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말을 지키라(7월 2일 오후 예배)
성 경 : 요한복음 8:48-59(신약 159)
 
영국의 저명한 정신분석학자이자 「힘의 심리」의 저자 존 하트필드(John Heartfield) 박사는 동일한 사람들의 악력을 세 가지 방식으로 실험했습니다.

먼저 일반적인 상태에서 보통 악력을 측정했습니다. 이 상태에서 평균 악력은 45kg이었습니다.

다음으로는 심리적으로 무력감을 느끼는 상황을 겪게 한 뒤 ‘당신은 매우 약한 사람입니다’ 라는 암시를 준 뒤 악력을 측정했습니다. 그러자 일반적인 상태의 절반도 되지 않는 13kg의 평균 악력이 나왔습니다.

마지막으로는 심리적으로 강함을 느낄 수 있는 상황을 겪게 했습니다. ‘나는 강하다’라는 암시를 받고 난 뒤 악력을 측정하자 평균 악력은 64kg이었습니다.

단지 심리적인 상태의 변화만으로 사람들은 본래 힘의 30%밖에 내지 못하기도 했고 반대로 50%나 더 힘을 내기도 했습니다.

셰익스피어는 ‘마음속에 의심을 키우는 사람은 충분히 얻을 수 있는 것들도 놓치는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더 많은 일을 이룰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아무 일도 이룰 수 없습니다. 생각의 차이가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변화시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살아간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믿음이 없는 사람들처럼 살아갈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지난 주에 예수님은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진리가 무엇인가 하면 진리는 예수님이고 진리를 안다는 것은 말씀을 내 안에 담고 살아가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도 예수님은 계속해서 말씀의 중요성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것은 그리고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말씀을 믿는 것이고 말씀을 통해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은 유대인들의 공격을 받는 상황에서도 내 말을 지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지키지 않는 것은 믿음으로 살지 않는 것입니다. 말씀을 듣고 말씀을 지키면 영원히 죽음을 맛보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을 중심으로 “내 말을 지키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1. 유대인들의 비판과 공격
예수님은 내가 진리를 말하므로 너희가 내 말을 믿지 않는다고 말씀하시면서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나왔다고 과격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비판하면서 공격적인 태도를 보이게 됩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비판하는 것을 보면
 
너는 사마리아 사람이다. 라고 비판했습니다. 48절을 보면 “유대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너를 사마리아 사람이라 또는 귀신이 들렸다 하는 말이 옳지 아니하냐”
 
예수님께서 앞절에서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데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은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 속한 자들이고 하나님께 속한 자들이 아니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자 유대인들이 발끈하면서 우리가 너를 사마리아 사람이라고 하는 것이 맞는 말인 것 같다고 말한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경멸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정통 유대인이 아니라 사마리아 사람인 것 같다고 말하면서 예수님을 사마리아 사람 취급을 하려고 한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사마리아 사람들을 경멸하는 것은 기원전 8세기에 북이스라엘이 멸망하면서 사마리아에 살던 많은 사람이 앗수르(아시리아)로 포로로 끌려갔고 또한 앗수르(아시리아) 사람들이 사마리아로 와서 살게 되었습니다.
 
앗수르 왕은 의도적으로 혼혈족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사마리아 사람들은 문화와 종교가 섞이게 되었고 또한 사마리아에 살던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의 결혼함으로 혼혈이 많이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이런 이유로 해서 남쪽 유대 왕국의 사람들은 북쪽의 사마리아인들이 순수한 정통 유대인이 아니라고 비판하면서 적대적인 태도를 취한 것입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유대인의 피와 이방인의 피가 섞인 혼혈족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사마리아 사람인 것 같다고 말하는 것은 그들이 생각하기에 예수님은 유대인들의 전통 신앙을 지키지 않는 것 같다고 말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 표현으로 하면 당신은 사이비 아니냐 그런 비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을 향해 귀신이 들렸다고 비판했습니다. 48절을 다시 보면 “유대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너를 사마리아 사람이라 또는 귀신이 들렸다 하는 말이 옳지 아니하냐”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자신들을 마귀의 자식이라고 비판한 것에 대응해서 예수님을 향해서 당신은 귀신이 들렸다고 비판을 한 것입니다. 그들이 귀신이 들렸다고 한 것은 자신들이 이해할 수 없는 기적을 많이 행하셨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병자를 고치고 죽은 자를 살리고 기적을 행하는 것을 보고 그런 일을 일반 사람들은 할 수 없는 일인데 예수님이 하시는 것을 보고 예수님이 평범한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저런 일을 한다는 것은 특별한 영의 힘이 있어야 하는 것이고 그래서 유대인들은 하나님에게 능력을 받은 것이 아니라 귀신이 들려서 예수님 안에 귀신이 역사하는 것이라고 비판한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비판했을 뿐만아니라 돌을 들어 치려고 했습니다. 59절을 보면 “그들이 돌을 들어 치려 하거늘 예수께서 숨어 성전에서 나가시니라”
 
