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라(8월 6일 주일 오전 예배 설교)
창세기 32:13-32(구약 49)
 
비록 적은 숫자였지만 은혜 가운데 전교인 여름 수련회를 잘 마쳤습니다. 예전처럼 많은 분들이 참여하지는 못했지만 의미 있는 수련회였습니다. 수련회 장소 섭외부터 계획하고 진행해 주신 조태진 안수집사님과 차진주 집사님, PX에서 물과 음료수와 무거운 짐을 잔뜩 사들고 오신 박효구 장로님, 수련회 기간내내 함께 수고해 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수련회를 끝나자 마자 주일예배를 드리는 날이라 수련회 참석했던 분들은 피곤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어떻게 보면 수련회가 오늘까지 계속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수도 있는 것 같습니다.
 
수련회 기간 동안 첫째날 저녁때는 마음을 새롭게 하자는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바울 사도를 통해서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하여 변화를 받으라는 말씀을 주셨고 그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둘째날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베드로가 다른 제자들을 선동을 해서 물고기 잡으러 갔을 때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제자들이 주님을 따랐지만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은 자신들의 지난 날을 돌아보면서 후회하면서 고기 잡으러 갔을 것이고 그 때 주님이 찾아오신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오늘은 수련회 셋째날의 기분으로 야곱의 이야기를 나누려고 합니다. 야곱의 벧엘 이야기를 2주 전에 살펴보았습니다. 야곱은 형을 피해서 밧단아람으로 가던 중에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났고 하나님은 야곱에서 내가 너를 떠나지 않으리라고 약속하셨고 야곱은 그 약속을 붙잡고 밧단 아람으로 가서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20년의 세월을 보내고 하나님의 약속을 의지하고 가나안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야곱은 하나님이 말씀을 의지해서 밧단아람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라반이 열 번이나 속였지만 참고 견디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야곱을 축복해 주셨습니다.
 
야곱은 하나님께서 가나안으로 돌아가라고 하신 말씀을 듣고 모든 것을 정리해서 가나안으로 돌아가는 길이었습니다. 그런데 20년이 지났지만 형 에서는 아직도 야곱에게 대한 나쁜 감정이 풀리지 않았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해서 가나안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는데 형 에서가 400명의 사병을 데리고 맞으러 온다는 말을 듣고 근심과 걱정을 하면서 얍복 강 나루에서 혼자 남아서 하나님 앞에 씨름을 하게 됩니다.
 
벧엘은 밧단아람으로 가는 길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약속을 받은 장소라면 얍복 강은 야곱이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을 받는 특별한 장소가 되었습니다.
 
오늘 야곱이 하나님으로부터 야곱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받게 되는 장면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서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하나님은 야곱을 이스라엘이라고 불러주셨는데 오늘 우리에게도 이스라엘이란 이름을 주시는 줄 믿습니다.
 
오늘 본문을 중심으로 해서 󰡒야곱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1. 두려움을 느끼는 상황
야곱이 가나안을 떠나서 밧단아람을 갈 때도 형 에서가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야곱을 죽이겠다는 말을 하는 상황이라 형의 분노가 가라앉을 때까지 라반의 집에 가 있으라는 어머니의 말을 듣고 가나안을 떠나갔습니다.
 
형 에서는 사냥에 익숙한 사람으로 야곱이 형에게 죽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밧단아람으로 도망을 간 것입니다. 그런데 밧단아람에서 돌아오게 된 상황도 보면 상황으로 인한 두려움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이 밧단아람을 떠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주셨습니다. 외삼촌 라반의 가족이 야곱에 대해서 처음에는 호의적이었고 라반은 야곱으로 인해서 자신의 재산이 늘어나고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야곱이 떠나지 못하게 붙잡아 두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보니까 자기보다 야곱이 재산이 더 많아지는 것 같고 모든 것이 자기 재산으로 시작됐다는 생각이 들고 라반의 아들들도 야곱에 대한 불만이 커져가는 상황이었습니다.
 
