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으로 법궤를 옮겼다.(7월 14일 오전 예배 설교)
사무엘하 6:1-19(구약 472)
 
사무엘하 5장은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움을 받는 장면을 기록했습니다. 사울이 죽은 뒤 다윗은 유다의 왕으로 헤브론에서 7년 6개월 다스리다가 사울의 아들인 이스보셋이 죽은 뒤에 이스라엘 모든 지파의 지도자들이 다윗을 왕으로 옹립하게 됩니다.
 
이스라엘 전체의 왕으로 등극하게 된 다윗은 수도를 헤브론에서 예루살렘으로 옮기게 되는데 예루살렘에 살고 있던 여부스 족속을 몰아내고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새로운 수도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다윗 성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다윗은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나서 부실한 곳을 견고하게 만들어서 본격적으로 예루살렘 시대를 열어갔습니다. 다윗은 예루살렘을 수도로 삼고 통치를 시작하면서 그동안 기럇여아림에 있던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겨오는 작업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법궤는 원래 실로에 있었습니다. 엘리 제사장이 실로에서 성막에서 법궤를 모시고 있었는데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쳐들어 올 때에 이스라엘이 블레셋에게 패하게 되자 법궤를 전쟁터로 가져가게 되고 법궤를 가지고 있으면 전쟁에서 승리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블레셋에게 패하게 되고 블레셋이 법궤를 빼앗아 갔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이스라엘을 이겼을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의 신앙의 중심으로 할 수 있는 법궤를 빼앗아서 자신들이 섬기는 다곤 신전에 두었지만 다곤 우상이 엎드려져 있는가 하면 다시 세워놓으면 우상이 무너지게 되고 독한 종기의 재앙으로 법궤가 있는 아스돗이 망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되자 법궤를 돌려보내기로 결정하고 법궤를 벧세메스로 보냈습니다. 그런데 벧세메스 사람들이 법궤를 들여다 봄으로 인해서 많은 사람이 죽임을 당하게 되자 기럇여아림으로 보내게 되고, 기럇여아림에 도착한 법궤를 아비나답의 집에 모시게 됩니다.
 
그리고 한 동안 법궤는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잊혀진 것처럼 보일 정도였습니다. 사무엘 시대를 거쳐서 사울이 왕이 되어서도 법궤를 왕이 통치하는 곳으로 옮겨온다거나 법궤를 모실 성전이나 구별된 장소를 만들거나 하는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오래 전부터 법궤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사울은 왕으로서 자신의 통치 기반을 다지고 권력을 자손들에게 물려주기 위해서 애를 썼습니다. 심지어 다윗을 죽이려고 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보니 사울은 법궤를 모시고, 중앙 성소를 만들어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려는 생각을 못했던 것입니다.
 
다윗은 왕이 돼서 예루살렘을 수도로 삼고 어느 정도 안정을 찾게 되자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겨서 예루살렘이 이스라엘 신앙과 정치의 중심이 되게 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다윗이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는 과정에 대해서 기록을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면 다윗이 법궤를 옮길 때 처음부터 성공적으로 법궤를 옮긴 것이 아니라 법궤를 옮기는 첫 번째 시도는 실패하게 됩니다.
 
한 번 실패를 경험하고 나서 법궤를 옮기기 위해서 율법을 보면서 어떻게 옮겨야 하는지에 대해서 준비를 해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법궤를 옮기는 방법대로 법궤를 성공적으로 예루살렘으로 옮기게 됩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봉독한 말씀을 중심으로 “기쁨으로 법궤를 옮겼다.” 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1. 잘못된 열심(실패의 원인)
다윗은 법궤를 옮기겠다는 생각을 하고 나름대로 준비를 해서 법궤를 옮기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첫 번째 시도는 실패하게 됩니다.
 