예수님과 대화를 하면 할수록 자신들이 불리하고 예수님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자 예수님을 돌로 치려고 했습니다. 유대인들이 돌로 친다는 것은 율법을 어겼거나 이단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율법을 무시하고 또한 하나님을 자기 아버지라고 하고 아브라함을 보았다고 하는 것에 대해서 이단이라고 평가하면서 돌로 치려고 한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사역을 막는 길은 죽이는 것밖에 없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논리적인 말로 이길 수 없고, 기적을 행하시는 예수님을 영적으로도 이길 수가 없고,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물리적인 힘으로 이기는 방법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예수님을 제거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이고 돌을 들어서 예수님을 치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돌을 들어서 치려고 하는 것을 아시고 그들을 피해서 성전에서 나가신 것입니다.
 
말로 못 이기면 힘을 사용하려고 하는 것이 사람들의 일반적인 형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예수님의 자기 변호
예수님을 비판하는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은 스스로를 변호하셨습니다. 누구도 예수님을 위해서 나서서 변호해 주거나 예수님 편에서 이야기 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제자들도 예수님을 비난하는 유대인들 앞에서 예수님을 적극적으로 변호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하시고 스스로를 변호하셨습니다. 나중에 예수님께서 산헤드린 공회에서 재판을 받으실 때도 빌라도의 법정에 서셨을 때에도 아무도 예수님 편에서 진술하거나 변호하지 않았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예수님은 스스로 모든 짐을 짊어지시고 스스로를 변호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의 공격에 대해서 변호하시는데
 
나는 내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49절을 보면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나는 귀신 들린 것이 아니라 오직 내 아버지를 공경함이거늘 너희가 나를 무시하는도다.”
 
예수님은 나는 사마리아 사람도 아니고 귀신 들린 것도 아니다라고 말씀하시면서 내가 세상에 인간의 몸을 입고 온 것과 공생애 사역을 하는 것은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공경한다는 것은 높인다. 또는 존경한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내가 지금 이곳에서 이런 일을 하는 것은 귀신 들린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 하나님을 높여드리는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지만 아버지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이 땅에 오셨고 언제나 아버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서 역사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내가 하는 모든 일은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내가 하나님 아버지를 위해서 일을 하는데 너희는 나를 무시한다고 지적하셨습니다. 49절을 다시 보면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나는 귀신 들린 것이 아니라 오직 내 아버지를 공경함이거늘 너희가 나를 무시하는도다.”
 
여기서 너희가 나를 모욕한다는 말은 나는 아버지의 보냄을 받아서 세상에 와서 아버지의 일을 하는데 너희는 내가 아버지를 공경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역을 하는데 귀신들렸다고 비난함으로 나를 모욕하는 것이라고 지적하신 것입니다.
 
모욕하다는 말은 창피를 주다. 욕하고 멸시하다. 는 의미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일은 누구에게도 모욕을 당하고, 욕을 먹고 멸시를 당하실 일을 하신 것이 없지만 마귀는 사람들을 이용해서 예수님을 모욕하고 멸시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아무리 좋은 일을 하고 선한 사업에 힘쓰며 살아도 오히려 비난과 비판과 모욕과 욕을 당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도 모욕을 당하셨는데 우리가 모욕을 당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릅니다.
 
예수님은 계속해서 나는 내 영광을 구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50절을 보면 “나는 내 영광을 구하지 아니하나 구하고 판단하시는 이가 계시니라”
 
아버지를 공경하신다고 말씀하시고 계속해서 나는 내 영광을 구하지 않고 오직 아버지의 영광을 구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런 모든 것의 판단은 오직 하나님께서만 하시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이 말씀에서 우리는 두 가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나의 영광을 위해서 우리 교회의 영광을 위해서 우리가 신앙생활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착각하는 것은 우리를 드러내는 것이 전도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전도는 교회를 드러내고 목회자를 드러내고 유명한 성도들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세상에 나타내는 것보다 예수님의 이름을 높이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또한 하나님 이외에는 아무도 판단할 수 없습니다. 자주 강조하는데 우리가 누군가를 판단하고 비판하는 일을 열심히 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이외에는 누구도 판단하고 정죄할 권세가 없다고 지적하셨습니다. 예수님도 나도 판단하고 정죄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3. 내 말을 지키라
예수님을 비판하고, 죽이려고 하는 사람들 앞에서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하시면서도 당당하게 변호하신 예수님은 너희는 내 말을 듣고 지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왜 예수님의 말씀을 지켜야 하는지를 말씀하셨는데
 
내 말을 지키면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51절을 보면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아니하리라”
 
예수님께서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영생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육체는 언젠가는 이 땅에서의 삶을 마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육체가 삶을 마치는 것은 죽는 것이 아니라 잠자는 것입니다.
 
