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강의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10월 15일 주일 오전 예배 설교)
빌립보서 4:1-9(신약 322)
 
하나님께서 36전에 석촌동에 참빛교회를 세워주셨고 오늘까지 지켜주셨습니다. 한 교회가 세워지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안에서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 안에서 참빛 교회가 세워진 것이고 오늘까지 지켜주셨습니다.
 
오늘까지 참빛 교회를 지켜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오늘까치 참빛교회를 지켜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코로나 펜데믹을 겪으면서 많은 교회들이 사라졌습니다. 물론 코로나 펜데믹이 아니더라고 인구 감소와 여러 이유들로 인해서 교회의 숫자가 줄어들고 있었는데 코로나로 인해서 더 많은 교회들이 문을 닫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우리의 현실이 그렇다고 할지라도 우리가 함께 주님을 섬기며 예배드리는 참빛교회는 주님 오시는 날까지 살아있는 교회가 될 줄 믿습니다. 우리가 함께 예배드리는 참빛 교회는 우리의 삶을 다하는 날까지 그리고 주님 오시는 날까지 우리와 우리의 자녀들이 대대로 이어가는 교회가 될 줄 믿습니다.
 
창립 36주년 감사예배를 드리는 오늘 함께 나눌 말씀은 바울 사도께서 빌립보 교회에게 주신 말씀이자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늘 불안하고, 그래서 걱정과 근심과 염려가 많은 세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동안 잠잠했던 중동에 다시 전쟁이 발발했습니다. 하마스들이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함으로 전쟁이 시작되었는데 이스라엘이 사전에 하마스의 공격에 대해서 예측을 못했던 것 같습니다.
 
전혀 예상하지도 못한 상황에서 기습 공격을 받았고 그래서 많은 피해가 발생했고, 이스라엘도 보복 전쟁을 감행하는 상황입니다. 전쟁이나 자연재해가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일어나기도 하고 우리가 전혀 생각도 하지 못했던 일들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우리가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전쟁이나 자연재해 같은 일이 아니더라도 인간관계나 사업이나 직장에서 발생하는 여러상황들로 인해서 두려워하거나 불안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심지어 신앙생활을 하는 데도 교회 공동체 안에서도 불안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빌립보 교회 안에 의견이 다르기 때문에 갈등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같은 교회 안에서 의견이 다른 사람들이 서로 자기 주장을 하면 교회에 와서 예배드리면서도 불안을 느낄 수 있습니다.
 
바울은 교회 공동체가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을 누리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어떤 상황에 처하게 되든지 평강의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평강의 하나님으로 임하셔서 교회를 지켜주시고, 교회 공동체를 지켜주시고,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을 지켜주십니다. 오늘 바울 사도를 통해서 주시는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평강의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 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은 
 
1. 주 안에 서라
우리가 평강의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은혜를 누리기 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주안에 서야 합니다. 주 안에 굳건하게 서서 살아갈 때 평강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고 하나님이 주시는 진정한 평강을 누릴 수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빌립보 교회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주안에서 서라고 권면하고 있는데 주안에 서라는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교회 공동체에게
 
같은 마음을 품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2절을 보면
4:1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
4:2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바울은 빌립보 교회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분쟁에 대해서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빌립보 교회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마지막 부분에서 그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 하면서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고 권면한 것입니다.
 
우리가 주안에 선다고 할 때 이 말은 개인적이면서 또한 공동체에게 주는 말씀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각자가 주안에서 서야 하고 또한 교회 공동체가 주안에 서야 하는데 주안에서 서기 위해서는 서로 같은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갈등이 있는지 모르지만 빌립보 교회에서 신실한 일꾼인 유오디아와 순두게라는 분이 서로 의견이 달라서 갈등하는 상황이었던 것 같습니다. 두 사람이 의견이 다르면 그로 인해서 교회 전체가 불편해질 수 있습니다.
 
