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나 걸으라(7월 14일 오후 찬양 예배 설교)
성 경 : 사도행전 3:1-10(신약 191)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으로 인해서 사도들은 성령 충만을 받아서 복음을 전했고, 그 결과 초대교회는 구원 받는 사람이 날마다 더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초대 교회의 급격한 성장에는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난 것도 하나의 요인이 되었습니다.
 
2장에서는 오순절 성경 강림과 베드로 사도의 설교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은 성도가 됨으로 초대교회가 세워지고 교회가 모여서 한 일들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고, 교제하고, 떡을 떼고 모여서 기도하기를 힘쓰는 교회였으며 통용 즉 공유하고 나눔을 실천하는 교회였고 하나님을 찬미하고 백성들에게 칭송을 받았다고 기록했습니다.
 
3장에서 사도들을 통해서 나타난 기사와 표적에 대한 이야기를 기록하면서 나면서부터 걸어본 적이 없던 사람을 베드로와 요한 사도가 일어나 걷게 한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초대교회 사도들을 통해서 나타난 많은 기사와 표적이 있었지만 가장 대표적인 기적이 나면서 걸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 고침을 받은 이야기입니다.
 
오늘 본문을 중심으로 “일어나 걸으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오늘 이야기가 전개되는 것을 보면
 
1. 성전으로 올라간 사도들
베드로 사도의 설교를 듣고 삼 천명이 회개하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교회가 온 백성들에게 칭송을 받으면서 믿는 사람이 날마다 더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교회가 급속도로 성장하는 상황에서 사도들은 성전으로 올라갔습니다. 사도들이 성전으로 올라간 상황을 기록하면서 제 구 시 기도 시간이라고 표현했습니다. 1절을 보면 “제 구 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
 
제 구 시는 현재 우리의 시간으로 오후 3시를 말합니다. 경건한 유대인들은 하루에 제 삼 시(오전 9시), 제 육시(12시), 그리고 본문에 나타난 제 구 시 (오후3시)를 정해놓고 세 번의 기도를 했습니다.
 
물론 이것은 구속력 있는 율법 규례가 아니라 유대인들의 종교적 관습이었습니다. 다니엘은 바벨론에서도 이 기도 시간을 지켰습니다. 하루에 세 번 예루살렘을 향해 창문을 열고 기도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경건한 유대인들은 기도 시간을 지켜서 기도하는 전통을 잘 지켰습니다. 베드로와 요한 사도도 제 구시 기도 시간에 성전으로 올라갔다고 기록한 것은 그 기도 시간을 지킨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제 구 시는 해가 기울기 시작하여 저녁 시간이 되어가는 오후에 제사를 드리는 유대인의 예배 시간을 의미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출 29:39절에 보면 “한 어린 양은 아침에 드리고 한 어린 양은 저녁 때에 드릴지며” 성전에서 제사장들이 매일 두 번의 제사를 드려야 하는데 아침과 저녁 때에 어린 양을 드리는 제사를 드리는데 저녁 때에 제사 드리는 시간이 제 구 시였다는 것입니다.
 
요세푸스에 의하면 유대인들의 공식적 기도 시간은
(1) 이른 아침.
(2) 제 구 시, 즉 오후 예배 시간인 이 때 공중 기도를 드리는 순서가 있어서 사람들이 많이 모였다고 한다.
(3) 해질 황혼 무렵에 또 한번의 기도 시간이 있었다. 고 기록했습니다.
 
성전으로 올라간 사도들 1절을 다시 보면 “제 구 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 우리가 일반적으로 제 구 시 기도 시간에 성전으로 올라간 것은 베드로 요한 사도가 경건한 유대인들처럼 기도하기 위해서 성전으로 올라간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교회가 시작되기는 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예배를 드리기에는 장소가 마땅치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아마도 성전에 많은 사람이 모일 수 있는 장소를 사용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해석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매일 일정한 시간에 기도를 하는 것은 초대교회에서 일반적인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매일 시간을 정해서 기도하는 것은 우리의 경건 생활을 위해서 유익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새벽 5시 새벽기도, 정오의 기도, 오후 7시에 성경 읽기 기도회 이렇게 하고 있는데 가정이나 삶의 현장에서 시간을 정해 놓고 기도하는 것은 영적으로 유익한 일입니다.
 
