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으로 되나니(2월 25일 주일 오전 예배 설교)
로마서 4:9-25(신약 244)
 
독일의 한 종합병원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훌륭한 장비와 뛰어난 실력의 의사들이 있었음에도 병원의 매출은 계속해서 줄었습니다. 곧 병원이 파산하겠다는 생각에 경영진은 난관을 극복할 수 있는 묘안을 짜내고자 매일 회의를 진행했습니다.
 
회의 때마다 나온 지침을 하나씩 추가하다 보니 직원들이 숙지해야 할 매뉴얼이 200쪽이나 됐지만 그럼에도 매출은 조금도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매출이 떨어지는 가장 큰 원인은 ‘불친절’ 이었기 때문입니다. 친절은 매뉴얼로 만들 수 있는 지침이 아니라는 생각에 병원은 다음과 같은 간단한 규칙을 새로 만들었습니다.
1. 3m 앞에 고객이 있다면 미소 지을 것.
2. 고객이 1m 앞으로 다가오면 인사할 것.
3. 직원과 환자에게 똑같이 적용하고, 하루에 몇 번이든 반복할 것.
 
이 규칙을 시행한 지 6개월 만에 놀랍게도 매출이 40%나 증가했습니다. 200쪽의 매뉴얼도 올리지 못한 매출을 간단한 미소와 인사가 해냈습니다.
 
이 이야기를 보면서 유대인들이 율법을 어떻게 적용하는가를 만들어낸 규정들을 생각해 보게 됩니다. 유대인들이 처음에는 어떻게 하면 율법을 잘 지켜서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릴 수 있을까를 고민하면서 시작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크고 작은 조항들이 점점 늘어나면서 율법은 지키기 어려운 것이 되었고 지켜야 할 것이 너무 많아지니까 오히려 율법을 지키지 않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 것을 보게 됩니다.
 
어느 모임이나 모임의 규칙이란 것이 있습니다. 아무런 규칙도 없이 모임을 운영할 수 없기 때문에 나름대로 규칙을 만들어서 모임을 운영하기로 하는데 시간이 지나면 규정이 점점 늘어나게 되고 어느 순간이 되면 규정이 너무 많아서 회원들이 규정을 제대로 알지 못하게 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오늘 바울 사도가 로마 교회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서 바울은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리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신앙생활을 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바울은 아브라함을 예로 들어서 설명하면서 “믿음으로 되나니”라고 말합니다. 바울 사도를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규칙들이 아니라 믿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가장 핵심적인 내용이 있다면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과 모든 것이 엄격한 규정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되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오늘 사순절 두 번째 주일에 하나님께서 바울 사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믿음으로 되나니” 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바울 사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은
 
1. 진정한 복(행복)은?
바울 사도는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하면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으로부터 믿음을 인정받아서 의롭게 된 것은 언제부터인가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으로 우리에게 믿음이 본이 되시는 분인데 아브라함이 받은 복에 대해서 이야기 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아니지만 6-8절까지를 보면
4:6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복에 대하여 다윗이 말한 바”
4:7 “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사람들은 복이 있고”
4:8 “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인정을 해 주는 사람이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개역 개정을 비롯해서 대부분의 성경이 복이라고 번역을 했지만 이 단어는 행복한 의미가 담긴 단어입니다.
 
바울을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가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은 죄 문제가 해결되고 하나님께 의롭다고 인정을 받으면 가능한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행복하게 사는 비결은 의로워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진정한 복 즉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행복을 위해서는 의로운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우리가 의롭게 되는 것을 설명하면서 아브라함을 예로 들었는데 아브라함에게는 이 믿음이 의로 여겨졌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9절을 보면 “그런즉 이 복이 할례자에게냐 혹은 무할례자에게도냐 무릇 우리가 말하기를 아브라함에게는 그 믿음이 의로 여겨졌다 하노라” 여기서 복은 행복이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런 행복을 누리게 된 것은 할례 받아야 되는 것인가? 아니면 할례를 받지 않아도 되는 것인가?
 
