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2월 4일 주일 오전 예배 설교)
시편 147:1-20(구약 908)
 
2024년 1월의 시간도 세월의 강물에 흘러갔고 2월이 시작되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늘 불안과 염려와 두려움이 있게 마련입니다. 소설가 알랭드 보통은 그의 저서 ‘불안’에서 ‘인생은 하나의 불안을 또 다른 불안으로 대체해 가는 과정이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불안을 느끼며 살아간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아무런 걱정도 없고 염려할 것도 없이 마음이 늘 평안하다면 건강하게 장수하게 될 것 같지만 적당한 걱정과 적당한 염려와 불안은 오히려 자신을 강하게 하는 힘이 되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아무런 걱정도 없이 살아가게 하시지 않고 이런저런 일들로 염려하고 걱정하면서 기도하게 하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모든 일들은 기도하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편 147편은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서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고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한 뒤에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인은 우리가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서 이렇게 아름다운 성과 성전을 다시 세울 수 있었던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오늘 시인은 하나님께서 바벨론에서 돌아와서 성전을 재건하게 하신 감격을 노래하면서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시는 은혜를 누리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사람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고난의 시간이 있다는 것은 고난 뒤에 있을 하나님의 은혜가 있다는 싸인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성도로 살아갈 때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복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2024년 2월 첫주에 우리가 함께 봉독한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 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오늘 말씀 안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1. 찬송 받으시기 합당하신 하나님
이 시를 지은 배경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오는 상황이라고 가정한다면 이 찬양을 부르는 사람들은 하나님은 우리의 찬송을 받으시기 합당하신 분이라고 노래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1절을 보면 “할렐루야 우리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이 선함이여 찬송하는 일이 아름답고 마땅하도다.”
 
1절은 이렇게 번역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를 찬양하라. 그는 선하시기 때문이다. 우리 하나님을 노래하라. 그는 사랑이 많은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를 찬양하는 노래는 아름답도다.”
 
마땅하도다. 라는 단어는 아름답다는 의미와 적합하다는 의미가 함께 포함된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아름답고라는 단어는 “즐거운, 사랑스러운, 아름다운, 노래하는” 이런 의미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시인은 하나님은 우리의 찬양을 받으시기 합당하신 분이라고 노래하면서 우리의 찬양을 받으시기 합당하신 하나님은 사랑이 많으신 분이시고, 우리를 위해서 선을 행하시는 분이라고 노래한 것입니다. 바벨론 포로 생활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은 이런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70년이란 긴 세월 포로로 살았기 때문에 못 벗어 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하신 것을 생각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위해서 아름다운 일을 하신 분이기에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마땅하고 당연한 일이라고 노래를 부른 것입니다.
 
우리가 찬양하는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서 끊임없는 사랑을 보여주시고 언제나 선하고 좋은 것으로 채워주시는 분이십니다. 시인은 하나님은 찬양받으시기 합당하신 분이라고 노래하면서
 
하나님은 예루살렘을 회복하셨다고 노래했습니다. 2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우시며 이스라엘의 흩어진 자들을 모으시며” 바벨론 포로가 되어 끌려갈 때 예루살렘은 폐허가 되었습니다.
 
무너지고 불타서 황폐한 성읍이 되었습니다. 느헤미야 1:3절을 보면 “그들이 내게 이르되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자들이 그 지방 거기에서 큰 환난을 당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 성은 허물어지고 성문들은 불탔다 하는지라”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이렇게 황폐한 성읍이 된 예루살렘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감으로 인해서 다시 세워지게 되었다고 노래한 것입니다. 예루살렘을 다시 세운 것은 돌아온 유대인들이지만 실제로는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것이라고 노래한 것입니다.
 
바벨론 포로 생활을 끝내고 돌아온 유대인들은 눈물과 감사로 예루살렘을 다시 세우고 성전을 다시 건축했습니다. 이런 감격의 상황에서 이 일을 하신 분이 하나님이시라고 노래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흩어진 유대인들이 돌아오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바벨론으로만 끌려간 것이 아닙니다. 앗수르에 의해 북왕국 이스라엘이 멸망했기 때문에 북 이스라엘에 속한 지파들이 흩어졌습니다.
 