그런데 칼빈은 사도들이 성전에 간 것은 기도하기 위해서 간 것이 아니라 그 시간에 많은 사람들이 모이기 때문에 전도하러 간 것이라고 해석을 했습니다.
 
칼빈은 ‘유대인의 율법 의식을 따라 기도하기 위해 성전에 올라갔다기 보다는 그 시간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이므로 복음을 전파하기에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여서 올라갔다.’ 라고 해석했습니다.
 
요세푸스의 기록에 의하면 이 시간이 가장 많은 사람들이 성전으로 모이는 시간이었다고 했는데 칼빈의 말처럼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시간에 전도하기 위해서 간 것이라고 해석할 수 도 있습니다.
 
2. 성전 미문에서 구걸하던 사람
베드로와 요한 사도가 성전으로 올라가면서 성전 미문 앞에서 앉아서 구걸하던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이 사람은 아마도 오래 전부터 거기에 앉아서 구걸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날 베드로와 요한은 그 사람에게 주목하게 됩니다. 이 사람에 대한 기록을 보면
 
나면서부터 걸어본 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2절을 보면 “나면서 못 걷게 된 이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
 
걷을 수 없게 되는 이유는 다양합니다. 사고로 다쳐서 못 걷게 되거나, 질병으로 인해서 못 걷게 되거나 하는 경우들을 우리는 종종 보게 됩니다. 김소영 이란 체조선수는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 국가대표 체조선수로 메달 유망주였으나 아시안게임을 불과 20일 앞두고 이단 평행봉 훈련 중 추락하는 불의의 사고로 열여섯의 나이에 척수장애인이 되어 걷지 못하게 됐습니다.
 
강원래는 클론으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지난 2000년 오토바이 사고로 하반신 마비 판정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유명인이 사고로 걸을 수 없게 되는 예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에 등장하는 분은 나면서부터 걸을 수가 없는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나면서부터 걸을 수 없은 장애를 가진 이 사람의 나이는 40세쯤 된다고 기록하고 있는 40년 동안 걸어 본적이 없는 사람으로 스스로 무기력증에 빠졌을 것입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기에 살아가는 것도 무의미하고 삶의 의욕도 없었을 것입니다.
 
이 사람의 삶이 얼마나 무기력 한가 하면 사람들이 메고 왔습니다. 2절을 다시 보면 “나면서 못 걷게 된 이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
 
사람들이 메어다가 성전 미문에 두었다는 것은 자신의 의지로 성전 미문에 온 것이기보다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사람들에 의해서 거기에 와서 앉아 있게 되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자신이 원해서 사람들에게 부탁을 해서 그랬을 수도 있지만 자신은 원하지 않아도 사람들에 의해 강제로 그곳에 있게 됐을 수도 있습니다.
 
이 사람이 성전 미문에 와서 앉아 있는 이유는 구걸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2절 끝 부분에 “나면서 못 걷게 된 이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
 
이 사람이 성전 미문에 사람들에게 의해서 오게 된 이유는 구걸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걷지 못하기 때문에 직업을 가질 수 없었습니다.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이 없기 때문에 살기 위해서 구걸을 해야만 했습니다.
 
성전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고 특히나 제 구 시 즉 오후 3시가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시간이었기 때문에 구걸하기에는 가장 좋은 환경이었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기도하러 가는 길목에 앉아서 구걸하면 기도하러 오가는 사람들의 마음이 훨씬 더 너그럽고 긍휼히 여기는 자비의 마음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구걸하기에 딱 좋은 장소와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이 사람은 기도하기 위해서 거기에 온 것도 아니고,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온 것도 아닙니다. 사람들에게 불쌍히 보여서 한 푼이라도 더 받기 위해서 그 시간에 거기에 앉아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그가
 
3. 일어나 걷게 되었습니다.
기도하거나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성전 미문에 있었던 것이 아니었음에도 나면서부터 걸어본 적이 없던 사람은 베드로와 요한 사도를 만나서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걷는 기적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이 사람에게 기적이 일어나는 과정을 보면
 
베드로와 요한 사도가 우리를 보라고 말했습니다. 3-4절을 보면
3:3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 함을 보고 구걸하거늘”
3:4 “베드로가 요한과 더불어 주목하여 이르되 우리를 보라 하니”
 
구걸하기 위해서 성전의 미문이란 곳의 입구에 앉아있다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으로 들어가려고 하자 구걸을 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와 요한은 그 사람을 보고 갑자기 우리를 보라고 말했습니다.
 