야곱은 도저히 외삼촌과 함께 살아갈 수 없겠다고 느꼈을 때 하나님께서 떠나라고 하신 것입니다. 라반과 그의 가족들이 야곱에 대해서 적대감을 느끼는 상황이라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야곱은 하나님께서 고향으로 떠나라는 말을 하셨기 때문에 가나안으로 떠나가고 있었습니다. 야곱이 고향으로 가는 길은 형통할 것 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야곱은 가나안으로 가는 길에서 하나님의 사자를 만났습니다. 1-2절을 보면
32:1 󰡒야곱이 길을 가는데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를 만난지라󰡓
32:2 󰡒야곱이 그들을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하나님의 군대라 하고 그 땅 이름을 마하나임이라 하였더라󰡓
 
야곱이 가나안으로 가면서 하나님께서 나를 떠나지 않으실 것이란 믿음으로 가는데 가는 길에 하나님의 사자들을 만났습니다. 야곱은 감동을 했을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해서 가는 길에 하나님께서 사자를 보내서 만나게 하셨다고 생각하고 감동을 받았을 것입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사자를 만난 것에 감동을 받아서 ‘마하나임’이라는 이름으로 이름을 붙였습니다. 마하나임이란 뜻은 ‘두 진영’ 이란 뜻입니다. 야곱은 자신이 가는 길에 하나님의 천군 천사들이 좌우에서 자신을 지켜주신다는 확신을 갖고 마하나임이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사자를 만나서 기분이 좋았고 이제 모든 것이 형통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형에게 사람을 보냈습니다. 3-5절을 보면
32:3 󰡒야곱이 세일 땅 에돔 들에 있는 형 에서에게로 자기보다 앞서 사자들을 보내며󰡓
32:4 󰡒그들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는 내 주 에서에게 이같이 말하라 주의 종 야곱이 이같이 말하기를 내가 라반과 함께 거류하며 지금까지 머물러 있었사오며󰡓
32:5 󰡒내게 소와 나귀와 양 떼와 노비가 있으므로 사람을 보내어 내 주께 알리고 내 주께 은혜 받기를 원하나이다 하라 하였더니󰡓
 
야곱은 형 에서의 성격을 알기 때문에 자신이 형을 만나기 전에 먼저 사람을 보내서 자신의 상황에 대해서 이야기 하게 했습니다. 야곱이 이렇게 한 것은 에서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기 때문에 상황을 점검하기 위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셔서 가는 길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지켜주실 것이란 믿음이 있었고 하나님의 사자들을 만나서 마하나임을 경험하게 했습니다.
 
야곱이 생각하기에 20년이란 세월이 흘렀으니까 형 에서의 마음도 분명히 달라졌을 것이란 기대를 했습니다. 사람들을 보내면서 그런 기대를 갖고 보냈던 것입니다.
 
그러나 야곱의 기대와는 달리 에서는 야곱의 이야기를 듣고 400명을 데리고 야곱에게 오고 있었습니다. 6절을 보면 󰡒사자들이 야곱에게 돌아와 이르되 우리가 주인의 형 에서에게 이른즉 그가 사백 명을 거느리고 주인을 만나려고 오더이다.󰡓
 
야곱은 이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철렁했을 것입니다. 내심 하나님께서 말씀하셔서 돌아가는 길이었고, 마하나임에서 하나님의 사자를 만나기도 했고, 모든 것이 순조롭게 될 것이란 기대를 했습니다.
 
그런데 현실은 형이 400명을 데리고 자신을 만나러 온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야곱은 하나님께서 지켜주실 것이란 믿음이 있었고 분명히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신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보호가 있을 것이란 기대를 했는데 현실은 자신의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살면서 예배 시간에 은혜를 받고 기도의 응답도 받았고 마음에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모든 것이 다 잘 될거야 그런 생각을 했는데 막상 우리 앞에 닥친 현실은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기대했는데 기대한 일이 반대가 되는 것 같을 때 느끼는 절망감은 엄청나게 큰 법입니다. 지금 야곱은 두려움과 절망을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야곱은 큰 절망을 느끼면서 안절부절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야곱은 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
 
2. 다시 하나님 앞에 섰습니다.
형 에서가 400명을 데리고 온다는 말을 들은 야곱은 마음이 답답하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안절부절하면서도 나름대로 전략을 짰습니다. 야곱은 자신이 형 에서와 싸워서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브엘세바를 출발해서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났던 야곱은 그 때의 기억을 되살리며 다시 하나님 앞에 서는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야곱은 하나님 앞에 서는데
 
홀로 남았습니다. 24절을 보면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13-23절까지는 야곱이 에서가 400인을 데리고 맞으러 온다는 이야기를 듣고 형을 만나기 전에 마음을 누그러뜨릴 예물을 준비해서 보내고 가족들을 모두 시내를 건너가게 한 이야기입니다.
 
