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그러나 절망(8월 13일 주일 오전 예배 설교)
창세기 37:12-28(구약 58)
 
오늘은 우리나라가 일본의 억압에서 해방된 날을 기념하는 광복절 기념주일입니다. 2023년 광복절은 제78주년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은 항상 우리가 살고 있는 나라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나라 대한민국이 국가적인 어려움이나 위기를 겪지 않기를 위해서 기도해야 하고, 이 나라 대한민국이 이념적인 대립이 아닌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심을 이루어가는 나라가 되기를 위해서 기도할 때입니다.
 
그리고 모든 성도가 함께 기도해야 할 것은 민족 복음화와 전 세계에 선교하는 나라가 되기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78년 전에 독립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교회와 성도들이 핍박을 받고, 순교를 하면서도 신앙을 포기하지 않고 나라의 독립을 위해서 기도한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광복절 기념 주일을 맞이해서 오늘은 꿈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우리가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닐 때 학교에서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 라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윌리엄 스미스 클라크라는 분이 한 말로 선생님들에게 자주 듣던 말이었습니다.
 
요즘도 이 말을 학생들에게 들려주는지 모르겠는데 윌리암 스미스 클라크는 신학교에서 공부했고 화학과 식물학과 농업을 가르치는 교수였습니다. 그가 말한 내용은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 돈이나 이기심을 위해서도, 사람들이 명성이라 부르는 덧없는 것을 위해서도 말고. 단지 사람이 갖추어야 할 모든 것을 추구하는 야망을.” 이었습니다.
 
클라크가 한 표현에 대해서 일본의 신학자인 우치무라 간조는 클라크가 말한 소년이란 단순히 젊은 남자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희망을 위하여 전진하고 있는 모든 사람이다.’라고 설명했습니다.
 
클라크가 일본 농업발전에 끼친 영향력이 컸는데 그가 이야기 하려고 했던 소년이여 야망을 품으라는 말은 성경적 가치관에 근거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치무라 간조가 설명한 것처럼 희망을 위하여 전진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야망, 즉 가슴에 꿈을 꾸고 비전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 꿈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등장을 합니다. 야곱도 벧엘에서 꿈에 하늘에 연결된 사닥다리와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주인공인 요셉도 꿈을 꾸었고 나중에 애굽왕 바로의 꿈을 해석해 주고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오순절 날 성령이 임하심을 경험한 베드로는 성령강림을 설명하면서 요엘 선지자의 말씀을 인용해서 이렇게 설교했습니다. 행 2:17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꿈을 꾸게 하십니다. 그런데 주의해야 할 것은 모든 꿈을 계시나 예언처럼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점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기 위해서 꿈을 주시기는 하지만 꿈에 너무 집착해서는 안 됩니다. 잘못하면 미신적인 신앙에 빠질 수 있습니다.
 
요셉은 꿈을 두 번이나 꾸었습니다. 그리고 그 꿈에 대해서 형들에게 부모님에게 이야기 했습니다. 요셉이 꾼 꿈은 멋진 꿈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꿈으로 인해서 요셉은 절망을 맞이하게 됩니다. 꿈을 꾸었고 그 꿈으로 인해서 마음에 희망을 가지게 되었지만 요셉에게 나타난 현실은 절망이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봉독한 말씀과 앞 부분의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꿈 그러나 절망”이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1. 꿈꾸는 사람 요셉
요셉은 야곱의 11번째 아들입니다. 요셉은 야곱의 11번째 아들인데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꿈을 꾸게 하셨습니다. 요셉은 어린 나이에 하나님께서 주신 꿈을 꾸게 되는데
 
요셉은 야곱이 다른 아들들보다 더 사랑한 아들이었습니다. 3-4절을 보면
37:3 “요셉은 노년에 얻은 아들이므로 이스라엘이 여러 아들들보다 그를 더 사랑하므로 그를 위하여 채색옷을 지었더니”
37:4 “그의 형들이 아버지가 형들보다 그를 더 사랑함을 보고 그를 미워하여 그에게 편안하게 말할 수 없었더라”
 
야곱은 라헬을 사랑해서 결혼하려고 했는데 외삼촌이 속여서 레아와 먼저 결혼을 하게 되었고 그리고 라헬과도 결혼을 했습니다. 그리고 두 여종도 아내로 맞이하게 되었고 야곱은 4명의 아내를 통해서 12명의 아들을 낳았는데 그중에서 요셉은 11번째 아들이자 라헬이 나은 첫 번째 아들입니다.
 
