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는 자의 본이 되었느니라(10월 22일 주일 오전 예배 설교)
데살로니가 전서 1:1-10(신약 329)
 
「야베스의 기도」의 저자이자 세계 최대 규모의 기독교 세미나 단체인 「성경과 함께 걷는 삶」(Walk Thru the Bible Ministries)의 설립자인 브루스 윌킨슨(Bruce Wilkinson)은 구약에는 ‘믿음의 3세대’가 나온다고 말했습니다.
 
1세대 / 여호수아와 같이 하나님을 직접 만나고 순종하는 사람들입니다. – 말씀을 신앙과 삶의 기준으로 삼은 이 사람들은 세상 사람들의 말에 연연하지 않고 하나님 말씀에만 순종합니다.
 
2세대 / 이스라엘 장로들처럼 하나님에 대해서 알기만 하는 사람들입니다. – 1세대로부터 들은 말로 간접적인 믿음을 가진 이 사람들은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3세대 /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 이 사람들은 하나님 말씀을 듣고도 이성적인 판단, 세상적인 시선에 의지해 삶을 살아갑니다.
 
윌킨슨은 이 분류를 통해 진정한 신앙인은 1세대 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진정한 의미의 신앙인은 1세대 밖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난 2세대 자녀라 하더라도 2세대 신앙인이 아닌 1세대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이 표현이 맞다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는 2세대, 3세대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1세대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스스로 주님을 개인적인 구세주로 영접하고 만나는 영적 체험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봉독한 말씀에서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에게 너희는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다고 칭찬했습니다. 바울 사도께서 데살로니가 교회에게 한 말이 오늘 참빛교회에게 그리고 우리 개인에게 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되길 축원합니다.
 
우리가 1세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때 모든 믿는 자들의 본이 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바울 사도가 데살로니가 교회에게 보낸 첫 번째 편지에서 데살로니가 교회에게 너희는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으니라” 고 한 말씀을 제목으로 해서 함께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바울 사도가 데살로니가 교회에게 믿는 자의 본이 되었다고 칭찬한 것을 보면
 
1.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한다.
바울 사도는 데살로니가 교회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이렇게 인사를 했습니다. 1-2절을 보면
1:1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에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1:2 “우리가 너희 모두로 말미암아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할 때에 너희를 기억함은”
 
바울 사도는 데살로니가에 보낸 편지에서 안부 인사를 하면서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이라고 기록했는데 실루아노는 실라의 로마식 표현이라고 합니다. 실라는 바울과 함께 전도여행을 했고 데살로니가에서도 함께 사역을 했습니다. 디모데는 바울이 데살로니가에서 폭도들에게 쫓겨난 후에도 데살로니가에 남아서 사역을 했습니다.
 
따라서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 잘 아는 사역자들이었기에 바울과 함께 데살로니가 교회에게 안부 인사를 전한다고 기록한 것입니다.
 
바울은 실루아노와 디모데가 함께 인사를 전한다고 하면서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선포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우리가 너희 모두로 말미암아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할 때 너희를 생각하며 기도한다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데살로니가 교회가 모든 사람들에게 본이 되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들었기 때문에 데살로니가 교회와 성도들을 생각할 때 하나님께 감사할 수밖에 없고 또한 데살로니가 교회를 위해서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기도를 한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이 교회를 생각할 때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 생각하며 기도한다고 했는데 특별히 데살로니가 교회를 생각할 때 감사하고 기도할 때마다 데살로니가 교회를 기억한 것은
 
그들의 믿음의 역사로 인한 것입니다. 3절을 보면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
 
이 말은 ‘믿음 가운데서 우러나온 너희의 역사’란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믿음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 행하신 구속의 역사에 근거한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의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그 믿음이 필연적으로 삶 전체를 변화시키고, 성도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거룩하신 계획을 이루기 위해 적극적으로 봉사하는 삶을 살게 합니다.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게 그런 믿음의 역사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말로 하는 믿음이 아니고 믿음을 삶에서 실천했다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의 믿음의 역사에 대해서는 다른 지역으로 소문이 날 정도였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교회는 어둠의 세상을 빛으로 변화시키는 믿음의 역사를 세상에 보여주어야 하고, 성도는 믿음의 역사로 어둠의 세상을 빛으로 변화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그런 교회였다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의 믿음의 역사는 사랑의 수고로 나타났습니다. 3절을 다시 보면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
 
