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1월 14일 주일 오전 예배 설교)
시편 139:1-24(구약 904)
 
운전을 할 때 지도책을 가지고 다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어디를 처음 가려면 길을 모르기 때문에 지도책을 가지고 다니면서 길을 찾아가던 시절이 있었고, 그때는 운전을 하다가 창문을 열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길을 물어서 찾아가곤 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예전에도 저는 운전을 할 때 창문을 열고 지나가는 사람에게 길을 묻는 걸 잘 안 하는 성격이라 빨리 갈 수 있는 길도 늦게 가는 경우도 많이 있었습니다. 어떤 분들은 수시로 창문을 열어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길을 묻는 걸 보곤 했는데 저는 웬만하면 안 물어보고 다니는 스타입니다.
 
제가 그러다보니 같이 가는 분들이 창문을 열고 길을 묻곤 했습니다. 네비가 생겨서 얼마나 다행이지 모릅니다. 제가 운전을 하면서 길을 잘 안 물어보는 것은 제가 쓸데 없는 고집이 세서 그런 면도 있고 한편으로는 제가 가는 길을 하나님께서 인도하신다는 믿음이 강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제가 늦게 갈 때에는 늦게 가는 것이 더 낫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하고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가면 된다는 생각이 강했기 때문입니다. 종종 제가 그 시간에 도착하지 않은 것이 오히려 좋은 상황이었을 때가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요즘은 어디를 갈 때 습관적으로 네비에 갈 곳을 입력해서 네비가 이끄는 대로 가는데 어떤 때는 네비가 수신이 잘 안 되거나 해서 헤매게 될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아주 중요한 일일 때는 차에 있는 네비와 핸드폰의 티맵을 함께 틀고 가곤 합니다.
 
우리 인생도 네비가 있습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맡기고 인도하는 대로 가기만 하면 되는 삶의 네비가 있습니다. 운전을 할 때 네비 말을 잘 들으면 되듯 우리 인생의 네비가 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 말씀에 따라 살아가면 실패가 없고 실수가 없습니다.
 
종종 길치인 분들이 네비 말을 잘 안 듣고 자기가 가고 싶은 대로 간다는 말을 듣게 됩니다. 제가 아는 분들 중에도 지독한 길치들이 있는데 그분의 차를 타는 분들이 하는 말이 네비를 거의 안 틀고 다닌다고, 네비를 틀어도 네비가 가라는 대로 안 가고 자기가 가고 싶은대로 가면서 이 길을 내가 잘 아는데 네비가 가라는 대로 가기보다는 이 길로 가는 것이 더 좋다고 고집을 부른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지난 삶을 돌아보면서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하나님은 나를 영원히 복된 길로 인도하시는 분이라고 고백하고 노래했습니다. 다윗의 인생이 항상 형통하고 행복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사울이 피해 도망 다닐 때도 있었고 때론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이 자신을 돌로 치려고 하거나 배신하는 것을 경험하기도 하고, 아들인 압살롬이 반역을 하고 자신을 죽이려고 하기도 했습니다.
 
다윗의 인생이 모든 것이 행복하게 느낄 정도로 형통하고 평탄한 삶은 아니었습니다. 어려운 순간순간마다 다윗은 절망적인 생각을 하기보다는 하나님께서 나의 길은 인도하는 굳건한 믿음으로 어려움과 시련을 이겨냈습니다.
 
오늘 다윗의 노래를 중심으로 해서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 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오늘 다윗의 노래를 통해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1. 나를 잘 아시는 주님
다윗은 나의 하나님은 나의 모든 것을 잘 아시는 분이라고 노래했습니다. 하나님은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분입니다. 우리는 종종 내가 나를 잘 모른다고 생각할 때가 있곤 합니다.
 
내가 뭘 원하는 것인지? 내가 무엇을 하려고 하는 건지? 헷갈릴 때가 있습니다. 다른 분들은 안 그런지 모르겠는데 저는 종종 저 자신의 생각이나 무엇을 원하는 것인지 등등 저 자신에 대해서 잘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분이십니다. 다윗은 자신이 경험한 하나님은 자기 자신을 너무나 잘 아시는 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는 고백을 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잘 아십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잘 아시는 것은
 
