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고 기다리는 믿음(6월 30일 오전 예배 설교)
시편 130:1-8(구약 899)
 
전도서를 읽다가 재미있는 구절을 발견했습니다. 전도서 7:21-22절을 보면
7:21 “또한 사람들이 하는 모든 말에 네 마음을 두지 말라 그리하면 네 종이 너를 저주하는 것을 듣지 아니하리라”
7:22 “너도 가끔 사람을 저주하였다는 것을 네 마음도 알고 있느니라”
 
이 구절을 보면서 우리가 많이 사용하는 SNS의 댓글이 떠올랐습니다. 우리가 페북이나 인스타그램이나 밴드와 같은 SNS를 많이 이용하고 있는데 거기에 올라오는 댓글이 마음에 상처를 줄 때도 있고 마음을 상하게 할 때도 있는데 하나님은 미리 아시고, 사람들이 하는 모든 말을 마음에 두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댓글에 누가 뭐라고 하든 신경 쓰지 말라는 말씀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너의 종이 너를 저주하는 댓글을 달아도 모른척하거나 아예 댓글을 보지 말아라 그러면 그런 것 때문에 상처 받을 일도 화날 일도 없다는 것입니다.
 
더 재미있는 건 너도 가끔 다른 사람의 SNS에 욕하거나 비판하는 댓글을 달았다는 것을 네 마음이 알고 있지 않느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이 구절을 발견하고 한참 웃었습니다. 하나님은 어떻게 이런 걸 다 말씀해 주신 것일까?
 
오늘 우리가 봉독한 시편 130편은 성전으로 올라가는 노래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성전으로 올라가는 노래 중에 하나이면서 또한 참회의 시 중에 하나입니다. 시편 전체에는 7편의 참회의 시가 있는데 130편은 여섯 번째 참회의 시입니다.
 
성전으로 올라가는 노래는 120편에서 134편까지 총 15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15편의 시들은 서로 다른 시기에 작성되었고 내용도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성전을 찾아가는 순례자들의 마음을 담은 노래로서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오늘 성전으로 올라가는 노래이면서 참회의 시인 130편을 통해서 시인은 하나님 앞에 자신의 죄를 자복하고 참회하면서 하나님께서 나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시옵소서라는 간절한 기도와 찬양을 하면서 성전으로 올라가면서 부르는 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짧은 구절이지만 본문 안에는 성전으로 올라가는 순례자의 간절한 마음이 담겨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시인은 성전으로 올라가면서 바라고 기다린다고 고백했습니다.
 
오늘 본문을 중심으로 해서 “바라고 기다리는 믿음” 이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시인의 세 가지 믿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시인이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성전으로 나아갈 때 즉 예배의 자리로 나아갈 때 이런 믿음으로 나아가고, 세상 속에서도 이런 믿음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시인이 고백한 세 가지 믿음은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믿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믿음은
 
1. 부르짖는(기도하는) 믿음
본문의 찬양시가 참회의 시 가운데 하나라고 했는데 하나님의 성전으로 올라가는 시인은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면서 나아간다고 고백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리에 나아가기 위해서 먼저 해야 할 일은 기도로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간절한 마음으로 부르짖어 기도하면서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쁘게 받아주시고, 우리에게 은혜를 내려 주십니다. 시인이 부르짖어 기도한다고 고백한 것을 보면
 
내가 깊은 곳에서 부르짖습니다. 라고 고백했습니다. 1절을 보면 “여호와여 내가 깊은 곳에서 주께 부르짖었나이다.” 여기서 내가 깊은 곳에서 부르짖는다고 고백했는데 깊은 곳은 바닥을 헤아릴 수 없는 깊고 깊은 바다 속, 또는 깊은 골짜기란 의미인데 이 단어는 ‘심한 고통, 압박감’ 이런 의미가 있습니다.
 
현대어 성경은 ‘절망’ 이라고 번역을 했고, 공동 번역은 ‘깊은 구렁’ 쉬운 성경은 ‘깊은 절망’ 이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여기서 깊은 곳이란 말의 의미는 깊은 절망과 좌절 속에서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시인은 자신이 처한 깊은 절망의 상황에서 하나님을 향해 부르짖는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우리가 성전으로 나아가는 상황은 항상 좋은 일이 있을 때만 성전으로 나아가는 것은 아닙니다.
 
히스기야 왕은 앗수르가 예루살렘을 둘러싸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너의 생명을 거두어 가겠다고 하셨을 때 즉 깊은 수렁의 상황에서 성전으로 올라가서 부르짖었습니다.
 
우리가 주님께 예배드리기 위해서 교회에 올 때 항상 즐겁고 감사한 일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깊은 수렁이나 절망의 상황에 처했을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가 하나님의 전에서 부르짖어 기도할 때 하나님의 돕는 손을 만나게 됩니다.
 
