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마음에 빛을 비추셨다.(2월 11일 주일 오전 예배 설교)
고린도후서 4:1-18(신약 289)
 
오늘은 예수님께서 산에 올가셔서 변형되심을 기념하는 주님 산상 변모주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에 대해서 요한 사도는 요 1:9절에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라고 예수님을 소개했습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것은 흑암의 세상에 빛으로 오셔서 사망과 흑암 속에 살아가는 인생들이 생명의 빛 안에 거하게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산에 오르사 변형되셨을 때의 기록을 보면 마 17:2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변화산에 오르신 예수님은 예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형되셨는데 핵심은 예수님이 해 같이 빛나고 옷도 빛과 같이 희어졌다는 것입니다. 변화산 사건을 통해서 예수님은 흑암의 시대에 빛으로 오신 참 빛 이라는 것을 제자들이 알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갑자기 충격적인 일을 만나게 되면 앞이 캄캄해진다는 말을 합니다. 앞이 캄캄해 진다는 것은 순간적으로 어둠에 사로잡힌 것 같은 상태가 된다는 말입니다.
 
우리 앞이 갑자기 캄캄하게 되는 것의 반대 개념은 우리 눈이 열리고 우리 앞에 빛이 비춰 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만난다는 것은 그리고 하나님의 은총을 누린다는 것은 앞이 보이지 않는 것 같은 절망적인 상황에서 앞이 보이고 길이 보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024년 주님 산상 변모 주일에 제자들이 얼굴이 해 같이 빛나고 옷이 빛과 같이 희어진 예수님을 만난 것 같이 우리가 주님을 만남으로 어둠 속에서 빛을 보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을 때 빛을 비추사 가야 할 길을 알게 하시는 주님의 은혜가 임하는 복된 날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주님 산상 변모 주일에 오늘 우리가 함께 봉독한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우리 마음에 빛을 비추셨다.” 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우리 마음에 빛이 비추어진다면 우리의 삶에는 어떤 일들이 일어날 것인가에 대해서 바울 사도가 고린도 교회에게 보낸 말씀을 통해서 발견할 수 있는데
 
1. 우리 마음이 빛이 비춰지면
우리 마음에 빛이 비추어질 때와 그렇지 않을 때의 차이점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지만 우리 마음에 참빛 되신 예수님과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우리 마음에 비추어지면 우리는
 
낙심하지 않습니다. 1-2절을 보면
4:1 “그러므로 우리가 이 직분을 받아 긍휼하심을 입은 대로 낙심하지 아니하고”
4:2 “이에 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버리고 속임으로 행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오직 진리를 나타냄으로 하나님 앞에서 각 사람의 양심에 대하여 스스로 추천하노라”
 
바울 사도는 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우리가 이 직분을 받았다고 말하는데 여기서 이 직분은 바울이 복음 전하는 사도로서의 일을 맡았다는 의미이고 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는 각자 주님께로부터 받은 직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성도로 교회를 섬기기 위해서 직분을 받았습니다.
 
바울은 우리가 이 직분을 받았는데 긍휼하심을 입은대로 낙심하지 않는다고 고백했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가 우리에게 임하기 때문에 우리가 맡은 직분을 감당 하는데 있어서 낙심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우리에게 맡겨진 직분을 감당하다보면 이런저런 상황들이 오기 때문에 교회에서 일을 하면서 또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일하면서 낙심할 만한 상황들이 올 수 있습니다. 여기서 낙심이란 말의 의미는 ‘용기를 잃다.’ 는 의미가 있습니다.
 
