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가 시작되다.(7월 7일 오후 찬양 예배 설교)

성 경 : 사도행전 2:37-47(신약 190)

 

지난 주에는 베드로 사도의 설교를 듣고 사람들이 마음에 찔림을 받고 우리가 어찌할꼬? 할 때 베드로 사도는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라고 말했습니다.

 

오늘은 베드로 사도의 설교를 듣고 사람들이 회개하고 세례를 받고 함께 모여서 교회 공동체를 시작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나누려고 합니다. 오순절 날 성경이 강림하시므로 영적으로 새로운 시대가 열렸습니다.

 

성경적인 역사로 구분하면 구약 성경이 기록된 시대를 구약 시대라고 하면서 다르게 표현한다면 성부 하나님의 시대라고 구분할 수 있을 것이고,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님의 사역을 신약시대 또는 성자 시대라고 구분할 수 있을 것이고,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 이후로는 교회 시대 또는 성령 시대라고 구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 이후로부터 지금까지를 교회 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남은 마지막은 재림과 미래의 왕국 시대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이렇게 교회를 중심으로 교회 공동체로 하나님을 예배드리는 것은 오늘 본문의 말씀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적으로 새로운 시대 즉 교회 시대이자 성령의 시대가 시작되는 내용을 살펴봄으로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오늘 본문을 중심으로 해서 “교회가 시작되다.” 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1. 부름 받은 성도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성도가 된 것은 그리고 교회 공동체의 일원이 된 것은 하나님의 부르심으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예수님을 믿기로 결단을 하고 우리가 알아서 주님 앞에 나와서 예수님을 믿고 교회에 나온 성도가 된 것이 아니고 우리가 교회에 나올 수 있도록 그리고 예수님을 믿도록 하나님의 부르심이 먼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셔서 교회와 나오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베드로 사도는 사람들이 마음에 찔림을 받아 어떻게 할꼬 라고 질문할 때 회개하고 세례를 받으면 성령을 선물로 받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39절을 보면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이 약속이란 것은 앞에서 말한 회개하고 세례를 받으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라고 한 약속을 말하는 것으로 이 약속은 모든 사람들 유대인들과 먼 데 사람 즉 이방 나라에서 온 사람들까지도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 하신 약속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 말은 우리가 주님을 만나게 되는 것은 먼저 하나님이 나를 선택하시고 부르신 결과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우연히 라는 표현을 많이 사용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연히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처음 교회에 나올 때 우리가 생각하기에 우연히 친구 따라 교회에 오게 됐다고 생각하거나 학교에서 성경 공부를 하고 예배를 드리므로 예수님을 믿게 됐다고 생각하거나 누군가 교회 행사가 있어서 가자고 해서 왔다고 말하면서 어쩌다 보니 우연히 교회에 나오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어쩌다 보니 우연히 교회에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선택하시고 부르셔서 교회에 오게 된 것입니다. 나를 교회로 데리고 온 사람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위해서 사용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전도해서 교회에 데리고 오는 것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부르시기 위해서 나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양한 방법으로 부르셔서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게 하시는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셔서 성도가 되게 하신 가장 중요한 목적에 대해서 베드로 사도는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고 말했습니다.

 

40절을 보면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이르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베드로 사도가 패역한 세대라고 표현한 것은 당시의 세대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아를 거역하고 십자가에 못 박았기에 예수님의 말씀대로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라고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눅 9:41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너희에게 참으리요 네 아들을 이리로 데리고 오라 하시니”

 

패역한 세대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다는 것이 성경에서 일반적으로 말씀하신 내용입니다. 그러나 패역한 세대라고 할지라도 회개하고 돌아서면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성경의 진리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은 패역한 세대이지만 그런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게 하기 위해서 부르셨다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양한 방법으로 부르셔서 성도가 되게 하신 가장 근본적인 목적과 이유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허물과 죄와 가운데 죽을 수밖에 없던 존재들이었습니다.

 

이렇게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들을 살리기 위해서 예수님을 보내주셔서 우리를 부르셔서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은 성도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엡 2:1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베드로 사도의 설교를 듣고 많은 사람들이 세례를 받았습니다. 41절을 보면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이 구절에 대해서 비판자들은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베드로 사도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는데 3천명이 회개하고 세례를 받고 성도가 되었을까? 한는 질문을 합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일 만한 공간이 있었을까 하는 것과 그 많은 사람들이 모일 공간이 있다고 해도 오늘날과 같이 마이크가 있는 것도 아닌데 베드로 사도가 설교하는 것을 과연 사람들이 들을 수나 있었을까? 하면서 말도 안 된다고 비판을 합니다.

