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판결을 내린 빌라도(2024년 2월 18일 오후예배)
성 경 : 요한복음 19:1-16(신약 180)
 
예수님은 공생애 사역을 다 마치시고 이제 마지막 사역인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서 유월절을 일주일 앞두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만 해도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이번 유월절을 특별한 기회로 삼으실 것이란 기대를 했습니다.
 
제자들은 이번 예루살렘 입성에 대한 기대가 남달랐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셔서 무언가 특별한 일을 하실 것에 대한 기대가 컸고 그래서 주님의 나라가 임하거든 우리를 높은 자리에 앉게 해 달라고 요청하면서 누가 더 좋은 자리를 차지할 것인가에 대한 논쟁을 하기도 했습니다.
 
제자들이나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의 기대와 달리 예수님은 이번 예루살렘 입성이 모든 인류의 죄를 대신 짊어진 희생의 어린 양이 되셔서 죽으실 것을 아시고 그 일을 위해서 입성하셨습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하나님이 하실 일은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입성하셔서 입성하시기 전에 내가 예루살렘에서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과 장로들에 의해서 고난을 받고 죽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말씀 하신대로 예수님께서 붙잡혀서 산헤드린 공회에서 심문을 받으신 다음에 빌라도의 법정에 넘겨졌습니다.
 
오늘 말씀은 유대 지도자들에 의해서 로마에서 파견한 총독인 빌라도에게 넘겨지고 빌라도에 의해서 예수님이 십자가 사형 판결을 받으시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빌라도는 가능하면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게 하는 판결을 하고 싶지 않았지만 결국은 유대 지도자들과의 마찰을 피하기 위해서 예수님을 십자가 사형으로 선포하고 십자가에 달게 하기 위해서 내어 주었습니다.
 
빌라도는 로마에서 파송된 총독으로 유대인들이 로마 정부에 반대하는 폭동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할 책임과 유대 지도자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서 이스라엘에서 문제가 발생하지 않게 할 책임이 있기 때문에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라는 판결을 하게 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십자가 판결을 한 빌라도” 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1. 고난이 시작되었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잡히신 예수님은 안나스와 가야바를 거치는 동안 유대 지도자들에게 고난을 받으셨고 빌라도의 법정에 넘겨진 다음에 빌라도는 예수님을 풀어주려고 노력을 했지만 자신의 의지대로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빌라도는 일단 예수님을 죄인으로 취급하게 하면서 예수님께서 고난 당하시는 모습을 보게 하려고 했을 수 있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을 데려다가 채찍질했습니다. 1절을 보면 “이에 빌라도가 예수를 데려다가 채찍질하더라”
 
빌라도는 이렇게 예수님을 채찍질함으로써 사형을 대신하게 해서 예수님을 죽이려는 유대인들의 마음을 만족하게 하려고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빌라도는 총독의 권한으로 예수님을 무죄라고 판결하고 풀어줄 수 있지만 유대 지도자들의 강력한 항의가 있을 것이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채찍에 맞아서 고통당하는 모습을 보게 해서 유대인들의 마음을 움직여 보려고 했을 것입니다.
 
여기서 빌라도가 명한 채찍질은 로마 형벌로서 외국인들이나 종들에게 주는 형벌 중에 하나인데 채찍 형벌을 할 때에는 죄수를 벌거벗겨서 기둥 같은데 매고 채찍으로 마구 때렸습니다. 이렇게 매 맞는 자들이 그 자리에서 죽는 일도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사 53:5에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라고 예언했는데 그 예언의 말씀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빌라도는 정식으로 판결을 하기 전에 먼저 채찍질을 하게 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될 것에 대해서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채찍에 맞으셨을 뿐만 아니라 로마 군인들이 가시관을 머리에 씌웠습니다. 2절을 보면 “군인들이 가시나무로 관을 엮어 그의 머리에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히고”
 
고대 시대에 황제들이나 승리한 장군들은 승리의 면류관을 머리에 쓰고 위엄을 드러내려고 했습니다. 로마 군인들은 예수님을 넘겨준 유대 지도자들이 예수님은 자신이 유대인의 왕이라고 한다고 고발을 한 것이기 때문에 로마 군인들은 예수님의 머리에 고통의 가시관을 씌우면서 왕이 옷이라고 할 수 있는 자색 옷을 입힌 것입니다.
 
