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라(4월 16일 주일 오전 예배 설교)
요한복음 20:19-31(신약 183)
 
예수님의 제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입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입성하시기 전에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면 유대 지도자들에게 고난 받으실 것과 죽으시고 부활하실 것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말을 들을 때 자기가 듣고 싶은 것만 듣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고난 받으실 것과 죽으시고 부활하실 것을 말씀하시지만 제자들은 늘 그런 예수님의 말씀에 대해서 무관심했습니다.
 
예수님께서 3년 공생애 사역을 하시면서 하신 일들이 너무 놀랍기 때문에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하신 놀라운 일들만 생각하면서 도취되어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놀라운 일들로 인해서 제자들은 환상에 젖어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고난받으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실 것을 말씀하셨지만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앞으로 주님의 시대가 열릴 것에 대한 기대감에 차있었습니다.
 
부활절을 지낸 우리들도 우리 자신을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나도 내가 듣고 싶은 것만 듣고 있는 것은 아닌지 성경을 읽을 때도 모든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인데도 내가 원하는 구절만 읽으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만 들으려고 하는 것처럼 우리가 말씀의 편식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에 대해서 이미 들었음에도 그런 상황이 왔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준비가 전혀 안 되어 있었습니다. 사전에 이런 상황이 올 때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에 대한 준비가 안 되어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제자들은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무런 대책도 계획도 없는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평강을 선포하시고 성령을 받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도마에게 보지 못하고 믿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 사도는 공관복음에 기록되지 않은 이야기들을 기록하면서 요한복음을 기록하게 된 목적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이시고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는 것이고 이 글을 읽는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라고 말했습니다.
 
요한 사도께서 요한복음을 기록한 목적으로 말한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1.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제자들은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지금까지 예수님께서 하라고 하신 일들만 하면서 3년 동안 에수님을 따라 다녔기 때문에 제자들은 예수님이 없는 상황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결정할 수가 없었습니다.
 
따라서 제자들은 일단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습니다. 19절을 보면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20장 앞부분에서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 새벽부터 저녁이 되기 전까지의 상황을 기록했습니다. 새벽에 예수님의 무덤에 갔던 여인들이 예수님의 시체가 없어졌다고 생각하고 제자들에게 와서 말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와 다른 제자 즉 요한으로 추정되는 제자가 무덤에 가서 예수님의 무덤이 비어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와 요한은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자신들이 모여 있던 곳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마리아는 무덤을 떠나지 못하고 있었고 예수님은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셔서 내 형제들에게 가서 내가 아버지께로 올라간다고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제자들에게 와서 내가 주님을 보았다고 증언했습니다. 제자들은 막달라 마리아의 이야기를 들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오히려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만 해도 기세등등했던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갑작스럽게 잡히시고 십자가 달려 돌아가시게 되자 절망에 빠졌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제자들은 예수님을 죽인 유대 지도자들이 자신들도 죽이려고 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자신들이 모여 있는 곳의 문들을 다 걸어 잠궜습니다.
 
이 표현은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것을 생각할 때 자신들도 죽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더 커서 자신들이 모인 곳의 문들을 다 걸어 잠그고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했습니다.
 
문들을 다 닫았다는 것은 절망과 두려움입니다. 절망과 두려움에 빠지면 문을 걸어 잠그게 되어 있습니다. 이런 상황을 극복하지 못하면 은둔형 외톨이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보고 기뻐했습니다. 19-20절을 보면
20:19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20:20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모인 곳에 문들을 꼭꼭 걸어 잠궜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선포하셨습니다. 두려움과 절망속에서 문들을 잠그고 있었던 제자들에게 오셔서 너희에게 평강이있을지어다라고 선포하며서 손과 옆구리를 보여주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손과 옆구리를 보고 기뻐했습니다.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고 기뻐한 것이 아니라 못 자국 난 손과 창에 찔린 흔적이 있는 옆구리를 보고 비로소 부활하신 예수님이라고 믿었다는 것이고 그런 흔적들을 보고서야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을 믿고 기뻐했다는 것입니다.
 
절망과 두려움에 쌓여 있던 제자들은 예수님의 손과 옆구리를 보고 믿고 기뻐했습니다. 그런 제자들을 향해서 예수님은 성령을 받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1-22절까지를 보면
20:21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20:22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20:23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 평강을 선포하시고 제자들에게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숨을 내쉬며 성령을 받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지금처럼 절망하고 두려워하는 상황에서 벗어나서 세상으로 나가서 선포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평강이었습니다. 마음에 두려움이 가득하다면 세상으로 나아가서 복음을 선포할 수 없습니다.
 
세상으로 보내시기 전에 먼저 제자들에게 하늘의 평강을 선포하셨습니다. 그들의 마음에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으로 채워질 때 주님이 보내신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먼저 평강을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평강을 주시는 것은 주님의 제자로 보내시기 위한 것입니다.
 
또한 성령을 받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위해서 일하기 위해서 세상 속에서 주님의 빛을 전하는 복음의 전달자가 되기 위해서 성령으로 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이고 성령으로 충만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절망과 두려움을 이길 수 있는 평강과 성령으로 충만을 받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과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으로 절망과 두려움을 이기고 담대한 믿음으로 승리하는 참빛 가족이 되시기 바랍니다.
 