바울 사도는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고 인정을 받은 것은 할례 받기 이전이라고 말합니다. 할례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만나고 나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할례에 대한 규례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이 할례를 받기 이전에 믿음으로 이미 의롭다고 인정을 받았고 할례를 그 이후에 한 것이기 때문에 할례 받는 것이 의롭다고 인정받는 것과는 관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바울 사도는 아브라함의 그 믿음이 의로 여겨졌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형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0-11절을 보면
4:10 “그런즉 그것이 어떻게 여겨졌느냐 할례시냐 무할례시냐 할례시가 아니요 무할례시니라”
4:11 “그가 할례의 표를 받은 것은 무할례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니 이는 무할례자로서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어 그들도 의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의로 여김을 받았다고 말씀하면서 아브라함이 할례시에 의롭다고 여겨졌느냐? 무할례시에 의롭다고 여겨졌느냐? 라고 질문하고 아브라함이 무할례시에 믿음으로 의롭다고 인정을 받았고 할례는 의롭다고 인정을 받은 표로 받은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결국은 할례를 받으므로 의롭다고 인정을 받은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전통적으로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을 말할 때 ‘할례 없는 자들’ 이라고 표현하면서 할례를 받은 것은 곧 하나님의 백성으로 의롭다고 인정을 받는 것처럼 여긴 것입니다.
 
바울은 그런 유대주의자들의 생각에 대해서 의롭게 되는 것은 그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리는 것은 하나님의 은총으로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으로 할례와는 무관하다고 말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것은 창세기 12장이고 창 15:6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할례를 행하시고 하신 것은 17장이고 17장에서 아브라함이 이스마엘과 같이 할례를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바울 사도를 통해서 형식적인 것이 믿음보다 앞서지 않는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할례를 받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침례를 받거나 성례전을 행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입니다.
 
형식이나 의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것이고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믿음이 중요한 것이고 또한 믿음을 따르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12절을 보면 “또한 할례자의 조상이 되었나니 곧 할례 받을 자에게뿐 아니라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무할례시에 가졌던 믿음의 자취를 따르는 자들에게도 그러하니라”
 
아브라함은 할례를 받기 이전에 믿음으로 의롭다고 인정을 받았고, 그 후에 할례의 언약을 받아서 할례를 받았기 때문에 무할례시에 믿음의 조상이 되었기 때문에 할례자들만이 아니라 무할례자들도 믿음을 따르면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아브라함의 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형식이나 의식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믿음을 따르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절대 믿음을 따르는 사람은 할례를 받지 않았다 해도 아브라함의 후손이 되는 것이고 할례를 받았다 할지라도 믿음이 없으면 아브라함의 후손의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시는 것은 믿음입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믿음이고 우리가 믿음을 따라서 믿음의 사람을 따라서 살아갈 때 하나님 안에서 진정한 복을 누리고 행복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2. 상속자가 되는 것은?
바울은 아브라함을 이야기 하면서 아브라함의 이 믿음이 의로 여겨졌다고 말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인정을 받은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이고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상속자가 되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 했습니다. 성경은 상속자가 되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물론 고대 시대의 개념이기도 하지만 하나님은 선민 이스라엘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 시대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 나라에서의 상속자가 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상속자가 되는 것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닙니다. 13-14절을 보면
4:13 “아브라함이나 그 후손에게 세상의 상속자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
4:14 “만일 율법에 속한 자들이 상속자이면 믿음은 헛것이 되고 약속은 파기되었느니라”
 
유대인들에게 상속자란 개념은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을 상속받는다는 개념이 가장 큽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점령할 때 땅 분배를 하게 하시면서 한번 분배받은 땅은 다른 지파에게 넘겨주지 않고 그 지파의 후손들이 상속받게 했습니다.
 
따라서 상속이란 개념이 이스라엘에게는 매우 중요한 개념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성도로서 영적 상속자로 하나님 나라의 복을 이 세상에서 누린다는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상속자가 되는 것은 율법으로 말미암아 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의로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가나안을 약속하셨고 그 약속은 즉 언약을 율법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믿음에 근거한 것이기 때문에 율법이 아닌 믿음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상속자가 되는 것이 율법에 근거한 것이라면 믿음은 헛것이고 하나님의 언약은 파기된 것이라고 바울은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므로 우리가 상속자가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상속자가 되는 것이 율법이 근거한 것이 아니라고 강조하면서 율법은 죄를 알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15절을 보면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하나니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법도 없느니라”
 
율법은 행위의 완전함을 요구하지만 인간은 완전해질 수 없는 죄인에 불과합니다. 율법은 불완전한 인간을 정죄하고 저주를 선포합니다. 따라서 인간 편에서 볼 때 율법은 구원을 위한 것이 아니라 죄 지은 것에 대해서 정죄하고 죄의 결과로 심판과 저주가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정죄의 직분이 있다고 말했는데 정죄의 직분은 모세가 하나님께 율법을 받아서 선포함으로 결과적으로는 ‘정죄의 직분’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것은 ‘율법의 저주’를 담당한 것입니다.
 
