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판단하지 않는다.(6월 18일 오후 예배)
성 경 : 요한복음 8:12-30(신약 158)
 
요즘 젊은 세대들이 많이 사용하는 표현 중에 “라떼” 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나이드신 분들이 젊은 사람들에게 ‘나 떼에는 말이야’ 라고 말하는 것을 빗대어서 ‘라떼’ 라고 표현합니다.
 
또 하나 젊은 세대들이 많이 사용하는 단어 중에 ‘꼰대’ 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노인, 기성세대나 선생을 뜻하는 은어이자 멸칭으로 원래의 의미에서 의미가 확장, 변형되어 연령대와는 상관없이 권위주의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윗사람 또는 연장자를 비하하는 멸칭으로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젊은 세대들이 꼰대라고 또는 라떼라고 부르는 상황들은 대부분은 젊은 세대들에 대해서 이해하지 못하고 어떤 일이나 상황에 대해서 판단하고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말할 때 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단어들은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이해하지 않고 자신의 관점에서 판단하기 때문에 생기게 되는 표현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난 주에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혀 온 여인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간음은 분명히 죄인데 예수님은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하시자 모두 그 자리를 떠나갔고 예수님은 여인에게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여인에게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은 지난 주에 나눈 말씀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지만 예수님은 지난 주에 나눈 사건의 연장으로 말씀하시고 있는 부분들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간단명료하게 정리할 수 있는 내용은 아닙니다. 오늘 말씀에서 전체적인 의미를 살펴보면서 은혜를 나누려고 하는데 그 중심에는 “나는 아무도 판단하지 않는다.”는 말씀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중심으로 “아무도 판단하지 않는다.”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는
 
1. 나는 세상의 빛이다.
요한복음은 1장부터 예수님을 빛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요한 사도는 예수님은 참빛이라고 소개하면서 어둠의 세상에 빛으로 오셨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요한 복음에서 예수님은 예수님 자신을 빛이라고 설명하셨습니다. 요한복음에는 예수님을 빛이라고 16번 소개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2장까지 예수님은 빛이라고 소개하고 있는데 13장부터는 예수님이 수난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 대한 이야기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수난 이야기 이외에의 기록해서 빛은 중요한 주제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본문을 시작하시면서 나는 세상의 빛이라고 선포하셨습니다. 나는 빛이라고 선포하신 예수님의 말씀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12절을 보면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전에 한 밤 중에 시골길을 운전하곤 했는데 한 밤 중에 시골길을 운전하는 것은 많이 힘든 일입니다. 가로등이 있으면 좋은데 가로등도 없고 달도 뜨지 않는 어두운 밤에는 자동차의 라이트만으로 운전하는 것이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어둠이 덮고 있기 때문에 도로의 사정이나 주변 상황을 알 수 없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운전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요즘은 서울 시내에서 밤에 운전하는 것도 어렵게 느껴집니다. 밤인데 비까지 오면 정말 운전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것을 길을 걷는 것으로 비유하는데 길을 갈 때 밝은 대낮이면 별 어려움 없이 걸어갈 수 있지만 캄캄한 밤이 되면 후레쉬를 들고 길을 가도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한 밤 중인데 내가 가려는 곳에 대낮같이 밝은 빛이 비추어진다면 우리는 어렵지 않게 길을 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나는 빛인데 나를 따르면 내가 너희 인생길을 비춰줄 것이고 그래서 어둠에 다니지 않게 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빛이 있는 길을 가는 것과 어둠의 길을 가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어둠 속에서 제대로 볼 수 없는 상황에서 가면 실수도 하게 되고 넘어지기도 하고, 목적지 까지 가는 것이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반대로 밝은 빛의 인도를 받으며 가면 힘들지 않게 원하는 목적지까지 갈 수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빛이 되어주셔서 우리가 가야 할 길을 알게 하시고, 바른 길로 가게 하시고 어둠의 길 즉 사망의 흑암의 길을 가지 않도록 지켜주십니다.
 
우리가 주님의 빛의 인도를 받는다는 것에 대해서 시편 119:105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라고 노래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는 빛이라고 말씀하시자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에게 반론을 제기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반론에 대해서 대답하시면서 내 증언은 참되다고 대답하셨습니다. 13-14절을 보면
8:13 “바리새인들이 이르되 네가 너를 위하여 증언하니 네 증언은 참되지 아니하도다.”
8:1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나를 위하여 증언하여도 내 증언이 참되니 나는 내가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 것을 알거니와 너희는 내가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
 
당시 예루살렘에 있던 종교 지도자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예수님을 제거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고, 그런 상황에서 예수님이 빛이라고 말씀하시자 예수님에게 당신이 당신에 대해서 증언하는 것은 참되지 않다고 반박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는 빛이라,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이렇게 이야기 하는 것은 증언의 효력이 없다는 말입니다.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고, 빛이라는 것을 증언해 줄 증언의 효력이 있는 증언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당신이 하는 말을 우리가 믿을 수 없다고 말한 것입니다. 유대 종교지도자들의 관심은 유대인들이 하나님 나라의 은총을 누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받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들이 가진 기득권을 빼앗길 수 없다는 생각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든지 자신들의 지도력을 위협한다고 생각하는 예수님을 제거하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진실하지 못하다고 비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너희가 나의 증언이 참되지 않다고 말하는데 나의 증언은 모든 것이 진실한 것이라고 대답하셨습니다.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알고 있는 창조주이기 때문에 내가 나를 증언하는 것은 참된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다른 증인이나 증언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증언하기 위한 다른 증언자가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시고, 참과 진리이시기 때문에 예수님의 증언은 참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의 증언이 참되다고 말씀하시면서 너희가 나를 알았다면 아버지를 알았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7-19절까지를 보면
8:17 “너희 율법에도 두 사람의 증언이 참되다 기록되었으니”
8:18 “내가 나를 위하여 증언하는 자가 되고 나를 보내신 아버지도 나를 위하여 증언하시느니라”
8:19 “이에 그들이 묻되 네 아버지가 어디 있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너희는 나를 알지 못하고 내 아버지도 알지 못하는도다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라”
 