이렇게 흩어진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 사방에서 다시 돌아오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망하고 무너지고 흩어진 유대인들이 다시 돌아오게 되는데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이렇게 선포하면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무너진 예루살렘을 다시 세워주셨듯이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을 다시 회복하게 하시고 흩어진 가족들이 다시 모여서 예배드리는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무너진 북한의 교회들도 다시 세워지게 될 날이 오게 될 것입니다.
 
찬양 받으시기 합당하신 하나님은 상처를 싸매주십니다. 3절을 보면 “상심한 자들을 고치시며 그들의 상처를 싸매시는도다.” 상심은 마음이 ‘깨뜨리다, 부수다, 깨뜨려 산산 조각내다.’는 의미입니다.
 
바벨론 포로로 끌려간 유대인들은 마음이 찢어지고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찢어지고 조각난 마음을 고쳐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포로 되었던 유대인들이 돌아옴으로 상심한 마음을 고쳐주셨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마음에 상처를 받고 마음이 찢어지듯 아픔을 겪는 상황들을 겪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상처 난 마음을 치료하여 주십니다. 하나님은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마음을 치료하시는 하나님은 우리의 상처들을 싸매주십니다. 여기서 사용된 상처라는 단어는 ‘상처, 고통, 아픔, 근심, 슬픔’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육체적인 고통과 아픔과 질병을 포함해서 앞에 언급된 상심한 마음을 포함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상심하게 되면 육체의 질병이 오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대부분의 질병은 마음의 영향이 큽니다. 마음이 상심한 채로 슬픔이 가득한 채로 마음이 아픈 채로 살아가면 몸은 병들게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먼저 상심한 마음을 고쳐주시고, 그리고 우리의 상처를 싸매주심으로 치료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오늘 이 시간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우리의 마음을 고쳐주시고, 우리의 육체의 질병을 싸매주시고 부활하신 능력으로 고쳐주십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이름으로 마음과 육체의 질병이 치유되기를 축원합니다.
 
우리의 찬양을 받으시기 합당하신 하나님은 위대하시고 지혜가 무궁하십니다. 4-5절을 보면
147:4 “그가 별들의 수효를 세시고 그것들을 다 이름대로 부르시는도다.”
147:5 “우리 주는 위대하시며 능력이 많으시며 그의 지혜가 무궁하시도다.”
 
우리의 찬양을 받으시기 합당하신 하나님은 별들의 수효를 세시고 그것들을 다 아시고 그 이름대로 부르시는 분으로 위대하시고 능력이 많으신 분이십니다.
 
유대인들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오게 될 때의 모습을 보면 시126:1-2절에
126:1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 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도다.”
126:2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그 때에 뭇 나라 가운데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다 하였도다.”
 
전혀 생각할 수도 없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오게 된 상황을 생각하면 꿈꾸는 것 같은 일이었고, 입에는 웃음이 가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은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기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하여 즉 유대인들을 위하여 큰일을 행하셨다고 노래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일을 하신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에게는 불가능한 일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위대하시고 능력이 많으신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지혜가 많으신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지혜가 많으실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지혜를 주시면 세상의 지혜로운 자들이 감당할 수 없습니다.
 
위대하시고 능력이 많으신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를 가지고 살아가는 삶의 자리에서 날마다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고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로 사업을 경영하고 직장에서 일하고, 학교생활을 잘 감당해서 하늘의 복을 누리는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2.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
하나님은 찬송을 받으시기 합당하신 분이라고 노래하고 하나님을 찬양할 이유들에 대해서 노래한 시인은 그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은 어떤 사람들인지에 대해서 노래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은
 
겸손한 사람입니다. 6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겸손한 자들은 붙드시고 악인들은 땅에 엎드러뜨리시는도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들을 붙들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여기서 겸손한 자란 말의 의미는 ‘가난한, 고통받는, 비천한, 겸손한, 유순한, 온유한’이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겸손한 자는 소외되고 약한 자라는 의미와 함께 낮아진 자세로 남을 섬기는 겸손한 태도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섬기는 자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성경은 교만한 자를 낮추시고 겸손한 자를 붙들어 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겸손한 신앙의 사람으로 주님 앞에 그리고 사람들 앞에 서야 합니다.
 
