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아이가 드린 오병이어(4월 23일 오후 예배)
성 경 : 요한복음 6:1-15(신약 152)
 
성경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기적이 일어나는 곳은 문제가 있는 곳임을 알 수 있습니다. 아무런 문제가 없는 곳에서는 기적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기적은 해결하기 힘든 문제가 있는 곳에서 또는 해결하기 힘든 상황에서 나타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은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에 모두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모두가 기록했다는 것은 이 기적의 사건이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공관복음에 기록된 오병이어에 대한 기록에는 없는 내용이 요한복음에 두 가지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는 이 오병이어의 제공자가 어린아이였다는 것입니다. 공관복음에는 오병이어를 누가 가지고 온 것인지에 대해서 기록하지 않았지만 요한은 한 어린아이가 가져 온 것이라고 기록했습니다.
 
또 하나는 요한은 오병이어의 이야기를 기록하면서 사람들이 예수님을 억지로 임금 삼으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이 내용은 공관복음에는 기록되지 않은 내용입니다.
 
요한은 사람들이 오병이어의 기적을 기점으로 해서 예수님을 임금 삼으려고 했다고 기록함으로 예수님에 대한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견제가 더 심화되었다는 것을 암시한 것입니다.
 
오병이어 기적 이야기는 우리가 잘 아는 이야기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다시 나누면서 참빛 교회와 참빛 성도의 삶에도 오병이어 기적이 일어나길 소망합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1. 큰 무리가 모였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은 당시 유대 사회에 큰 파장을 불러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시대 이스라엘의 상황은 절망이었습니다.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로마 정부에 세금을 내야 하고 헤롯 왕에게 세금을 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시대적으로 오랜 기근이 있었고 그래서 다양한 사정으로 유대를 떠나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었고, 가나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도 넉넉하지 못한 상황이었습니다.
 
역사를 보면 알 수 있는 것은 먹고 살기 힘들 때 병자가 많이 나타납니다. 물질적인 궁핍은 질병에 노출되는 확률이 높아지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공생애 사역을 하실 때 병든 자들도 많고 절망적인 상황에 처한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예수님께서 나타나셨기 때문에 예수님에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이 때 예수님에게 사람들이 모여든 것을 요한은 병자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보았기 때문이라고 기록했습니다. 1-2절을 보면
6:1 “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의 갈릴리 바다 건너편으로 가시매”
6:2 “큰 무리가 따르니 이는 병자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보았음이러라”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이 계신 곳을 찾아온 이유는 병자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보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사는게 힘들면 질병에 걸리는 사람들이 많이 나타나게 됩니다.
 
질병의 원인은 다양하지만 먹는 것을 제대로 먹지 못하면 영양이 부족하기 때문에 질병에 잘 걸리게 됩니다. 또한 힘들고 어려운 일을 겪으면 질병에 걸리기 쉽습니다.
 
마음에 불안과 두려움과 염려와 걱정과 근심이 많으면 또한 질병에 잘 걸립니다. 다양한 원인으로 질병에 걸리게 되는데 예수님께서 사역하실 때 다양한 원인으로 인해서 병든 사람들이 많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20-30년과 비교했을 때 장수하는 나라가 됐음을 알 수 있습니다. 수명이 길어지는 것은 경제적인 삶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고, 옛날에 비해서 사는 것이 훨씬 좋아졌기 때문에 수명이 길어진 것입니다.
 
물론 질병은 더 다양하게 나타나고는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평균 수명의 훨씬 길어졌고 점점 더 길어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 시대에 질병으로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외면하지 않고 치료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나왔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는 시대마다 사람들에게 가장 시급한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시급한 것과 가장 급한 것을 아시고 병자를 치료하시듯 우리의 시급한 문제와 많은 사람들이 겪는 고통에서 건져주시고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질병을 고쳐주신 것과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신 것은 불쌍히 여기셨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기록하지 않았지만 마 14:14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그 중에 있는 병자를 고쳐 주시니라”
 
막 6:34절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으로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이에 여러 가지로 가르치시더라 ”
 
예수님께서 병자를 고치신 것과 가르치신 것, 그리고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신 것은 불쌍히 여기시는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주신 것도 죄와 사망에 매여 영원한 사망에 이르게 된 것을 불쌍히 여기셔서 보내 주신 것입니다.
 
불쌍히 여기신다는 것은 사랑이란 말의 다른 표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오늘날도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십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늘 아버지께서 오늘도 우리의 처지를 불쌍히 여기사 반드시 도우시고, 고치시고, 필요를 채워주실 줄 믿습니다. 불쌍히 여기시는 예수님은
 
2. 어떻게 먹이겠느냐?
불쌍히 여기시는 예수님은 그곳에 모인 사람들을 그냥 보내실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곳에 모인 사람들을 먹이시기로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을 모두 먹이기에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큰 무리가 모여 있었습니다. 5절을 보면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하시니”
 
예수님과 12제자만 해도 상당히 많은 양식이 필요한 상황인데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큰 무리였습니다. 나주에 남자 장정만 5천 명이었다고 기록했습니다. 그곳에 엄청난 사람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사는 것이 너무 힘들기 때문에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먹고 살만하고, 건강하고, 하는 것이 잘되면 교회에 잘 안 나오는 것처럼 예수님에게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는 것은 그만큼 사는 것이 힘들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는 것이 힘든 사람들을 먹이시고 싶었지만 엄청난 인파가 모인 상황이었기 때문에 거기에 모인 사람들을 모두 먹이는 것은 불가능한 상황이었습니다.
 
