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교회 모습(11월 5일 주일 오전 예배 설교)

마태복음 23:1-12(신약 39)

지난 주에는 필리핀에 세운 참빛교회 35주년 기념교회 입당 예배를 위해서 단기선교팀이 필리핀을 다녀왔습니다. 필리핀에 머문 시간이 약 48시간 되는데 그중에 승합차를 타고 옛날 대관령을 넘는 것 같은 산속의 도로를 약 24시간 이동을 했습니다.

왕복 비행기 시간에 금요일 공항 가는 길이 막혀서 올림픽 대로에서 보낸 시간과 돌아와서 공항버스를 타고 집에 오는 시간까지 계산하면 이동하는데 약 13시간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대전에서 올라오신 이영숙 목사님은 대전에 인천공항까지 약 5시간 30분을 오셨다고 하십니다.

짧은 기간 동안 3교회를 돌아보고 함께 예배를 드리고 왔습니다. 힘든 여정이었는데 이번 단기 선교팀 모두 힘들고 다시는 단기선교 안가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 아니라 교회마다 은혜가 넘쳐서 힘들다는 생각을 다 잊고 다시 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단기선교였습니다.

이번에 박효구 장로님과 박세희 자매가 처음으로 단기선교에 함께 했는데 이 두 사람은 앞으로도 단기선교에 빠져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고, 이미영 집사님이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일을 잘 해주었고, 정희수 집사님은 학교일이 바쁜 중에도 사전 준비와 현장에서 필요한 일들을 잘 처리해 주었고, 성도님들의 기도로 인해서 은혜롭게 마칠 수 있었습니다.

함께 단기선교에 참여해 주신 단기선교팀과 기도해 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리고, 저를 대신해서 주일 예배를 인도해 주신 배병훈 목사님에게도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께서 진정한 교회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진정한 교회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어야 할까요? 우리는 본이 되는 교회를 생각할 때 먼저 모이는 숫자를 생각할 수 있고, 교회 건물을 생각하고, 모인 사람들의 수준을 생각하거나 여러 가지 진정한 교회 또는 본이 되는 참 교회에 대한 나름대로의 생각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진짜 교회가 어떤 곳이고 교회는 어떤 모습을 해야 하는 것인가에 대해서 예수님은 우리가 생각한 것과 다른 것을 제시하셨습니다. 진정한 교회 또는 참 교회는 어떤 곳일까요? 우리가 어떤 교회가 되어야 할까요?

오늘 말씀을 나누기 전에 이런 교회 되게 하소서 찬양을 선곡을 했습니다. 우리가 예배드리는 우리 교회는 어떤 교회일까요? 우리는 어떤 교회를 세워가야 할까요?

물론 세상적인 관점에서 성장하는 교회, 아름다운 예배당을 건축한 교회, 많은 나라에서 선교하는 교회, 나눔과 베품을 실천하는 교회, 어려운 이웃과 소외된 이웃을 돌아보는 교회, 은혜가 충만한 예배를 드리는 교회, 이런 교회가 되는 것이 우리의 소망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추구해야 할 교회에 대해서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3가지를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참빛 교회는 이런 교회가 되길 원합니다. 우리는 이런 교회의 모습을 가진 교회라고 저는 믿습니다.

오늘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진정한 교회의 모습”에 대해서 살펴보면서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진정한 교회의 모습은 어떤 모습을 해야 할까요?

  1. 모두 한 형제요 자매가 되는 것입니다.

교회는 교회 구성원이 모두 한 형제요 자매가 되는 곳입니다. 우리는 모두 한 아버지의 자녀들입니다. 모든 성도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고 섬깁니다. 그렇다면 교회 구성원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모두가 한 형제요 자매가 되는 것에 원칙입니다.

한 아버지에서 태어났지만 나는 너와 형제와 자매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한 아버지에게서 태어나면 당연히 형제와 자매가 되는 것이고 교회는 바로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는 성도들의 공동체이기 때문에 모두가 형제요 자매가 되는 것입니다.

