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깨우러 가노라(7월 23일 오후 예배)
성 경 : 요한복음 11:1-16(신약 164)
 
10장에서 예수님은 나는 선한 목자라고 말씀하시면서 나를 따르는 양들에게 생명을 주고 더 풍성하게 얻게 하려고 왔다고 말씀하시면서 나를 따르는 자는 생명을 얻고 들어와도 나가도 꼴을 얻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10장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유대 지도자들에게 계속해서 공격을 받으시면서도 생명을 주신다고 말씀하시고 내가 주는 생명을 누구도 빼앗을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에 누구도 하나님에게서 우리를 빼앗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11장은 주제가 바뀌어서 죽은 나사로를 다시 살리신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한 사도는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던 나사로와 그의 누이 마르다와 마리아에 대해서 기록을 했습니다.
 
나사로와 마르다와 마리아 삼 남매를 예수님께서 사랑하셨는데 그중에서도 나사로를 사랑하셨다고 기록했습니다. 나사로가 죽은 것과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이야기를 기록한 전반부에 해당하는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은 죽은 나사로를 살리러 간다고 하지 않으시고 내가 깨우러 가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죽는 것을 죽는 것이라고 표현하지 않고 잔다고 표현합니다. 죽은 자들이 아니라 잠자는 자들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살다가 어느날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서 육체의 생명이 끝나는 때가 있습니다. 이때를 세상 사람들은 죽었다고 하지만 믿는 성도들은 죽은 것이 아니라 자는 것입니다.
 
죽으면 다시 볼 수 없지만 자는 사람은 깨어나면 다시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 안에서 잠을 자는 것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잠자는 자들이 깨어나서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말씀을 통해서 “내가 깨우러 가노라” 라고 말씀하셨는데 이 말씀을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1. 사랑하는 자가 병들었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어느 지역에 계셨는지 모르지만 아마도 갈릴리 지역에 어느 마을에 계실 때 베다니에 살던 나사로에게 일어난 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기록을 보면
 
베다니에 사는 나사로와 삼 남매가 있었습니다. 1-2절을 보면
11:1 “어떤 병자가 있으니 이는 마리아와 그 자매 마르다의 마을 베다니에 사는 나사로라”
11:2 “이 마리아는 향유를 주께 붓고 머리털로 주의 발을 닦던 자요 병든 나사로는 그의 오라버니더라”
 
어떤 병자가 있었다고 기록하면서 어떤 병자를 이렇게 소개했습니다. 마리아와 마르다라는 자매가 베다니에 살고 있었는데 그의 오라비 나사로가 병들었다는 것입니다.
 
이 삼 남매를 소개하면서 마리아가 향유를 예수님께 붓고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닦았다고 소개했습니다. 마리아가 예수님에게 향유를 부은 이야기는 12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리아는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가다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닦았습니다. 그런데 순전한 나그 한 근의 향유의 값은 약 300데나리온이나 하는 비싼 것이었습니다.
 
마리아는 아주 비싼 향유를 한 번에 예수님께 부어드린 것입니다. 마르다는 예수님을 대접하는 일을 열심히 하던 사람이었습니다. 누가복음 10장에 마르다가 예수님을 열심히 대접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삼 남매와 예수님의 관계에 대한 더 많은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예수님께서 이들을 사랑하셨다고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볼 때 성경에 기록되지 않은 더 많은 이야기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과 달리 이 삼 남매가 예수님과 특별한 관계였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예수님은 이들 삼 남매에게 남다른 애정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었던 그 가정에 문제가 생겼는데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나사로가 병들었습니다. 3절을 보면 “이에 그 누이들이 예수께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하니”
 
나사로가 병들었고 나사로는 마르다와 마리아의 오라비인데 마르다와 마리아가 예수님이 어디에 계신지를 알아보고 예수님에게 사람을 보냈습니다. 마르다와 마리아는 사람을 보내면서 예수님에게 가서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라고 말하라고 했습니다.
 
나사로와 예수님의 관계에 대해서 요한은 특별히 그를 사랑하셨다고 기록을 했습니다. 나사로와 그의 남매들의 신앙이 예수님 보시기에 사랑스러운 믿음이었고 그래서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사로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그가 죽을 병에 걸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4절을 보면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시더라”
 
마르다와 마리아는 자기 오라비 나사로가 병들었는데 상태가 심각한 것을 알았습니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병이 낫질 않고 점점 악화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너무 다급한 나머지 예수님이 어디 계신지를 알아보고 사람을 보냈습니다.
 