지금까지 법궤를 기럇여아림에 두고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는데 다윗이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고 그곳에 법궤를 위한 성전을 지으려고 하는 것은 하나님도 기쁘게 생각하시고 기쁘게 받아주실 것 같은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마음은 기쁘게 받으셨지만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으로 하지 않고 자기 맘대로 자기 생각대로 하는 것에 대해서 기뻐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법궤에 대한 열정이 있었지만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다윗이 생각하기에 법궤를 옮기는 것이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했을 수 있습니다. 법궤를 옮기려는 열심은 다윗에게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법을 찾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대로 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옮기려고 하다가 실패한 것입니다.
 
이렇게 된 것은 잘못된 열심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때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려고 하지 않고 내가 원하는대로 내 생각대로 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열심입니다. 다윗의 잘못된 열심에 대한 기록을 보면
 
법궤를 옮기려고 준비했습니다. 1-2절을 보면
6:1 “다윗이 이스라엘에서 뽑은 무리 삼만 명을 다시 모으고”
6:2 “다윗이 일어나 자기와 함께 있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바알레유다로 가서 거기서 하나님의 궤를 메어 오려 하니 그 궤는 그룹들 사이에 좌정하신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라”
 
다윗은 법궤를 옮기기 위해서 이스라엘 전역에서 사람들을 모았습니다. 다윗 혼자서 신하들 몇 명하고, 아니면 자신의 추종자들 몇 명이 주축이 돼서 법궤를 옮기려고 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모든 지파가 참여해서 함께 법궤를 옮기려고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은 이스라엘 백성들 모두가 법궤를 신앙의 중심으로 삼아야 한다는 의미로 모든 지파에서 삼 만명을 선발을 했습니다. 사실 법궤를 옮기는데 있어서 이렇게 많은 사람이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다윗은 법궤를 옮기는 작업을 거국적인 행사로 하기 위해서 이렇게 한 것입니다.
 
다윗은 전국에서 삼만명을 모집을 해서 법궤를 옮기려고 했지만 자신의 방법대로 했습니다. 3-5절까지를 보면
6:3 “그들이 하나님의 궤를 새 수레에 싣고 산에 있는 아비나답의 집에서 나오는데 아비나답의 아들 웃사와 아효가 그 새 수레를 모니라”
6:4 “그들이 산에 있는 아비나답의 집에서 하나님의 궤를 싣고 나올 때에 아효는 궤 앞에서 가고”
6:5 “다윗과 이스라엘 온 족속은 잣나무로 만든 여러 가지 악기와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양금과 제금으로 여호와 앞에서 연주하더라”
 
법궤를 옮기는 방법에 대해서 다윗은 먼저 새 수레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법궤를 모시고 있던 아비나답의 아들 웃사와 아효가 새 수레를 몰게 했습니다.
 
다윗은 법궤를 옮기는데 있어서 자기가 생각했을 때 최선의 준비를 한 것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수레를 준비해서 수레에 법궤를 싣고 모든 악기를 동원해서 법궤를 싣고 가는 수레 앞에서 찬양을 하면서 갔습니다.
 
그리고 수레는 그 뒤를 따라서 갔습니다. 누가 봐도 멋있는 행렬입니다. 다윗은 나름대로 자신이 최선을 다해서 준비했다고 생각하면서 자부심을 가졌을 것입니다. 속으로 하나님께서 나의 이 열정을 기뻐 받으실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베레스 웃사가 되었습니다. 6-8절까지를 보면
6:6 “그들이 나곤의 타작 마당에 이르러서는 소들이 뛰므로 웃사가 손을 들어 하나님의 궤를 붙들었더니”
6:7 “여호와 하나님이 웃사가 잘못함으로 말미암아 진노하사 그를 그 곳에서 치시니 그가 거기 하나님의 궤 곁에서 죽으니라”
6:8 “여호와께서 웃사를 치시므로 다윗이 분하여 그 곳을 베레스웃사라 부르니 그 이름이 오늘까지 이르니라”
 
악기를 연주하고 찬양을 하면서 신나게 가고 있는데 법궤를 싣고 가던 수레를 끄는 소들이 갑자기 뛰었습니다. 소들이 ‘뛴다’ 는 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솨마트’는 ‘미끄러지다’, ‘걸려 넘어질 뻔하다’는 뜻입니다.
 
