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넓히라(6월 23일 오전 예배 설교)
고린도 후서6:1-13(신약 292)
 
파스칼은 팡세에서 ‘인간은 자연 가운데서 가장 약한 하나의 갈대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것은 생각하는 갈대이다.’ 라는 말로 인간의 존재를 묘사했습니다.
 
이러한 비유적인 표현은 인간이 비참함과 위대함이 공존하는 혼란스러운 존재임을 강조합니다. 인간은 약한 존재이지만, 사고할 수 있기 때문에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생각하는 존재로서 인간을 이야기 한 파스칼은 인간을 ‘중간자’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인간은 천사처럼 될 수도 있고 악마처럼 될 수도 있는 천사와 악마의 중간자이기에 선한 사람도 될 수 있고 악한 사람도 될 수 있는 선과 악의 중간자라는 표현을 했습니다.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는 말과 중간자라는 말은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느냐에 따라서 내가 어떤 존재인지 결정되는 것이란 의미란 받아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바울 사도는 고린도 교회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 마음을 넓히라’ 하나님께서 바울 사도에게 너희 마음을 넓히라 고 말씀하신 것으로 이 말씀은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하신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종교인들 특히 기독교인들은 폐쇄적이라는 생각을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기독교를 폐쇄적으로 보는 가장 큰 이유는 예수님 이외에는 구원이 없다고 강조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오직 예수님의 이름 이외에 우리에게 구원을 얻을 다른 이름을 주신 일이 없다고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행 4:1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반면에 다른 종교는 종교 다원주의를 이야기 하고 종교의 공존에 대해서 이야기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 외에도 구원에 이르는 다양한 길이 있고 모든 종교의 궁극적인 목적은 다 같은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종교 다원주의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종교 다원주의를 반대합니다. 오직 예수님만 우리의 유일한 구원의 구원자 이심을 믿습니다.
 
유일한 구원자 예수님을 믿는 것 이에도 교회가 폐쇄적이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은 교회의 구성원들이 하는 말이나 행동은 세상에서 볼 때 속이 좁다는 평가를 받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살고, 하나님을 믿는 신앙공동체를 강조하는데 그런 강조가 우리를 속이 좁은 사람들로 보이게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교회만의 폐쇄적인 공동체를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세상으로 나아가서 세상을 품고 방황하는 영혼들을 주님께로 인도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세상 속에서 부름을 받은 거룩한 성도이기에 우리만의 폐쇄적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것이 진정한 신앙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 폐쇄적인 공동체를 이루려고 하는 교회를 향해서 너희 마음을 넓히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본문을 중심으로 해서 “마음을 넓히라” 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우리가 마음을 넓히기 위해서 기억해야 할 말씀은
 
1.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많이 사용하는 단어가 은혜라는 단어입니다. 은혜라는 말의 뜻은 “자격 없는 자에게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의 호의”입니다.
 
다르게 표현하면 “받을 자격이 전혀 없는데 선물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은혜란 “아무런 대가 없이”, “값없이” 그저 주는 것입니다. “은혜”라는 뜻은 “베풀어 주신 혜택과 고마움과 신세짐”을 은혜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예배를 드리고 은혜를 받았다고 한다든지 찬양에 은혜를 받았다고 한다든지 기도나 간증을 통해서 은혜를 받았다든지 하는 표현을 합니다. 그런데 은혜라는 말의 성경적 의미는 나는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임에도 하나님께서 나에게 선물을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받은 가장 큰 은혜는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고, 성령을 받은 것이고, 마음에 평안을 누리는 것과 질병에서 고침을 받는 것, 기도의 응답을 받는 것, 말씀을 듣고 힘을 얻고 감동을 받는 것과 같이 다양한 은혜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은혜를 받았는데 바울을 통해서 하나님은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헛되이’의 헬라어 ‘에이스케논’은 ‘빈’, ‘공허한’의 뜻입니다. 따라서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는 말은 하나님의 은혜를 공허한 것으로 만들지 말라는 뜻입니다. 은혜를 공허하게 즉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 우리가 받은 은혜를 다시 기억해야 하는데 우리가 받은 은혜에 대해서
 
듣고 도우신 하나님이라고 말씀했습니다. 1-2절을 보면
6:1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6:2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내가 너에게 은혜를 베풀 때에 내가 네가 하는 모든 말을 들어주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은혜는 우리가 힘들고 어려운 일을 가지고 하나님께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말 즉 기도와 탄식을 들으시고, 우리의 기도에 응답해 주셨는데 이것이 우리에게 은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말을 들어 주신 결과로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는 말은 너에게 구원이 필요한 상황일 때가 내가 너를 구원해 주었다는 의미입니다.
 