로마 군인들이 이렇게 한 것은 예수님이 유대인의 왕이라고 하기 때문에 왕으로 존중하기 위해서 한 것이 아니라. 왕들이 쓰는 면류관을 빗대어 가시로 만든 관을 머리에 씌운 것입니다.
 
벌거벗겨져서 채찍에 맞으심으로 온 몸이 갈기갈기 찢겨지신 예수님의 머리에 가시관을 씌움으로 가시가 머리를 찌름으로 피가 흐르고 고통을 느끼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채찍으로 때리고 가시관을 씌운 로마 군인들로부터 조롱을 당하셨습니다. 3절을 보면 “앞에 가서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 손으로 때리더라”
 
예수님을 채찍으로 때리고 가시관을 씌운 다음에 자색 옷을 입히고 예수님 앞에 와서는 왕에 대한 예의를 표하는 시늉을 하면서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면서 조롱하는 웃음을 웃으면서 손으로 예수님을 때리면서 희롱하고 조롱을 했습니다.
 
예수님은 온 인류의 왕으로 오셨지만 그들은 알지 못하기 때문에 예수님을 조롱하면서 손으로 때린 것입니다. 로마 군인들은 행색이 초라하면서 잡힐 때도 그리고 재판을 받을 때도 저항도 못하는 나약한 사람이라고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로마 군인들이 지금까지 본 왕들은 화려한 옷을 입었거나 권위를 나타내는 옷을 입고 위엄있게 말하고 행동했다면 그들의 눈이 비친 예수님은 왕의 모습이 아닌 종의 모습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이 생각하기에 예수님은 자신들보다 못한 존재라는 생각을 하면서 유대인의 왕이여 하면서 조롱하고 때리면서 희롱을 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며 왕이시지만 우리를 위해서 고난을 참으셨고 조롱 당하시고 희롱 당하시면서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채찍에 맞으시고 가시관을 쓰시고 조롱을 당하시는 상황에서 빌라도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처형이라는 판결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2. 놓아주려는 빌라도와 죽이려는 지도자들
빌라도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정보와 심문하면서 확인 한 여러 상황들을 고려해서 예수님을 재판에 넘긴 것은 죄가 있어서가 아니라 유대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시기하고 모함한 것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지 예수님을 풀어 주고 싶어했습니다.
 
빌라도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에게 아무 죄도 찾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4-6절을 보면
19:4 “빌라도가 다시 밖에 나가 말하되 보라 이 사람을 데리고 너희에게 나오나니 이는 내가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로라 하더라”
19:5 “이에 예수께서 가시관을 쓰고 자색 옷을 입고 나오시니 빌라도가 그들에게 말하되 보라 이 사람이로다 하매”
19:6 “대제사장들과 아랫사람들이 예수를 보고 소리 질러 이르되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하는지라 빌라도가 이르되 너희가 친히 데려다가 십자가에 못 박으라 나는 그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였노라”
 
빌라도는 고난 당하시는 예수님을 데리고 무리들 앞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보여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이 사람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했다. 예수님은 채찍에 맞고 가시관을 쓰신 채로 조롱의 상징으로 입힌 자색 옷을 입으신 채로 군중 앞에 끌려 나오신 것입니다.
 
빌라도는 봐라 이런 사람이 어떻게 로마를 상대로 반역을 도모하겠느냐? 이 사람의 모습이나 이 사람에 대한 여러 상황들을 고려해 볼 때 이 사람이 로마를 상대로 반란을 일으킬만한 아무런 증거도 없기 때문에 나는 아무 죄도 찾지 못했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자 대제사장들과 그들이 데리고 온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면서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쳤습니다. 빌라도는 그런 외치는 소리를 듣고 다시 이야기 합니다. 나는 이 사람에게서 아무런 죄도 찾지 못했느니 너희가 데려다가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유대인들은 우리 법대로 하면 이 사람은 사형을 당할 것인데 그 이유는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하므로 이단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를 죽일 수 있지만 우리의 종교재판이 아닌 로마의 형법에 의해서 처벌을 하게 하는 것이 맞다고 억지를 부렸습니다.
 