요한복음에서 예수님께서 계속 강조하신 것은 나를 보면 아버지를 본 것이고 나를 알면 아버지를 아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너희가 나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아버지를 알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나를 위해서 내가 증언하지만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나를 증언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나를 통해서 증언하시기 때문에 나의 증언이 참되다고 말씀하시고, 나는 아버지께서 어둠의 세상을 밝히는 빛으로 보내신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2. 나는 아무도 판단하지 않는다.
나는 빛이라고 말씀하실 때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에게 당신의 증언은 참되지 않다고 말한 것에 대해서 답변을 하시면서 나는 아무도 판단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바리새인들을 향해서 너희는 육체를 따라 판단한다고 지적하셨습니다. 15절을 보면 “너희는 육체를 따라 판단하나 나는 아무도 판단하지 아니하노라”
 
여기서 육체를 따라 판단한다는 말은 외적은 조건을 보고 판단한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에 대해서 판단하는 근거는 갈릴리 나사렛 출신이라는 것과 예수님의 상황이 당시에 사람들이 판단할 때 가난하고 보잘 것 없는 사람으로 보이는 상황이었고 그런 기준에 의해서 판단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에 대해서 판단할 때 거의 이런식으로 판단하게 되는 경우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많이 보는 것은 어느 지역 출신이야? 무슨 성이냐? 이런 것을 제일 많이 물어보고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 안에는 지역이나 어떤 성이냐에 따른 편견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리고 어느 학교 출신이냐? 어떤 집안 출신이냐? 이런 걸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너희들은 지금도 그렇게 육체를 따라 즉 외적인 조건을 따라서 판단하고 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나는 아무도 판단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15절을 보면 “너희는 육체를 따라 판단하나 나는 아무도 판단하지 아니하노라” 예수님은 나는 사람들처럼 육체를 따라서 또는 외모를 보고 사람들 판단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닮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은 어느 지역 사람인지, 무슨 성을 가진 사람인지, 가정의 배경이 어떤지 그 외에도 사람들이 판단하는 근거가 되는 모든 것을 보고 판단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도 사람들의 외적인 조건이나 상황을 보고 판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시는 것이 아니라 중심을 보십니다.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도 외적인 조건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믿음과 중심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나는 아무도 판단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시면서 나의 판단은 참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16절을 보면 “만일 내가 판단하여도 내 판단이 참되니 이는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계심이라”
 
예수님은 판단을 못하시기 때문에 판단을 하지 않으시는 것이 아니라 정확하게 판단하시지만 사람들을 외적이 조건을 판단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의 생각을 아시고,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시지만 아무도 판단하지 않으시는데 우리는 알지도 못하면서 성급하게 판단하고 정죄하곤 합니다.
 
우리가 판단하고 정죄하는 사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을 인정하고, 배려하고 존중하고, 사랑으로 감싸주고 덮어주는 믿음의 사람들이 됩시다.
 
3. 내가 가는 곳에 너희가 오지 못한다.
21절부터는 조금 다른 주제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앞으로 있을 일들에 대해서 말씀하시면서 너희가 내가 가는 곳에 오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너희는 나를 찾다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1절을 보면 “다시 이르시되 내가 가리니 너희가 나를 찾다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겠고 내가 가는 곳에는 너희가 오지 못하리라”
 
예수님은 앞으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실 것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물론 여기에서 자세하게 설명하신 것은 아니기 때문에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아직 제대로 이해하지는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가는데 너희가 나를 찾으려고 하겠지만 나 있는 곳에는 오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너희가 나 있는 곳에 오지 못하는 것은 너희 죄 가운데서 죽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나는 하늘에 있는데 너희는 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죄 가운데 죽게 되면 나 있는 곳에 올 수가 없고 나를 만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그 이야기를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죄를 해결하기 위해서 오셨는데 예수님을 믿지 못하면 죄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기 때문에 예수님이 계신 곳에 갈 수 없습니다. 24절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하였노라 너희가 만일 내가 그인 줄 믿지 아니하면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예수님은 이 모든 것은 인자가 들린 후에 알게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28절을 보면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인자를 든 후에 내가 그인 줄을 알고 또 내가 스스로 아무 것도 하지 아니하고 오직 아버지께서 가르치신 대로 이런 것을 말하는 줄도 알리라”
 
지금 내가 하는 말들을 너희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내가 들린 후에 즉 승천한 후에는 알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도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의 의미를 승천하신 후에 깨달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이해하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에 임하신 성령의 인도하심 필요합니다. 오늘도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내 생각대로 이해하려고 하지 말고 성령 충만을 받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말씀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고 믿고 말씀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은 나는 나를 보내신 그분이 기뻐하시는 일을 행한다고 고백하셨습니다. 29-30절을 보면
8:29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나는 항상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
8:30 “이 말씀을 하시매 많은 사람이 믿더라”
 
예수님을 나를 보내신 하늘 아버지께서 항상 나와 함께 하시고 나는 그분을 기쁘시게 하는 일을 한다고 고백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하나님이시지만 언제나 예수님을 보내신 아버지를 기쁘시게 하는 일을 하셨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나를 기쁘게 하고 내가 기뻐하는 일이 아닌 우리를 이곳에 보내신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고후 5:9 “그런즉 우리는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
 
히 11: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우리가 할 일은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참빛 교회 모든 성도가 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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