즉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 고통 당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셔서 그 고통과 고난 속에서 우리를 건져주셨는데 그것이 은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구원의 날이라고 말씀하십니다. 2절을 다시 보면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지금은 구원의 날이란 말을 현대어 성경에서 “지금이 바로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환영하고 계시는 때이며 오늘이 바로 여러분을 구원하시려는 날입니다.” 라고 번역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데 우리가 간구하는 기도를 들어주셔서 구원해 주시는 즉 어려움에서 건져주신다고 말씀하고 계속해서 지금은 우리가 은혜를 받을 때이고 구원을 받을 날 즉 기도가 응답 되어서 문제가 해결될 날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은혜의 날이란 말은 현대어 성경의 해석과 같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환영해 주시는 때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오는 것을 기뻐하시고 환영하십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예배 드리는 이 시간 주님은 우리를 환영해 주시고 기쁘게 받아주십니다.
 
다르게 말하면 지체하지 말고 지금 하나님께로 나아가고 하나님 앞에 마음을 다해 기도하면 구원의 은혜를 누릴 수 있는 때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고 기도의 응답의 은혜를 주실 때는 바로 지금입니다. 지금 이곳에서 나에게 주시는 은혜를 누리는 복된 시간되시기 바랍니다.
 
2. 비방을 받지 않아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께 은혜를 받았습니다. 은혜를 받은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 감사해서 하나님 나라를 섬기고, 교회를 섬기기 위해서 직분을 받게 됩니다.
 
바울 사도는 자신이 받은 사도라는 직분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려고 최선을 다한다고 이야기 하면서 교회에서 다양한 직분을 받은 성도들에게 너희가 받은 직분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해야 한다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마음을 넓히기 위해서 교회에서 받은 직분을 가지고 사람들의 비방을 받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비방을 받지 않기 위해서 아무에게도 거리끼지 않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3절을 보면 “우리가 이 직분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려고 무엇에든지 아무에게도 거리끼지 않게 하고” 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받은 직분이 비방을 받지 않게 즉 내가 교회에서 받은 직분을 비방을 받지 않도록 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에든지 아무에게도 거리끼지 않게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거리끼지’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로스코펜’은 ‘실족할 계기’, ‘범죄할 기회’, ‘걸려 넘어짐’의 뜻입니다. 우리로 인하여 사람들이 실족할 계기를 주거나 범죄 할 기회를 주거나 우리 때문에 믿음 생활을 하는데 걸려 넘어지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직분을 감당함에 있어서 무엇 즉 어떤 일이나 아무에게 즉 사람에게나 실족하게 만들거나 내가 하는 일이 믿음에서 걸려 넘어지는 원인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말씀으로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롬 12:8 “혹 위로하는 자면 위로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는 직분자로 위로의 말을 하고, 성실함으로 하고, 부지런함으로 하고 즐거움으로 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직분이 비방을 받거나 우리가 거리낌의 원인이 되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를 전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계속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일꾼으로 자천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4절을 보면 “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꾼으로 자천하여 많이 견디는 것과 환난과 궁핍과 고난과” 자천이란 말은 나를 스스로 추천한다는 말입니다. 내가 나를 스스로 하나님의 일꾼으로 추천한다는 말인데 이 말은 자원해서 주님의 교회를 위해서 일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에 의해서 지명을 받아서 직분자로 헌신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하나님의 교회에서 직분자로 스스로 자원해서 일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억지로 마지 못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자원해서 해야 합니다.
 
벧전 5:2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억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득을 위하여 하지 말고 기꺼이 하며”
 
자원해서 일을 하는데 필요한 것은 많이 견디는 것과 환난과 궁핍과 고난 속에서도 환난 속에서도 감사로 견디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조금 힘든 일이 오면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견디어 내는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자천해서 일꾼이 되고 헌신하기 위해서는 의의 무기를 좌우에 가져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5-7절을 보면
6:5 “매 맞음과 갇힘과 난동과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 가운데서도”
6:6 “깨끗함과 지식과 오래 참음과 자비함과 성령의 감화와 거짓이 없는 사랑과”
6:7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의의 무기를 좌우에 가지고”
 
우리가 복음을 위해서 살아가는 여정에는 환난과 핍박이 올 수 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믿지 않는 사람들이나 우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 의해 고난을 받을 수도 있고 사탄은 어떤 문화와 상황에서도 성도들에게 환난과 핍박을 받게 합니다.
 