그러자 빌라도는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7-8절을 보면
19:7 “유대인들이 대답하되 우리에게 법이 있으니 그 법대로 하면 그가 당연히 죽을 것은 그가 자기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함이니이다.”
19:8 “빌라도가 이 말을 듣고 더욱 두려워하여”
 
빌라도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한다는 말을 듣고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빌라도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을 듣고 두려워하게 된 이유에 대해서 마27:19절에 “총독이 재판석에 앉았을 때에 그의 아내가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저 옳은 사람에게 아무 상관도 하지 마옵소서 오늘 꿈에 내가 그 사람으로 인하여 애를 많이 태웠나이다 하더라”
 
빌라도의 아내가 사람을 보내서 예수님에게 대해서(저 옳은 사람에게) 아무 상관도 하지 말라고 말하면서 꿈에 내가 그 사람으로 인해서 애를 많이 태웠다고 했습니다.
 
빌라도는 아내가 예수님에 대해서 아무 상관도 하지 말라는 말을 전해 들었는데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자 두려움을 느끼게 된 것입니다. 빌라도의 아내에 관한 이야기는 마태복음에서만 나옵니다.
 
전설에 의하면 빌라도의 아내의 이름은 ‘프로클라 클라우디아’(Procula Claudia)였는데, 유대교에 귀의 했을뿐 아니라(외경 니고데모 복음서 2장), 그리스와 에디오피아 교회에서는 그녀를 심지어 성자의 한 사람으로 숭배하기까지 했다고 전해졌습니다.
 
그 시대의 상황에 대해서 보면 A.D. 21년에 로마 상원 의회에는 어떤 지방 행정관도 그의 아내를 부임지까지 동반할 수 없다는 법이 제안되었다고 합니다.(Tarcitus, Annals III.33-35). 그러나 그 제안은 아직 입법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빌라도의 부인이 그와 함께 총독 관저에 머물러 있었던 것 같습니다.
 
빌라도는 그의 아내가 신앙심이 깊다는 것을 알았고 하나님은 유대인들의 신앙을 가진 빌라도의 아내에게 영적으로 감동을 받아서 예수님에 대해서 내릴 빌라도의 판결에 대해서 경고를 하신 것으로 볼 수 있고, 빌라도는 아내의 말을 듣고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빌라도는 다시 예수님을 놓아주려고 했습니다. 12절을 보면 “이러하므로 빌라도가 예수를 놓으려고 힘썼으나 유대인들이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을 놓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니이다 무릇 자기를 왕이라 하는 자는 가이사를 반역하는 것이니이다.”
 
빌라도는 아내로부터 예수님의 일에 관련하지 말라는 경고를 들었고 자신이 볼 때도 예수님에게 아무런 죄가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여러 번에 걸쳐서 예수님을 석방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유월절 시즌이라 많은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모여있는 상황인데 만약 자신이 유대 종교지도자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예수님에게 무죄 선고를 해서 일방적으로 풀어주게 되면 유대 종교지도자들이 사람들을 선동하면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 올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빌라도는 계속해서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풀어주겠다는 의사 표명을 한 것입니다.
 
자신이 일방적으로 풀어주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생각을 동의 해 주기를 바라면서 예수님에게 죄가 없다고 말하면서 풀어주려고 시도했을 것입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빌라도는 한 번 더 예수님을 놓아주겠다고 모인 사람들에게 이야기 했습니다. 그러자 유대 지도자들은 빌라도를 꼼짝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예수는 자신이 왕이라고 말하는 자인데 그것은 곧 황제에게 반역하는 것이 아니냐 그런 사람을 놓아준다면 빌라도 당신은 로마와 황제의 충신이 아니고 반역을 묵인하는 사람이라고 공격을 했습니다.
 
유대 지도자들은 빌라도가 더 이상 예수님을 풀어주려고는 시도를 하지 못하게 쐐기를 박은 것입니다.
 