마르다와 마리아가 생각하기에 나사로의 상태는 심각하고 곧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마르다와 마리아가 보낸 사람들이 전하는 소식을 듣고 이 병은 즉 나사로가 걸린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나사로는 죽어가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죽어가는 것을 아시면서도 죽을 병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사로가 병에 걸린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나사로가 이 병에 걸림으로 인해서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고 나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보기에는 죽을 병인데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희망이 없는데 하나님은 희망이 없는 이 일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게 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2. 내가 깨우러 가노라
예수님은 병든 나사로의 이야기를 들으시고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내가 깨우러 간다고 말씀하시는데
 
나사로의 소식을 듣고 이틀을 더 머무셨습니다. 5-6절을 보면
11:5 “예수께서 본래 마르다와 그 동생과 나사로를 사랑하시더니”
11:6 “나사로가 병들었다 함을 들으시고 그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유하시고”
 
예수님께서 나사로의 이야기를 들으셨지만 곧 바로 베다니로 가신 것이 아니라 계신 곳에서 이틀을 더 머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틀을 더 머무셨다고 기록하면서 예수님은 본래 마르다와 그 동생과 나사로를 사랑하셨다고 기록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사로의 그의 누이들을 사랑하셨는데 이상하게도 이틀을 더 머무셨다 그런 의미로 볼 수도 있습니다. 요한이 볼 때 이 상황이 전개될 때 예수님이 거기에서 이틀을 더 머무신 것이 이상하게 느껴졌을 수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나사로가 병들었으면 빨리 가셔서 고쳐주시는 것이 일반적인 일인데 사랑하시는데도 이틀을 더 머무셨다는 것은 이해하기 쉽지 않은 일일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나사로를 빨리 고쳐주시려고 하지 않고 나사로가 죽어가는 것을 아시면서도 이틀을 더 머무시면서 기다리신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때를 위한 기다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병이 죽을 병이 아니라고 하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틀을 더 머무신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때를 기다리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급하다고 해서 급하게 역사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정하신 때가 될 때까지 기다리게 하십니다. 우리는 지금 이루어지지 않는 것에 대해서 아직 하나님의 때가 되지 않았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틀을 더 머무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유대로 다시 가자고 말씀하셨습니다. 7-10절까지를 보면
11:7 “그 후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유대로 다시 가자 하시니”
11:8 “제자들이 말하되 랍비여 방금도 유대인들이 돌로 치려 하였는데 또 그리로 가시려 하나이까”
11:9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낮이 열두 시간이 아니냐 사람이 낮에 다니면 이 세상의 빛을 보므로 실족하지 아니하고”
11:10 “밤에 다니면 빛이 그 사람 안에 없는 고로 실족하느니라”
 
이틀을 더 머무신 예수님은 이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때가 되었기에 다시 유대로 가자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유대로 가자고 하시자 제자들은 랍비여 방금도 유대인들이 돌로 치려 했는데 다시 그리로 가시려 하십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여기서 방금도라는 말은 몇 시간전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있었던 일을 상기하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은 유대 땅에 속하기 때문에 유대로 가자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제자들은 그곳에서 예수님을 돌로 치려고 했는데 다시 그곳으로 가시려고 하십니까? 위험하지 않습니까? 이런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그렇게 말한 것에 대해서 낮이 열두 시간이 아니냐 사람이 낮에 다니면 빛을 보므로 실족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빛이시기 때문에 지금은 실족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곧 어둠이 지배하는 시간이 올 것인데 그때는 실족할 수 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빛 가운데 걸어가면 실족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어둠 속에서 헤매면 실족하고 넘어지게 됩니다. 우리는 항상 어디가 되었든지 빛가운데 살아가면 어떤 어려움과 위협 속에서도 보호를 받는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내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는데 내가 깨우러 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11절을 보면 “이 말씀을 하신 후에 또 이르시되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
 
