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1월 7일 주일 오전 예배 설교)
사도행전 19:1-7(신약 219)
 
지난 주에 마침 이 때에 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지난 목요일에 이 말씀이 실감 나는 상황을 경험했습니다. 평소처럼 아침에 문자 보내기와 이런저런 작업을 끝나고 산에 올라갔습니다.
 
항상 성경을 들으면서 올라가는데 정상에 올라갔는데 갑자기 멘붕 상태가 됐습니다. 정상에 산불 감시초소가 있는 초소로 올라가는 철로 된 사다리에 한 할아버지가 목을 메고 있는 것입니다.
 
평소에 제가 올라가는 코스는 험한 코스라 사람들이 거의 올라오지 않고 산 정상은 다른 코스로 사람들이 올라오는데 아무도 없는 상황에서 목을 목 할아버지를 발견한 순간 어떻게 해야 되는지 멘붕이 됐습니다.
 
그런데 평소에는 아무도 안 올라오던 길로 한 분이 올라오면서 소리를 치면서 빨리 저분을 살려야 한다고 해서 저와 그분이 함께 목을 매고 있는 분에게 가서 몸을 들어서 목을 조이던 밧줄이 더 이상 조이지 못하게 했는데 다행히 숨을 쉬는 것이었습니다.
 
그분은 당황한 저에게 빨리 112로 신고하라고 해서 둘이 할아버지가 처지지 않게 붙들고 112에 전화를 해서 지금 목숨을 끊으려고 하는 분을 발견했으니까 빨리 출동해 달라고 하고 저는 할아버지가 처지지 않게 붙들고 그분은 사다리로 올라가서 목을 맨 줄을 풀렀습니다.
 
다행히 호흡이 있고 정신은 있는데 몸은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분과 저는 할아버지를 땅에 눕히고 기도가 막히지 않고 목을 제치게 하고 말을 걸었더니 대답을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저와 그분이 2-3분만 늦게 발견했어도 할아버지는 숨을 거두셨을 상황이었습니다. 경찰과 소방대원들이 올라와서 조치를 취할 때까지 그 자리에서 함께 있다가 할아버지를 앉히고 경찰과 응급대원들이 조치를 취하는 것을 보고 산에서 내려왔습니다.
 
그날을 평상시보다 조금 일찍 산에 올라갔는데 만약 다른 날처럼 올라갔으면 저는 발견을 못했을 것이고, 저와 그분이 급하게 조치를 취하고 경찰이 오고 소방대원들이 온 다음에야 사람들이 올라왔는데 만약 그 시간에 저와 그분이 올라가지 않았다면 할아버지는 숨이 끊어졌을 것입니다.
 
그 일을 겪으면서 지난주에 제가 한 설교가 자꾸 생각이 났습니다. 마침 이 때에 하나님께서 나를 산에 올라가게 하셨고, 마침 이때에 또 다른 분을 올려보내셔서 할아버지를 살리셨습니다. 저 혼자였어도 그분 혼자였어도 할아버지를 살리는 것은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또 그분은 보훈 병원에서 근무하시는 분으로 심폐 소생술도 하실 수 있는 분이었다는 것입니다. 스스로 생을 마감하려고 하신 분이 왜 그런 선택을 하셨는지 모르지만 저와 그분을 통해서 한 생명이 목숨을 끊지 않게 하나님께서 마침 그때에 올라가신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현장에서 우리가 마침 이 때에 돕는 사람이 되게 하실 때도 있고 마침 이 때에 누군가 우리를 도와주게 하실 때도 있습니다. 금 년 한 해 동안 마침 이때에 하나님의 돕는 역사가 반드시 다양한 방법으로 임할 줄 믿습니다.
 
오늘은 주님 수세주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요단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심을 기념하는 주일입니다. 1월 6일은 주님이 세상에 나타나신 것을 기념하는 주현절입니다.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세례 받으신 것을 기념하는 주님 수세 주일이면서 신년주일인 오늘 사도 바울 에베소에서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고 물었고 그들에게 안수하매 그들이 성령을 받는 역사가 일어난 사건을 통해서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은
 
1.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1절을 보면 “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에 바울이 윗지방으로 다녀 에베소에 와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 아볼로는 에베소에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만나 복음에 대해 정확히 가르침을 받은 후 아가야 지방의 수도 고린도로 건너가 그곳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18:26, 27)
 
바울 사도의 사역에 대한 이야기가 8:23절 이후에 잠깐 멈추고 아볼로에 대해서 소개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바울 사도의 선교에 대해서 기록을 했습니다. 18:23에서 끊겼던 바울의 3차 전도 여행 이야기가 다시 이어지고 있는데 여기서 ‘윗지방’이란 일반적으로 갈라디아와 브루기아 땅을 말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에베소에 도착을 해서 어떤 제자들을 만났습니다. 에베소는 소아시아 서해안에 있는 도시로서 코레소스(Koressos) 산맥과 에게해 사이의 카이스터(Cayster)강 어귀에 위치하였습니다. 이는 항구도시로서 교통과 무역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으며 ‘아시아의 보고’로 불리울 만큼 번창했습니다.
 