3. 십자가 사형을 판결한 빌라도
빌라도는 유대 지도자들의 압력에 굴복했습니다. 아마도 이 장소가 예루살렘이 아니고 가이사랴 였다면 빌라도의 판결을 조금 달라질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장소가 유월절 축제가 열리는 예루살렘이고 유대인의 최고의 명절이기 때문에 빌라도는 결국에는 굴복을 당한 것입니다. 빌라도는 이런 결정을 하기 전에 예수님을 심문하면서
 
너를 놓아주거나 죽일 권한이 나에게 있다고 말했습니다. 9-10절을 보면
19:9 “다시 관정에 들어가서 예수께 말하되 너는 어디로부터냐 하되 예수께서 대답하여 주지 아니하시는지라”
19:10 “빌라도가 이르되 내게 말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를 놓을 권한도 있고 십자가에 못 박을 권한도 있는 줄 알지 못하느냐”
 
빌라도는 예수님을 풀어주기 위해서 노력을 했지만 자기 뜻대로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예수님을 심문하면서 너는 어디로부터냐 라고 물었는데 이 말은 너는 어디서 왔느냐는 질문으로 구체적으로 유대 지도자들이 예수님이 스스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한다는 것을 듣고 너는 어디에서 왔느냐 정말 하나님의 아들로 하늘에서부터 왔느냐 이렇게 질문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는 신이 인간처럼 살기도 하기 때문에 빌라도가 생각하기에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신과 같은 존재가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있어서 그런 질문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빌라도의 질문에 대해서 예수님이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자 빌라도는 화가 났을 수 있습니다. 자기를 놓아주려고 노력하는데 예수님은 자기 질문에 대답을 안 하시니까 내 질문에 대해서 대답을 안 하느냐고 말하면서 내가 너를 놓아줄 수도 있고 십자가에 못 박을 수도 있는 권한이 있다는 것을 모르느냐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하늘에서 주지 않았다면 너에게 그런 권한이 없을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나를 너에게 넘겨준 자의 죄는 더 크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1절을 보면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더라면 나를 해할 권한이 없었으리니 그러므로 나를 네게 넘겨 준 자의 죄는 더 크다 하시니라”
 
빌라도는 내가 너를 놓아주거나 죽이거나 할 권한이 있다고 말하자 예수님은 위에서 즉 하나님께서 너에게 그런 권한을 주신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권한을 올바르게 사용하지 않는 것은 죄라는 의미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네가 가진 권한으로 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판결을 한다면 그것은 무죄한 사람을 죽게 한 것이기 때문에 죄가 있다는 의미로 말씀하시고 그러나 나를 너에게 넘겨준 자의 죄는 훨씬 더 큰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 과정을 거쳐서 빌라도는 결국 유대 지도자들에게 굴복해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넘겨주었습니다. 13-16절까지를 보면
19:13 “빌라도가 이 말을 듣고 예수를 끌고 나가서 돌을 깐 뜰(히브리 말로 가바다)에 있는 재판석에 앉아 있더라”
19:14 “이 날은 유월절의 준비일이요 때는 제육시라 빌라도가 유대인들에게 이르되 보라 너희 왕이로다.”
19:15 “그들이 소리 지르되 없이 하소서 없이 하소서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빌라도가 이르되 내가 너희 왕을 십자가에 못 박으랴 대제사장들이 대답하되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 하니”
19:16 “이에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도록 그들에게 넘겨 주니라”
 
빌라도는 결국 유대 지도자들의 뜻대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판결을 하고 십자가에 죽이라고 내어주었습니다. 빌라도는 자신이 어쩔 수 없어서 십자가에 죽게 한 것이라고 말하면서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의 십자가에 대한 모든 것을 너희가 당하라고 말했습니다.
 
마 27:24 “빌라도가 아무 성과도 없이 도리어 민란이 나려는 것을 보고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이르되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
 
이렇게 해서 빌라도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게 하는 하는 결정을 하게 되었고 역사 속에서 빌라도는 예수님을 죽게 한 사람이라고 기록되고 전해졌습니다.
 
우리는 그 시대의 정치적 상황을 이해하면서 빌라도가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서도 그 모든 책임은 결정을 한 사람에게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잘못된 일을 했을 때 그것은 결국은 내 책임이 되는 것입니다. 빌라도의 그 결정이 지구상에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구원의 길을 열어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악한 것을 선으로 바꾸십니다. 빌라도의 결정이 우리를 구원하는 길이 된 것처럼 살아가면서 내 앞에 있는 어려운 일들이 은혜가 되고 복이 되는 것을 경험하며 살아가는 참빛 가족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https://online.fliphtml5.com/yuhpd/ppxa/index.html

댓글

Scroll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