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의 도는?(3월 3일 주일 오전 예배 설교)
고린도전서 1:18-31(신약 264)
 
바울 사도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이야기하면서 예수님께서 모든 인류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를 지신 것은 세상의 눈으로 볼 때는 어리석고 미련한 것이라고 말하면서 세상이 볼 때 미련하고 어리석은 것이 구원받은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선포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하는 것은 세상의 눈으로 볼 때 어리석고 미련한 것입니다. 일주일 일하고 일요일은 자기 시간을 갖고 쉬기도 하고, 취미 생활을 즐기기도 하고, 늦잠을 자기도 하고, 그러는 것이 자신을 위해서 좋은 것인데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일요일이 되면 아침에 출근하는 것처럼 일찍부터 준비를 하고 교회와 하루종일 예배를 드립니다.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리는 것만이 아니라 헌금을 합니다. 힘들게 벌었는데 왜 교회에 가서 헌금으로 드리는지 이해하기 어렵고 미련하고 어리석어 보입니다. 그뿐 아니라 헌신과 봉사라는 것을 합니다.
 
예배를 위한 봉사를 하고, 식사 당번을 하기도 하고, 교사를 하시고 하고, 성가대와 찬양팀에서 봉사하기도 합니다. 어떤 분들은 교회에 와서 청소를 하기도 합니다.
 
일요일에 푹 쉬고 월요일부터 일을 해야되는데 일요일이라고 안 하고 주일이라고 말하면서 주일 하루 종일 교회에서 보냅니다. 세상의 눈으로 보면 극성스러운 성도들은 새벽기도도 하고, 수요예배 금요 기도회도 하고 수시로 교회에 기도를 합니다.
 
신앙으로 살지 않으면 그리스도인들이 이렇게 하는 것이 미련하고 어리석은 것처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아니 그 시간에 자기 계발을 하고 쉬기도 하고 취미 생활을 즐기고 교회에 헌금할 돈으로 필요한 것 하나라도 구입하고 재테크를 하든지 하지 그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교회 다니는 성도들을 바라보면서 그렇게 생각할 수 있듯이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고난을 당하시고, 채찍에 맞으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은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는 일이고 바보 같은 일로 보일 수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오늘 본문을 통해서 바울이 복음을 전하던 시대의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선민이라고 말하는 유대인들도 그리고 당시 철학과 과학을 좋아하는 헬라인들도 예수님의 십자가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사순절을 보내면서 그리스도께서 친히 짊어지신 십자가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기를 원합니다.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지신 십자가의 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합니다. 오늘 사순절 세 번째 주일이 오늘 본문을 중심으로 해서 “십자가의 도는?” 이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1. 십자가의 도는?
바울은 복음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이야기하면서 오늘 우리가 봉독한 말씀의 앞 절인 17절에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베풀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고 말했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신 것은 세례를 베풀게 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오직 복음을 전하는 것을 목적으로 보내셨다고 말하면서 복음을 전함에 있어서 말의 지혜로 하지 않는데 말의 지혜로 하지 않는 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말의 지혜’에 해당하는 헬라어 ‘소피아 로구’는 ‘말의 명석함으로’라고 번역될 수 있습니다. 당시 고린도의 어떤 신자들은 인간의 지혜와 달변을 지나치게 높이 평가했습니다.
 
그들은 전형적인 헬라인으로서 수사학과 철학 연구에 지나칠 정도로 몰두했습니다. 복음을 전할 때 헬라 문화권에서는 말을 잘해서 복음을 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을 ‘말의 지혜’ 로 복음을 전하는 것은 자신이 받은 사명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당시 헬라 문화권에서 널리 퍼져 있던 말의 지혜가 아닌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도를 전한다고 하면서 자신이 전하는 십자가의 도는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18절을 보면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여기서 십자가의 도란 말의 의미는 십자가의 말씀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의 도를 헬라어로 하면 ‘호 로고스 호 투스타우루’인데 도에 해당하는 단어는 로고스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로고스는 일반적으로 말씀으로 해석을 합니다.
 
