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4월 2일 오후 예배)
성 경 : 요한복음 5:1-18(신약 149)
 
지난 주에는 예수님에서 갈릴리 가나에서 병들어 죽어가는 왕의 신하의 아들을 고치신 사건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오늘 말씀도 4장의 치유 사건에 이어서 또 다른 치유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5장은 예수님께서 명절이 되어 예루살렘에 올라가신 이야기로 시작을 합니다. 유대인의 명절은 유월절, 칠칠절, 장막절(수장절)있고 삼대 절기 외에도 부림절, 수전절이란 명절을 지켰습니다.
 
유대인들은 유월절, 칠칠절, 장막절에는 반드시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명절을 지냈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명절이 되어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다고 기록한 것으로 볼 때 삼대 절기 중에 하나일 것으로 보이는데 유월절은 유월절을 맞이해서 올라가셨다고 기록을 합니다.
 
요한복음에는 예수님께서 초막절에 올라가신 것도 기록을 했습니다. 오늘 5장에 기록된 명절은 예루살렘에 올라가는 삼대 명절 중에 칠칠절(오순절) 일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명절을 맞이해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다가 오늘 본문에 기록된 38년 된 병자를 고쳐주셨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께서 38년 된 병자를 고쳐주셨는데 그날이 안식일이었습니다.
 
전통적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예수님께서 병자를 고치신 것에 대해서 문제제기를 했습니다. 안식일에 왜 병자를 고쳐주었느냐 안식일에는 이런 일도 해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 예수님을 비판했습니다.
 
예수님은 전통 유대인들의 비판에 대해서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고 대답하셨습니다. 전통 유대인들은 이 일로 인해서 예수님을 죽이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면 유대인들이 문제 삼을 것을 아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병들어 고통당하는 사람을 고쳐주시는 것을 주저하지 않으셨습니다.
 
오늘도 예수님은 우리가 고통당하는 것을 보시고 외면하지 않으시고 고통속에서 건져주십니다.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가 겪는 고통과 아픔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친히 안수하시고 말씀하셔서 치료해 주시고 고쳐주십니다.
 
예수님은 38년 병자를 불쌍히 여기셔서 그를 향해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가라고 하셨고 병자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일어나서 자리를 들고 갔습니다.
 
오늘 말씀을 듣는 우리에게 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우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일 때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를 때 주님께서 너의 모든 절망의 자리에서 일어나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의 말씀을 믿고 그 말씀에 따라 희망을 품고 일어나 나아갑시다.
 
오늘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1. 베데스다는 희망 그러나 절망
베데스다는 “자비의 집” 이란 뜻입니다. 이 못은 고대에 기드론 계곡에서 흘러온 빗물을 모아 성전에 물을 공급하는 역할을 했으며, 직사각형의 형태로 깊이가 20m 정도 되었고, 면적은 120 x 60m 정도였다고 합니다.
 
못 주변에는 의학적∙종교적 치료를 목적으로 하는 건물들이 세워졌었다고 합니다. 특히 연못 동쪽에는 BC150년경부터 AD70년경까지 욕실과 병실 등이 지어져 대중들을 위한 치료소로 활용되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베데스다 못 옆에 치료소가 생기게 된 것은 요한복음에 설명된 것처럼 가끔 물이 움직일 때 물에 들어간 사람이 고침을 받는 특별한 현상이 있는 곳이었기 때문에 치료소를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베데스다 연못은 많은 환자들에게 실 날 같은 희망의 장소였습니다. 1-3절을보면
5:1 “그 후에 유대인의 명절이 되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니라”
5:2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5:3 “그 안에 많은 병자, 맹인, 다리 저는 사람, 혈기 마른 사람들이 누워 [물의 움직임을 기다리니”
 
베데스다는 신화적인 이야기가 아니고 실제로 기적이 가끔씩 나타난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많은 병자들이 베데스다 못으로 모여들었습니다. 불치병에 걸린 사람들에게 베데스다는 한 줄기 희망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도 불치병에 걸린 사람들은 질병을 고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어디가 됐든지 찾아가서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고침을 받으려고 합니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질병에 걸린 사람들은 자신의 병을 고칠 방법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희망을 갖게 되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많은 병자들이 모였습니다. 3-4절을 보면
5:3 “그 안에 많은 병자, 맹인, 다리 저는 사람, 혈기 마른 사람들이 누워 [물의 움직임을 기다리니”
5:4 “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움직이게 하는데 움직인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
 
아담과 하와가 범죄해서 에덴에서 쫓겨난 이후로 우리에게 질병이 들어왔습니다. 에덴 동산에는 생명의 나무의 열매가 있고 우리를 건강하게 하는 온갖 재료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을 어김으로 쫓겨나게 되었고 그러므로 인간 세상에 질병과 죽음이 들어왔습니다.
 
