 주시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25-26절을 보면
3:25 “너희는 선지자들의 자손이요 또 하나님이 너희 조상과 더불어 세우신 언약의 자손이라 아브라함에게 이르시기를 땅 위의 모든 족속이 너의 씨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셨으니”
3:26 “하나님이 그 종을 세워 복 주시려고 너희에게 먼저 보내사 너희로 하여금 돌이켜 각각 그 악함을 버리게 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너의 씨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고 한 것은 곧 예수님이 오셔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든 나라와 민족이 복을 받게 하시겠다는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창 22:18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오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천한 만민이 복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종을 세워 복 주시려고 너희에게 먼저 보내셨다고 설명했습니다. 먼저 보내셨다는 것은 유대인들에게 먼저 복음을 주셨다는 의미입니다.
 
오늘날도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고 돌이켜 죄없이 함을 받고 믿음으로 예수님의 이름을 의지할 때 기적이 일어나고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듣는 모든 성도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적을 경험하고, 약속하신 모든 복을 받아 누리게 되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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