나를 창조하(만드)셨습니다. 13-16절까지를 보면
139:13 “주께서 내 내장을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만드셨나이다.”
139:14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심히 기묘하심이라 주께서 하시는 일이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
139:15 “내가 은밀한 데서 지음을 받고 땅의 깊은 곳에서 기이하게 지음을 받은 때에 나의 형체가 주의 앞에 숨겨지지 못하였나이다.”
139:16 “내 형질이 이루어지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루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나를 잘 아시는 것은 나를 직접 만드셨기 때문이라고 노래했습니다. 하나님은 천지 만물을 창조하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를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부모님들을 통해서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하신 것인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머니의 뱃속에 잉태하게 하셨고 어머니 뱃속에서 우리의 내장을 지으셨고 우리의 몸을 만드셨고, 우리의 모든 것을 하나도 빼지 않고 다 만드셨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나를 만드신 것은 심히 기묘하시다고 고백하고 기이하게 지음을 받았다고 노래했습니다. 기묘하다는 말은 두렵고 경외롭다는 의미를 담고 있고 기이하다는 놀랍다. 뛰어나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것은 기묘하고 기이한 일입니다. 예전에 우리가 사용했던 개역 성경에서는 신묘 막측하다로 번역했습니다. 우리의 몸은 참으로 기묘합니다. 사람의 기술로는 불가능한 것이고 오직 창조주 하나님만이 우리의 이런 모습을 창조하실 수 있습니다.
 
나를 만드신 하나님은 나의 모든 것을 살펴보십니다. 1-3절을 보면
139:1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펴 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다.”
139:2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139:3 “나의 모든 길과 내가 눕는 것을 살펴 보셨으므로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하나님에게 잠시도 눈을 떼지 않고 지켜보십니다. 우리가 잠 잘 때에도 우리가 일어나서 하루하루를 살아갈 때 우리가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은 우리를 지켜보십니다.
 
현대인들은 이것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하루에도 수없이 많이 CCTV에 찍힙니다. 우리가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거의 모든 경로가 찍혀서 우리의 일거수 일투족이 파악이 가능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첨단기술보다 앞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지만 우리를 지켜보시는데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심지어 우리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우리가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를 나보다 더 잘 아십니다.
 
우리가 가는 길을 아시고, 우리가 잠자리에 눕는 것도 아시고 우리의 24시간을 잠시도 놓치지 않고 지켜보시기에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십니다. 하나님께 숨길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시고 우리에게 잠시도 눈을 떼지 않고 지켜 보호해 주십니다. 시121:3-8
 
121:3 “여호와께서 너를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121:4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121:5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 여호와께서 네 오른쪽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121:6 “낮의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아니하리로다.”
121:7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하게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121:8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하나님은 나의 모든 것을 아시고 또한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는 것이 없으십니다. 4절을 보면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이 말을 직역하면 ‘한마디의 말도 아직 내 혀에 없을 때에 조차, 오 ! 여호와여 당신은 모든 것을 아십니다’ 입니다. 우리가 말을 하기도 전에 하나님께서 내가 무슨 말을 할 것인지 아신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할 수 있지만 특별히 기도와 관련해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혀로 말을 하기도 전에 하나님께서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기도를 하려고 하는지를 아신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사 65:24 “그들이 부르기 전에 내가 응답하겠고 그들이 말을 마치기 전에 내가 들을 것이며”
마 6:8 “그러므로 그들을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우리가 기도하기도 전에 하나님은 다 아시고 우리의 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채우시기 위해서 준비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나보다 나를 잘 아시는 하나님은 오늘도 나를 위해서 나의 필요를 위해서 준비하고 기도하길 기다리십니다.
 
게속해서 다윗은
 
2.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은 나를 지으셨고, 나를 살펴보시고, 내가 하는 모든 말을 아신다고 노래한 다윗은 하나님의 손이 나를 인도하신다고 노래했습니다. 하나님의 손이 인도하신다는 것에 대해서
 
내게 안수하셨습니다. 라고 고백했습니다. 5절을 보면 “주께서 나의 앞뒤를 둘러싸시고 내게 안수하셨나이다.” 우리말 성경으로 보면 “주께서는 나를 앞뒤로 둘러싸 주시고 내게 손을 얹으셨습니다.” 라고 번역했습니다.
 
안수하셨다는 말은 손을 얹으셨다는 의미와 함께 우리를 손으로 붙잡아 주신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쉬운 번역본은 하나님의 손안에 우리가 있습니다. 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내가 혼자서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 것 같지만 다윗은 자신의 삶을 돌아보니까 매 순간마다 내가 하나님의 손안에 잡혀 있었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살아가는 세상에서 하나님은 언제나 나를 붙잡아 주시고 우리는 주님의 손안에 있습니다.
 