따라서 여기서 말하는 십자가의 도란 말의 의미는 십자가의 말씀이란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전하는 십자가의 말씀은 복음의 본질이자 핵심입니다. 따라서 바울은 내가 전하는 십자가의 도 즉 십자가의 말씀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멸망하는 자들이란 말은 십자가의 말씀을 미련한 것 이라고 생각해서 믿지 않으므로 결과적으로 멸망하게 되는 자들이란 말입니다. 복음을 믿고 구원받은 성도들과 반대개념으로 그들이 십자가의 말씀을 믿지 않는 것은 십자가 복음이 미련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우리를 구원한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고 예수님의 십자가 구원한다는 것은 당시의 철학적인 관점에서 보면 미련한 것이고 지식적인 측면에서 이해가 안 되는 것이기 때문에 믿지 못하고 그 결과 멸망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멸망 당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십자가의 도 즉 십자가의 말씀이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18절을 다시 보면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십자가의 도 즉 말씀을 들을 때 그게 말이되 십자가의 도를 믿는 건 미련한 거야 이렇게 생각하고 믿지 않는 자들은 멸망하게 되지만 십자가의 도에는 구원의 진리가 있음을 믿고 십자가를 믿는 성도들은 구원을 받습니다.
 
우리가 십자가의 도 즉 십자가의 말씀을 믿으므로 구원을 받는 것은 세상의 지혜와 철학과 지식으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십자가의 도로 구원을 받는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를 믿으므로 구원을 받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고 회개할 때 십자가의 보혈이 우리의 죄를 깨끗하게 씻어주십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되는 것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하나님의 능력으로 주어지는 은혜입니다.
 
십자가의 도가 구원받은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말하고 계속해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구원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9-21절까지를 보면
1:19 “기록된 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1:20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냐 선비가 어디 있느냐 이 세대에 변론가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신 것이 아니냐”
1:21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십자가의 도는 멸망 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고 구원 받는 우리들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말한 바울은 우리가 십자가의 말씀으로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은 세상의 지혜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구원하시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볼 때 전도는 미련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으세요. 라고 노방전도를 하거나 전도용품을 나누어주면서 전도하는 것이 세상 사람들에게는 미련하고 어리석은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전도의 미련한 것을 통해서 사람들을 구원으로 이끄십니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예수님을 전할 때 예수님에 대해 전해 들은 사람들이 성령의 감동을 받을 때 예수님이 구세주이신 것을 믿게 됩니다.
 
전도는 지혜로운 방법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받는다는 가장 기본적인 진리를 전하는 것 뿐 입니다. 이것은 어리석은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예수님을 믿으므로 구원을 받는다고 전하는 전도가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 시켜서 교회에 나와서 예수님을 믿게 될 때 전도라는 미련한 방법이 영혼을 구원하는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성도는 누구든지 전도의 미련한 것을 해야 합니다. 전도의 미련한 것을 통해서 하나님은 영혼을 구원하시고,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게 하십니다.
 
2.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
십자가의 도, 십자가의 말씀에 대해서 말한 바울은 계속해서 우리가 전하는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십자가의 말씀은 멸망하는 자들에게 미련한 것이지만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말하고 이어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에 대해서 말하는데 바울은 그 시대 사람들이 십자가에 못 박하신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관점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표적을 구하는 유대인에게는 꺼리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22-23절을 보면
1:22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1:23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표적’ 은 구체적으로 눈으로 볼 수 있는 기이한 현상을 의미하는데 유대인들은 종종 예수님께 찾아와 표적을 구했습니다. 그들은 항상 증거를 요구했고 눈으로 볼 수 있는 구체적인 표적을 보여달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을 생각할 때에도 역사 속에 표적과 큰 능력과 기사로 자신을 나타내시는 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시라면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표적을 보여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무기력하게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유대인들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믿을 수 없었습니다.
 
또한 예수님을 죽게 만든 것이 유대인들이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지 않는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십자가가 거리끼는 것 즉 그들이 꺼리는 것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같이 달린 한 강도처럼 십자가에서 내려와서 유대인을 로마로부터 해방시켜 주셨다면 믿겠지만 무기력하게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님은 표적을 구하는 유대인들에게는 꺼리는 것이고 자신들이 죽게 했다는 죄책감도 있어서 꺼리는 것입니다.
 
지혜를 구하는 헬라인에게는 미련한 것입니다. 22-23절을 다시 보면
1:22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1:23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헬라인들은 이성적인 증거를 요구했습니다. 그들은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 가장 큰 이상은 지혜 곧 철학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지혜가 때로는 무의미한 궤변에 빠지기도 했음에도 불구하고 지적인 요구에 만족을 주지 못하는 것들을 무시했기 때문에 복음이 들어갈 자리가 없었습니다.
 
당시의 이방인들을 대표하는 헬라인들과 로마인들은 십자가의 형벌을 가장 비천한 죄인들이나 받는 것으로 인식했기 때문에, 십자가와 구세주는 전혀 상관없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헬라인들의 관점에 비추어 보면 하나님의 아들이 가장 비천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는데 그분을 그리스도라고 말하고 구세주라고 말하고, 십자가의 보혈로 우리의 죄가 씻음을 받는다는 것을 이성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는 것은 미련한 것이고 어리석은 것입니다.
 