하나님은 교회와 성도가 세상을 향해 겸손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목소리를 높이기 보다 섬기고 나눔을 실천해야 하고, 우리를 나타내려고 하기보다는 보이지 않게 주님의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우리가 전도를 위해서 나누고 베푸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우리를 위해서 모든 것을 내어주시고 섬기신 것처럼 우리는 목적을 위한 나눔과 겸손이 아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겸손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세상에 나를 나타내고 교회를 나타내는 것보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사람이 됩시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10-11절을 보면
147:10 “여호와는 말의 힘이 세다 하여 기뻐하지 아니하시며 사람의 다리가 억세다 하여 기뻐하지 아니하시고”
147:11 “여호와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과 그의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들을 기뻐하시는도다.”
 
사람들은 자신이 얼마나 힘이 센 사람인지, 자신이 얼마나 용맹한 사람인지를 자랑하길 좋아합니다. 말의 힘이 세다는 것은 말을 잘 타는 용사라는 의미입니다. 나는 말을 잘 타고 전쟁도 잘하는 힘센 장군이라고 자랑하는 사람을 기뻐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다리가 억세다는 말은 튼튼한 다리를 자랑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고대 시대는 말을 타거나 튼튼한 다리를 가지고 있는 것을 자랑했는데 하나님은 그런 것을 기뻐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기의 힘을 자랑하고 자신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자랑하는 사람들보다는 앞에서 이야기 한 자신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고백하는 겸손한 사람을 기뻐하시고 또한 하나님을 진심으로 경외하는 사람을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경외한다는 것은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할 수 없기에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믿음으로 진심을 다해 경외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내가 할 수 있다는 생각을 내려놓고 진실함으로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예배하고 찬양하고 기도하는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은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바라는 사람입니다. 11절을 다시 보면 “여호와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과 그의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들을 기뻐하시는도다.”
 
여기서 사용된 인자라는 단어는 ‘헤세드’라는 단어를 사용하는데 ‘헤세드’는 ‘친절, 인자, 자비, 자애’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을 바라는 사람을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말을 다르게 표현하면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존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비와 인자를 기대하면서 하나님을 의존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을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오게 된 상황에서 유대인들은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깨달았고, 하나님의 자비와 인자하심으로 우리가 이렇게 해방되어 돌아오게 되었고 예루살렘을 다시 세우게 되었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바라는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또한 그들을 고난에서 가난에서 질병에서 건져주십니다.
 
하나님의 자비와 인자하심을 바라는 사람들의 간절한 기도를 하나님은 외면하지 않으시고 자비와 인자와 사랑으로 응답해 주십니다.
 
3. 하나님이 주시는 복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복에 대해서 노래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함으로 받게 되는 복은
 
비를 준비하십니다. 7-9절까지를 보면
147:7 “감사함으로 여호와께 노래하며 수금으로 하나님께 찬양할지어다.”
147:8 “그가 구름으로 하늘을 덮으시며 땅을 위하여 비를 준비하시며 산에 풀이 자라게 하시며”
147:9 “들짐승과 우는 까마귀 새끼에게 먹을 것을 주시는도다.”
 
하나님은 겸손한 사람들과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자비를 바라는 사람들을 위해서 하늘을 구름으로 덮으시고 땅을 위해서 비를 준비해 주셔서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내려주십니다.
 
하나님께서 비를 준비하셔서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내려주심으로 산에 풀들이 자라고 자란 풀들은 들짐승들이 먹고 그로 인해서 까마귀와 모든 짐승들이 먹이 사슬을 형성하고 모든 만물이 풍성함을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비가 오는 것은 자연에 많은 영향을 끼칩니다. 식물이 자라고 열매를 맺으므로 그것을 먹는 동물들이 살아가게 되고, 그것은 또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목축업을 하는 사람들에게 복이 되고 또한 메마른 땅에 비를 내려주심으로 사람들이 평안하게 살아갈 수 있는 기반이 형성되는 것입니다.
 