율법이 없으면 범법도 없다고 말하는데 이 말은 법이 없으면 죄도 없다는 의미입니다. 공동번역은 “법이 없으면 법을 어기는 일도 없게 됩니다. 법이 있으면 법을 어기게 되어 하나님의 진노를 사게 마련입니다.” 라고 번역했습니다.
 
죄인이라고 할 때 근거는 법입니다. 법이 없으면 죄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율법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이 원하지 않는 일을 하면 죄가 된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겁니다. 따라서 율법은 죄를 알게 해서 죄를 짓지 않게 하는데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상속자가 되는 것은 율법이 아닌 은혜에 속한 것입니다. 16절을 보면 “그러므로 상속자가 되는 그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 율법에 속한 자에게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도 그러하니 아브라함은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
 
우리가 상속자가 되는 것은 율법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은혜에 속한 것입니다. 은혜에 속한 것이란 말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상속자의 자격을 부여하셨다는 의미입니다. 원래는 상속자가 될 자격이 없었는데 하나님의 은혜로 상속자의 자격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그 은혜를 받기 위해서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에 속하는 것은 믿음으로 되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고 믿음이 없이는 상속자가 될 수 없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상속자가 되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3. 진정한 믿음
우리가 상속자가 되는 것은 믿음으로 되는 것이고 하나님의 은혜로 되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이어서 그렇다면 진정한 믿음은 어떤 것인가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진정한 믿음은 어떤 믿음일까요?
 
먼저 우리가 진정한 믿음으로 응답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를 알아야 하는데 하나님은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십니다. 17절을 보면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신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는 분이시고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분입니다. 여기서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신다는 것은 우리에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태 즉 무의 상태인데 하나님은 마치 거기에 무엇이 있는 것처럼 부르신다. 즉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면서 그것을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분이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아무 것도 없는 곳에서 세상을 만드셨습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실 때 우리가 아무것도 없는 존재이지만 우리에게 마치 무엇인가 있는 것처럼 인정하시고 부르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부르신 것은 우리의 눈으로는 볼 수 없지만 하나님은 이미 우리 앞에 일어날 일을 아시기 때문에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것입니다. 우리 눈에 지금 안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 앞에 준비하신 놀라운 일들이 있음을 믿습니다.
 
그런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아브라함은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는 믿음의 사람입니다. 18-19절을 보면
4:18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4:19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자녀가 없었지만 자녀가 있는 것처럼 상속자가 있는 것처럼 부르셔서 너와 네 후손에게 가나안을 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부르신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믿었습니다.
 
그리고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는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자녀가 없지만 하나님께서 네 후손이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다의 모래와 같을 것이란 말씀을 믿었습니다.
 
자기 몸이 늙고 사라가 늙어서 자녀를 낳을 수 없는 상태임에도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고 그 결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이삭을 주셨습니다. 실현 가능한 것은 믿음이 없는 사람도 믿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믿음은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하나님께서 바랄 수 없는 것을 현실이 되게 하신다고 믿는 것입니다.
 
가능한 것만 믿지 말고 불가능 하지만 하나님이 하시면 능히 이루실 것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갑시다.
막 9:23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빌 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결론적으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었습니다. 20-25절까지를 보면
4:20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4:21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4:22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4:23 “그에게 의로 여겨졌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4:24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4:25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게 됩니다. 우리가 믿음이 없으면 성경을 의심하게 되고, 하나님의 말씀을 불신하게 됩니다. 아브라함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이삭을 주셨고 이스라엘이 결국은 가나안을 점령했습니다. 아브라함을 통해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만 복을 주시고 행복한 삶을 살게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본을 보여줌으로 우리가 아브라함을 본받아서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서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의심하지 않고 믿고 아브라함과 같은 행복을 누리게 하시는 것입니다.
 
율법과 형식이 아닌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므로 약속하신 모든 복을 받아 누리게 되고 행복한 성도로 살아가는 참빛교회 모든 성도가 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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