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풍성히 얻게 하려 함이라(4월 30일 주일 오전 예배 설교)
요한복음 10:1-18(신약 162)
 
요한복음 9장에서 예수님께서 나면서 시각 장애인이었던 사람에게 진흙을 침으로 이겨 눈에 붙여 주시고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고 하시매 시각장애인이 실로암에 가서 눈을 씻었더니 세상에 태어나서 한번도 본적이 없던 사람이 눈을 뜨고 세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 사람이 눈을 뜨게 된 날이 안식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안식일에 병자를 고쳤다는 것에 대해 문제 제기를 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시각 장애인이었던 사람을 데려다가 이 사람이 정말로 시각 장애인이었던 사람인지를 그 부모까지 불러서 확인을 하고 그가 시각 장애인으로 태어났다가 고침을 받았다는 진술을 받고 반복해서 부모와 고침받은 사람에게 그가 눈을 뜨게 된 것에 대해 질문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를 쫓아냈습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에게 쫓겨난 사람과 대화를 하시고 또한 그 주변에 있던 사람들에게 말씀을 선포하셨는데 10장은 그 연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나면서 시각 장애인이었다가 고침을 받은 사람이 예수님을 통해서 받은 은총은 예수님께서 목자로서 양에게 베푼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나는 선한 목자다.”라고 말씀하신 다음 내가 온 목적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시각 장애인이 눈을 뜨게 된 것은 결국 목자로서 양에게 풍성한 은혜를 나누어 준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므로 누리게 될 은총을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 함이라고 하신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더 풍성히 얻게 하려 함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오신 것은 우리에게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우리가 예수님이 주시는 생명을 얻고 더 풍성하게 얻으려면
 
1. 참 목자를 따라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들의 목자로 오셨다고 선포하셨다면 우리는 마땅히 참 목자이신 예수님을 따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참 목자이신 예수님을 따르는 삶을 살므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이 풍성한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목자가 아무 양에게나 풍성하게 베푸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자신의 양에게 또한 자신을 잘 따르는 양들에게 풍성한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풍성한 복을 받아 누리기 위해서 참 목자를 따라가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참 목자를 구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참 목자를 구분하는 것은
 
먼저 문으로 들어오는 목자가 참 목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2절을 보면
10:1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문을 통하여 양의 우리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요”
10:2 “문으로 들어가는 이는 양의 목자라”
 
이 말씀은 신앙생활을 하는 성도들에게 매우 중요한 기준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과 신앙적인 모든 일들은 정상적이고 보편타당하며 인격적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가끔 비정상적이고 이상한 신앙적인 행위들이 보게 됩니다. 비정상적이고 이상한 신앙의 사람들은 성경에 기록되지 않은 것과 또한 일반적으로 보기에 비정상적인 것을 강조하는데 그것은 예수님의 말씀에 비추어 보면 문으로 들어온 목자가 아니라 담을 넘어 들어온 목자입니다.
 
성도가 항상 주의해야 할 것은 우리가 따라가는 것이 성경적인가 하는 것입니다. 비성경적인 것은 담을 넘어온 목자를 따르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선교 여행 중에 베뢰아에 도착해서 말씀을 가르치는데 베뢰아 사람들은 바울이 말하는 것을 주의 깊게 듣고 집에 가서 성경을 펼쳐보고 바울이 말한 것이 성경적 인가를 판단하면서 바울에게 말씀을 배웠습니다.
 
사도행전 17:11절을 현대어 성경으로 보면 “ 베뢰아 사람들은 데살로니가 사람들보다는 훨씬 마음이 틔어 있어서 기쁜 마음으로 설교를 들었다. 그리고 바울과 실라가 가르치는 말이 진실인지 알고자 날마다 성경을 연구하였다.”
 
이 말은 바울은 성경에 근거해서 가르쳤고 베뢰아 사람들은 그 가르침을 받았다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성경을 CANON 이라고 합니다. 이 말은 기준이자 잣대가 된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성경에서 시작해서 성경에 근거하고 성경 안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것이 참 목자를 따르는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목자의 음성을 알아들어야 합니다. 3절을 보면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애완동물을 길러보면 애완동물들이 자기 주인의 목소리를 잘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주인은 자기가 기르는 애완동물이 자기 목소리를 잘 기억하기 때문에 더 많은 정성을 쏟게 됩니다.
 