비를 준비하시는 하나님은 문빗장을 견고하게 하시고 자녀들에게 복을 주십니다. 12-13절을 보면
147:12 “예루살렘아 여호와를 찬송할지어다 시온아 네 하나님을 찬양할지어다.”
147:13 “그가 네 문빗장을 견고히 하시고 네 가운데에 있는 너의 자녀들에게 복을 주셨으며”
 
문빗장은 예루살렘을 재건하게 되면 성문을 견고하게 지켜주신다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이 바벨론에 의해 무너진 것처럼 무너지지 않도록 견고하게 지켜주심으로 성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문빗장을 견고하게 하심과 함께 자녀에게 복을 주십니다. 바벨론에서 돌아온 세대는 젊은 세대들도 있지만 나이든 세대가 더 많았을 것이고 예루살렘을 재건하고 살아가는 그들에게 너희 자녀들에게 복을 주어서 이 성에서 안전하게 살아가게 하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참빛 성도들의 문빗장을 견고하게 하시고, 자녀들에게 복을 주실 줄 믿습니다. 참빛 가정마다 견고한 가정이 되고, 자녀들이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는 가정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또한 아름다운 밀로 배부르게 하십니다. 14절을 보면 “네 경내를 평안하게 하시고 아름다운 밀로 너를 배불리시며” 13절에서 문빗장을 견고하게 하시고 자녀들에게 복을 주신다고 말씀하셨고 그 결과 네 경내를 평안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경내는 경계선이란 의미입니다. 다르게 표현하면 국경입니다. 하나님께서 네 나라를 평안하게 하신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참빛 성도들의 경내를 평안하게 하시고 이 나라 대한민국을 평안하게 지켜주시리라 믿습니다. 성도들은 이 나라의 평안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경내가 평안하게 되고 아름다운 밀로 배부르게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아름다운 밀이란 ‘가장 좋은 질의 밀’ 혹은 ‘통통한 밀’을 뜻하는 것으로 하나님은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을 든든한 성벽과 성문으로 보호하실 뿐 아니라 양질의 밀로 풍족히 그들을 먹이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설날을 맞이하는 참빛 성도들의 문빗장을 견고하게 하시고, 자녀들에게 복을 주시고, 성내를 평안하게 하시고 아름다운 밀 즉 풍성한 물질을 주시고 건강한 삶을 살아가는 복을 주실 줄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말씀으로 추위를 녹이십니다. 15-20절까지를 보면
147:15 “그의 명령을 땅에 보내시니 그의 말씀이 속히 달리는도다.”
147:16 “눈을 양털 같이 내리시며 서리를 재 같이 흩으시며”
147:17 “우박을 떡 부스러기 같이 뿌리시나니 누가 능히 그의 추위를 감당하리요 
147:18 ”그의 말씀을 보내사 그것들을 녹이시고 바람을 불게 하신즉 물이 흐르는도다.”
147:19 “그가 그의 말씀을 야곱에게 보이시며 그의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보이시는도다.”
147:20 “그는 어느 민족에게도 이와 같이 행하지 아니하셨나니 그들은 그의 법도를 알지 못하였도다. 할렐루야”
 
15-20절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추위를 녹이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살을 에는듯한 추운 상황에 처할 때가 있는데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인생의 추위를 녹여서 하나님의 따스함을 누리게 하십니다.
 