베드로 요한은 많은 사람들이 기도하기 위해서 성전으로 들어가는 시간에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는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특별한 일을 행하실 것이란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에게 우리를 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이 얼굴을 들어서 바라보았습니다. 5절을 보면 “그가 그들에게서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 베드로 사도와 요한 사도가 우리를 보라고 하자 구걸하던 사람은 혹시 돈을 주려나 하고 두 사도를 바라보았습니다.
 
이 사람이 사도들의 말을 듣고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면 어쩌면 기적이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 사도의 말을 듣고 목적은 무엇을 얻을까 하는 것이지만 고개를 들고 베드로와 요한 사도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렇게 바라봄으로 인해 기적이 시작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한다면 우리의 믿음의 눈을 들어 하늘을 보아야 합니다. 우리 시선이 땅에 집중되어 있으면 우리에게 아무런 역사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우리의 시선이 주님을 향할 때 우리 안에 기적이 일어나고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목적은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았지만 사도들을 바라본 그 사람을 향해서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6절을 보면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그 사람이 원하는 건 돈이었습니다. 베드로는 그 사람이 어떤 마음인지 잘 알기 때문에 은과 금은 내게 없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 사람은 혹시라도 돈을 주려나 하는 생각에 베드로와 요한 사도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은과 금은 즉 우리에게는 너에게 줄 돈은 없다고 먼저 말했습니다.
 
그리고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준다고 말했습니다. 내게 있는 것이란 말은 내가 소유한 것이란 의미로 내가 가지고 있고 내가 소유하고 있는 이것을 너에게 준다고 말한 것입니다.
 
이것은 베드로와 요한에게 있는 이것은 세상의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특별한 것이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베드로 사도가 말한 이것은 오늘 우리에게도 주어진 것으로 우리도 이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내가 가지고 있는 이것을 준다고 말하고 이것은 바로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라고 선포했습니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능력의 이름으로 기적의 이름입니다. 우리에게도 사망 권세 이기시고 부활하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이름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이 이름을 사용할 때 우리에게도 기적이 일어나고 역사가 일어납니다. 베드로는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준다고 말하면서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고 선포했습니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선포할 때 귀신이 물러가고 질병이 치유되고 문제가 해결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베드로는 일어나 걸으라고 선포하고 손을 잡아 일으켰습니다. 7절에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구걸하던 사람은 갑작스럽게 베드로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고 할 때 이 상황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어리둥절 했을 것입니다.
 
그에게는 아직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란 믿음과 확신이 없었습니다. 그런 그 사람을 베드로 사도가 오른손을 잡아 일으킬 때 갑자기 그의 다리에 힘이 들어가고 난생 처음 일어나 서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손을 잡아 일으켜 세워준 베드로의 모습을 기억해야 합니다. 믿음이 없어 주저하는 사람들과 망설이는 사람들의 손을 잡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스스로 할 수 없기 때문에 손을 잡아서 일으켜 세워줄 때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손을 내밀어 주고 손을 잡아 일으켜 세워주는 참빛 교회가 됩시다.
 
이런 일들이 일어남으로 인해서 사람들은 심히 놀랍게 여기고 놀랐습니다. 8-10절까지를 보면
3:8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
3:9 “모든 백성이 그 걷는 것과 하나님을 찬송함을 보고”
3:10 “그가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 줄 알고 그에게 일어난 일로 인하여 심히 놀랍게 여기며 놀라니라”
 
나면서부터 한 번도 일어서거나 걸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 베드로가 선포하고 손을 잡아 일으키매 갑자기 다리에 힘이 들어가서 일어서게 되고 그리고 걷게 되었고, 그리고 뛰게 되었습니다. 그는 구걸하기 위해서 왔지만 일어서서 걷게 되자 하나님의 성전으로 들어가서 하나님을 찬송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적을 베풀어 주시는 것은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고 예배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적을 경험하고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송하고 경배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은 그 사람이 미문에서 구걸하던 사람이고 나면서부터 걸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란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일어나서 걷고 뛰면서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을 보고 모두가 놀라고 놀랐습니다.
 
오늘도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놀라고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그 이름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 이름의 능력을 믿고 선포함으로 하늘의 기적을 경험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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