8절을 보면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모두가 한 형제와 자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진정한 교회는 형제요 자매로 하나된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서열이 있는 공동체가 아닙니다. 1-2절을 보면

23:1 “이에 예수께서 무리와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3:2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예수님은 예수님 앞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당시 유대인들에게 말씀을 가르치는 사람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모세의 자리’란 모세의 율법을 가르치는 역할을 맡은 공식적인 율법 교사들이 앉아서 말씀을 가르치도록 돌로 만든 자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 당시 유대의 바리새인 또는 서기관들 중 가장 유력한 자가 회당에 마련된 바로 이 자리에 앉아서 율법을 해석해 주는 것이 관례였다고 합니다. 유대역사가 요세푸스에 의하면 유대인들의 일반적 관념으로는 ‘어떤 사람의 자리에 앉다’ 라는 것은 보통 ‘어떤 사람의 권위를 계승하다.’ 는 의미로 이해 되어졌다고 합니다.

따라서 율법 강론을 위해 이 자리에 앉았던 서기관들은 자신들이 모세의 모든 권위를 이어받은 공식적인 모세의 법적 계승자들이라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모세의 자리에 앉아서 회당과 지역 사회에서 모세를 계승한 지도자라고 하면서 사람들에게 인사받고 랍비라고 대접받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6-7절에을 보면

23:6 “잔치의 윗자리와 회당의 높은 자리와”

23:7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하느니라”

교회는 이런 모습이 아니라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는 형제와 자매 공동체라는 것입니다. 형제와 자매로서의 공동체인 교회는 함께 일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3절을 보면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그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그들이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며”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은 지도자라고 말하면서 사람들에게 대접받고 인정 받는 것을 좋아하면서 사람들에게는 말씀을 가르친다는 명분과 율법을 준수하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 하면서 자신들은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교회는 서로 형제자매이고 함께 합력하는 공동체라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교회가 교회답게 되기 위해서는 모두가 함께 일하는 신앙공동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누군가는 무거운 짐을 지듯 일을 하고, 어떤 사람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주님의 나라와 교회를 위해서 일하고 또한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행동하는 교회 공동체 행동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함께 일하는 공동체로 교회입니다.

교회는 서로에게 무거운 짐을 지워주지 말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4절을 보면 “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

여기서 ‘무거운 짐’이란 율법의 엄격성이나 막중한 의무라 할 수 있지만 그보다는 바리새인들의 자의적 율법 해석에 따른 각종 규범과 전통적인 계율들과 아주 사소한 것에 이르기까지 세분화 된 규칙과 예법 등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율법의 생활 규범을 613개 조항으로 세분화하여 백성들의 생활 전반에 적용토록 강요했습니다. 마치 운반하기 곤란할 정도의 무거운 나무단이나 곡식단처럼 성가시고 귀찮고 감당하기 어려운 규칙들을 만들어 그것들을 백성의 어깨에 지움으로써 이스라엘인들을 율법의 노예로 전락시키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서로에게 신앙을 짐으로 만들어서 지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율법적인 신앙이나 하기 힘든 일들을 하게 하는 것은 형제자매에게 할 일이 아닙니다. 신앙생활을 힘들게 만들지 말고 즐겁게 하나님을 섬기는 공동체로 교회가 세워져 가야 합니다.

  1. 교회의 중심은 하나님이십니다.

교회는 모두 형제와 자매로 이루어진 공동체라고 말씀하시고 이어서 교회는 하나님 중심이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하나 된 공동체입니다. 교회의 중심이 하나님이 아니라면 그것은 교회가 아닙니다.

교회는 사람이 중심이 아닙니다. 9절을 보면 “땅에 있는 자를 아버지라 하지 말라 너희의 아버지는 한 분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이시니라” 예수님께서 땅에 있는 자를 아버지라고 하지 말라는 말은 육신의 부모를 인정하지 않는 말이 아닙니다.

성경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땅에 있는 자를 아버지라고 하지 말라는 말에 대해서 아버지라는 말이 유대인에게 최고의 권위를 나타내는 말이었습니다.

특히 ‘땅의 아버지’라는 말은 그 시대 이전의 율법 선생, 또는 위대한 스승, 원로 교사, 어떤 학파의 우두머리, 장로 혹은 선지자들에게도 사용되는 일반적인 표현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런 사람들을 절대적으로 숭상하도록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지극히 높은 권위를 인정받고 싶어 아버지라 불리는 것을 기뻐하였고, 다른 사람에게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아첨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이런 표현들이 오늘날 이단들에게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많은 이단들이 자신들을 아버지라고 또는 어머니라고 숭배하라고 강요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사람을 신성시하는 곳이 아닙니다. 사람이 하나님 같은 자리에 서는 것은 교회의 본래의 모습이 아닙니다. 교회는 사람이 아닌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는 곳이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곳이고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교회에서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계속해서 우리 아버지는 한 분뿐이다. 라고 강조하셨습니다. 9절을 다시 보면 “땅에 있는 자를 아버지라 하지 말라 너희의 아버지는 한 분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이시니라”