이럴 때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와 사람들 앞에서 깨끗함과 또한 말씀의 지식과 오래 참는 인내와 자비의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너무 극단적인 경향이 있고 다른 사람들의 말을 잘 듣지 않고 자기 주장만 내세우는 경향이 강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오래 참음과 자비와 거짓이 없는 사랑이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스스로 누구에게나 인정 받을 수 있는 깨끗한 삶을 살고 이것은 세상의 관점에서나 신앙의 관점에서 깨끗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풀어야 합니다. 내가 세상의 중심이 아닙니다. 우리가 믿음이 좋으면 좋을 수록 나 중심의 사고에 사로잡혀서 내 신앙이 최고가 내가 말하는게 진리라고 착각하면서 다른 사람에 대한 용서와 이해가 부족한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가 마음을 넓게 하기 위해서는 오래 참음고 자비와 사랑이 있어야 하고, 사탄과 악한 영들을 물리치고 사람들을 감동 시키기 위해서는 성령의 감화를 받고 진리의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의 의의 무기를 좌우에 가져야 합니다.
 
말씀과 성령의 능력은 우리의 의의 무기입니다. 진리의 말씀과 성령의 능력을 의의 무기로 가질 악한 영들을 물리치게 되고, 인내와 자비와 사랑은 세상 사람들을 향해 마음을 넓히는 도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3. 마음을 넓혀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을 넓히기 위해서 우리의 마음이 준비되어 있어야 합니다. 즉 마음이 열려 있어야 합니다. 우리 마음이 굳게 닫혀 있거나 굳어 있으면 다른 사람들에게 마음을 넓힐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열기 위해서 필요한 마음의 상태는
 
항상 기뻐해야 합니다. 8-10절까지를 보면
6:8 “영광과 욕됨으로 그러했으며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그러했느니라 우리는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6:9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6:10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8-10절까지를 한 마디로 말하면 어떤 상황에서도 항상 기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볼 때는 고난과 핍박과 환난이 있는 것 같이 보여서 근심이 가득한 삶을 살아갈 것 같이 보이지만 그러나 우리 안에 하나님의 은혜가 있기에 항상 기뻐하며 살아가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음에 근심과 걱정과 염려가 있으면 마음을 넓게 가질 수 없습니다. 마음에 기쁨과 즐거움이 있을 때 다른 사람을 향해 마음을 넓게 가질 수 있습니다. 항상 기뻐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항상 기뻐하면 마음을 넓어집니다.
 
또한 나는 모든 것을 가진자 라는 자부심이 있어야 합니다. 10절 마지막 부분에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가진 것이 없으면 넓은 마음이 될 수 없습니다. 내가 가난하고 사는 게 힘들다고 생각하면 다른 사람을 도울 마음도 없고 다른 사람에 대해서 이해하고 싶지도 않고 마음이 늘 초조하고 불안합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가진 하나님이 내 아버지이시기에 나는 모든 것을 가진 사람이라고 믿는다면 마음을 넓게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무 것도 없는 사람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사람입니다. 천지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내 아버지이시기에 나는 모든 것을 가진 하나님의 자녀라는 믿음과 그런 마음이 필요합니다.
 
부요 의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에 가난 의식이 가득한 사람은 밴댕이 소갈머리(밴댕이 소갈딱지)가 됩니다.
 
마지막으로 입이 열리고 마음이 넓어져야 합니다. 11-13절까지를 보면
6:11 “고린도인들이여 너희를 향하여 우리의 입이 열리고 우리의 마음이 넓어졌으니”
6:12 “너희가 우리 안에서 좁아진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 심정에서 좁아진 것이니라”
6:13 “내가 자녀에게 말하듯 하노니 보답하는 것으로 너희도 마음을 넓히라”
 
입이 열리고는 숨김 없이 말하다. 는 뜻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거짓이 없이 진실한 마음으로 나의 입을 열어서 말한다는 의미로 거짓과 위선으로 가득한 말이 아닌 진심을 담은 사랑과 위로의 말을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입이 열려서 상처 주는 말과, 시험을 받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입이 열리면 사랑과 위로가 가득한 말과 격려와 축복의 말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성령은 우리의 입이 열려서 하나님의 언어로 말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언어는 축복과 위로와 희망과 격려와 칭찬의 언어입니다.
 
입이 열리고 마음이 넓어져야 합니다. 포용하는 마음과 이해하는 마음과 감싸주는 마음이 넓어진 마음입니다. 고린도 성도들을 향해서 바울 사도는 너희 마음이 좁아져서 서로 이해하지 못하고 싸우고 당파를 만들고 하지 말고 마음을 넓혀서 서로 이해하고 감싸주면서 서로 하나 되라고 격려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공동체입니다. 또한 교회는 세상을 향해서 마음을 넓혀서 주님의 사랑을 전하고 나누며 실천하는 곳입니다.
 
지금은 은혜 받을 때요 구원의 날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풍성하게 받아 누리고, 기도의 응답을 받고, 마음은 하늘 같이 넓어져서 모두를 축복하고, 위로하고 격려하고 나눔으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세상에 전하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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