하나님은 라헬이 야곱의 사랑을 받고 레아는 사랑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레아에는 자녀들을 주었고 라헬에게는 자녀를 주지 않았다고 말씀하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라헬을 불쌍히 여기사 늦은 나이에 아들을 주셨습니다.
 
야곱은 사랑하는 라헬에게서 태어났고 또한 11번째 아들 즉 나이가 많아서 얻은 아들이기 때문에 다른 아들들보다 요셉을 더 사랑했습니다. 형들은 들에서 양을 치고 힘든 일을 할 때도 요셉은 아버지 옆에 데리고 있으면서 채색옷을 지어 입혔습니다.
 
수련회 때 이야기를 나누면서 아들과 딸에 대한 편애와 첫째와 둘째에 대한 편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부모님들은 자신이 더 사랑하는 자녀가 있다고 생각하지 못하지만 자녀들이나 제 삼자가 볼 때는 자녀들 중에 더 사랑하는 자녀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더 사랑하는 것이 심하게 드러나게 되면 그로 인해서 상처를 받게 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아버지가 요셉을 더 사랑함으로 형들은 요셉에 대한 미움이 생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도 야곱처럼 자녀들에 대한 더 사랑하고 덜 사랑하는 자녀들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믿음의 부모는 이런 부분에 대해서 지혜롭게 해야 합니다.
 
요셉이 고난의 시간을 보낸 것은 아버지 야곱이 요셉을 편애한 것도 한몫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야곱이 다른 아들들보다 더 사랑하는 요셉이 두 번이나 꿈을 꾸었습니다. 6-7절과 9절을 보면
37:6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내가 꾼 꿈을 들으시오”
37:7 “우리가 밭에서 곡식 단을 묶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
37:9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의 형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하니라”
 
아버지의 사랑을 받은 요셉은 어느 날 꿈을 꾸었습니다. 첫 번째 꿈은 밭에서 곡식단을 묶는데 요셉의 단은 일어서고 형들의 단은 요셉의 단을 둘러서서 절하는 꿈이었습니다.
 
그리고 며칠 안 돼서 또 꿈을 꾸었는데 해와 달과 열한 별이 요셉에게 절하는 꿈이었다는 것입니다. 요셉은 그 꿈이 어떤 의미인지 몰랐을 수 있습니다. 아직 나이가 열일곱 살밖에 안 되기 때문에 그 꿈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두 번의 꿈이 같은 의미라는 것을 알 수는 있었습니다. 요셉은 이 꿈이 하나님이 주신 예언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형들에게 자신이 꾼 꿈에 대해서 이야기 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다양한 방법으로 계시하시는데 꿈을 통해서 또는 성경을 묵상할 때 말씀을 통해서, 기도할 때 환상이나 예언이나 감동을 통해서 찬송을 할 때 찬송을 통해서 미래에 대한 꿈과 비전을 주십니다.
 
요셉의 꿈과 같이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서 주시는 비전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빌 2: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두 번이나 꿈을 꾸었기 때문에 형들은 요셉을 더욱 미워했습니다. 4-5절과 8절을 보면
37:4 “그의 형들이 아버지가 형들보다 그를 더 사랑함을 보고 그를 미워하여 그에게 편안하게 말할 수 없었더라”
37:5 “요셉이 꿈을 꾸고 자기 형들에게 말하매 그들이 그를 더욱 미워하였더라”
37:8 “그의 형들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참으로 우리의 왕이 되겠느냐 참으로 우리를 다스리게 되겠느냐 하고 그의 꿈과 그의 말로 말미암아 그를 더욱 미워하더니”
 
형들 입장에서 보면 아버지가 요셉만 편애하는 것도 꼴 보기 싫은데 어느날 요셉이 자신들이 요셉에게 절을 하는 의미의 꿈을 두 번이나 꾼 것에 대해서 이야기 하지 요셉을 더 미워하게 되었습니다.
 