열심히 무엇인가를 하려고 하는데 용기를 잃게 되고 낙심하게 되는 상황이 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입은 성도는 낙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생명의 빛이 있고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가 있다는 확신을 가진 사람들은 낙심하지 않고 용기를 잃지 않고 나에게 주어진 직분을 잘 감당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낙심하게 만드는 것은 마귀의 속임수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않고 진리를 나타내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의지하고 말씀을 의지해서 직분을 감당하게 되면 낙심하거나 용기를 잃지 않게 됩니다. 마귀의 거짓과 속임수에 넘어가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받은대로 항상 주님이 주신 직분을 잘 감당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운하나님의 빛이 없는 사람들은 망하는 사람들이고 망하는 사람들에게 복음은 가리어졌습니다. 복음은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어진 것입니다. 3-4절을 보면
4:3 “만일 우리의 복음이 가리었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어진 것이라”
4:4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 바울의 전도를 듣거나 설교를 듣는 사람들 중에서는 바울이 알아듣지 못하는 이야기를 한다고 하거나 바울이 전하는 말씀이 너무 어려워서 특별한 사람들만 알아들을 수 있다고 바울에 대해서 비판적인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이야기 하는 사람들에게 바울 사도는 복음은 망하는 사람들에게는 가리어져 있어서 못 알아 듣는 것이라고 대답한 것입니다. 생명을 얻는 사람들에게는 복음의 광채가 비추어서 깨닫게 하지만 망하는 자들에게는 복음이 가리어져 있어서 알아듣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고 은혜를 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참 빛 되신 예수님을 영접하고 생명의 빛 안에 거하면 복음은 가리어져 있지 않고 빛이 복음에 비추어짐으로 생명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사탄은 세상의 신 즉 하나님이 아닌 다른 신을 믿는 사람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만들어서 복음을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은혜를 받지 못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구원받은 성도로 살아감으로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우리 안에 비치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의 신인 귀신과 마귀에게 마음을 빼앗긴 사람들은 복음을 깨닫지 못하고 복음이 가리어진 사람들은 망하는 자들입니다.
 
바울 사도는 계속해서 어두운데 빛이 비추었다. 고 선포했습니다. 5-6절을 보면
4:5 “우리는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
4:6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바울은 우리가 전하는 것은 우리 자신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우리의 구원의 주님 되심과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빛으로 오셔서 어둠의 세상에 빛으로 임하심을 증거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전도한다는 것은 우리를 나타내고 우리의 교회를 전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전하는 것입니다. 전도의 핵심은 예수님이 우리의 구원자가 되신다는 것과 예수님으로 인해서 우리가 흑암과 사망에서 생명과 빛의 나라로 옮겨진다는 것을 전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내가 이 직분 즉 복음을 전하는 직분을 받았는데 내가 전파하는 것은 우리가 하는 일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고 어두운데 빛이 비추라 말씀하셔서 우리에게 빛으로 인도하시는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이 우리에게 비추는 것을 전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2. 살리시는 하나님
우리 마음에 빛이 비추어지면 우리는 낙심하지 않게 되고, 우리에게 임한 복음의 빛이 생명으로 우리를 인도하며 흑암과 사망에서 생명과 빛으로 인도하심을 받았다고 말씀하면서 하나님이 예수님으로 인해서 우리에게 비춰주신 빛으로 인해서 하나님은 우리를 살리신다고 선포했습니다.
 
하나님은 빛으로 우리를 흑암에서 인도하여 내셨고 또한 모든 절망적인 상황에서 우리를 살리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를 살리시는 하나님은
 
망하지 않게 하십니다. 7-9절 까지를 보면
4:7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4:8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4:9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흑암에서 그리스도의 빛으로 인도하심을 받은 성도들은 하나님의 큰 능력으로 보호를 받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는 상황에서도 우리가 피할 길을 미리 준비해 주시고 답답하고 힘든 일을 만나도 그 모든 상황에서도 낙심하지 않도록 지켜주십니다.
 