 

그런데 성지 순례를 가서 보면 이스라엘의 지형이 특수한 형대로 된 곳들이 있어서 앞에서 이야기할 때 그 앞에 있는 사람들이 오늘과 같은 음향시설이 없어도 들을 수 있는 특이한 구조로 된 곳들이 곳곳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을 전하실 때도 엄청난 사람들이 모여들었지만 음향시설이 없어도 예수님을 설교를 들을 수 있었고 베드로 사도가 설교하는 곳도 역시 오늘과 같은 음향시설이 없어도 충분히 그곳에 있는 사람들이 들을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 당시의 세례는 우리나라 일반 교회에서 하는 것과 같은 약식 세례가 아니라 우리가 하는 것과 같은 침례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도들이 중심이 돼서 침례식을 거행했을 것이고, 많은 사람들이 세례를 받았고 성도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교회가 시작된 것입니다.

 

  1. 교회가 시작되다.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사람들이 베드로 사도의 설교를 듣고 회개하고 세례를 받았는데 그 숫자가 3천 명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들이 함께 모여 교회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교회를 의미하는 헬라어 단어는 “ἐκκλησία” 입니다. 이 단어는 두 단어의 결합으로 형성되었는데 ‘밖으로’ 또는 ‘from’란 뜻이 있는 “ἐκ” 라는 단어와 “부르다”를 의미라는 “καλέω”가 합쳐진 단어로 “ἐκκλησία”는 문자 그대로 “밖으로 불러낸 사람들” 또는 “부름을 받은 사람들의 모임”이란 뜻입니다.

 

교회는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우리는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서 교회라는 공동체에서 하나 된 것입니다. 세상에서 부름을 받아서 모인 교회는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42절을 보면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교회에서 모일 때 가르침이 있습니다.

 

초대교회에서 가르침이 중요한 것은 대부분 유대교에 익숙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율법이 아닌 복음 즉 예수님께서 하신 일들과 가르치신 일들을 알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아니라 구약을 알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구약에 익숙해 있고 예수님에 대해서 잘 모르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는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에게 임했고 율법이 아닌 예수님을 믿으므로 구원을 받는 것이기 때문에 사도들이 율법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가르친 것입니다.

 

또한 교제하는 공동체였습니다. 42절을  다시 보면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교회에서 교제는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현대인들은 교회에 와서 예배만 드리고 사라지는 경향이 있지만 교회의 중요한 기능은 교제하는 것입니다. “교제”를 의미하는 헬라어 단어는 “κοινωνία”인데 이 단어의 뜻은 ‘공유하다.’ 또는 ‘함께 나누다.’를 의미하는 동사 “κοινωνέω”에서 유래되었습니다.

 

교제 즉 코이노니아는

공동체적 의미가 있습니다. ‘κοινωνία’는 단순히 사람들 간의 사적인 친분이나 사회적 관계를 위한 교제 이상의 의미로 신앙 공동체를 이루어 더불어 연합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영적 연합의 의미가 있습니다. 성도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연합하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나누는 것을 의미합니다.

 

물질적 나눔의 의미가 있습니다. “κοινωνία”는 성도들 간의 물질적 나눔과 섬김을 포함합니다. 고린도후서 8:4에서 “구제하는 일에 참여함”으로 번역했습니다. “이 은혜와 성도 섬기는 일에 참여함에 대하여 우리에게 간절히 구하니”

 

성찬과 예배를 함께 드리는 것입니다. 성찬식과 예배를 통해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기념하고, 성도들 간의 영적 친교를 나누는 것을 의미합니다.

 

떡을 떼며 라는 표현은 성찬식과 예배를 의미하는 것으로 진정한 교제는 함께 성찬에 참여하고 예배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을 포함하는 것입니다.

 

초대교회는 모여서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썼습니다. 42절 마지막 부분에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46절에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라고 기록했습니다.

 

초대교회는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서 모이기도 하고 교회에서 모이기를 힘썼습니다. 아직은 공식적인 예배처인 교회를 정하진 못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성전에 모이고 또는 집에서 즉 예배를 드리는 예배처에서 함께 모여서 마음을 같이 하여 교제하고 또한 오로지 기도를 힘썼습니다.

 

교회의 중요한 3대 요소는 가르침을 받고, 교제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1. 칭송을 받는 교회

베드로 사도의 설교를 듣고 회개하고 세례 받은 사람들을 중심으로 교회가 시작되었고, 교회는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고, 교제하고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썼습니다.