우리의 모든 시련의 추위를 이길 힘은 말씀에 있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읽고 묵상할 때 말씀이 삶의 얼음을 녹이고, 하나님의 따스함을 누리게 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참빛 성도가 되어서 이른 비와 늦은 비의 축복과 문빗장을 견고하사 자녀들에게 복을 주시고, 경내를 평안하게 하사 아름다운 밀로 베부르게 하시고 말씀으로 추위를 녹이고 하나님의 따뜻한 사랑을 누리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2월 4일 주일 오전 예배 설교)
시편 147:1-20(구약 908)
 
2024년 1월의 시간도 세월의 강물에 흘러갔고 2월이 시작되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늘 불안과 염려와 두려움이 있게 마련입니다. 소설가 알랭드 보통은 그의 저서 ‘불안’에서 ‘인생은 하나의 불안을 또 다른 불안으로 대체해 가는 과정이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불안을 느끼며 살아간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아무런 걱정도 없고 염려할 것도 없이 마음이 늘 평안하다면 건강하게 장수하게 될 것 같지만 적당한 걱정과 적당한 염려와 불안은 오히려 자신을 강하게 하는 힘이 되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아무런 걱정도 없이 살아가게 하시지 않고 이런저런 일들로 염려하고 걱정하면서 기도하게 하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모든 일들은 기도하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편 147편은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서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고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한 뒤에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인은 우리가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서 이렇게 아름다운 성과 성전을 다시 세울 수 있었던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오늘 시인은 하나님께서 바벨론에서 돌아와서 성전을 재건하게 하신 감격을 노래하면서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시는 은혜를 누리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사람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고난의 시간이 있다는 것은 고난 뒤에 있을 하나님의 은혜가 있다는 싸인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성도로 살아갈 때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복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2024년 2월 첫주에 우리가 함께 봉독한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 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오늘 말씀 안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1. 찬송 받으시기 합당하신 하나님
이 시를 지은 배경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오는 상황이라고 가정한다면 이 찬양을 부르는 사람들은 하나님은 우리의 찬송을 받으시기 합당하신 분이라고 노래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1절을 보면 “할렐루야 우리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이 선함이여 찬송하는 일이 아름답고 마땅하도다.”
 
1절은 이렇게 번역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를 찬양하라. 그는 선하시기 때문이다. 우리 하나님을 노래하라. 그는 사랑이 많은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를 찬양하는 노래는 아름답도다.”
 
마땅하도다. 라는 단어는 아름답다는 의미와 적합하다는 의미가 함께 포함된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아름답고라는 단어는 “즐거운, 사랑스러운, 아름다운, 노래하는” 이런 의미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시인은 하나님은 우리의 찬양을 받으시기 합당하신 분이라고 노래하면서 우리의 찬양을 받으시기 합당하신 하나님은 사랑이 많으신 분이시고, 우리를 위해서 선을 행하시는 분이라고 노래한 것입니다. 바벨론 포로 생활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은 이런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70년이란 긴 세월 포로로 살았기 때문에 못 벗어 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하신 것을 생각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위해서 아름다운 일을 하신 분이기에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마땅하고 당연한 일이라고 노래를 부른 것입니다.
 
우리가 찬양하는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서 끊임없는 사랑을 보여주시고 언제나 선하고 좋은 것으로 채워주시는 분이십니다. 시인은 하나님은 찬양받으시기 합당하신 분이라고 노래하면서
 
하나님은 예루살렘을 회복하셨다고 노래했습니다. 2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우시며 이스라엘의 흩어진 자들을 모으시며” 바벨론 포로가 되어 끌려갈 때 예루살렘은 폐허가 되었습니다.
 
무너지고 불타서 황폐한 성읍이 되었습니다. 느헤미야 1:3절을 보면 “그들이 내게 이르되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자들이 그 지방 거기에서 큰 환난을 당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 성은 허물어지고 성문들은 불탔다 하는지라”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이렇게 황폐한 성읍이 된 예루살렘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감으로 인해서 다시 세워지게 되었다고 노래한 것입니다. 예루살렘을 다시 세운 것은 돌아온 유대인들이지만 실제로는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것이라고 노래한 것입니다.
 
바벨론 포로 생활을 끝내고 돌아온 유대인들은 눈물과 감사로 예루살렘을 다시 세우고 성전을 다시 건축했습니다. 이런 감격의 상황에서 이 일을 하신 분이 하나님이시라고 노래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흩어진 유대인들이 돌아오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바벨론으로만 끌려간 것이 아닙니다. 앗수르에 의해 북왕국 이스라엘이 멸망했기 때문에 북 이스라엘에 속한 지파들이 흩어졌습니다.
 