이 구절을 현대어 성경으로 보면
4:7 “그러나 이 귀한 보물, 지금 우리들 속에 빛나고 있는 이 빛과 힘은 깨지기 쉬운 그릇, 곧 우리의 연약한 육체 속에 들어 있습니다. 우리 속에 있는 이 영광스러운 힘은 우리 자신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이라는 사실은 누가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4:8 “우리는 사면에서 닥치는 고통에 짓눌리지만 움츠러들지도 쓰러지지도 않습니다. 너무도 어처구니없는 일에 당황할 때도 있지만 절망하거나 자포자기하지 않습니다.”
4:9 “우리가 박해를 받을 때도 하나님께서는 결코 우리를 버리시지 않습니다. 우리는 얻어맞고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서 달려 나갑니다.”
 
우리는 연약한 질그릇 같은 존재이지만 우리 안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머물기 때문에 우리의 힘이 아닌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어떤 상황도 능히 이기게 하십니다.
 
우리가 사방으로 공격을 받아도 하나님은 이기게 하시고, 피할 길을 예비해 주셔서 그 모든 상황에서도 쓰러지지 않게 하시고, 답답하고 힘든 일들이 있어서 능히 이길 힘과 능력을 주시고 박해를 받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지켜주시는 은혜가 임하는 것입니다.
 
고전 10:13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생명의 빛 안에 거하는 성도는 낙심하거나 망하지 않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생명이 우리에게 나타납니다. 10-11절을 보면
4:11 “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4:12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역사하느니라”
 
이 구절을 현대어 성경으로 보면
4:10 우리 몸은 예수께서 그러하셨던 것처럼 부단히 죽음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 속에 살아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4:11 “그렇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섬기고 있기 때문에 끊임없는 위험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오히려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의 몸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힘을 나타내 보일 기회가 언제나 우리에게 주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흑암의 세상에 그리스도의 빛을 받아 생명을 얻은 성도들은 사탄이 다양한 방법으로 위협을 하고 있지만 우리가 당하는 위험으로 우리가 망하거나 넘어지지 않고 우리 안에 계신 부활하신 예수님의 능력으로 언제나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부활하신 예수님의 이름의 능력이 있고, 우리의 삶을 지켜주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있습니다. 우리 안에는 죽음이 아닌 생명이 있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이름의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 안에 예수님의 생명과 생명의 능력이 있기에 어떤 시련과 역경도 능히 이겨내고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 안에 예수님의 생명의 능력이 있을 뿐만아니라 예수님을 죽음에서 다시 살리사 부활하게 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도 다시 살리십니다. 12-14절을 보면
4:12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역사하느니라”
4:13 “기록된 바 내가 믿었으므로 말하였다 한 것 같이 우리가 같은 믿음의 마음을 가졌으니 우리도 믿었으므로 또한 말하노라”
4:14 “주 예수를 다시 살리신 이가 예수와 함께 우리도 다시 살리사 너희와 함께 그 앞에 서게 하실 줄을 아노라”
 
망하는 자들에게는 복음이 가리어져 있어서 말씀을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생명으로 나아오지 못하지만 우리는 복음의 빛 안에서 생명을 얻은 성도이기에 우리 안에는 예수님의 생명이 있고 부활의 능력이 머무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어서 복음이 가리어진 사람들은 사망이 역사하시지만 우리는 생명이 역사하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님을 다시 살리신 하나님께서 우리도 다시 살리사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시 사는 것 즉 부활의 은총을 입게 되는 것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으므로 부활하신 예수님과 함께 부활의 권능을 덧입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이 우리 마음에 비추어짐으로 인해서
 
3. 날로 새로워집니다.
생명의 빛이 우리 마음에 비추어짐으로 인해서 우리 안에 부활하신 주님의 은혜와 생명이 있고 우리도 주님과 함께 부활의 은총을 입게 된다고 선포한 바울 사도는 우리는 주님의 빛 안에서 날로 새로워진다고 선포했습니다. 우리가 날로 새로워 지는 것은
 
많은 사람의 감사로 말미암아 은혜가 더욱 넘칩니다. 15절을 보면 “이는 모든 것이 너희를 위함이니 많은 사람의 감사로 말미암아 은혜가 더하여 넘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이 구절을 현대어 성경으로 보면 “우리의 이러한 고난은 모두 여러분의 유익을 위한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그리스도에게 인도되는 사람이 많아 질수록 그분의 크신 은총에 감사하는 마음도 더해져서 주께서 더욱더 큰 영광을 받게 되실 것입니다.”
 