베다니는 유대땅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지금 계신 곳은 갈릴리 지방인 것 같고 베다니로 가시기 위해서 유대로 가시겠다고 말씀하셨는데 예수님께서 왜 유대로 가야하는가 하면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는데 내가 그를 깨우러 가려고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실은 나사로가 죽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은 나사로를 죽었다고 하지 않으시고 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성도의 죽음은 죽음이 아니라 깊은 잠을 자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사로가 잠들었기에 내가 가서 그를 깨우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는데 내가 나사로를 깨우기 위해서 유대로 가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3.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예수님은 나사로가 죽은 것을 아셨습니다. 그러나 깨우러 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계속해서 예수님은 나사로의 일을 통해서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다고 하자 제자들은 잠들었으면 낫겠나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12-13절을 보면
11:12 “제자들이 이르되 주여 잠들었으면 낫겠나이다 하더라”
11:13 “예수는 그의 죽음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나 그들은 잠들어 쉬는 것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생각하는지라”
 
제자들은 마르다와 마리아가 보낸 사람이 나사로가 병들었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나사로가 잠들었다고 하시자 제자들은 나사로가 잠들었으면 곧 낫겠네요.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제자들은 나사로의 병이 심각하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나사로는 이미 죽었는데 예수님께서 잔다고 하신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잔다고 하신 것에 대해서 제자들은 잠들어 쉰다는 뜻으로 이해했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하는 말을 듣고 예수님은 내가 거기 있지 이니한 것을 기뻐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14-15절을 보면
11:14 “이에 예수께서 밝히 이르시되 나사로가 죽었느니라”
11:15 “내가 거기 있지 아니한 것을 너희를 위하여 기뻐하노니 이는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그에게로 가자 하시니”
 
제자들이 잠들었다는 말을 이해하지 못한 것을 아시는 예수님은 나사로가 죽었다는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나사로가 죽은 그곳에 지금 있지 않고 여기에 있는 것으로 인해서 너희를 위해서 기뻐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만약 베다니에 계셨더라면 나사로를 고쳐주었을 것이기 때문에 죽은 자를 살리시는 것을 제자들이 볼 수 없을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나사로가 죽었지만 그곳에 내가 있지 않는 것이 오히려 기쁨이 될 일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나사로의 죽음은 그의 가족에게 그리고 나사로를 아는 사람들에게 슬픔이지만 그 슬픔은 잠시 후에 다시 살아남으로 인해서 기쁨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이고, 제자들에게는 너희가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것을 보게 됨으로 기뻐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때로는 응답받지 못해서 더 힘든 상황에 처하게 되는 것이 오히려 기쁨이 될 수 있습니다. 지금 당장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더 어려운 상황을 만나게 된다고 할지라도 오히려 그 어려움을 하나님께서 다른 방법으로 해결해 주실 것이 확실하기 때문에 어려움은 오히려 기쁨이 되는 줄 믿습니다.
 
이렇게 된 모든 것은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5-16절을 보면
11:15 “내가 거기 있지 아니한 것을 너희를 위하여 기뻐하노니 이는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그에게로 가자 하시니”
11:16 “디두모라고도 하는 도마가 다른 제자들에게 말하되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 하니라”
 
예수님은 내가 지금 베다니에 있지 않은 것이 너희를 위해서 기뻐하는데 왜냐하면 너희는 내가 나사로에게 행할 일로 인해서 더 굳건하게 나를 믿게 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사로가 병든 것을 고치시는 것보다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이라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병든 자를 고친 것보다 죽은 자를 살리는 것이 더 믿음을 갖게 하는 계기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의 믿음을 위해서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방법으로 더 크고 놀라운 일을 하시는 분이십니다. 나사로가 죽은 것이 슬픔이지만 그를 다시 살리심으로 기적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나타내신 것처럼 우리가 더 큰 어려움을 겪는 것이 우리의 믿음을 성장시키는 기회가 될 줄 믿습니다.
 
잠든 자를 깨우러 가신 예수님께서 잠든 것 같은 우리의 절망적인 상황을 깨우사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하게 하실 줄 믿습니다. 내가 너희 가정을 깨우러 간다.
 
내가 잠든 너희 사업체를 깨우러 간다. 내가 너의 모든 절망을 깨우러 간다고 말씀하시고 깨워주시는 기적의 역사를 이루실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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