이렇게 흩어진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 사방에서 다시 돌아오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망하고 무너지고 흩어진 유대인들이 다시 돌아오게 되는데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이렇게 선포하면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무너진 예루살렘을 다시 세워주셨듯이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을 다시 회복하게 하시고 흩어진 가족들이 다시 모여서 예배드리는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무너진 북한의 교회들도 다시 세워지게 될 날이 오게 될 것입니다.
 
찬양 받으시기 합당하신 하나님은 상처를 싸매주십니다. 3절을 보면 “상심한 자들을 고치시며 그들의 상처를 싸매시는도다.” 상심은 마음이 ‘깨뜨리다, 부수다, 깨뜨려 산산 조각내다.’는 의미입니다.
 
바벨론 포로로 끌려간 유대인들은 마음이 찢어지고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찢어지고 조각난 마음을 고쳐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포로 되었던 유대인들이 돌아옴으로 상심한 마음을 고쳐주셨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마음에 상처를 받고 마음이 찢어지듯 아픔을 겪는 상황들을 겪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상처 난 마음을 치료하여 주십니다. 하나님은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마음을 치료하시는 하나님은 우리의 상처들을 싸매주십니다. 여기서 사용된 상처라는 단어는 ‘상처, 고통, 아픔, 근심, 슬픔’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육체적인 고통과 아픔과 질병을 포함해서 앞에 언급된 상심한 마음을 포함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상심하게 되면 육체의 질병이 오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대부분의 질병은 마음의 영향이 큽니다. 마음이 상심한 채로 슬픔이 가득한 채로 마음이 아픈 채로 살아가면 몸은 병들게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먼저 상심한 마음을 고쳐주시고, 그리고 우리의 상처를 싸매주심으로 치료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오늘 이 시간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우리의 마음을 고쳐주시고, 우리의 육체의 질병을 싸매주시고 부활하신 능력으로 고쳐주십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이름으로 마음과 육체의 질병이 치유되기를 축원합니다.
 
우리의 찬양을 받으시기 합당하신 하나님은 위대하시고 지혜가 무궁하십니다. 4-5절을 보면
147:4 “그가 별들의 수효를 세시고 그것들을 다 이름대로 부르시는도다.”
147:5 “우리 주는 위대하시며 능력이 많으시며 그의 지혜가 무궁하시도다.”
 
우리의 찬양을 받으시기 합당하신 하나님은 별들의 수효를 세시고 그것들을 다 아시고 그 이름대로 부르시는 분으로 위대하시고 능력이 많으신 분이십니다.
 
유대인들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오게 될 때의 모습을 보면 시126:1-2절에
126:1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 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도다.”
126:2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그 때에 뭇 나라 가운데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다 하였도다.”
 
전혀 생각할 수도 없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오게 된 상황을 생각하면 꿈꾸는 것 같은 일이었고, 입에는 웃음이 가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은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기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하여 즉 유대인들을 위하여 큰일을 행하셨다고 노래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일을 하신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에게는 불가능한 일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위대하시고 능력이 많으신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지혜가 많으신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지혜가 많으실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지혜를 주시면 세상의 지혜로운 자들이 감당할 수 없습니다.
 
위대하시고 능력이 많으신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를 가지고 살아가는 삶의 자리에서 날마다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고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로 사업을 경영하고 직장에서 일하고, 학교생활을 잘 감당해서 하늘의 복을 누리는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2.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
하나님은 찬송을 받으시기 합당하신 분이라고 노래하고 하나님을 찬양할 이유들에 대해서 노래한 시인은 그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은 어떤 사람들인지에 대해서 노래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은
 
겸손한 사람입니다. 6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겸손한 자들은 붙드시고 악인들은 땅에 엎드러뜨리시는도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들을 붙들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여기서 겸손한 자란 말의 의미는 ‘가난한, 고통받는, 비천한, 겸손한, 유순한, 온유한’이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겸손한 자는 소외되고 약한 자라는 의미와 함께 낮아진 자세로 남을 섬기는 겸손한 태도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섬기는 자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성경은 교만한 자를 낮추시고 겸손한 자를 붙들어 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겸손한 신앙의 사람으로 주님 앞에 그리고 사람들 앞에 서야 합니다.
 