형제가 있는 집에서는 흔히 경험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야곱도 아버지 이삭이 형 에서를 더 사랑했기 때문에 내면에 상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야곱 자신도 요셉을 더 사랑함으로 나머지 다른 아들에게 상처를 주었습니다.
 
뿐만아니라 요셉은 자신의 꿈을 말하매 있어 형들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고 상처를 주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신앙 이야기를 할 때 다른 사람에게 상처가 되게 하는 것은 지혜롭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비전을 주시고, 기도의 응답을 주시고, 많은 은혜를 주신 것에 대해 이야기 할 때 내가 하는 말 때문에 내가 하는 간증 때문에 상처받는 사람은 없는지 조심스럽게 해야 합니다. 요셉의 꿈 이야기가 형들을 더 분노하게 만든 것처럼 우리의 신앙 이야기나 간증이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안 좋은 이미지를 주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형들은 아버지의 특별한 사랑을 받는 요셉이 특별한 꿈을 두 번이나 꾼 것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었는데 어느날 형들에게 기회가 왔습니다. 형들은 마음에 꽁하고 있었던 것을 밖으로 드러내게 되는데
 
2. 그의 꿈이 어떻게 되는지 보자
같은 아버지의 아들들이지만 아버지가 요셉만 특별히 더 사랑하는 것을 알기 때문에 요셉에 대한 미움이 컸고 거기다 꿈까지 꾸고 이야기 해서 형들은 기분이 나쁜 상태였습니다. 우리식으로 표현하면 꼴도 보기 싫은 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형들은 요셉이 자신들에게 오는 것을 보고 미워하던 놈이 오고 있는데 우리가 요셉에게 해를 가하면 요셉이 꾼 꿈이 어떻게 될까? 그런 이야기들을 하게 되는데
 
요셉이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형들을 찾아갔습니다. 12-17절까지를 보면
37:12 “그의 형들이 세겜에 가서 아버지의 양 떼를 칠 때에”
37:13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이르되 네 형들이 세겜에서 양을 치지 아니하느냐 너를 그들에게로 보내리라 요셉이 아버지에게 대답하되 내가 그리하겠나이다.”
37:14 “이스라엘이 그에게 이르되 가서 네 형들과 양 떼가 다 잘 있는지를 보고 돌아와 내게 말하라 하고 그를 헤브론 골짜기에서 보내니 그가 세겜으로 가니라”
37:15 “어떤 사람이 그를 만난즉 그가 들에서 방황하는지라 그 사람이 그에게 물어 이르되 네가 무엇을 찾느냐?”
37:16 “그가 이르되 내가 내 형들을 찾으오니 청하건대 그들이 양치는 곳을 내게 가르쳐 주소서”
37:17 “그 사람이 이르되 그들이 여기서 떠났느니라 내가 그들의 말을 들으니 도단으로 가자 하더라 하니라 요셉이 그의 형들의 뒤를 따라 가서 도단에서 그들을 만나니라”
 
야곱은 양을 치는 다른 아들들이 양을 잘 치고 있는지 확인도 하고 또 들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알고 싶어서 요셉에게 형들이 있는 곳으로 가서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보고 오라고 했습니다.
 
요셉이 형들의 잘못을 아버지에게 고자질도 하곤 했기 때문에 야곱은 요셉이 형들에게 가서 잘하고 있는지 확인하고 와서 나에게 이야기 하라는 의미로 요셉을 보낸 것입니다.
 
양을 치는 목자들은 한 곳에 머물지 않고 옮겨 다닙니다. 풀이 있는 곳을 찾아서 이동을 하면서 양을 치기 때문에 요셉이 형들을 찾아 나섰을 때 어디에 있는 알 수가 없어서 방황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사람들이 야곱의 아들들이 도단으로 가자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고 이야기 해 줌으로 요셉은 형들을 찾아 도단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형들이 있는 곳을 찾아서 형들에게 가고 있었습니다.
 