그 상황은 날이 저물어 가고 있었습니다. 막 6:35절을 보면 “때가 저물어가매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여짜오되 이 곳은 빈 들이요 날도 저물어가니”
 
날이 저물어 간다는 것은 저녁 때가 되었다는 것이고 이 많은 사람들을 먹일 양식을 준비할 시간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먹일 것도 없고 먹일 것을 준비할 시간도 없다는 것입니다.
 
여기는 빈들이라고 말하는데 이것도 역시 이 사람들을 먹일 양식을 구할 곳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마을 한 가운데 이거나 시장이 가까이 있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그 많은 사람 뿐 아니라 예수님과 제자들이 먹을 양식을 구하는 것도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예수님은 어디서 떡을 사서 먹이겠느냐? 고 물으셨습니다. 5절을 다시 보면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하시니”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이 사람을 먹을 떡을 사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니? 그런 의미로 하신 말씀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특히 빌립에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우리가 이 사람들을 먹을 수 있는 양식을 구하는 것은 불가능한 상황이지 않겠니? 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지금 이 상황이 기적이 아니고는 해결 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먹이시길 원하셨지만 양식을 준비하는 것은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이것은 곧 예수님께서 베푸실 기적의 때가 다가왔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기적이 일어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한 기대가 있고 원하심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를 통해서 하시고자 하는 분명한 뜻이 있지만 불가능한 상황일 때 기적이 일어납니다.
 
3. 한 아이가 드린 오병이어
예수님은 먹을 것을 주시길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상황은 불가능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예수님은 기적을 준비하시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먹일 준비를 하시고 있을 때
 
빌립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6-7절을 보면
6:6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지를 아시고 빌립을 시험하고자 하심이라”
6:7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빌립의 대답은 지금 우리가 이 사람들을 먹을 떡을 사려면 이 사람들에게 조금씩 내라고 해서 돈을 받는다고 해도 적어도 이백 데나리온이 부족합니다.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이 말은 이 사람들을 먹을 떡을 사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라는 대답입니다. 이 사람들을 먹을 떡을 사기 위한 돈이 없습니다. 라는 말입니다. 떡을 살 수 있는 곳이 있다고 해도 그것을 살 돈이 없습니다. 그러니 불가능합니다. 이런 말입니다.
 
우리가 이런 답답한 상황에 직면할 때가 있습니다. 당장에 무언가를 해야 하는데 돈이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아무래도 불가능합니다. 이렇게 생각하고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하소연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안드레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8-9절을 보면
6:8 “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6:9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
 
마가복음에 의하면 예수님께서 너희에게 떡 몇 개가 있는지 가서 보라고 하셨다고 기록했습니다. 그러자 안드레가 한 아이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져왔습니다. 라고 대답하고 그런데 요것 가지고 이 많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줄 수 있겠습니까? 라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오병이어는 결과적으로 한 아이가 먹을 정도의 양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이는 자기가 먹을 떡과 물고기를 예수님에게 드렸습니다. 안드레는 그것을 예수님에게 가져왔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많은 것으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작은 것으로 시작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종종 세상적인 기준으로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기준이 중요합니다.
 
아이는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주님께 드린 것입니다. 그것은 아주 작은 것이지만 그 아이는 전부를 드린 것으로 그 작은 것은 기적의 도구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큰 것을 찾으시는 분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원해서 드리는 작은 것을 더 기뻐하시고 자원해서 드린 작은 것으로 기적을 행하십니다. 우리가 드리는 작은 예물은 하나님 나라의 기적을 이루는 오병이어가 되고, 우리가 드리는 작은 헌신과 수고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위한 기적의 도구가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원대로 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0-11절을 보면
6:10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 하시니 그 곳에 잔디가 많은지라 사람들이 앉으니 수가 오천 명쯤 되더라”
6:11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아 있는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물고기도 그렇게 그들의 원대로 주시니라”
 
예수님께서 한 아이가 드린 오병이어를 가지고 축사하셨습니다. 그리고 나누어 주라고 하셨습니다. 나누어 주라고 하실 때 사람들이 원하는대로 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병이어를 나누어 주는 제자들은 이것 가지고 이 많은 사람들을 어떻게 먹이겠어 하는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어이없게도 원하는대로 주라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그 말씀에 순종해서 원하는대로 요구하는대로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원하는대로 주고 있는데 조금도 부족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진심으로 나누면 부족하지 않다는 것과 하나님은 우리에게 풍성하게 채워주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남은 것이 열두 바구니였습니다. 12-13절을 보면
6:12 “그들이 배부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시므로”
6:13 “이에 거두니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찼더라”
 
하나님은 필요한 만큼 주시지 않고 열두 바구니 남게 주십니다. 이것은 자신들이 먹을 만큼 달라고 해서 주었더니 먹고 남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는대로 주시는데 12바구니 남게 주십니다.
 
참빛 교회가 12 바구니 남은 복을 누리고 참빛 성도들이 모든 것이 풍족하고 12 바구니 남은 축복을 누리는 복된 삶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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