시인은 내가 깊은 곳에서 부르짖었사오니 나의 부르짖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소서라고 간절하게 외쳤습니다. 2절을 보면 “주여 내 소리를 들으시며 나의 부르짖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소서”
 
시인은 내가 깊은 곳에서 즉 깊은 수렁이나 절망의 상황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오니 나의 부르짖는 기도를 들으시고 나의 부르짖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소서라고 간절하게 외치고 있습니다.
 
귀를 기울이소서를 직역하면 ‘당신의 귀들이 집중력 있게 하소서’ 라는 뜻입니다. 또한 원어상으로 귀를 복수형 ‘귀들’로 쓴 것은 최대한 집중력을 모아 달라는 시인의 간절한 간구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내가 아무리 부르짖어도 하나님께서 내가 부르짖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시면 나의 기도는 허사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 내가 부르짖는 이 간절한 기도에 귀를 집중해서 나의 소리를 들어주시옵소서라고 간구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진심으로 간절히 부르짖는 소리를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사 30:19 “시온에 거주하며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백성아 너는 다시 통곡하지 아니할 것이라 그가 네 부르짖는 소리로 말미암아 네게 은혜를 베푸시되 그가 들으실 때에 네게 응답하시리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출애굽하게 하신 것도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셨기 때문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출 2:23 “여러 해 후에 애굽 왕은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된지라”
 
그런데 시인이 이렇게 부르짖는 것은 하나님께서 죄를 사해 주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시길 기도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시인은 하나님께서 죄를 사유하심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십니다. 라고 노래했습니다.
 
3-4절을 보면
130:3 “여호와여 주께서 죄악을 지켜보실진대 주여 누가 서리이까”
130:4 “그러나 사유하심이 주께 있음은 주를 경외하게 하심이니이다.”
 
시인의 부르짖는 기도는 자신의 죄로 인해서 절망적인 상황에 처한 것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 회개하며 도우심을 간구하는 부르짖음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죄악을 지켜 보시기 때문에 죄 문제가 해결 되지 않고 누구도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다고 고백한 다음에 모든 죄를 사하시는 것은 하나님께 있고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해주심으로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라고 노래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진심으로 예배하기 위해서는 먼저 사함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한 주 동안 살아가면서 하나님 보시기에 잘못한 것을 진정한 마음으로 부르짖어 회개하고 간구할 때 사함을 받게 되고, 사함을 받은 성도의 예배를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아주십니다.
 
2. 기다리는 믿음
시인은 성전으로 올라가면서 부르짖어 기도한다고 고백하고 이어서 기다리는 믿음으로 나아간다고 고백했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기다림이 필요합니다. 기다림이 없는 믿음은 진정한 믿음이 아닙니다. 시인은 기다리는 믿음에 대해서
 
내 영혼이 여호와를 기다립니다. 라고 고백했습니다. 5절을 보면 “나 곧 내 영혼은 여호와를 기다리며 나는 주의 말씀을 바라는도다.” 시인은 내 영혼이 여호와를 기다립니다. 라고 고백했습니다.
 
다르게 표현하면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다립니다. 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내가 깊은 곳에서 주께 부르짖었다고 고백한 시인은 하나님의 사유하심을 기다리면서 간절히 기도했고 이제 하나님께서 나의 간절한 부르짖음을 들으셔서 나를 도와 주실 것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시 70:5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니 하나님이여 속히 내게 임하소서 주는 나의 도움이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오니 여호와여 지체하지 마소서” 라고 시인이 노래한 것처럼 하나님께서 임하셔서 나의 도움이 되시고 나를 건져주옵소서라는 간절함을 담고 있습니다.
 
나의 영혼이 하나님을 바란다는 것은 하나님의 도움이 임해서 모든 상황에서 벗어나서 하나님이 주시는 진정한 복을 누리게 하여 주옵소서라는 고백이며 또 한편으로는 내 영혼이 여호와를 기다리오니 내 안에 주의 영을 부어주셔서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케 하여 주시옵소서라는 간구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시인은 내가 하나님을 기다리는 것은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리는 것보다 더하도다. 라고 고백했습니다. 6절을 보면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내 영혼이 주를 더 기다리나니 참으로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더하도다.”
 
군에 다녀온 분들은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린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이해합니다. 군인이 머무는 곳에는 반드시 경비병이 배치가 되어서 밤새 경계 근무를 하게 됩니다. 대부분은 시간을 정해서 돌아가면서 경계 근무를 서지만 특수 지역에서는 경비병들이 자주 바뀌면 위치가 노출되거가 하기 때문데 밤새워 경계근무를 해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경위 파수꾼 즉 경비병들은 아침이 빨리 오기를 기다리게 되는데 하나님을 기다리는 마음이 파수꾼들이 아침을 기다리는 것보다 더 간절하고 애절하게 기다린다고 고백했습니다.
 