 

그리고 초대교회는 온 백성들에게 칭송을 받는 교회로 세워졌습니다. 여기서 칭송이라고 번역한 단어는 우리가 많이 들은 χάρις 라는 단어를 사용했는데 이 단어는 은혜, 호의, 친절 이런 의미가 담긴 단어입니다. 여기서 온 백성들에게 칭송을 받았다는 것은 칭찬을 받았다는 의미이고 모두가 교회에 대해서 호의적이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교회가 칭송 즉 사람들이 호의적으로 대하고 칭찬한 이유는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났습니다. 43절을 보면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사람마다 두려워했다는 말은 존경이란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더 성경적인 해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교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볼 때 영적인 두려움과 함께 교회를 존경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는 의미입니다. 이렇게 두려워하고, 존경한 것은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성령 충만한 사도들에 의해서 기사와 표적 나타났는데 기사와 표적이 나타난 것은 그들이 사도라는 것을 확실히 증명해 보인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도들은 성령을 통하여 표적과 기사들을 많이 행했는데 이런 일은 예수께서 지상에 있을 때 행하신 기적들이 하나님 나라의 표적들이었던 것과 같은 것입니다.이런 역사가 나타남으로 인해서 교회를 향한 두려움과 존경을 갖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교제하는 공동체로 통용하고 나누었습니다. 44-45절을 보면

2:44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2:45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초대교회의 중요한 특징 중에 하나가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는 것이었습니다. 통용한다는 말은 공동의 소유로 삼았다는 것으로 공산주의 이론이 이 구절에서 시작되었다고 일반적으로 이야기 합니다.

 

그러나 초대 교회의 통용 즉 공동의 소유는 공산주의가 말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여기서 공동의 소유로 여겼다는 것은 성령 충만한 사람들이 자신의 것을 교회에 내어놓고 교회 안에서 필요한 일을 위해서 사용한다는 의미입니다.

 

여기서는 서로의 것을 감사함으로 내어놓은 것이고 서로의 필요를 위해서 공동의 소유처럼 생각하면서 교회의 덕을 위해서 사용한 것입니다. 요즘 많이 사용하는 표현 중에 공유라는 표현이 있는데 교회는 공유 개념이 시작된 곳입니다.

 

공유와 함께 초대교회는 나눔이 있었습니다. 가진 사람은 자신의 것을 내어놓고 없는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현상은 오직 성령의 하나 되심을 따라 이루어진 특이한 현상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성령께서 초자연적으로 역사하신 예루살렘 교회에 한정되었고 그 외 다른 지역에서는 일어나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다른 지역의 교회들에게서 초대교회인 예루살렘 교회와 같은 일은 나타나지 않았다고 해도 나누고 베푸는 일은 계속해서 이루어졌습니다. 교회는 나눔과 베품을 실천하는 곳입니다.

 

서로 통용하고 나누고 베푸는 일은 교회가 사람들에게 칭송을 받을 일입니다. 오늘날도 교회는 끊임없이 나누고 베푸는 일을 합니다.

 

칭송을 받은 교회를 하나님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셨습니다. 47절을 보면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교회는 기사와 표적이 나타나고 통용과 나눔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면서 영적으로 하나 된 공통체로 하나님을 찬미하면서 모여서 기도하기를 힘쓰고 이런 교회의 모습을 본 사람들이 교회를 칭찬하고, 교회에 대해서 호의적인 태도를 보였고, 그 결과 구원 받는 사람들이 날마다 더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렇게 구원받는 사람들이 날마다 더한 것은 주님께서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지켜주시고, 세상에서 인정받으므로 성도가 늘어나는 부흥의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초대 교회의 이런 상황에 대한 기록은 당시 총독이었던 플리니우스가 트랴안 황제에게 보낸 서신에서 잘 나타나 있는데 이후에 교회가 박해가 받는 상황에 대해서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는 박해로 인해 비밀리에 모이는 기독교 공동체를 은밀히 조사해 본 후 ‘그들은 법 이상을 실천하는 사람들’ 이라고 보고함으로써 초대 교회 기독교인들의 영적, 윤리적 삶이 칭송받을 만했음을 로마의 정치가로서 입증시켜 주었습니다.

 

성령 충만한 공동체는 세상으로부터도 인정을 받는 공동체이고 부흥하고 성장하는 공동체로 세워져 가는 것입니다. 참빛 교회가 통용과 나눔과 성령의 역사로 칭송을 받고 부흥하는 교회고 세워져 가리라 믿습니다. 우리가 그런 일을 위해 쓰임 받는 성령 충만한 성도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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