갈등하는 두 사람 편에 서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냥 두 사람이 갈등을 하는 것으로 끝나면 좋은데 갈등하는 두 사람의 편이 되어서 교회가 두 편으로 나누어져서 갈등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 두 분은 교회에서 충성된 일꾼이었을 것입니다. 교회에서 더 열심히 하려는 열정은 있는데 어떤 일을 하는데 있어 서로 성향이나 생각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에 갈등할 수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이렇게 갈등하는 빌립보 교회의 두 성도와 다른 모든 성도들에게 주 안에 서라고 말하면서 주 안에 서기 위해서 같은 마음을 품어야 한다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마음을 같이 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는 곳입니다. 그러나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다양한 의견을 내고 서로의 주장만 내세우면 교회는 끊임없이 갈등하게 되어 있습니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면서 서로 양보하면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심을 따라 같은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우리가 같은 마음을 품는 것은 성령으로 가능합니다. 성령 충만을 받을 때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할 때 같은 마음을 품을 수 있습니다.
 
주 안에 서기 위해서 같은 마음을 품고 또한 서로 도우라고 말씀했습니다. 3절을 보면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한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여인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바울은 빌립보 교회에게 서로 도우라고 말하는데 교회에서 도와야 할 사람들은 먼저 서로 갈등하고 있는 두 사람을 도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여인들을 도우라고 권면했습니다.
 
유오디아라는 분과 순두게 라는 분이 갈등하는 것은 교회를 해롭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위해 수고하는 사람들로 어떻게 하면 교회를 유익하게 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는지 애쓰는 분들인데 의견이 다르기 때문에 갈등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누가 옳고 누가 틀리다. 라고 말할 수 없기에 그들이 서로 갈등을 잘 봉합하고 하나가 되도록 도우라는 것입니다.
 
갈등하는 사람들이 더 갈등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한 마음이 될 수 있도록 도우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도와야 할 사람들로는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고 말했습니다. 글레멘드라는 분이 어떤 분인지 모르지만 빌립보 교회 안에서 열심히 주님을 섬기고 헌신하는 분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글레멘드와 그외에 나의 동역자들이라고 표현했을 것입니다.
 
앞에서 말한 두 여인을 돕는 것은 갈등하는 분들이 갈등하지 않고 한 마음이 되게 도와야 하고 글레멘드와 그 외의 동역자를 도우라는 것은 교회 지도자들을 도와서 교회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교회로 복음을 전하는 교회로 세워지도록 서로 합력한 복음을 위해 일하라는 권면입니다.
 
교회에서 열심히 봉사하는 분들을 잘 도와주어서 우리가 서로 한 마음으로 주님 앞에 서는 교회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주 안에 서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관용을 모든 사람이 알게 하는 것입니다. 5절을 보면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관용’으로 번역된 헬라어 ‘토 에피에이케스’은 손해나 역경을 당해도 쉽게 동요되거나 넘어지지 않고 평정을 유지하는 ‘영적인 인내’를 가리킨다고 칼빈은 말했습니다.
 
또한 이것은 자신의 당연한 권리를 포기하고 다른 사람을 향해 너그럽게 대하는 태도를 의미합니다. 바울은 이러한 태도를 어느 특정한 사람에게만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불신자들, 심지어 자신을 핍박하는 사람까지 포함하여 모든 사람에게 보여야 한다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교회 안에서 나와 의견이 다른 사람에게 관용하는 마음이 필요하고, 교회 밖에서 교회를 비난하거나 핍박하는 사람들에게도 관용하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관용을 모든 사람이 알게 해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이 곧 오신다고 믿는 만큼 관용을 베풀어야 하고 관용을 베풀므로 주님 안에 서서 굳건하게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2.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우리가 주안에서 서야 하고 그리고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해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 안에서 기뻐하는 삶을 살아갈 때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안에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안에 서서 항상 기뻐해야 하는데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기 위해서는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아야 합니다. 6절을 보면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로 번역된 헬라어 ‘메덴 메림나테’는 현재 명령법으로 ‘염려를 중단하라’는 뜻입니다. 이는 당면한 문제에 대해서 걱정하거나 초조해 하거나 불필요한 관심을 쏟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말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아무 것도 염려할 일이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여전히 걱정하고 근심하고 염려할만한 일들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지만 그런 모든 것을 염려하고 근심하고 걱정하지 말고 염려하는 것을 멈추라는 것입니다.
 