우리가 천국을 소망하는 것은 그곳에는 아픔도 눈물도 없고 영원한 생명이 있는 곳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는 늙고 병들게 됩니다. 우리가 병들게 되면 고침을 받기 위해서 의사를 찾아가거나 용하다고 소문난 사람을 찾아가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입니다.
 
예수님 시대에도 많은 병자들이 있었고 많은 병자들이 베데스다에 대한 소문을 듣고 그곳에 몰려왔습니다. 그곳에는 다섯 개의 행각이 있었는데 병자들이 물이 움직일 때를 기다리면서 머무는 장소였습니다.
 
행각은 사람들이 머물 수 있도록 지어진 것으로 못의 사면과 중앙에 있었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물이 움직일 때 들어가서 고침을 받기 위해서 모여 있었고 실제로 가끔씩 물이 움직일 때 제일 먼저 들어가는 사람이 고침을 받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곳을 떠날 수가 없었습니다.
 
거기에 38년 병자가 있었습니다. 5절을 보면 “거기 서른여덟 해 된 병자가 있더라” 베데스다는 병든 사람들에게 희망의 장소였습니다. 물론 모든 사람이 다 고침을 받을 수 없지만 나도 들어가면 고침을 받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사람들이 자기가 가장 먼저 들어가게 될 날을 기대하면서 거기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모인 모든 사람들에게 기회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누구든지 가장 먼저 들어가야 고침을 받을 수 있습니다. 거기에 있는 환자들 중에는 빨리 움직일 수 있는 질병도 있지만 혼자서 거동하기 힘든 환자들도 있었습니다.
 
그런 분들은 베데스다에 희망을 걸고 오기는 했지만 자신이 가장 먼저 들어갈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희망의 자리에 있기는 하지만 희망이 없는 상황입니다. 희망의 자리에서 절망감을 느끼고 막연하게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 중에 38년 된 환자도 있었습니다. 이분은 자신의 힘으로 못에 들어갈 수 없는 분입니다. 그렇지만 그곳을 떠나지 못하고 그곳에서 언제나 기회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38년 된 병자는 사실은 희망의 자리에 있지만 절망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38년 된 병자는 어떤 병이지는 모르지만 긴 세월 질병으로 인해서 고통당한 사람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긴 세월 질병으로 인해서 힘든 세월을 보냈고 베데스다에 희망을 갖고 그곳에 와서 머물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사람을 향해서 네가 낫고자 하느냐? 고 물으셨습니다. 6절을 보면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예수님은 오랜 세월 질병으로 인해서 고통당한 것을 아시고 그에게 물으셨습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예수님께서 이렇게 물으신 것은 그 사람이 베데스다 못에 와서 지내는 이유가 낫고자 하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었음을 아셨습니다.
 
그러나 거기에 있으면서도 질병에서 낫기를 바라는 간절함이 있는지를 예수님을 확인하시려고 한 것입니다. 정말로 질병에서 고침을 받기 원해서 그곳에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냥 마땅히 갈 곳도 없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 다른 거기에 머물러 있는 것인지 예수님은 그 사람이 스스로 자기 입으로 말하게 하신 것입니다.
 
누가 낫고자 하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나를 도와줄 사람이 없습니다. 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7절을 보면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고 물으셨는데 ‘예 낫고 싶습니다.’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 아니라 물이 움직일 때 나를 못에 넣어 줄 사람이 없어서 내가 못으로 내려가려고 하면 이미 다른 사람이 들어가서 고침을 받았습니다. 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낫고자 하느냐고 하신 것에 대해서 나는 정말 간절한 마음으로 낫기를 원하는데 내가 나려고 하면 이미 다른 사람이 들어가서 고침을 받습니다. 누군가 나를 도와주면 좋은데 아무도 나를 안 도와주기 때문에는 나는 베데스다에 가장 먼저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대답을 한 것입니다. 마음으로는 간절히 원하지만 나 혼자는 가장 먼저 들어갈 수가 없는데 아무도 나를 도와주지 않습니다.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8절을 보면 “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데 아무도 도와주지 않기 때문에 못에 제일 먼저 들어갈 수가 없다고 말한 병자에게 예수님은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그 사람은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갔습니다. 9절을 보면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이 날은 안식일이니”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순간 그 사람이 고침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그 순간 그의 마음에 믿음이 생겼고 예수님의 말씀대로 일어나려고 하는 순간 혼자서 움직이는 것조차 힘들었던 사람이 벌떡 일어나게 되었고 자기가 누워있던 자리를 들고 걸어가게 된 것입니다.
 
