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로 와서 마셔라(6월 4일 오후 예배)
성 경 : 요한복음 7:37-53(신약 156)
 
초막절을 맞이해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성전에서 가르치실 때에 유대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잡으려고 했고, 예루살렘에 사는 사람들 중에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의심하는 자들도 있었지만 그런 중에서도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오늘은 예수님께서 명절 마지막 날에 선포하신 말씀과 명절이 끝나는 상황에서 여전히 예수님을 잡으려는 무리들이 있다는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통해서 천국 복음을 전하시고, 가르치시고, 고치셨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역들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희망이고 축복이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자신들을 위협한다고 생각하면서 적대적인 관계가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예수님의 사역을 통해서 은혜를 받고 감동을 받고 희망을 갖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하나님이신 예수님도 모든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믿게 하시지 못했습니다.
 
인간은 죄의 본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그래도 받아들이지 못하고 믿지 못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은혜를 받기 위해서는 우리의 닫힌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마음을 열고 말씀을 받아야 믿어지고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마음을 열고 말씀을 받기 위해서 성령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누구든지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고 예수님을 믿을 수가 없고, 성령의 도우심이 없이 성경을 믿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은 예수님께서 명절 마지막날에 하신 말씀과 그 때에 있었던 일을 기록한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내게로 와서 마셔라” 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1. 내게로 와서 마셔라
명절 기간 동안 예루살렘에서는 예수님과 관련해서 여러 상황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특별히 어떤 상황이 발생하지는 않았고 이제 명절의 마지막 날이 되었습니다.
 
초막절은 한 주간이지만, 거기 하루를 더하여 8일 동안 지켰습니다. 유대인들은 이 초막절 기간에 매일 실로암못에서 물을 길어 가지고 행렬을 지어 성전 문에 돌아와서 물을 붓는 행사가 있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한는 것은 그들의 선조들이 광야에 있을 때 바위에서 이적으로 솟아 나온 물을 기념하는 뜻이라고 합니다.
 
마지막 날은 아마도 이런 행사들을 더 성대하게 진행했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물을 길어서 행렬을 지어 성전 문까지 오는 행사를 하는 상황에서 광야에서 반석에 생수를 내게 하신 기적을 기념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말씀하셨는데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37절을 보면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실로암에서 물을 길어가는 것은 광야에서 물이 없어 하나님께 구하매 반석에서 물을 나오게 해서 마시게 하신 것을 기념하는 행사를 하는 상황에서 예수님은 광야에서와 같이 마실 물이 없어 갈증을 느끼는 자들은 내게로 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몸은 물이 없이 살아가는 것이 거의 불가능합니다. 가끔 특별한 상황을 제외하고 사람들에는 누구나 물이 필요하고 물을 적당하게 섭취를 해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몸이 물이 필요하듯이 우리의 영혼도 영적인 물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영적으로 목마름을 느끼는 사람이란 뭔가 모르지만 마음이 공허하고 마음이 힘든 사람들은 영적으로 목마른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은 영적으로 목마른 사람들은 내게로 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 55:1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고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하셨듯이 예수님께서 너희 목마른 자들아 내게로 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몸이 갈증을 느낄 때 물을 찾듯이 우리의 영혼이 갈증을 느낄 때 주님을 찾아야 합니다. 갈증을 느낄 때 잘못된 물을 마시면 오히려 더 갈증을 느끼게 되고 쓰러지게 됩니다. 갈증을 느낄 때 필요한 것은 깨끗한 생수이듯 우리의 영혼이 갈증을 느낄 때 주님을 찾아야 합니다.
 
목마른 자들이 내게로 와서 마시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 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38절을 보면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예수님은 목마른 자들은 내게로 와서 마시라고 하셨는데 우리가 예수님에게 와서 마신다는 것은 나를 믿는 것 즉 예수님을 믿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영적 갈증을 해결하는 비법은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믿고, 나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고, 나의 모든 병을 고치시고, 다시 오실 왕이심을 믿는 것은 영적 생수를 마시는 것입니다.
 