야곱은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 위해서 모든 준비를 했습니다. 인간적으로 형을 위한 예물을 준비해서 보내고 그리고 가족들을 모두 건너게 한 후에 혼자서 하나님 앞에 서기 위한 준비를 했습니다.
 
때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서야 하는데 모든 것을 내려놓고 혼자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가족과 함께 또는 신앙의 동지들과 함께 하나님 앞에 합심해서 기도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정말 긴박한 문제 앞에서 인간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무런 답이 보이지 않을 때 모든 것을 내려놓고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야곱은 벧엘에서 혼자만의 시간에 하나님을 만난 경험을 했기 때문에 이번에도 모든 것을 내려놓고 즉 가족들을 다 먼저 건너가게 하고 혼자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시간을 가진 것입니다.
 
야곱은 혼자 남아서 지난 날을 돌아보았을 것입니다. 본문에 홀로 남은 야곱이 씨름을 했다고 기록하지만 혼자 남은 야곱은 아마도 지난 날 벧엘에서의 시간과 그동안 밧단아람에서의 시간을 돌아보았을 것입니다.
 
창 28:15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이제는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밧단아람에서 가나안으로 돌아가라고 하셨습니다. 창 31:13 󰡒나는 벧엘의 하나님이라 네가 거기서 기둥에 기름을 붓고 거기서 내게 서원하였으니 지금 일어나 이 곳을 떠나서 네 출생지로 돌아가라 하셨느니라󰡓
 
이 말씀들을 다시 회상하면서 그리고 지난날 하나님께서 자신이 힘들고 어려운 고비마다 함께 하셨던 일들을 회상하며 하나님의 도움을 구했을 것입니다.
 
우리가 힘든 상황에 직면하게 될 때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말씀을 기억하고 내가 겪었던 모든 힘든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돕는 손길이 함께 했음을 기억하면서 그 때도 나를 도와주시고 지켜주신 하나님께서 지금도 나를 도우실 것을 믿고 하나님 앞에 서야 합니다.
 
야곱은 밤새 씨름을 했습니다. 24절을 다시 보면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여기서 야곱은 어떤 사람과 씨름을 했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여기서 말한 어떤 사람은 구약의 표현에 하나님의 천사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해석입니다.
 
야곱은 벧엘에서처럼 하나님 앞에 서길 원했고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으로 있을 때 나타난 사람이 하나님의 천사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천사를 붙잡고 씨름을 했는데 씨름이란 단어는 ‘단단히 붙잡다’, ‘껴안다’ 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천사를 단단히 붙잡고 하나님의 도움을 간구한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을 단단히 붙잡는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야곱과 같이 하나님 앞에 서서 간절히 붙잡는 기도를 할 때 어떤 어려움도 이길 수 있습니다.
 
3.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라
야곱은 벧엘에서처럼 혼자 하나님 앞에 서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하나님의 천사가 그곳에 찾아왔고 천사와 씨름을 하던 야곱은 끝까지 놓지 않았습니다. 25절을 보면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그가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매 야곱의 허벅지 관절이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어긋났더라󰡓
 
야곱은 허벅지 관절이 어긋났음에도 천사를 놓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내게 축복하지 않으면 가게 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26절을 보면 󰡒그가 이르되 날이 새려 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이르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야곱은 벧엘에서 하나님의 언약을 받았습니다. 창 28:14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나님은 야곱에게 너와 네 자손에게 네가 누워있는 땅을 주겠다고 말씀하시고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복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야곱은 그 약속의 말씀을 의지했기 때문에 밧단아람에서 지냈고 라반은 야곱으로 인해 복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상황은 야곱에게 매우 두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에서가 400인을 거느리고 야곱을 맞으러 온다는 말을 들었을 때 두려움과 절망을 느꼈습니다. 이런 두려운 상황에서 야곱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축복의 언약을 기억하면서 하나님의 천사에게 나를 축복하지 않으면 가게 하지 않겠다고 말하면서 끝까지 붙잡고 늘어진 것입니다.
 