말씀을 듣는 순간 마음에 믿음이 들어올 때 기적이 일어납니다. 말씀을 듣고 마음에 감동이 돼서 말씀에 순종할 때 기적이 일어납니다. 말씀을 들어도 아무런 감동이 없고 마음에 아무런 반응도 없다면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날 수 없습니다.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 반응하고 말씀에 순종합시다.
 
우리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던지 말씀을 믿을 때 기적이 일어나고 말씀에 순종해서 행동할 때 역사가 일어납니다. 야고보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믿음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믿음은 행동하는 것이고 믿음을 말씀을 따라 순종하며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럴 때 기적이 일어납니다.
 
3.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베데스다 못 앞에서 누워있던 38년 병자가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병자가 고침을 받는 기적이 일어난 날이 안식일이었습니다. 안식일에 병자가 고침을 받은 것에 대해서 유대인들이 비난을 했습니다.
 
10절을 보면 “유대인들이 병 나은 사람에게 이르되 안식일인데 네가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이 옳지 아니하니라” 유대인들은 안식일을 지키는 것에 대해서 매우 엄격했습니다.
 
유대인들이 이렇게 안식일에 대해서 엄격하게 된 것은 바벨론 포로가 되어서 끌려갈 때 하나님께서 내 안식을 지키지 않았다고 책망하셨고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오면서 안식을 철저하게 지켜야 한다는 다짐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안식일 지키는 것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안식을 지키는 문제에 있어서 정작 중요한 사람에 대한 배려가 없다는 것입니다. 안식일에 환자가 고침을 받는 것조차도 안식을 지키지 않는 것이라고 비난을 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유대인들을 향해서 안식일은 사람을 위해서 있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막 2:27 “또 이르시되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막 3:4 “그들에게 이르시되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니 그들이 잠잠하거늘”
 
예수님은 병자를 안식일에 고치셨기 때문에 논쟁이 있을 것을 아시고 잠시 피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예수님 그에게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4절을 보면 “그 후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그 사람을 만나 이르시되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
 
예수님은 38년 질병으로 인해 고생한 원인이 죄 때문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실로암 이야기에서 나면서 볼 수 없는 장애를 가진 것은 하나님의 일을 위한 것이라고 말씀하셨지만 오늘 말씀에 고침받은 사람에게는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도록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고 하신 것으로 볼 때 그 질병의 원인이 죄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신유의 은혜를 경험한 사람들에게 주시는 경고입니다. 질병에서 고침을 받았다면 더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믿고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17절을 보면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예수님은 병자를 안식일에 고치셨기 때문에 유대인들이 문제를 삼을 것을 아시고 잠시 피하셨지만 그 사람을 성전에서 만나서 더 큰 것이 생기지 않도록 죄를 짓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상황에서 유대인들이 고침 받은 사람을 붙잡고 어떻게 고침 받았는지 누가 너를 고쳐주었는지 이야기 하라고 했고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그를 고쳐 주셨다는 것을 알게 되자 예수님을 죽이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하는 것은 언제든지 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잠시도 쉬지 않고 일하십니다. 우리를 지키시고 돌보시며 영혼 구원을 위해서 일하십니다. 따라서 예수님도 영혼 구원을 위해서 일하시신다는 것이고 오늘 이 시대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영혼 구원을 위해서 쉬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38년 된 병자는 나면서 장애를 가진 사람 만큼 치료가 어려운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나면서부터 장애를 가진 사람 뿐만아니라 오랜 세월 질병으로 고통당한 사람도 고쳐주셨습니다. 우리가 어떤 상황에서 어떤 고통을 겪고 있든지 주님은 능히 고치시고 능히 해결해 주십니다.
 
우리는 말씀을 믿고 일어나 자리를 들고 걸어가는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안식일은 사람을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안식일에도 생명 살리는 일을 위해서 힘쓰는 참빛교회 모든 가족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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