사랑은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과 성도 사이에 우호적인 관계를 나타내 줍니다. 우리가 사랑한다는 것은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기에 사랑은 먼저 하나님과 관계를 회복하게 하고, 믿음과 마찬가지로 실천적 행위로 나타나게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도 행동으로 나타나고, 이웃을 사랑하고 성도들을 사랑하는 것도 행동으로 나타나는 사랑은 수고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말로 하고 받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만큼의 수고가 필요한 것입니다.
 
핸드릭스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은 병자와 굶주린 자를 돕기 위해 자선을 행하였으며, 모진 박해에도 불구하고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열성적 헌신을 다하였다.’고 설명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주변의 소외된 사람들을 돌보는 사랑과 복음을 위해서 열정적으로 수고한 교회였다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가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소망의 인내를 이룬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3절을 다시 보면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궁극적인 승리의 날을 바라보는 소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을 소망하는 성도들은 현실 속에서 어떠한 어려움이 닥쳐온다 해도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인내를 지니고 있습니다.
 
여기서 ‘인내’로 번역된 헬라어 ‘휘포모네스’은 진취적이고 용기 있는 그리스도인의 특징으로서 용감한 군인이 극한 상황에서도 꿋꿋하게 버텨나가는 기상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재림의 소망을 가지고 있으므로 막다른 골목처럼 보이는 어려움 가운데서도 결코 낙심치 아니하고 인내로써 전진 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재림의 소망이 없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생명에 대한 소망이 없다면 우리의 믿음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재림의 소망을 가진 우리는 언제나 인내하면서 주님을 기다리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2. 우리 복음은?
바울은 인사말에서 데살로니가 교회를 생각할 때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기도할 때마다 생각한다고 고백하면서 데살로니가 교회가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가 있음을 칭찬했습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데살로니가에서 복음을 전했을 때를 회상하면서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은 이런 것이라고 말하는데 바울은 우리 복음이라고 표현을 했습니다. 우리 복음은 말로만 이른 것이 아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5절을 보면 “이는 우리 복음이 너희에게 말로만 이른 것이 아니라 또한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임이라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떤 사람이 된 것은 너희가 아는 바와 같으니라”
 
바울은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은 세상적인 지식이나 철학에 근거해서 그럴듯한 말로 전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복음을 전함에 있어 사람들을 설득하려고 잘 설명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전한 복음은 세상적인 지식이나 지혜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의 입을 통해서 말씀을 전하게 하신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복음은 사람들이 그럴듯하게 전하는 만들어내 이야기가 아닙니다.
 
또한 우리가 믿는 복음은 능력과 성령의 큰 확신으로 된 것입니다. 5절을 다시 보면 “이는 우리 복음이 너희에게 말로만 이른 것이 아니라 또한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임이라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떤 사람이 된 것은 너희가 아는 바와 같으니라”
 
능력과 성령과 확신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것으로서 능력은 외적 현상이고, 확신은 내적 요소이며, 성령은 능력과 확신의 원동력입니다. 여기서 말한 ‘능력’은 ‘표적과 기사’라는 의미보다는 성령으로 말미암는 ‘영적인 힘’을 의미하는 것으로 영어에서 ‘다이나마이트’로 번역되어 폭발하는 힘을 나타내는 것으로 사람의 마음속까지 변화시키는 성령의 감화 감동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이 전한 복음은 듣는 사람들이 세상적인 지식이나 지혜에 의해서가 아니라 내면을 감동시키는 성령의 능력으로 복음을 받아들이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믿는 복음은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계속해서 ‘성령’은 ‘능력’의 출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성령을 받을 때 말씀의 능력이 임하는 것입니다. 성령은 언제나 능력을 통해서 인간들에게 실체로 다가옵니다. 그리고 그 능력을 체험한 사람들은 예수님을 영접하고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또한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 마음에 확신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들을 때 성령님이 우리의 마음을 감동시켜 주셔서 예수님을 믿게 되고, 또한 우리 마음에 큰 확신을 갖게 해 주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예수님을 믿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예수님을 믿는 성도가 되었고 우리가 성령 충만을 받을 때 능력이 임해서 복음은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을 우리에게 알고 하고 경험하게 하고 그 안에 거하게 합니다.
 