안수하셨다는 것은 우리에게 안수하셔서 질병을 고쳐주시고 성령의 권능을 주신다는 의미보다는 하나님의 손안에 내가 있습니다. 라는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더 원문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2024년 그리고 주님 만나는 날까지 우리는 주님 손안에 있음을 믿고 주님 손안에서 모든 것이 복되고 형통한 삶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손안에 있기 때문에 주 앞에서 피할 수 없습니다. 7-8절까지를 보면
139:7 “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139:8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스올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피하여 숨을 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위기의 순간에도 하나님은 어디에서 우리를 도우셔서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손안에서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음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요나와 같이 숨을 수 없습니다. 뿐만아니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닌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은 거기에서도 우리를 지켜주십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이런 믿으므로 살아가야 합니다. 어디를 가든지 무엇을 하든지 주님이 지금 여기 이곳에서 나를 지켜주시고 보호해 주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주님을 피할 수 없는 우리들을 하나님께서 언제나 오른손으로 붙들어 주십니다. 9-10절을 보면
139:9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주할지라도”
139:10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우리가 어디를 가든지 거기가 바다 끝이라도 하나님은 어디에서나 우리를 인도해 주시고 주님의 오른손으로 오른손은 권능의 손을 의미합니다. 권능의 오른손으로 붙잡아 주십니다.
 
주님이 내 손 잡아 주신다면 우리는 걱정할 필요가 없고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내가 혼자가 아니라 언제나 주님이 나를 붙잡아 주시고 나와 함께 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언제나 주님을 바라보며 주님의 손을 놓치지 않으면 됩니다. 때론 우리가 힘들고 지켜서 내 손을 잡으신 주님의 손을 놓칠 때가 있지만 염려하지 마세요. 주님은 우리의 손을 절대로 놓치 않으십니다.
 
우리를 붙잡아 주시는 하나님의 권능의 오른손을 의지하고 담대하게 믿음으로 나아가는 2024년이 되시기 바랍니다.
 
3. 영원한 길로 인도하십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나를 잘 아시고, 나를 인도하시고 붙잡아 주신다고 고백하고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신다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십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영원한 길로 인도하시는데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생각은 내게 보배롭다고 노래했습니다. 17-22절까지를 보면
139:17 “하나님이여 주의 생각이 내게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그 수가 어찌 그리 많은지요”
139:18 “내가 세려고 할지라도 그 수가 모래보다 많도소이다 내가 깰 때에도 여전히 주와 함께 있나이다.”
139:19 “하나님이여 주께서 반드시 악인을 죽이시리이다 피 흘리기를 즐기는 자들아 나를 떠날지어다.”
139:20 “그들이 주를 대하여 악하게 말하며 주의 원수들이 주의 이름으로 헛되이 맹세하나이다.”
139:21 “여호와여 내가 주를 미워하는 자들을 미워하지 아니하오며 주를 치러 일어나는 자들을 미워하지 아니하나이까”
139:22 “내가 그들을 심히 미워하니 그들은 나의 원수들이니이다.”
 
하나님께서 나를 생각하시는 것은 나에게 보배로운 것이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주의 생각이란 말은 이어지는 구절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나를 위해서 행하시는 모든 은혜를 말하는 것입니다.
 
나의 원수들에게 하는 모든 행위들과 나를 힘들게 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이 행하시는 모든 일들을 주의 생각이라고 묘사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다윗이 고난의 시간을 보낼 때 언제나 다윗 편에 서서 다윗을 도우신 하나님의 생각이 다윗에게 너무 보배롭고 귀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하신 모든 생각은 보배롭고 귀한 것입니다. 세상 어느 누구도 이해할 수 없고 알 수도 없지만 나를 생각하시는 하나님의 생각은 나에게 귀하고 보배로운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각이 보배로운 것은 하나님께서 내 마음과 뜻을 다 아시기 때문입니다. 23절을 보면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
 
나를 살피사라는 말은 면밀히 살펴보신다는 뜻입니다. 나의 모든 것을 면밀하게 살펴보시는 하나님은 내 마음을 아시고 내 생각을 하시고 내 뜻을 아십니다. 하나님은 나의 모든 것을 아시고 나에게 지금 필요한 것을 적절하게 채워주십니다.
 
다윗의 마지막 고백은 나를 면밀히 살펴보시는 주님께서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24절을 보면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
 
공동번역은 “죽음의 길 걷는지 살피시고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
 
하나님은 우리가 죽음의 길을 걷는지 살펴보시고 영원한 생명의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 다윗이 시편 23편에서 고백한 것과 같은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 23: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영원한 길로 인도하신다는 것은 생명의 길로 인도하신다는 의미이고, 절망과 좌절이 아닌 희망과 생명의 길로 인도하신다는 의미입니다. 2024년 하나님은 참빛 가족을 절망이 아닌 희망으로 슬픔이 아닌 기쁨으로 찬송의 길로 인도하시고 영원한 생명의 길로 인도하셔서 건강하고, 평안하고, 행복한 삶으로 인도하십니다.
 
영원한 길로 인도하시는 주님 안에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참빛 가족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https://online.fliphtml5.com/yuhpd/xzuq/

댓글

Scroll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