당시의 도로 사정은 돌 뿌리가 있을 것이고 평탄한 길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거기다 악기를 연주하는 소리가 소들을 흥분하게 만들었을 수 있습니다. 수레를 끌고 가던 소들은 정신이 없었을 것이고 평탄하지 않는 길에서 돌 뿌리에 걸리거나 미끄러져 비틀거리는 상태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자 수레에 있던 법궤가 흔들리면서 수레에서 떨어질 것 같은 상황이 오게 되었고 법궤가 떨어질 것 같은 상황이 되자 웃사가 놀라서 법궤를 손으로 붙들었습니다.
 
웃사가 생각할 때 법궤가 땅에 떨어지면 큰일이라고 생각해서 잡았지만 법궤에 손을 댐으로 인해서 하나님이 진노하셨고 웃사가 현장에서 바로 생명이 끊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법궤를 만들라고 하시면서 운반할 때는 법궤에 고리를 만들고 그 고리에 채를 꿰어서 채로 법궤를 운반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법궤에는 손을 대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민수기 4:15 “진영을 떠날 때에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성소와 성소의 모든 기구 덮는 일을 마치거든 고핫 자손들이 와서 멜 것이니라 그러나 성물은 만지지 말라 그들이 죽으리라 회막 물건 중에서 이것들은 고핫 자손이 멜 것이며”
 
다윗 시대에는 이 말씀을 아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손을 대지 말라고 하셨지만 법궤가 떨어질 것 같은 위급한 상황이라 아무 생각 없이 법궤에 손을 댐으로 웃사가 죽었고 다윗은 분하게 생각하면서 베레스 웃사라고 불렀습니다. ‘베레스 웃사’는 ‘웃사의 터짐’ 또는 ‘웃사의 파멸’ 이라는 뜻입니다.
 
다윗은 자신이 생각할 때 최선을 다해 준비하고 옮기려고 했지만 웃사가 죽음으로 인해서 ‘분하여’ 했는데 ‘분하여’ 에 해당되는 원어 ‘하라’는 단순히 괘씸한 마음을 품거나 섭섭한 감정을 지니는 것 정도가 아니라 ‘타오르다’, ‘심히 뜨거워지다’, ‘빨갛게 되다’로서 온 몸과 심장이 타버릴 듯한 극도의 분노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진심도 몰라주신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자신은 최선을 다해서 준비했는데 하나님께서 내 진심도 몰라주시고 이러 실수가 있을까? 하는 생각에 분하여 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못된 열심으로 섬기려고 하면서 왜 내 맘과 정성을 안 받아주시고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하십니까? 하고 원망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한 것이 또는 우리가 하려고 한 것이 잘못된 열심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2. 온 집이 복을 받은 오벧에돔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려다가 웃사가 죽자 화가 나서 그냥 간 다윗이 있는가 하면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한 복을 받은 오벧에돔의 집이 있습니다. 오벧에돔의 온 집이 복을 받은 것을 보면
 
다윗은 법궤를 옮기는 일을 중단하고 법궤를 오벧에돔의 집으로 보냈습니다. 9-10절을 보면
6:9 “다윗이 그 날에 여호와를 두려워하여 이르되 여호와의 궤가 어찌 내게로 오리요 하고”
6:10 “다윗이 여호와의 궤를 옮겨 다윗 성 자기에게로 메어 가기를 즐겨하지 아니하고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으로 메어 간지라”
 
다윗은 아직 하나님의 진노의 원인이 자신들이 율법에 명한 방법대로 법궤를 운반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법궤로 인해서 또 다른 하나님의 재앙이 미치지나 않을까 두려워 했을 것입니다.
 