예수님께서는 ‘땅의 아버지’를 ‘하늘의 아버지’와 대비 시켜 종교적인 의미에서 어떠한 사람의 영광과 권위도 하나님의 권위에 미칠 수 없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육신의 아버지 외에 우리의 “아버지”라고 불릴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으며 오직 하늘 아버지만이 그렇게 불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 이외에 그 어떤 존재도 우리의 아버지가 될 수 없습니다. 여기서 아버지는 성부로서의 아버지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디모데에게 바울이 아버지 같은 존재인 것은 신앙적인 아버지라는 의미로 신앙적인 아버지와 하늘 아버지와는 다른 차원입니다. 우리는 영적인 아버지 또는 신앙적인 아버지라고 존경하는 분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것도 안 된다고 하신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바리새인처럼 사람으로부터 찬양받으려고 하는 교만한 마음을 책망하신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이 사람에게 찬양받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아닙니다.

교회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습니다. 9-10절을 보면

23:9 “땅에 있는 자를 아버지라 하지 말라 너희의 아버지는 한 분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이시니라”

23:10 “또한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의 지도자는 한 분이시니 곧 그리스도시니라”

우리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과 그리스도이신 성자 하나님, 그리고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다음에 우리에게 오신 성령 하나님을 믿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성부 하나님 중심의 신앙이거나, 성자 예수님 중심의 신앙이거나, 성령 하나님 중심이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을 믿습니다.

  1. 교회는 섬김 공동체입니다.

교회는 형제자매이며 하나님을 섬기는 공동체이고 또한 서로 존중하면서 섬기는 공동체입니다. 예수님은 교회의 본질을 말씀하시면서 서로 섬기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교회에서 지도자라고 대접을 받으려고 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큰 자는 섬기자는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11절을 보면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여기서 큰 자는 스스로 지도자라고 생각하거나 존경을 받으려고 하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당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모세의 자리에서 앉아서 사람들의 섬김을 받으려고만 했습니다.

자신들은 스스로 큰 자로 생각하고 사람들이 자신들을 대접하고 섬겨야 한다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스스로 큰 자라고 생각하는 자들은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섬기는 자(디아코노스)라는 말은 타인의 유익만을 위해 성심껏 자발적으로 헌신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자신이 스스로 존경을 받고 인정을 받고 대접을 받고 섬김을 받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위해 자발적으로 헌신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의 인정을 받고 사람들이 존경하는 ‘큰 자’로서의 역할을 올바르게 감당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큰 자의 권위와 능력은 섬김과 봉사와 헌신과 겸손을 통해 드러나는 것입니다.

마 20: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섬기기 위해서 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도 우리를 섬기려고 오셨다면 예수님을 따라가는 우리들도 당연히 섬김의 본을 따라야 합니다. 교회는 서로를 섬기는 섬김 공동체입니다. 우리 참빛 교회도 서로를 진심으로 섬기는 공동체입니다.

예수님은 섬김과 함께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2절을 보면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교회의 진정한 모습은 스스로 낮은 자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친히 인간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오신 예수님은 스스로 낮아지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스스로 낮아지신 것처럼 우리도 스스로 낮아지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빌 2:5-11절까지를 보면

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2: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2: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2: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2: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2: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2: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스스로 높이는 자는 낮아지는 것이 성경의 법칙이고 스스로 낮아지는 자가 높아지는 것이 성경의 법칙입니다. 예수님께서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인 인간의 모습으로 오셨지만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의 모든 무릎을 예수님 이름에 꿇게 하셨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게 하셔서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낮아지는 자를 높이시는 분이십니다. 이것은 앞에서 이야기 한 모든 것의 결론입니다. 우리가 형제와 자매라는 것도 낮아짐이고 하나님 중심이라는 것도 결국은 낮아짐이고 섬김도 낮아짐입니다.

진정한 교회의 모습은 서로 존중하고, 섬기고, 낮아지고, 형제자매로 함께 하는 공동체를 이루는 것입니다. 우리 참빛 교회가 이런 교회인 줄 믿습니다. 우리는 주님 만나는 날까지 이런 교회를 세워가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 교회 안에서 서로 사랑하고, 존중하고, 섬기면서 하나님 나라의 복을 함께 누리는 진정한 살아있는 교회 공동체로 하늘의 복을 함께 누리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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