바울은 내가 고난 속에서도 복음을 전하고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해도 낙심하지 않고 복음을 전함으로 많은 사람들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구원받은 성도가 되었음을 감사하고, 영원한 생명을 얻음에 감사하게 될 때 많은 성도들의 감사가 많을수록 하나님의 은혜가 더욱 넘쳐서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의 감사가 아니라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으로 인해 구원 받았음에 감사할 때 더 큰 은혜가 감사하는 사람들에게 임하게 되고, 그 결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함께 마음을 모아 하나님께 진정한 감사를 드릴 때 우리의 감사가 하나님의 크신 은혜로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감사는 고난을 이기는 힘과 능력이 있습니다. 감사는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는 능력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함께 감사하는 것은 기적을 이룹니다.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이 마음을 모아 진정으로 감사할 때 이 나라 대한민국에 하나님의 은총이 임할 것입니다. 참빛 성도들이 마음을 모아 함께 감사를 드릴 때 교회와 성도들의 삶에 하나님 나라의 은총이 임할 것입니다.
 
계속해서 바울은 우리의 속 사람은 날로 새로워진다고 선포했습니다. 16절을 보면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우리에게 어떤 어려움과 시련과 고난과 박해가 온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낙심하지 않습니다. 고난과 시련과 박해로 인해서 우리의 겉 사람은 낡아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속 사람은 생명의 빛이 마음이 비추어지기 때문에 날로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어둠에 갇힌 사람들의 속 사람은 낡아지고 죽어 가지만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마음에 받은 성도들은 속 사람이 날마다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나이가 들면 누구나 겉 사람 즉 육체는 약해지고 병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이 그 마음에 있는 사람들은 성령으로 마음이 날마다 새로워집니다.
 
우리가 나이를 먹는 만큼 우리의 몸은 낡아집니다. 허리가 아프고 어깨가 아프고 여기저기가 아파서 병원에 가면 의사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사신 세월만큼 몸은 달아서 아픈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우리의 몸은 나이를 먹은 만큼 낡아집니다. 그러나 주님이 우리 안에 계시고 성령이 우리안에 계실 때 우리의 영을 새로워지고 우리의 영이 새로워지는 만큼 우리의 겉 사람도 새로워지고 새 힘을 얻게 됩니다.
 
바울 사도는 마지막으로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17-18절을 보면
4:17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4:18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바울은 우리가 이 세상에 겪는 환난은 경한 것 즉 약한 것이라고 말하면서 영원한 영광은 중한 것 즉 중요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환난이란 약한 것을 겪지만 그것을 견디어 낼 때 영원한 영광인 영생을 받게 되는데 이것은 중요한 것을 얻는 것입니다.
 
환난이 당시에는 힘들고 어려운 것처럼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면 경한 것 즉 약하고 가벼운 것입니다. 그러나 영생은 강하고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중한 것 즉 중요한 것인 영생을 얻었습니다.
 
바울 사도는 결론적으로 우리의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영원한 것이 아니고 잠깐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한 것이라고 선포했습니다. 여기서 주목한다는 말은 ‘소망하다.’는 뜻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소망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고 보이지 않는 것인데 보이는 것은 잠깐이고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한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눈에 보기 좋은 것을 따라가면 그것은 잠깐이면 없어지는 것이지만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고, 영원한 생명을 소망하며 살아가면 그것은 우리가 영원히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볼 수 없고, 예수님을 볼 수 없고, 성령님을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삼위일체 하나님은 창세전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영원히 계십니다. 지금 눈에 보이는 것을 따르기 보다는 우리 안에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이 비추어짐으로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 나라와 영원한 생명을 소망하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생명의 빛을 마음에 받고 살아감으로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망하지 않고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않고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않는 삶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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