하나님은 교회와 성도가 세상을 향해 겸손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목소리를 높이기 보다 섬기고 나눔을 실천해야 하고, 우리를 나타내려고 하기보다는 보이지 않게 주님의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우리가 전도를 위해서 나누고 베푸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우리를 위해서 모든 것을 내어주시고 섬기신 것처럼 우리는 목적을 위한 나눔과 겸손이 아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겸손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세상에 나를 나타내고 교회를 나타내는 것보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사람이 됩시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10-11절을 보면
147:10 “여호와는 말의 힘이 세다 하여 기뻐하지 아니하시며 사람의 다리가 억세다 하여 기뻐하지 아니하시고”
147:11 “여호와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과 그의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들을 기뻐하시는도다.”
 
사람들은 자신이 얼마나 힘이 센 사람인지, 자신이 얼마나 용맹한 사람인지를 자랑하길 좋아합니다. 말의 힘이 세다는 것은 말을 잘 타는 용사라는 의미입니다. 나는 말을 잘 타고 전쟁도 잘하는 힘센 장군이라고 자랑하는 사람을 기뻐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다리가 억세다는 말은 튼튼한 다리를 자랑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고대 시대는 말을 타거나 튼튼한 다리를 가지고 있는 것을 자랑했는데 하나님은 그런 것을 기뻐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기의 힘을 자랑하고 자신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자랑하는 사람들보다는 앞에서 이야기 한 자신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고백하는 겸손한 사람을 기뻐하시고 또한 하나님을 진심으로 경외하는 사람을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경외한다는 것은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할 수 없기에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믿음으로 진심을 다해 경외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내가 할 수 있다는 생각을 내려놓고 진실함으로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예배하고 찬양하고 기도하는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은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바라는 사람입니다. 11절을 다시 보면 “여호와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과 그의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들을 기뻐하시는도다.”
 
여기서 사용된 인자라는 단어는 ‘헤세드’라는 단어를 사용하는데 ‘헤세드’는 ‘친절, 인자, 자비, 자애’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을 바라는 사람을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말을 다르게 표현하면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존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비와 인자를 기대하면서 하나님을 의존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을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오게 된 상황에서 유대인들은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깨달았고, 하나님의 자비와 인자하심으로 우리가 이렇게 해방되어 돌아오게 되었고 예루살렘을 다시 세우게 되었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바라는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또한 그들을 고난에서 가난에서 질병에서 건져주십니다.
 
하나님의 자비와 인자하심을 바라는 사람들의 간절한 기도를 하나님은 외면하지 않으시고 자비와 인자와 사랑으로 응답해 주십니다.
 
3. 하나님이 주시는 복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복에 대해서 노래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함으로 받게 되는 복은
 
비를 준비하십니다. 7-9절까지를 보면
147:7 “감사함으로 여호와께 노래하며 수금으로 하나님께 찬양할지어다.”
147:8 “그가 구름으로 하늘을 덮으시며 땅을 위하여 비를 준비하시며 산에 풀이 자라게 하시며”
147:9 “들짐승과 우는 까마귀 새끼에게 먹을 것을 주시는도다.”
 
하나님은 겸손한 사람들과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자비를 바라는 사람들을 위해서 하늘을 구름으로 덮으시고 땅을 위해서 비를 준비해 주셔서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내려주십니다.
 
하나님께서 비를 준비하셔서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내려주심으로 산에 풀들이 자라고 자란 풀들은 들짐승들이 먹고 그로 인해서 까마귀와 모든 짐승들이 먹이 사슬을 형성하고 모든 만물이 풍성함을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비가 오는 것은 자연에 많은 영향을 끼칩니다. 식물이 자라고 열매를 맺으므로 그것을 먹는 동물들이 살아가게 되고, 그것은 또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목축업을 하는 사람들에게 복이 되고 또한 메마른 땅에 비를 내려주심으로 사람들이 평안하게 살아갈 수 있는 기반이 형성되는 것입니다.
 