형들은 멀리서 요셉이 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아버지가 요셉에게 채색옷을 입혔기 때문에 멀리서도 요셉인지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요셉이 오는 것을 보고 형들은 꿈꾸는 자가 오는도다. 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19절을 보면 “서로 이르되 꿈 꾸는 자가 오는도다.” 형들이 요셉을 보면서 꿈꾸는 자가 온다고 한 것은 꿈장이, 몽설가라는 말로 조롱하는 말입니다. 요셉이 꿈 이야기를 함으로 형들은 요셉을 더 미워하게 되었는데 허허벌판에서 요셉을 만나게 되자 형들은 저놈을 어떻게 할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꿈쟁이가 온다고 표현을 하면서 조롱하듯 말한 것입니다. 형들은 요셉이 말한 꿈 이야기 기분이 나빴고 또한 그런 꿈은 절대로 이루어질 리가 없다. 고 생각하면서 저 꿈쟁이를 우리가 어떻게 처치할까? 그런 의도로 꿈꾸는 자가 오는도다. 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리고 형들은 결정적으로 저 꿈꾸는 요셉의 꿈이 어떻게 되는지 우리가 볼 것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20절을 보면 “자, 그를 죽여 한 구덩이에 던지고 우리가 말하기를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먹었다 하자 그의 꿈이 어떻게 되는지를 우리가 볼 것이니라 하는지라”
 
형들이 꿈꾸는 자가 온다고 말한 것은 지금 우리에게 기회가 왔으니 저 꿈꾸는 요셉을 처리해 버리자 그러면 자기가 꾼 꿈이 실현되는지 안 되는지 우리가 보게 되지 않겠는가 그런 이야기를 한 것입니다.
 
형들은 요셉이 꾼 꿈이 하나님이 주신 꿈이라고 생각하지 못했고, 요셉이 아버지의 사랑을 많이 받고 있으니까 스스로 교만해져서 자신이 최고라고 생각하다보니 꾼 꿈일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저놈이 꿈을 꾸고 자랑질을 했는데 우리가 저놈을 처리하면 자랑하던 꿈은 당연히 헛된 꿈이 되고 말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동생을 향한 미움이 죽이고 싶은 상태가 된 것입니다.
 
요셉의 꿈은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지만 형들은 그것이 요셉의 마음에 있는 생각에서 나온 것이라고 생각하고 요셉의 꿈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고 싶다는 마음을 표출한 것입니다.
 
형들의 미움이 극에 달하므로 그 결과
 
3. 절망
요셉은 분명히 하나님께서 주신 꿈을 꾸었습니다. 그러나 그 꿈에 대해서 이야기 한 결과 형들의 미움은 더 커졌고, 심지어는 꿈이 어떻게 되는지 우리가 보겠다고 말하므로 인해서 요셉은 꿈과는 반대로 절망적인 상황으로 내몰리게 됩니다.
 
형들은 꿈꾸는 요셉을 죽이려고 생각했습니다.
18절을 보면 “요셉이 그들에게 가까이 오기 전에 그들이 요셉을 멀리서 보고 죽이기를 꾀하여”
20절 “자, 그를 죽여 한 구덩이에 던지고 우리가 말하기를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먹었다 하자 그의 꿈이 어떻게 되는지를 우리가 볼 것이니라 하는지라”
 
아버지의 편애와 형들의 잘못을 고자질하는 것 때문에 미움이 극에 달한 상황에서 꿈 이야기를 하면서 형들의 미움은 주체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형들에게 요셉은 죽이고 싶을 만큼 미운 동생이었습니다.
 
기회가 있다면 요셉을 죽이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던 차에 도단에서 양을 치고 있는데 제 발로 걸어서 찾아왔습니다. 아버지가 없고 가족도 없고, 누가 보는 사람도 없는 상황입니다.
 