야곱은 벧엘 언약을 기억하면서 하나님의 축복을 간구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는 내게 주신 말씀과 언약을 붙들고 기도해야 합니다. 성도는 언제나 하나님이 주실 복을 기대하는 믿음으로 기도하고 간구해야 합니다. 믿고 간구할 때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나를 축복하지 않으면 가지 않게 하겠다는 야곱에게 다시는 야곱이라 부르지 않고 이스라엘이라 부르리라고 말했습니다. 27-28절을 보면
32:27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야곱이니이다.󰡓
32:28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하나님의 천사는 야곱을 이길 수 없게 되자 이름을 물었습니다. 야곱은 나의 이름이 야곱이라고 대답하지 하나님의 천사는 너를 다시는 야곱이라 부르지 않고 이스라엘이라 부르리라고 말했습니다.
 
야곱은 발꿈치를 잡았다는 뜻입니다. 에서가 먼저 나오자 에서의 발꿈치를 잡고 나왔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야곱의 삶은 에서의 발꿈치를 잡는 것 같은 삶이었습니다.
 
배 고픈 에서에게 먹을 것을 주고 장자의 명분을 사고, 아버지를 속여서 에서 대신에 축복 기도를 받고 라반의 집에서도 그렇게 정직하게 보이지는 않는 방법으로 부를 축척했습니다.
 
야곱의 지금까지의 삶은 발꿈치를 잡은 자의 삶이었다면 얍복 나루 사건을 계기로 이제는 이스라엘이라 즉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는 이름을 주신 것입니다.
 
이것은 야곱에게 중요한 전환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벧엘은 하나님의 만나서 언약을 받은 곳이고, 얍복 나루에서는 발꿈치를 잡은 자가 아닌 하나님과 씨름하여 이긴 자 즉 적극적으로 기도하고 간구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리게 된 사람이란 의미로 바뀐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개인적인 벧엘이 있어야 합니다. 또한 야곱이 이스라엘이 되는 것 같이 우리의 삶에 새로운 전환점이 필요합니다. 야곱의 삶이 이스라엘로 변화되는 것과 같이 이스라엘이라고 불려지는 삶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야곱은 그곳 이름을 브니엘이라고 하였습니다. 30-32절을 보면
32:30 󰡒그러므로 야곱이 그 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
32:31 󰡒그가 브니엘을 지날때에 해가 돋았고 그의 허벅다리로 말미암아 절었더라󰡓
32:32 󰡒그 사람이 야곱의 허벅지 관절에 있는 둔부의 힘줄을 쳤으므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지금까지 허벅지 관절에 있는 둔부의 힘줄을 먹지 아니하더라󰡓
 
야곱은 천사와의 씨름을 통해서 이스라엘이란 이름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곳 이름을 브니엘이라고 불렀습니다. 브니엘은 하나님의 얼굴이란 뜻으로 이스라엘이란 이름을 주신 것으로 볼 때 자신과 씨름하신 분이 하나님이란 믿음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벧엘에서 하나님은 밤에 꿈에 나타나셨지만 브니엘에서는 직접 하나님을 대면하여 만났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야곱은 벧엘에서 하나님의 언약을 들었고, 브니엘에서 야곱이 아닌 이스라엘이란 이름을 받았습니다.
 
야곱이 이스라엘이 된 것처럼 우리에게도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예배드리는 곳이 벧엘이고 또한 브니엘에 되어서 하나님의 음성을 받고 하나님을 만나는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서도 야곱과 같은 고난의 시간이 아닌 브니엘에서 이스라엘이란 이름을 받은 것과 같이 새로운 영적인 삶의 길이 열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복의 문이 열리는 귀한 전환점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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