비를 준비하시는 하나님은 문빗장을 견고하게 하시고 자녀들에게 복을 주십니다. 12-13절을 보면
147:12 “예루살렘아 여호와를 찬송할지어다 시온아 네 하나님을 찬양할지어다.”
147:13 “그가 네 문빗장을 견고히 하시고 네 가운데에 있는 너의 자녀들에게 복을 주셨으며”
 
문빗장은 예루살렘을 재건하게 되면 성문을 견고하게 지켜주신다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이 바벨론에 의해 무너진 것처럼 무너지지 않도록 견고하게 지켜주심으로 성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문빗장을 견고하게 하심과 함께 자녀에게 복을 주십니다. 바벨론에서 돌아온 세대는 젊은 세대들도 있지만 나이든 세대가 더 많았을 것이고 예루살렘을 재건하고 살아가는 그들에게 너희 자녀들에게 복을 주어서 이 성에서 안전하게 살아가게 하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참빛 성도들의 문빗장을 견고하게 하시고, 자녀들에게 복을 주실 줄 믿습니다. 참빛 가정마다 견고한 가정이 되고, 자녀들이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는 가정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또한 아름다운 밀로 배부르게 하십니다. 14절을 보면 “네 경내를 평안하게 하시고 아름다운 밀로 너를 배불리시며” 13절에서 문빗장을 견고하게 하시고 자녀들에게 복을 주신다고 말씀하셨고 그 결과 네 경내를 평안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경내는 경계선이란 의미입니다. 다르게 표현하면 국경입니다. 하나님께서 네 나라를 평안하게 하신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참빛 성도들의 경내를 평안하게 하시고 이 나라 대한민국을 평안하게 지켜주시리라 믿습니다. 성도들은 이 나라의 평안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경내가 평안하게 되고 아름다운 밀로 배부르게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아름다운 밀이란 ‘가장 좋은 질의 밀’ 혹은 ‘통통한 밀’을 뜻하는 것으로 하나님은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을 든든한 성벽과 성문으로 보호하실 뿐 아니라 양질의 밀로 풍족히 그들을 먹이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설날을 맞이하는 참빛 성도들의 문빗장을 견고하게 하시고, 자녀들에게 복을 주시고, 성내를 평안하게 하시고 아름다운 밀 즉 풍성한 물질을 주시고 건강한 삶을 살아가는 복을 주실 줄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말씀으로 추위를 녹이십니다. 15-20절까지를 보면
147:15 “그의 명령을 땅에 보내시니 그의 말씀이 속히 달리는도다.”
147:16 “눈을 양털 같이 내리시며 서리를 재 같이 흩으시며”
147:17 “우박을 떡 부스러기 같이 뿌리시나니 누가 능히 그의 추위를 감당하리요 
147:18 ”그의 말씀을 보내사 그것들을 녹이시고 바람을 불게 하신즉 물이 흐르는도다.”
147:19 “그가 그의 말씀을 야곱에게 보이시며 그의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보이시는도다.”
147:20 “그는 어느 민족에게도 이와 같이 행하지 아니하셨나니 그들은 그의 법도를 알지 못하였도다. 할렐루야”
 
15-20절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추위를 녹이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살을 에는듯한 추운 상황에 처할 때가 있는데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인생의 추위를 녹여서 하나님의 따스함을 누리게 하십니다.
 
우리의 모든 시련의 추위를 이길 힘은 말씀에 있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읽고 묵상할 때 말씀이 삶의 얼음을 녹이고, 하나님의 따스함을 누리게 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참빛 성도가 되어서 이른 비와 늦은 비의 축복과 문빗장을 견고하사 자녀들에게 복을 주시고, 경내를 평안하게 하사 아름다운 밀로 베부르게 하시고 말씀으로 추위를 녹이고 하나님의 따뜻한 사랑을 누리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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