2. 믿는 자가 되라
부활하신 날 저녁 때에 제자들을 찾아오셨을 때에 그곳에 도마가 없었습니다. 도마가 어떤 이유로 그 자리를 떠났는지 모르지만 도마는 두려움에 떨면서 문을 잠그고 있는 제자들과 달리 밖으로 나갔습니다.
 
밖에서 볼일을 보고 도마가 제자들이 있던 곳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때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이 오셨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그러자 도마는 자신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경험해야 믿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24-25절을 보면
20:24 “열 두 제자 중의 하나로서 디두모라 불리는 도마는 예수께서 오셨을 때에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
20:25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이르되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도마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이야기를 믿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이 문을 걸어 잠그고 있던 곳에 오셨다는 것도 믿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직접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고 손과 옆구리를 만져 보고 못 자국 난 곳에 내 손을 넣어 보아야 믿겠다고 말했습니다.
 
도마는 자신이 직접 경험해야 믿겠다고 강한 불신의 태도를 보인 것입니다. 우리가 전도하다보면 도마처럼 이야기 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하나님을 보여달라고 말하거나 하나님이 계신다면 증거를 보여달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종종 그와 비슷한 기도를 할 때가 있습니다. 확실하게 증거를 주시거나 확실하게 보여달라고 떼를 쓰듯 기도할 때가 있습니다. 보여주시거나 경험해야만 믿겠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26-27절을 보면
20:26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고”
20:27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도마가 경험해 보지 않으면 믿지 못한다고 말하고 8일이 지난 다음에 예수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도마에게 말씀하시길 직접 손을 내밀어 만져 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도마는 현대인들이 보기에 지극히 정상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의심 많은 도마라고 이야기 하지만 현대인의 관점에서 도마는 지극히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다른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미리 보여주셨습니다. 마치 다른 제자들은 예수님의 손과 옆구리에 난 상처를 전혀 안보고 예수님을 믿은 것처럼 생각하기 쉬운데 앞에 보면 예수님은 제자들이 말하기 전에 먼저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도마가 지극히 합리적인 이야기를 했다는 것을 아십니다. 그래서 직접 다 보여주고 만지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합리주의적인 사고를 가진 현대인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은 확인하고라도 믿음이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도마에게 와서 만져 보지 말고 믿으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와서 만져 보고 손가락을 넣어 보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강조점은 믿는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때론 경험하고서라도 믿는 자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은사를 경험하고 은혜를 체험하고도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받은 은혜와 경험한 은혜를 믿음으로 굳게 이어가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경험을 하고라도 믿는 자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본 것이 없음에도 믿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28-29절을 보면
20:28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20:29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우리의 신앙은 만져 본 것이 없고 경험한 은혜가 없더라도 말씀대로 믿을 수 있어야 하고 그렇게 믿는 것이 복이 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오순절 주의자들의 강점은 다양한 영적 경험이 있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오순절 주의의 단점은 지나치게 체험을 중요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성령 충만하고 은사가 나타나고 은혜 충만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그러나 그리아니하실지라도 변함없이 믿는 믿음을 더 기뻐하고 그리아니하실지라도 믿는 것이 복이 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3.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라
요한 사도는 예수님의 부활이야기와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던 이야기 도마의 이야기를 기록한 다음에 요한복음을 기록한 목적에 대해서 기록을 했습니다. 요한 사도는 앞에 기록된 모든 이야기들은 결론적으로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요한 사도는 다른 표적을 많이 행하셨다고 기록했습니다. 30절을 보면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요한 사도는 요한복음을 마무리 하기 전에 이 책에 기록되지 않은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다고 말했습니다. 즉 이 책에 기록된 이야기들은 중요한 이야기들만을 기록한 것이고 이 책에 기록되지 않은 더 많은 표적과 더 많은 예수님의 말씀들이 있다고 말한 것입니다.
 
21:25절에 “예수께서 행하신 일이 이 외에도 많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 줄 아노라” 라고 요한복음을 끝맺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 이야기들을 다 기록하면 너무 많기 때문에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하다고 표현했습니다.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에 기록된 일보다 더 많은 일들을 하셨고 더 많은 표적과 기사를 행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믿음으로 살아오면서 지금까지 받은 은혜도 헤아릴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에게 더 많은 은혜와 복을 주셨지만 우리가 그것을 다 기억하지 못할 뿐입니다. 우리를 위해서 한량없는 은혜를 부어주시고 복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주십니다.
 
요한은 그 많은 표적 들 중에서도 중요한 것을 기록했는데 이 책을 기록하고 예수님이 행하신 일들을 기록한 것은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31절을 보면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요한복음 뿐만 아니라 모든 성경의 기록 목적은 우리를 위해서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알고 하나님을 믿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성령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고 은혜를 받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을 주신 것은 깨닫고 은혜를 받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믿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고 묵상하면서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보혜사 성령님을 믿고 구원받은 성도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시 31절을 보면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구원받은 성도들은 영원한 생명을 얻은 것입니다. 여기서 생명은 단순히 우리의 육체적인 몸이 살아있는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므로 생명을 얻었습니다. 죄와 허물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었던 우리들이 예수님의 십자가로 죄사함을 받았고 예수님의 부활로 생명을 얻었습니다. 다시는 사망이 우리를 지배하지 못합니다.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믿는 모든 성도들은 생명을 얻었고 영원한 생명인 영생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선포하신 말씀처럼 평강이 임함으로 몸과 마음과 삶이 평안을 누리고, 성령을 충만을 받아서 보혜사 성령님의 도우심 속에 살아가고,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와 축복 가운데 살아가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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