우리는 주님의 어린 양으로서 주님의 목소리를 기억하고 그 목소리를 듣고 그 말씀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주인의 음성을 못 알아듣고 거짓 목자의 음성을 듣고 따라가서 결국은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우리는 자주 듣게 됩니다. 목숨을 끊는 사람들도 있고 재산을 모두 다 갖다 바쳐서 빈털터리가 되신 분들도 있습니다.
 
부유한 집안의 안방마님이었는데 거짓 목자의 음성을 참 목자의 음성인줄 잘 못 알아듣고 모든 재산을 다 갖다 바치고 노년에 자식들에게 버림받고 폐지를 주우며 사는데 폐지를 주워서 그 돈도 갖다 바치려고 한다는 내용이 방송에 나온 적도 있습니다.
 
우리는 목자의 음성을 듣고 예수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4-5절을 보면
10:4 “자기 양을 다 내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
10:5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 고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하느니라”
 
목자이신 예수님께서 앞에서 가신대로 가는 것이 바로 양이 해야 할 일입니다. 목자가 가신대로 가지 않고 자기 멋대로 가면 낭떨어지가 있고 가시밭길이 있지만 목자를 따라 가면 그 길은 안전한 길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비롯해서 제자들을 부르실 때 “나를 따라 오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목자이신 예수님으로부터 풍성한 것을 받아 누리기 위해서는 말씀하신대로 예수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따라가는 삶은 어떤 삶인가 하면 마16:24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따라가는 것은 곧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이 말에서 멈칫하게 됩니다.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간다는 말은 힘들고 어렵고 고통스러운 길을 가야 하는 것 아닌가? 하고 고민하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마 11:29-30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11: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11: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른다고 하는 말을 어렵고 힘든 길이라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히려 그 길은 쉽고 가벼운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것이 목자를 따라가는 삶이고 목자를 따르면 모든 것을 풍성하게 공급받을 수 있습니다. 십자가를 지는 삶을 통해서 오히려 더 풍성한 복을 받게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주님을 따라가는 삶을 하나로 결론짓는다면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1:2-3
1: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1:3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주님의 말씀을 즐거워하고 그 말씀 안에 살아감으로 그 행사가 다 형통 하는 복을 받으시길 축원합니다.
 
우리가 따르는 참 목자는
 
2. 들어가도 나가도 꼴을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양인 성도들이 목자이신 예수님을 따르면 얻게 될 복에 대해서 말씀하시는데
 
첫 번째 복은 구원입니다. 9절을 보면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받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구원의 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따라감으로 구원을 얻고 영생을 얻습니다.
 
우리에게는 지옥형벌과 영원한 죽음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모두는 구원 받은 성도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구원을 주시는 것만을 목적으로 오신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둘째로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가 구원을 받고, 그리고 예수님을 따라감으로 들어가도 나가도 꼴을 얻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윗도 시편 23:2절에서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라고 노래했습니다.
 
목자이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풍성한 꼴을 주신다는 것은 당연한 것인데 예수님은 들어가도 나가도 꼴을 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나가서 얻는 꼴은 우리의 소득입니다. 우리가 세상 속에서 일해서 얻게 되는 것이 나가서 얻는 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직업에 복을 주셔서 우리가 하는 일을 통해서 풍성한 소득을 얻게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문에서도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라고 가르쳐 주신 것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아무 부족함이 없이 풍족한 물질을 얻게 될 것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양의 문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밖에 나가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받아 그 손으로 하는 일이 형통하고 풍성한 꼴, 즉 일용할 양식인 물질을 받아 복된 삶이되기를 축원합니다.
 
그런데 또 하나 들어가도 꼴을 얻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들어가도 꼴을 얻는다는 것은 가정에서 얻는 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양을 치는 목자는 양의 우리에 항상 풍성한 풀을 준비해 줍니다.
 