그러나 각종 미신들과 이방 종교들과 사회적 병폐들이 만연해 있었습니다. 당시 에베소인들은 정치적, 경제적 중심지로서의 위치를 점점 잃어가는 것을 염려한 나머지 이전부터 섬겨오던 아데미 여신을 더욱 더 열심히 섬겼는데 이 여신의 신전은 고대 세계의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였습니다.
 
바울이 에베소에 도착했을 때 우상 숭배의 도시였음에도 어떤 제자들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아볼로가 에베소에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만나기 전 성경을 가르칠 때 그에게 영향을 받아 믿게 된 사람들일 것입니다.
 
바울이 제자들을 만났을 때 질문을 했습니다.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2절을 보면 “이르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이르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노라”
 
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어떤 제자들에게 말씀을 전하면서 무엇인가 아직 완전한 신앙이 아니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고 질문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것은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믿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성령님의 인도함을 받아서 예수님을 믿는 것과 성령을 받는 것은 다른 차원입니다.
 
바울은 누구보다 율법에 열심이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성령으로 충만을 받고 나서 그의 삶은 오직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삶으로 변화되었습니다. 바울 사도는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 성령을 받고 성령 충만을 받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을 때 성령이 도우시는 것과는 다른 차원으로 성령을 받았느냐고 물은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을 안 받으면 신앙 생활을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예수님을 믿은 다음에 성령 충만하지 않아도 신앙생활을 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령을 받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며 신앙 생활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분명히 차이가 있습니다. 성령 충만한 그리스도인은 순간순간 성령의 인도하심과 도우심을 경험하면서 살아가게 되고,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 이길 힘을 성령님이 주십니다.
 
바울은 그런 측면에서 성령을 받았느냐고 물었고 그들은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했다고 대답을 했습니다. 2절을 다시 보면 “이르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이르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노라”
 
에베소의 제자들은 아직 예수님에 대한 지식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사역에 대해서 듣지 못하고 잘 알지 못한 상태에서 요한의 침례를 받은 사람에게 전도를 받아서 제자가 되었다면 예수님이 주시는 성령의 세례를 아직 모를 수 있을 것입니다.
 
아볼로나 다른 어떤 사람에 의해서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고 할 때 아직 요한의 세례에 대한 지식만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령이 있음을 듣지도 못했다고 대답했을 것입니다.
 
그러자 바울은 그들에게 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고 질문을 했습니다. 3절을 보면 “바울이 이르되 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대답하되 요한의 세례니라”
 
바울은 그들이 아직 성령이 있다는 것을 들은 적도 없다고 대답을 하자 바울은 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고 질문을 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요한의 세례를 받았다고 대답을 했습니다.
 
에베소에 있던 제자들은 아볼로가 복음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 못할 때 아볼로 로부터 배웠거나 아니면 아직 그리스도에 대해서 제대로 듣지 못하면서 요한의 가르침을 따르는 어떤 그리스도인들에게 전도를 받아서 제자가 되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날도 성령님이 역사하신다고 믿지만 오늘날 성령은 역사하지 않는다고 가르치는 교회들도 있고 그렇게 믿는 성도들도 있습니다. 바울 사도를 만나서 복음을 듣게 된 에베소 제자들은
 
2. 믿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요한의 세례를 받았고 성령의 있음도 알지 못한 에베소 제자들은 바울의 가르침을 받고 예수님을 영접하게 됩니다. 그리고 바울을 통해서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바울은 에베소 제자들에게 요한의 세례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요한의 세례는 회개의 세례라는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4절을 보면 “바울이 이르되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 백성에게 말하되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하였으니 이는 곧 예수라 하거늘”
 
바울은 에베소 제자들에게 그리스도를 증거 하기 전에 먼저 그들이 요한의 세례를 받았다고 했고 성령을 알지 못한다고 하자 먼저 요한에 대해서 요한의 세례에 대해서 이야기 했습니다. 에베소 제자들이 요한의 세례를 받았는데 요한의 세례는 회개의 세례라는 것을 가르쳐 준 것입니다.
 
요한이 광야에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선포하면서 회개의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요한의 외침을 받고 많은 사람들이 요한에게 세례를 받았는데 그들은 먼저 회개하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바울은 요한의 세례를 회개의 세례라는 것을 말하면서 예수님을 영접하고 구원받은 성도는 가장 먼저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세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을 설명한 것입니다.
 