성경은 성도의 육체가 이 세상에서의 삶을 끝내는 것을 잠자는 것이라고 표현합니다. 예수님은 잠자는 나사로를 깨우러 가신다고 말씀하셨고 바울 사도도 죽은 자들이라고 표현하지 않는고 잠자는 자들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우리의 육체가 세상에서의 삶을 마치는 것은 잠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후에 주님이 다시 오실 때 모든 잠자는 성도들이 일어나서 주님과 더불어 영원히 저 천국에서 영원토록 살아가게 됩니다. 이것을 영생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너희가 내 말을 지키면 영원히 죽지 않고 영생을 얻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사는 것이 행복한 삶일까요? 이 세상은 질병도 있고, 눈물도 있고, 사고와 고통도 있습니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눈물과 아픔과 고통과 절망과 고난도 좌절과 실패가 없습니다. 거기에서는 모든 성도들이 영원히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잘 지키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 성도가 복된 성도이고 예수님의 말씀을 잘 지키는 사람들은 이 땅에서 하나님의 다스리심과 통치를 받아서 하나님 나라의 복과 은총을 누리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는 것입니다. 52-55절까지를 보면
8:52 “유대인들이 이르되 지금 네가 귀신 들린 줄을 아노라 아브라함과 선지자들도 죽었거늘 네 말은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영원히 죽음을 맛보지 아니하리라 하니”
8:53 “너는 이미 죽은 우리 조상 아브라함보다 크냐 또 선지자들도 죽었거늘 너는 너를 누구라 하느냐”
8:5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내게 영광을 돌리면 내 영광이 아무 것도 아니거니와 내게 영광을 돌리시는 이는 내 아버지시니 곧 너희가 너희 하나님이라 칭하는 그이시라”
8:55 “너희는 그를 알지 못하되 나는 아노니 만일 내가 알지 못한다 하면 나도 너희 같이 거짓말쟁이가 되리라 나는 그를 알고 또 그의 말씀을 지키노라”
 
예수님께서 내 말을 지키면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시자 유대인들이 반발하면서 아브라함도 죽었고 선지자들도 죽었고 죽지 않은 사람이 하나도 없는데 어찌해서 너는 네말을 지키면 죽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느냐고 비판을 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너희는 하나님이 영원하신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너희는 너희 관점에서 보기 때문에 죽었다고 생각하는데 나는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뜻을 따라서 아버지의 말씀을 너희에게 전하는 것이고, 내가 이 땅에서 고난을 받지만 아버지께서 나를 영화롭게 하실 것이고 나의 영광을 내게 돌려주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사실 이 표현들은 당시 유대인들이 이해하기 쉽지 않는 표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표현을 하시면서 나는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고 나는 아버지의 말씀을 너희에게 전한 것이기 때문에 너희가 내 말을 지키면 결국은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옛날에 어명이란 것이 있었습니다. 어명을 전하는 사람이 어명이요. 라고 말하면서 왕의 뜻을 전하면 그것을 전하는 사람은 전령이지만 그 말은 왕의 말이듯 예수님은 내가 하는 말은 아버지의 말씀이고 나는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고 너희가 내 말을 지키면 너희도 역시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결론적으로 너희는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고 기뻐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56절을 보면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조상이 아브라함이라는 것을 늘 자랑스럽게 이야기 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유대인들에게 너희 조상 아브라함이 나를 보기를 즐겁게 기대했고 나를 보고 기뻐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현대어 성경으로 보면 “너희의 조상 아브라함은 내 날을 보기를 기대하였고, 내가 오는 것을 보고 기뻐하였다.”
 
이 말은 아브라함이 성자 하나님의 날 즉 그 때를 기다린다는 의미와 함께 성자 예수님을 보고 기뻐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예수님은 이미 하늘에서 만난 것이고 아브라함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은총을 누리며 기뻐했다는 것입니다.
 
이 말을 우리에게 적용하면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을 지키면 예수님의 날 즉 재림의 날을 즐겁게 기다리게 되고 그날에 우리는 기쁨으로 주님을 만날 것이고 저 천국에서 영원히 주님과 더불어 살아가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지켜야 할 유일한 진리는 예수님의 말씀이고 예수님의 말씀을 지키는 모든 성도는 영원한 생명을 누리고, 주님 다시 오시는 날 주님을 만나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되고 저 천국에서 영원히 살게 됩니다.
 
주님의 말씀을 지키므로 영원한 생명을 누리고, 이 세상에서도 하나님 나라의 통치를 누리는 행복한 삶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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