요셉은 하나님이 주시는 꿈을 꾸었지만 그 꿈으로 인해서 형들에게 죽임을 당할 수도 있는 절망의 상황이 되고 만 것입니다. 하나님은 꿈을 주셨는데 현실은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형들은 요셉을 구덩이에 던져 넣었습니다. 21-24절을 보면
37:21 “르우벤이 듣고 요셉을 그들의 손에서 구원하려 하여 이르되 우리가 그의 생명은 해치지 말자”
37:22 “르우벤이 또 그들에게 이르되 피를 흘리지 말라 그를 광야 그 구덩이에 던지고 손을 그에게 대지 말라 하니 이는 그가 요셉을 그들의 손에서 구출하여 그의 아버지에게로 돌려보내려 함이었더라”
37:23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매 그의 형들이 요셉의 옷 곧 그가 입은 채색옷을 벗기고”
37:24 “그를 잡아 구덩이에 던지니 그 구덩이는 빈 것이라 그 속에 물이 없었더라”
 
요셉이 오는 것을 보고 죽여 버리자 라고 말하는 동생들의 이야기를 들은 맏형 르우벤이 요셉을 죽이지 못하게 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요셉이 밉기는 하지만 그래도 밉다고 해서 동생을 죽이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 르우벤은 동생들에게 구덩이에 던져놓고 우리 손으로 죽이지는 말자고 제안을 했습니다.
 
르우벤이 이렇게 말한 것은 구덩이에 던져놓고 동생들이 없을 때 요셉을 구덩이에서 건져내서 아버지에게 돌려보내려고 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르우벤은 장남으로서 요셉을 지켜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동생들은 형의 말을 듣고 자기들의 손으로 죽이지 않고 입고 있던 옷을 벗기고 물 없는 구덩이에 던져 넣었습니다. 요셉은 일단 죽음의 위기는 넘긴 상황이긴 하지만 구덩이에 던져져 있기 때문에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꿈꾸는 사람 요셉은 노예로 팔려갔습니다. 25-28절 까지를 보면
37:25 “그들이 앉아 음식을 먹다가 눈을 들어 본즉 한 무리의 이스마엘 사람들이 길르앗에서 오는데 그 낙타들에 향품과 유향과 몰약을 싣고 애굽으로 내려가는지라”
37:26 “유다가 자기 형제에게 이르되 우리가 우리 동생을 죽이고 그의 피를 덮어둔들 무엇이 유익할까”
37:27 “자 그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고 그에게 우리 손을 대지 말자 그는 우리의 동생이요 우리의 혈육이니라 하매 그의 형제들이 청종하였더라”
37:28 “그 때에 미디안 사람 상인들이 지나가고 있는지라 형들이 요셉을 구덩이에서 끌어올리고 은 이십에 그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매 그 상인들이 요셉을 데리고 애굽으로 갔더라”
 
죽음의 위기를 넘기고 구덩이에 던져졌던 요셉은 유다의 제안에 의해서 노예로 팔려가게 됩니다. 요셉이 죽이고 싶을 만큼 밉기는 하지만 그래도 같은 아버지의 형제인데 굳이 죽이는 것 보다는 차라리 우리 손을 대지 말고 상인들에게 돈을 받고 팔아버리자고 제안을 했습니다.
 
형들은 죽이고 싶을 만큼 밉기는 하지만 우리 손으로 죽이는 것보다는 팔아버리자는 제안에 동의를 하고 은 이십에 요셉을 팔아버렸습니다. 이렇게 해서 요셉은 애굽으로 팔려가서 종이 되었습니다.
 
요셉은 하나님이 주신 꿈을 꾸었습니다. 그러나 그 꿈이 금방 실현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죽음의 위기도 겪고 결국은 노예로 팔려갔습니다. 꿈이 오히려 요셉을 절망하게 만들었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살면서 기도해서 응답을 받거나 예배를 통해서 은혜를 받거나 꿈을 꾸거나 해서 마음에 꿈을 담게 되기도 비전을 갖게 되기도 하고 희망을 품게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꿈과 희망과 비전을 품었다고 해서 모든 것이 잘되고 형통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요셉이 절망의 상황을 겪었던 것처럼 오히려 절망을 느낄 정도의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요셉은 꿈을 잃지 않았고 절망 속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희망을 품고 살았기 때문에 꿈이 현실이 되었습니다. 꿈꾸는 사람이 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꿈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어려움도 믿음으로 극복하는 것입니다.
 
꿈을 꾸는 성도가 되고, 비전을 가슴에 품는 성도가 됩시다. 꿈과 비전이 이루어지는 과정에 절망적인 일들이 있어도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주님을 의지하며 살아갑시다. 그러므로 마침내 꿈과 비전이 현실이 되는 것을 누리는 참빛 교회 모든 성도가 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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