시인은 그렇게 간절하게 파수꾼보다 더 간절하게 기다리는 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죄악에서 속량해 주시길 기다린다는 것입니다. 8절을 보면 “그가 이스라엘을 그의 모든 죄악에서 속량하시리로다.”
 
시인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모든 죄악에서 속량해 주시길 간절히 기다린다고 고백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죄악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를 누릴 수 없기 때문에 나의 죄악과 이스라엘의 죄악을 해결해 주시길 즉 속량해 주시기 기다린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속량이란 죄에서 건져주신다는 말이지만 그보다 더 넓은 의미로 죄로 인해서 당하던 모든 억압에서 해방시켜 주신다는 의미와 함께 죄악으로 인해서 겪었던 모든 절망적인 상황들에서 건져주셔서 하나님 나라의 은총을 누리게 하신다는 의미가 포함된 것입니다.
 
3. 바라는 믿음
부르짖고, 기다리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성도들은 바라는 믿음으로 살아갑니다. 여기서 바란다는 말은 ‘소망한다.’는 의미입니다. 대부분의 쉬운 성경들은 ‘소망’, ‘희망’ 으로 바란다는 말을 번역했습니다. 우리는 바라는 믿음 즉 소망과 희망을 품고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바라는 즉 소망하고 희망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오고 하나님 말씀이 곧 우리가 바라고 소망하고 희망하는 것입니다. 5절 마지막 부분을 보면 “나 곧 내 영혼은 여호와를 기다리며 나는 주의 말씀을 바라는도다.”
 
주의 말씀을 바라는도다. 라는 말의 히브리 원어의 의미는 ‘내가 그의 말씀 안에 소망을 두었다’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근거해서 필요한 모든 자비와 은혜를 소망하였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근거로 해서 믿고, 기다리고, 소망하고, 비전을 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전혀 상관없는 기다림과 소망과 바라는 것은 결국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낙심하게 되고 믿음에서 떨어져 나가게 되기도 합니다.
 
약속의 말씀에 근거한 기다림과 소망의 자세야말로 참된 신앙적 자세요, 결코 쉽게 낙망하지 않는 자세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말씀을 바라는 사람은 결과적으로 하나님을 바라는 것입니다. 7절을 보면 “이스라엘아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여호와께서는 인자하심과 풍성한 속량이 있음이라”
 
여호와를 바라라는 말을 쉬운 성경에서는 “여러분의 소망을 여호와께 두십시오.” 라고 번역을 했고 현대어 성경은 “여호와를 믿으라” 로 번역했습니다. 여호와를 바라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소망을 두라는 말이고, 하나님을 믿으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무엇인가가 이루어지기 바란다는 것은 무엇인가가 이루어진다고 믿는 것이고, 무엇인가가 이루어지길 소망한다는 의미라고 할 수 있는데 하나님을 바라라는 것은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하나님을 믿으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인 성경을 소망으로 삼고, 성경을 바라고 믿고 의지하고, 또한 성경을 통해 약속을 주신 하나님을 믿고, 소망하고, 바라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복된 삶의 비결입니다.
 
우리가 바라고 소망하고 믿는 하나님에게는 인자하심과 풍성한 속량이 있습니다. 7절을 다시 보면 “이스라엘아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여호와께서는 인자하심과 풍성한 속량이 있음이라”
 
여호와께서는 인자하심과 풍성한 속량이 있음이라를 현대어 성경은 “여호와께서는 한결같이 따스하게 아껴 주시며 언제나 기꺼이 건져 주시는 분이니” 라고 번역했고, 쉬운 성경은 “변함 없는 사랑이 여호와께 있으며 충만한 구원이 그분께 있습니다.” 라고 번역했습니다.
 
시인은 성전으로 올라가면서 참회의 기도를 드리면서 하나님을 기다리고 말씀과 하나님을 소망하며 살아갑니다. 라고 고백을 하면서 우리가 하나님을 향해 소망을 품고 살아갈 수 있는 근거는 하나님은 인자와 풍성한 속량 즉 죄 사함과 건져주시는 은혜가 있기 때문이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요일 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으십니다.
 
수요일에 이사야 41장의 말씀을 나누었는데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를 싫어해서 버리지 않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 41:9 “내가 땅 끝에서부터 너를 붙들며 땅 모퉁이에서부터 너를 부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나의 종이라 내가 너를 택하고 싫어하여 버리지 아니하였다 하였노라”
 
성전으로 올라가는 노래 중에 하나인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은 부르짖어 기도하면 죄를 사해주시고, 건져주신다는 것과 하나님을 기다리는 믿음으로 살아가면 하나님의 돕는 은혜가 임하여서 복된 삶을 살아가게 되고, 바라는 즉 소망과 희망을 말씀과 하나님께 두는 사람들에게는 한 없는 사랑으로 베풀어주셔서 참 복을 누리게 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부르짖고, 기다리고 바라는 믿음으로 풍성한 은혜와 복을 누리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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