다윗은 법궤를 모시고 예루살렘으로 갔다가 어떤 일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법궤 옮기는 일을 중단하고 법궤를 오벧에돔의 집으로 보냈습니다.
 
여기서 오벧에돔을 가드 사람이라고 소개했는데 가드는 블레셋의 한 도시인데 오벧에돔은 성전 문지기로 일을 한 것으로 보아서 아마도 그가 단 지파 지경 내에 있는 레위인의 성읍 가드림몬에서 태어났기 때문일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렇게 갑자기 법궤를 모시게 된 오벧에돔의 온 집이 복을 받았습니다. 11절을 보면 “여호와의 궤가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에 석 달을 있었는데 여호와께서 오벧에돔과 그의 온 집에 복을 주시니라”
 
여기서 우리는 이런 질문을 해 볼 수 있습니다. 아비나답은 수십 년간 법궤를 모시고 있었는데 아비나답의 집이 복을 받았다는 기록은 없는데 오벧에돔은 석달 밖에 안 모셨는데 온 집이 복을 받았다고 한 것은 왜 그럴까? 하는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는 정확하게 모릅니다. 아비나답의 집도 복을 받았지만 기록을 안했을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다윗이 법궤를 모시고 가길 포기한 상황에서 오벧에돔의 집에 모셨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오벧에돔은 자원해서 자기 집으로 모신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다윗이 일방적으로 오벧에돔의 집으로 보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쁘게 받아들이고 모셨기 때문에 하나님이 복을 주신 것입니다. 웃사가 죽는 것을 보고 법궤를 자기 집으로 모시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벧에돔은 웃사가 죽은 것을 보고도 자기 집으로 모셨습니다.
 
그리고 석 달 동안 최선을 다해서 하나님을 섬겼을 것입니다. 그 결과 하나님이 그의 온 집에 복을 주셨습니다. 남들은 하고 싶어하지 않지만 하나님을 위해서 기쁜 마음으로 순종하고 모시고, 섬기면 반드시 복을 받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과 내가 하고 싶은 것이 아닐지라도 하나님이 원하시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는 사람은 반드시 복을 받습니다.
 
오벧에돔이 복 받은 것이 소문 났습니다. 12절에 “어떤 사람이 다윗 왕에게 아뢰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하나님의 궤로 말미암아 오벧에돔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에 복을 주셨다 한지라 다윗이 가서 하나님의 궤를 기쁨으로 메고 오벧에돔의 집에서 다윗 성으로 올라갈새”
 
오벧에돔이 법궤를 모신 기간은 석 달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동안 얼마나 큰 복을 받았는지 예루살렘 다윗에까지 오벧에돔이 복을 받은 이야기가 들려왔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일을 한 오벧에돔의 집에 복을 주셨는데 온 나라에 소문이 날 정도로 복을 주셨습니다. 오벧에돔이 복을 받은 것이 다윗에게 알려지자 다윗은 다시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는 작업을 하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3. 기쁨으로 법궤를 옮긴 다윗
다윗은 법궤를 옮기려다가 실패한 후에 오벧에돔이 법궤로 인해 복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즉시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게 되는데 그동안에 율법을 읽고 어떻게 법궤를 옮겨야 하는지에 대해서 알아보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율법에 기록된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법궤를 옮기기 위한 준비를 하고 기쁘게 법궤를 옮겼습니다.
 
규례대로 법궤를 옮겼습니다. 13절을 보면 “여호와의 궤를 멘 사람들이 여섯 걸음을 가매 다윗이 소와 살진 송아지로 제사를 드리고” 여기서 궤를 멘 사람들은 당시의 제사장들이었습니다.
 