물은 한 번 마시면 다시 목마르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계속해서 우리의 심령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넘치게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에서 요한복음 4:13-14절에서
4:1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4:14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에서 마시는 물은 계속 다시 목마르게 되지만 내가 주는 물을 마시면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는데 그 이유는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면 우리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솟아나는 생명의 생수를 경험하게 되고 그것이 끊임없이 솟아난다는 것입니다. 믿음은 우리의 영혼의 갈증을 해결하는 생수의 공급원이라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예수님은 예수님이 주시는 생수는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39절을 보면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예수님은 믿는 자들이 성령을 받게 되는데 성령을 받으면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내주하시면서 계속해서 영적 생수를 제공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을 받는 것을 충만이라고 표현하는데 성령 충만을 받는다는 것은 잔에 물이 넘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오셔서 차고 넘치는 생수로 역사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님의 역할에 대해서 잘 알고 이해하고 성령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게 되는 것은 전적으로 성령님의 도우심이 있어야 합니다.
 
누구든지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예수님을 믿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전적으로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을 때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이곳에서 예배드리는 것은 성령님으로 인해서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예수님을 믿게 된 성도들은 간절히 사모할 때 성령님이 우리에게 임하십니다. 우리는 성령으로 세례를 받는다고 표현하는데 성령님이 우리에게 충만하게 임재하셔서 함께 하시는 첫 번째 사건이 성령으로 세례를 받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세례받은 성도들은 계속해서 성령충만을 받습니다. 이렇게 성령 세례를 받고 성령 충만을 받으므로 우리 안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언제나 성령 충만한 참빛 교회 모든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2. 쟁론(갈라짐)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목마른 자들은 내게로 와서 마시라고 말씀하시고 나를 믿는 자들은 성령을 받아서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넘치리라고 말씀하시자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자들 중에서 쟁론되었습니다. 쟁론의 상황을 보면
 
어떤 사람들은 그리스도라고 했습니다. 40-41절을 보면
7:40 “이 말씀을 들은 무리 중에서 어떤 사람은 이 사람이 참으로 그 선지자라 하며”
7:41 “어떤 사람은 그리스도라 하며 어떤 이들은 그리스도가 어찌 갈릴리에서 나오겠느냐?”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어떤 사람들은 지난 주에도 살펴본 것처럼 예수님께서 하신 사역과 가르침을 들은 사람들 중에는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한다면 진짜 그리스도가 오셔도 예수님이 하신 것만큼 표적을 행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말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이분은 참으로 우리가 기다리던 그 선지자라고 말하고 또한 이분은 우리가 기다리던 그리스도가 맞다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유대에 오래전부터 전해온 오실 선지자라고 생각하고 믿었습니다. 모세는 신명기 18:18 “내가 그들의 형제 중에서 너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그들을 위하여 일으키고 내 말을 그 입에 두리니 내가 그에게 명령하는 것을 그가 무리에게 다 말하리라” 고 말했고 이것이 유대인들에게 오늘 그 선지자를 기대하게 한 것입니다.
 
오실 그 선지자는 또한 오실 그리스도이시기도 합니다. 따라서 표현은 조금 다르긴 하지만 유대인들이 기다리던 그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또 다른 사람들 중에는 그리스도가 어찌 갈릴리에서 나오겠느냐? 며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41-42절을 보면
7:41 “어떤 사람은 그리스도라 하며 어떤 이들은 그리스도가 어찌 갈릴리에서 나오겠느냐”
7:42 “성경에 이르기를 그리스도는 다윗의 씨로 또 다윗이 살던 마을 베들레헴에서 나오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며”
 
지난 주에 살펴본 말씀에서도 똑같은 주장을 하면서 의심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이 그리스도를 기다리는데 그리스도는 다윗의 마을에서 태어날 것으로 믿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갈릴리 나사렛에서 오셨다는 것으로 인해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을 수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예수님의 원래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셔서 나사렛에서 자라셨다는 것을 모르면서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정보에 의존하면서 말한 것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모르면서 자신들이 알고 있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면서 예수님을 믿지 못한 것입니다.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들이 쟁론이 되었습니다. 43절을 보면 “예수로 말미암아 무리 중에서 쟁론이 되니” 여기서 쟁론이란 단어의 의미는 갈라지다. 편을 나누다. 그런 의미입니다.
 