그것은 먹기도 하고 잠자리를 위해 사용되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우리의 가정에 이렇게 항상 풍성한 꼴을 준비해 주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목자로 모시고 살아가면 예수님은 나의 목자가 아닌 우리 가정의 목자요 주인이 되셔서 우리 가정의 삶에 필요를 채워주시고 행복한 가정이 되도록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들어가서 얻는 꼴은 물질적 개념이 아니라 평안의 개념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가정들 속에 평안을 주시고 사랑을 주시고 풍성한 소망을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각 가정에게 주시는 풍성한 꼴을 누리며 살아가는 삶이되기를 축원합니다.
 
3. 모든 것을 더 풍성하게 하십니다.
목자이신 예수님께서 10절에 말씀하시길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도들에게 들어가도 나가도 꼴을 얻게 하실 뿐 아니라 생명을 얻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마귀는 우리를 유혹에서 사망에 이르게 합니다. 마귀의 유혹에 따라 살다 보면 당장에는 즐겁고 기쁜 것 같은데 자신도 모르게 서서히 멸망으로 빠져들어 가는 것 입니다. 마귀의 유혹은 마약과 같은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것이 자신을 멸망으로 이끄는 줄 모르고 서서히 중독되어 가는 것입니다.
 
반면에 예수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멸망 당할 수밖에 없던 인생에게 생명의 길을 주시고 마귀의 저주에서 자유하게 하시며 언제든지 쓰러지고 넘어지지 않도록 우리들을 지켜 주십니다. 마귀는 우리 개인을 넘어뜨릴 뿐 아니라 가정과 사회까지도 넘어뜨리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들의 마음 문을 열고 들어오셔서 이해하고 용서하고 사랑하게 하셔서 무너지는 가정을 세우시며 무너지는 사회를 세우시는 생명의 주님이십니다.

또한 참 목자이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더 풍성하게 주십니다. 생명을 얻게 하고 그 생명을 풍성하게 하는 것은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고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삶을 살게 하시는 축복입니다.
 
눅 11:13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좋은 것을 주신다고 말씀하시면서 그 좋은 것은 곧 성령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음과 부활에 대해서 말씀하시면 보혜사 성령을 보내 주시겠다고 말씀하셨는데 보혜사 성령은 우리의 생명을 더 풍성하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더 풍성하게 하시기 위해서 양을 위해서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11-15절까지를 보면
10:11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10:12 “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물어 가고 또 헤치느니라”
10:13 “달아나는 것은 그가 삯꾼인 까닭에 양을 돌보지 아니함이나”
10:14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10:15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에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그리고 우리를 더 풍성하게 하시기 위해서 스스로 십자가의 죽음을 택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는 참 목자이기 때문에 양을 위해 죽는 길을 선택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참 목자이신 예수님께서 목숨을 버리심으로 우리는 구원을 얻게 되었고 더 풍성하게 채우시는 주님의 복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내가 이렇게 양으로 생명을 얻게하고 더 풍성하게 얻게 하기 위해서 목숨을 버린다고 하시면서
 
16절에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그들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교회에 나오지 않고 성도가 아닌 양들이 있다는 것이고 예수님은 그런 양들도 버리지 않으시고 돌아오도록 기다리신다는 것이고 그들도 결국은 내 음성을 듣고 너희와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인 나에게 돌아오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성도들에게 주시는 메시지입니다. 너희만 구원받는 것에 만족하지 말고 교회밖에 있는 이 우리에 들지 않은 양들을 주님의 음성을 듣고 주님을 따르도록 인도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 우리에 들지 않은 양들을 위해 기도하고 인도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내가 목숨을 버리는 것은 다시 얻기 위함(부활을 위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7-18절을 보면
10:17 “내가 내 목숨을 버리는 것은 그것을 내가 다시 얻기 위함이니 이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느니라”
10:18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양을 위해서 목숨을 버리시는데 아버지께서 다시 살리사 부활의 첫 열매가 되게 하시고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죽음을 위한 죽음이 아닌 부활과 영생을 위해서 죽으신 것입니다.
 
참 목자이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오셔서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고 모든 것을 더 풍성하게 누리게 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 받은 성도로 살아가고, 모든 질병이 치유받고, 마음에 평안과 위로가 가득하고, 삶의 모든 영역에서 형통하고 더 풍성해지는 복을 누리는 참빛교회 모든 성도가 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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