그러나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고 지혜입니다. 24절을 보면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이 구절을 현대어 성경으로 보면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가리지 않고 구원의 자리에 부르신 사람들의 눈을 열어 주셔서 그리스도야말로 그들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크신 능력이요 지혜임을 알게 하셨습니다.”
 
여기서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란 구원의 자리에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란 의미로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가리지 않고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예수님을 믿게 되고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의지하게 된 모든 성도들에게 예수님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능력이고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우리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믿는 것은 어리석고 꺼림직한 일이 아니라 우리의 영혼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이 있고, 또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믿는 것은 세상 그 무엇으로도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로 예수님을 믿고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어 구원에 이르게 되었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 성도입니다.
 
3. 주 안에서 자랑하라
자신이 아무리 지혜롭다고 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말하면서 우리가 자랑하려면 오직 주님 안에서만 자랑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을 자랑하고 드러내길 좋아합니다. 곧 선거철이 다가오는데 선거철이 되면 나는 이런 사람이라고 자랑하는 출마자들이 길거리에서 우편물로 전화로 자신을 자랑하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울 사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세상에서 자랑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오직 주님 안에서 자랑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도로 구원을 받았기에 우리 자신은 자랑할 것이 아무 것도 없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일 뿐입니다.
 
바울 사도는 주안에서 자랑하라고 말하면서 하나님은 사람보다 지혜롭고 강하다고 말씀했습니다. 25절을 보면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지식을 추구하고 철학을 좋아하는 헬라인들은 자신들이 지혜롭다고 생각하고 자신들이 지식에 있어 뛰어나다고 생각하는데 바울은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너희보다 지혜롭다고 말합니다. 인간의 지혜가 아무리 뛰어난다 한들 하나님과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인간의 지혜보다 우월하다고 한 것은 인간의 지혜란 하나님에게 있어 보잘 것 없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공부를 많이 하고 지적인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 것도 아니고 자랑할 것도 없습니다.
 
유대인들은 능력을 자랑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선민으로 하나님 안에서 자신들은 강하다고 자랑을 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하나님의 약함이 너희의 강함보다 우월하다고 말합니다. 인간이 강해 봐야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 보잘 것 없는 존재일 뿐입니다.
 
하나님은 강하고 지혜롭다고 자랑하는 사람들을 부끄럽게 하십니다. 26-28절을 보면
1:26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1: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1:28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현대어 성경으로 보면
1:26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여러분 주위를 둘러보십시오. 그리스도의 부름을 받은 여러분 가운데 과연 유명한 사람이 있습니까? 권력을 잡은 사람이 있습니까? 부자가 있습니까?”
1:27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어리석고 아무 쓸모없어 보이는 여러분을 일부러 선택하셔서 이 세상에서 현명하고 훌륭한 자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을 부끄럽게 하셨습니다.”
1:28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업신여김을 받는 하찮은 사람들을 불러 쓸모 있게 하심으로써 이 세상에서 위대하다고 하는 자들을 아무 것도 아닌 자로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 부름을 받은 사람들이 스스로 지혜롭다고 자랑하는 사람들에 비해서 어릭석은 것처럼 보이고, 보잘 것 없는 사람들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은 이런 우리들을 부르셔서 세상에 가진 자들과 스스로 지혜롭다고 생각하고, 스스로 권세가 있다고 생각하는 교만한 사람들을 부끄럽게 만드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성도로서 세상의 가진 자와 지혜로운 자들과 교만한 자들을 부끄럽게 함으로 그들이 자랑하는 모든 것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무도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십니다. 29-31절까지를 보면
1:29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1:30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1:31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은 세상에 약한 사람들을 부르셔서 구원받은 성도가 되게 하시고 하나님의 은혜가 강하게 하셔서 세상의 강하고 지혜롭다고 하는 교만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는데 이렇게 하심으로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자랑하지 못하게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난 사람들로 예수님 안에 있기에 우리가 자랑할 것은 오직 주님 안에서만 자랑할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주안에서 자랑하라는 말은 주님만을 자랑하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자랑할 것은 날 위해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셔서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해주시고, 부활하심으로 구원에 이르게 하시고 영생을 주신 주님만을 자랑해야 합니다.
 
사순절을 보내면서 주님만을 자랑합시다. 나를 위해 모든 것을 내어주신 주님만을 자랑하며 살아갈 때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와 권능이 우리에게 임해서 세상의 지혜로운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고, 강한자들을 부끄럽게 하실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도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십자가의 능력을 의지해서 구원받은 성도로 하늘의 복을 누리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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