단순히 논쟁을 하는 정도가 아니라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믿는 사람들과 그리스도가 어떻게 갈릴리에서 올 수 있느냐? 그리스도가 아니다. 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편이 갈라졌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심에 따라 교회는 하나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믿는데 사람들은 서로 교리적으로 다른 것을 인정하지 못하기 때문에 또는 견해 차이로 인해서 갈리지게 됩니다. 같은 예수님을 믿지만 서로 하나 되지 못하는 것은 인간의 일반적인 모습인 것 같습니다.
 
3. 그 사람처럼 말한 사람이 없다.
예수님에 대한 견해 차이로 인해서 갈라지고 편을 나누게 되었는데 그런 와중에 예수님을 잡아 오라는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의 명을 받고 예수님을 잡으러 온 아랫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상관들의 명령을 듣고 예수님을 잡으러 왔지만 함부로 손을 대는 자가 없었습니다. 44절을 보면 “그 중에는 그를 잡고자 하는 자들도 있으나 손을 대는 자가 없었더라”
 
예수님에 대한 견해 차이로 서로 대립하고 논쟁하고 편이 갈라진 상황이지만 예수님을 잡아오라는 명령을 받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잡으려는 시도를 몇 번 했지만 아마도 예수님에게 손을 대지는 못했습니다.
 
예수님을 잡으러 왔지만 잡지 못하고 손도 대지 못하고 결국은 빈손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러자 상관들은 아랫 사람들에게 어찌하여 잡아 오지 않았느냐고 물었습니다. 45절을 보면 “아랫사람들이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로 오니 그들이 묻되 어찌하여 잡아오지 아니하였느냐”
 
상관들은 아랫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잡아오라고 명령을 했는데 아랫 사람들은 예수님을 잡기는커녕 손도 못대보고 그냥 돌아갔습니다. 그러자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이 왜 예수님을 잡아 오지 않았느냐고 질책을 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명령을 성실하게 이행하지 못한 것이라고 책망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
 
그러자 아랫 사람들은 그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말한 사람은 이 때까지 없었나이다. 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46절을 보면 “아랫사람들이 대답하되 그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말한 사람은 이 때까지 없었나이다 하니”
 
아랫사람들은 상관들의 명령에 따라서 예수님을 잡으려고 했지만 주변에 예수님을 따르고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기도 했지만 그들이 예수님의 잡기 전에 하시는 말씀을 들었는데 그들이 생각하기에 지금까지 이렇게 말씀하는 분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늘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에게 이야기를 듣고 가르침을 받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이나 랍비들이 가르치는 것을 많이 들었지만 어느 누구도 예수님처럼 말씀하는 분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잡으러 갔는데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도저히 잡을 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사람들의 한결 같은 반응은 마 7:29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그들의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은 아랫 사람들의 말을 듣고 화를 냈습니다. 47-49절을 보면
7:47 “바리새인들이 대답하되 너희도 미혹되었느냐”
7:48 “당국자들이나 바리새인 중에 그를 믿는 자가 있느냐”
7:49 “율법을 알지 못하는 이 무리는 저주를 받은 자로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과 같은 말씀을 들은 적이 없다고 하자 그들은 화를 내면서 너희도 미혹 되었느냐고 말하면서 당국자들 즉 산헤드린 공회 회원이나 지도자들 중에는 예수님을 믿는 자가 없다고 말하면서 너희가 율법을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하면서 저주했습니다.
 
산헤드린 공회원 중에 전에 예수님에게 왔던 니고데모가 예수님에 대해 변론하려고 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초막절 명절이 끝나고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은 우리가 믿고 성령으로 충만을 받을 때 우리의 영혼이 늘 성령의 생수로 충만하게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삼위일체 주일은 오늘 성삼위 일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을 믿고 성령 충만한 가운데 늘 건강하고, 평안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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