계속해서 바울은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면서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고 했음을 증거 했습니다. 4절을 다시 보면 “바울이 이르되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 백성에게 말하되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하였으니 이는 곧 예수라 하거늘”
 
복음서에 모두 세례 요한에 대해서 기록하면서 요한이 내 뒤에 오시는 이가 있다고 선포하면서 그를 믿으라고 했는데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라고 바울이 증거했습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의 길을 준비하고 예수님을 증거하기 위해서 오신 분입니다. 바울은 요한의 역할은 주님을 드러내는 것이기에 요한이 증거 한 그분은 예수님이고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시고 예수님 안에 생명이 있다는 것을 전한 것입니다.
 
바울 사도의 이야기를 듣던 에베소 제자들은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5절을 보면 “그들이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니”
 
그들은 요한의 세례를 받았지만 요한의 세례는 회개의 세례이고 요한이 증거 한대로 뒤에 오신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고 하자 그들은 예수님을 영접하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제는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세례를 받으므로 예수님을 믿는 성도로서 인정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에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은 제자들은
 
3. 성령을 받았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행2:38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라고 선포했습니다. 성령을 받기 위해서 전제조건으로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에베소 제자들에게도 같은 원리를 적용한 것입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나서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했습니다. 6절을 보면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그들은 이미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고 예수님을 영접하고 세례를 받았기 때문에 바울은 주저하지 않고 그들에게 안수했습니다. 성경에서 안수는 기름을 붓고 지도자를 세울 때 임직 안수를 했습니다.
 
예수님은 병자들에게 안수하셔서 병자를 고치시기도 했습니다. 안수는 여러 기능이 있는데 집회를 할 때 안수를 하는 것은 성령 충만을 받게 하기 위한 것과 질병이 고침을 받게 하는 것과 여러 가지 은사가 임하길 기도하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바울이 어떤 특별한 능력이 있기 때문에 안수하는 순간 바울에게 있는 영적인 능력으로 성령이 임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성령을 받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안수를 한다거나 서로 합심해서 기도해 주는 것은 돕는 것입니다. 바울이 안수했기 때문에 성령을 받은 것이 아니라 바울이 안수할 때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께서 제자들에게 임한 것입니다.
 
오순절 교회는 처음 성령이 충만하게 임하는 것을 성령 세례라고 표현합니다. 행 1:5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마 3:11 “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요한은 자신은 물로 세례를 주었지만 예수님은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라고 증거했고 예수님은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너희가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처음 성령으로 충만을 받고 성령의 감동을 받을 때 성령으로 세례를 받은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으로 세례를 받고 나면 계속해서 성령으로 충만해지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세례를 받고 성령 충만과 재 충만을 계속해서 받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성령이 임하시자 그들이 방언도 하고 예언도 했습니다. 6-7절을 보면
19:6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19:7 “모두 열두 사람쯤 되니라”
 
바울이 안수할 때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세례를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제자들이 성령으로 세례를 받자 예언도 하고 방언도 했습니다. 오순절 교회는 크게 두 그룹이 있는데 정통 오순절 운동과 신 오순절 운동이 있습니다.
 
정통 오순절에서는 성령으로 세례를 받은 첫 증거가 방언이라고 믿습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면 사도행전 2장의 말씀처럼 다른 언어 즉 방언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처음 방언을 했지만 계속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성령 세례의 증거로 방언을 하고 그 다음에 방언을 하지 않는 경우가 있고 대부분은 계속 방언을 하는데 이것은 은사 방언이라고 합니다.
 
신 오순절은 성령으로 세례를 받은 증거는 방언만 아니라 다른 은사와 스스로 감동을 느끼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것을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지 방언을 한다고 구원받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우리가 방언을 하게 되면 그것을 통변할 때 예언이 되는 것이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방언은 다른 은사로 연결되는 것입니다.
 
에베소 제자들은 성령을 받으매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고 성령으로 충만해졌습니다. 참빛 교회 모든 성도들이 2024년에도 성령으로 충만해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고 은사도 나타나고 기적도 나타나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축원합니다.
 
바울은 왜 성령에 대해서 강조했을까요? 우리가 성령을 받고 성령으로 충만해 짐으로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성령 충만을 받지 못해도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받고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면 천국에서 상이 큽니다.
 
그런데 우리가 성령을 강조하고 성령 충만을 받기 위해서 기도하는 것은 성령을 받으므로 권능 즉 능력을 받고 은사를 받고 성령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을 받아서 신앙생활을 더 잘 할 수 있고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자라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성령을 받은 성도는 성령의 열매를 맺어가면서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주님 오심을 기다리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충만을 받고 성령의 권능과 은사가 나타나고 성령의 도우심 속에 성령안에서 항상 감사하고 기뻐하고 기도하고 승리하는 복된 삶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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