염려는 하면 할수록 늘어납니다. 예수님은 마 6:27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염려한다고 변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염려하는 것은 결국 마음을 힘들게 하고 탈진하게 만들 뿐입니다.
 
염려 할 일이 없는 것이 아니지만 염려를 멈추고 주님이 주시는 진정한 기쁨을 마음에 담아야 합니다. 우리가 염려를 멈추어야 하고 염려할 일이 있을 때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야 합니다. 6절을 다시 보면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염려하기보다는 염려는 멈추고 염려할 시간에 기도와 간구를 하라는 것이고 기도할 때 걱정이 태산 같은 기도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하나님께서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심을 믿고 기도할 모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고백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 6: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염려하며 기도하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는 이미 다 아시기 때문에 염려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아시기 때문에 우리는 감사함으로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즉 우리가 염려하지 않고 감사함으로 아뢸 때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십니다. 7절을 보면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란 말은 하나님의 평강은 인간 스스로 만들어 내거나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닌, 인간의 이해를 초월하는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평강은 우리가 염려하지 않고 기도와 감사로 하나님께 아뢸 때 그 기도의 결과로 오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이것은 세상의 평화와 확연히 구별되는 것으로 세상의 평화는 일시적이고 표면적이지만, 하나님의 평강은 영원하며 본질적이며 완전한 것입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감사함으로 주님 앞에 내려놓을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셔서 어떤 상황에서도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3. 이것들을 생각하라
모든 것을 감사함으로 아뢸 때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십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의 평강이 임하고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실 때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것들을 생각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이것들을 생각하라고 하면서 이것들은 너희가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배우고, 받고, 듣고, 본 것들이라고 할 수 있는데
 
가장 먼저 참되고 옳은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8절을 보면 “끝으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 받을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 받을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바울 사도가 이것들을 생각하라고 하면서 6가지를 이야기 했는데 그 중에서 가장 먼저 무엇에든지 참되며 라고 말했는데 참되다는 것은 ‘허위’,‘거짓’과 반대되는 개념입니다.
 
하나님은 거짓이 없으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이 참 되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참되신 것처럼 참된 것, 진실한 것, 진리를 생각하고 따라야 합니다. 성경은 거짓이 없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진실하고 참되어야 합니다.
 
참되다는 것과 연결할 수 있는 단어가 옳으며 라는 단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진실하고 의로운 것을 따르는 성도로 하나님께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항상 진실되고, 의롭고, 신실한 믿음으로 살아가는 성도가 진정한 평안을 누립니다. 거짓과 악은 늘 불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경건하며, 정결한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8절을 다시 보면 “끝으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 받을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받을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경건은 신앙적인 정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경건이란 단어는 존경이란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경건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그리고 경건한 것을 생각한다는 것은 교회안에서 존경과 존중을 받을 수 있는 신실한 믿음의 생각을 하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높아지려는 것이 아니고 오직 신실하게 교회를 섬기고 성도를 섬기면서 본이 됨으로 교회 공동체 안에서 존경받는 성도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정결은 헬라어 ‘하그노스’를 사용했는데 이 단어는 순결과 거룩함이란 의미가 있습니다. 무엇에든지 정결한 것을 생각하라는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세속적인 생각을 하지 않고 거룩한 삶을 위한 생각을 하고 순결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사랑받을 만하고, 칭찬받을 만해야 한다고 말씀했습니다. 8절을 다시 보면 “끝으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 받을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 받을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사랑받을 만하다는 말은 사랑스러운이란 의미로 우리가 모든 성도에게 사랑을 받을만한 신실한 믿음의 사람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내가 교회에서 하는 일들이 모든 성도들에게 인정을 받고 사랑받을 만해야 하고 또한 칭찬받을 만한 일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안에서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 누군가 내가 하는 일이 못마땅해서 비난하고 비판하는 대상이 되지 않도록 우리는 말과 행실이 사랑받을 만하고, 칭찬받을만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생각하고 행동할 때 9절에 결론적으로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이것들을 생각할 때 즉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할 때 평강의 하나님께서 함께 계신다는 것입니다. 참빛 교회 모든 성도들이 주님 안에 서고,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고, 성도로서 이것들을 생각하며 실천하며 살아감으로 평강의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복된 삶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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