대상 15:11-13을 보면
15:11 “다윗이 제사장 사독과 아비아달을 부르고 또 레위 사람 우리엘과 아사야와 요엘과 스마야와 엘리엘과 암미나답을 불러”
15:12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레위 사람의 지도자이니 너희와 너희 형제는 몸을 성결하게 하고 내가 마련한 곳으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궤를 메어 올리라”
15:13 “전에는 너희가 메지 아니하였으므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니 이는 우리가 규례대로 그에게 구하지 아니하였음이라 하니”
 
다윗은 첫 번째 법궤를 옮기는 작업에서 실패한 원인이 너희가 법궤를 메지 않았기 때문에 즉 율법의 규례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실패한 것이기에 이제는 율법의 규례대로 너희가 법궤를 메라고 했고 제사장들이 법궤를 메고 옮기게 된 것입니다.
 
다윗은 실패 원인이 규례대로 하지 않고 내 생각대로 했기 때문이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내 생각대로 하면 실패하지만 하나님의 뜻대로 하면 반드시 성공하고 복을 받습니다.
 
기쁘고 즐겁게 옮겼습니다. 14-15절을 보면
6:14 “다윗이 여호와 앞에서 힘을 다하여 춤을 추는데 그 때에 다윗이 베 에봇을 입었더라”
6:15 “다윗과 온 이스라엘 족속이 즐거이 환호하며 나팔을 불고 여호와의 궤를 메어오니라”
 
다윗은 규례대로 법궤를 옮기면서 규례에 더해서 여섯 걸음을 가매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기뻐하면서 즐겁게 춤추며 찬양하며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겼습니다.
 
다윗은 너무나 기뻐서 춤추며 찬양할 때 왕으로서 권위를 내려놓고 어린아이처럼 즐겁게 뛰면서 춤을 주었습니다. 그 모습을 본 미갈이 업신여길 정도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16절 “여호와의 궤가 다윗 성으로 들어올 때에 사울의 딸 미갈이 창으로 내다보다가 다윗 왕이 여호와 앞에서 뛰놀며 춤추는 것을 보고 심중에 그를 업신여기니라”
 
하나님을 찬양함에 있어 어린아이 같은 마음을 가진 다윗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할 때 하나님을 찬양할 때 체면을 생각하지 말고 즐겁게 찬양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법궤를 준비한 곳으로 모신 다윗은 백성을 축복하고 나누어 주었습니다. 17-19절까지를 보면
6:17 “여호와의 궤를 메고 들어가서 다윗이 그것을 위하여 친 장막 가운데 그 준비한 자리에 그것을 두매 다윗이 번제와 화목제를 여호와 앞에 드리니라”
6:18 “다윗이 번제와 화목제 드리기를 마치고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백성에게 축복하고”
6:19 “모든 백성 곧 온 이스라엘 무리에게 남녀를 막론하고 떡 한 개와 고기 한 조각과 건포도 떡 한 덩이씩 나누어 주매 모든 백성이 각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다윗은 자신이 미리 준비해 둔 곳으로 법궤를 옮기고 하나님 앞에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백성을 축복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기쁨과 즐거움으로 예배드리고 서로를 축복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다윗은 제사장이 아니기 때문에 제사장으로 축복한 것은 아니지만 왕으로 그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복이 임하길 축복한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 축복하는 공동체입니다. 그리고 다윗은 모든 백성들에게 떡과 고기와 건포도를 나누어 주었습니다. 우리는 서로 축복하고 서로 나누는 나눔 공동체로 세워져 가야 합니다. 초대교회와 같이 우리가 서로 나누고 베풀고 함께 할 때 하나님의 복이 교회와 가정위에 차고 넘치는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다윗은 자기 생각대로 하려다 실패했지만 하나님의 규례대로 즐겁게 기쁨으로 법궤를 옮겼습니다. 내 뜻과 방법이 아닌 하나님이 뜻과 방법을 따라 살아감으로 성경에 기록된 대로 하늘의 복을 누리는 참빛 교회 모든 성도가 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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