3. 믿는 자의 본이 되었다.
바울 사도는 데살로니가 교회에게 너희는 내가 전해준 복음을 듣고 믿는 자가 되었다고 말하고 너희에 대한 이야기가 들려오는데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음을 알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마게도냐와 아가야’는 B.C. 146년 이후 헬라의 두 개의 거대한 주로서 로마의 지배 아래 있었는데 마게도냐의 수도는 데살로니가이며 아가야의 수도는 고린도였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마게도냐 뿐만아니라 아가야 지역에도 알려졌다는 것입니다. 7-8절을 보면
1:7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느니라”
1:8 “주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마게도냐와 아가야에만 들릴 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졌으므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노라”
 
데살로니가 교회가 이렇게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다고 칭찬하면서 데살로니가 교회는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6절을 보면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환난’은 외적 환경에 의해 생기는 고통과 핍박을 의미합니다.
 
데살로니가는 처음부터 복음에 대한 반대가 강하게 일어났으며, 이러한 환난은 바울이 떠난 후에도 계속해서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괴롭혔습니다.
 
그러나 데살로니가의 성도들은 많은 환난 가운데서도 성령이 주시는 기쁨으로 환난을 넉넉히 이길 수 있었습니다. 환난 속에서도 성령이 주시는 기쁨으로 말씀을 받았고, 자신들에게 복음을 전해 준 사도바울과 또한 복음이신 예수님을 본받아 살았다는 것입니다.
 
살전 2:14절을 보면 “형제들아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유대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들을 본받은 자 되었으니 그들이 유대인들에게 고난을 받음과 같이 너희도 너희 동족에게서 동일한 고난을 받았느니라”
 
데살로니가 교회가 모든 믿는 자들에게 본이 되었다고 칭찬하면서 너희가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왔다고 칭찬했습니다. 9절을 보면 “그들이 우리에 대하여 스스로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너희 가운데에 들어갔는지와 너희가 어떻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살아 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는지와”
 
초대교회 당시에는 로마와 그리스의 신화를 비롯해서 각 지역마다 섬기는 우상들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올림픽도 올림푸스 신전에서 제사를 드리는 것에서 기원한 것입니다.
 
수없이 많은 우상 문화가 있지만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은 복음을 듣고 성령의 능력으로 마음에 감동을 받아서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게 되었고 그동안 자신들이 섬겼던 모든 우상을 버리고 오직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 신앙으로 살았다는 것입니다.
 
오랫동안 우상숭배를 하던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이고 신앙생활을 할 때 우상을 섬기던 습관이 남아 있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면 우상을 섬기던 습관을 철저하게 버려야 합니다.
 
우상 뿐만 아니라 미신적인 신앙, 점쟁이를 찾는 신앙을 버리고 철저하게 성경 중심의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 우상을 버리고 예수님을 영접하고 믿음으로 살아가면서 재림 소망으로 살았습니다. 10절을 보면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실 것을 너희가 어떻게 기다리는지를 말하니 이는 장래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시니라”
 
데살로니가 교회가 마게도냐와 아가야의 모든 믿는 자들의 본이 되었다는 것은 결론적으로 재림의 소망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재림의 소망이 없는 사람들은 믿음을 온전히 지키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 마지막날 다시 오실 것을 믿는 성도들이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재림의 소망이 있기에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를 할 수 있어던 것은 소망의 인내 즉 재림 소망으로 인내하면서 본이 되는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마지날막 반드시 다시 오십니다. 우리는 마라나타 신앙으로 본이 되는 성도로 살아가야 합니다.
 
참빛교회도 데살로니가 교회처럼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는 교회가 되고 우리 한 사람 한 사람도 믿는 자의 본이 되는 삶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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