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께서 나를 도우신다.(4월 2일 주일 오전 예배 설교)
이사야 50:1-11(구약 1030)
 
오늘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달리시기 위해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심을 기념하는 종려주일 이면서 고난주일 입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많은 병자들을 고치셨고, 죽은 자를 살리셨습니다.
 
또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시고, 바다를 잔잔케 하셨고, 수많은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당시 유대 종교지도자들의 외식하는 모습을 책망하시고,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천국 복음에 대해서 전하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고 말씀을 배우면서 하나님 나라에 대한 희망을 품게 되었습니다. 또한 기적을 행하시고 질병을 고치심으로 당시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고, 사는 것이 힘든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은 희망이었고 예수님의 시대가 열리길 기대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런 마음으로 예수님께서 유월절을 앞두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것을 기대하고 있었고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자 종려나무 가지를 꺾어 들고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하면 예수님을 환영했습니다.
 
종려나무 가지를 꺾어 들고 호산나 환영하는 무리들의 기대와 달리 예수님은 우리의 영혼의 구원을 위해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 위해서 입성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많은 군중들의 환영을 받으면서 개선장군처럼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지만 마음은 곧 지셔야 할 십자가를 생각하면서 입성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것은 로마의 지배로부터 해방 시켜 주실 것을 기대하며 환영했던 유대인들과 같은 기대를 가지고 믿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고난을 통해서 우리의 죄가 사함을 받았고 부활하심으로 영생의 소망을 갖게 되었음을 믿는 것입니다. 종려 주일이자 고난주일인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은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종에 대한 예언입니다.
 
이사야는 오실 그리스도에 대해서 예언하면서 종으로 묘사를 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하나님은 이 땅에 오실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적으로 순종하시는 종으로 오신다고 예언하게 하셨는데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 속에는 우리가 종의 노래라고 표현하는 예언의 말씀이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노래한 종의 노래는 네 편인데 오늘 본문에는(4-9) 세 번째 종의 노래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 종의 노래는 42:1-9절까지 기록되어 있고, 두 번째 종의 노래는 49:1-7절까지 세 번째 종의 노래는 오늘 본문 4-9절까지 네 번째 종의 노래는 52:13-53:12절까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주신 종은 어둠에 갇힌 세상에 빛을 비추어 구원하기 위해서 세상에 오셨고, 고난받으시고 죽으시면서도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과 같이 순종하시는 순종의 종으로 오신다고 예언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고난받으신 종이신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가 받을 은혜에 대해서 그리고 고난 중에서도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고난을 이기고 승리하시는 그리스도에 대한 노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제목을 “여호와께서 나를 도우신다.”라고 했는데 이 예언은 고난받는 종이신 그리스도께서 이 고난 속에서 하나님께서 나를 도우신다고는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난받는 종의 세 번째 노래가 포함된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은
 
1. 내게 건질 능력이 없겠느냐?
오늘 말씀은 이스라엘이 겪는 고난의 상황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50장에 언급된 내용은 바벨론 포로가 되는 것에 대한 비유적인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바벨론의 포로가 된 것은 그리고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총을 입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버리신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시면서
 
너희의 죄악으로 팔렸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절을 보면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내가 너희의 어미를 내보낸 이혼 증서가 어디 있느냐 내가 어느 채주에게 너희를 팔았느냐 보라 너희는 너희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팔렸고 너희의 어미는 너희의 배역함으로 말미암아 내보냄을 받았느니라”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이스라엘이 바벨론의 포로가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버리신 것이 아니라고 설명하시면서 내가 이혼 증서를 써서 준 것이 아니고 내가 채주에게 즉 빚진 것으로 인해서 팔아버린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멸망하는 것은 내가 이혼 증서를 주어서 버렸다거나 팔아버린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전통적으로 하나님은 남편이시고 이스라엘은 아내라는 개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도 주님은 나의 신랑이시고 우리는 주님의 신부라고 표현하는데 이스라엘도 그런 개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자신들이 망하고 포로가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혼을 해서 내 쫓으신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셨고 우리를 팔아버렸기 때문에 망했고 포로가 되어 끌려가는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 지적을 하신 것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혼 증서를 준 것도 아니고 내가 너희를 팔아버린 것도 아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계속해서 하나님께서 내가 너희를 불러도 대답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2절을 보면 “내가 왔어도 사람이 없었으며 내가 불러도 대답하는 자가 없었음은 어찌 됨이냐 내 손이 어찌 짧아 구속하지 못하겠느냐 내게 어찌 건질 능력이 없겠느냐 보라 내가 꾸짖어 바다를 마르게 하며 강들을 사막이 되게 하며 물이 없어졌으므로 그 물고기들이 악취를 내며 갈하여 죽으리라”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죄악으로 말미암아 멸망 당하고 포로가 되는 상황에서 친히 찾아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선지자를 보내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신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보내셨는데 사람들이 선지자들이 불러도 응답하지 않았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반응하지 않고 외면하고 오히려 선지자들을 핍박하고 죽인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셨지만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의 부름에 응답하지 않고 예수님을 거부할 것에 대한 예언의 말씀이기도 합니다. 성육신 하신 예수님께서 아무리 불러도 응답하지 않고 외면하고 오히려 십자가 못 박아 죽게 할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멸망하는 것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듣지 않고 외면하고 다른 길을 찾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전도자들을 통해서 죽어가는 영혼들을 부르시지만 사람들은 복음을 외면하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지 않고 각기 제 길로 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외면하는 이스라엘을 향해서 어찌 내게 건질 능력이 없겠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2절 뒷부분을 보면 “내가 왔어도 사람이 없었으며 내가 불러도 대답하는 자가 없었음은 어찌 됨이냐 내 손이 어찌 짧아 구속하지 못하겠느냐 내게 어찌 건질 능력이 없겠느냐 보라 내가 꾸짖어 바다를 마르게 하며 강들을 사막이 되게 하며 물이 없어졌으므로 그 물고기들이 악취를 내며 갈하여 죽으리라”
 
내가 너희를 찾아와서 너희를 불러도 너희가 응답하지 않고 나를 외면하는 이유는 내 손이 짧아서 너희를 구원하지 못하고 내가 너희를 바벨론의 손에서 또는 강한 이방 나라들의 손에서 건져낼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당시 강대한 앗수르를 정복하고 새로운 강대국으로 부상한 바벨론에 비해서 이스라엘은 보잘 것 없는 작은 나라이기 때문에 그들이 생각하기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강대한 바벨론의 손에서 건져낼 수 없다고 생각하고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들을 외면하고 자신들을 건져줄 대상을 찾고 있었습니다.
 
그런 이스라엘을 향해서 하나님은 내가 손이 짧아 너희를 구원하지 못하고 너희를 건질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느냐? 어리석고 미련한 자들아!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상황에 처하든지 능히 구원하실 능력의 하나님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하나님이십니다. 엡 3:20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2. 학자의 혀를 내게 주셨다.
첫 번째 단락에서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이 없는 이스라엘을 향해서 하나님은 건질 능력이 없으신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친히 찾아오셔서 구원하시고 건지시겠다고 말씀하시는데 그러기 위해서 종으로 오실 그리스도에 대해서 예언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오실 그리스도에게 학자의 혀를 주신다고 표현하고 있는데 학자의 혀를 받으신 그리스도는 곤고한 자를 말로 도와줄 줄 알게 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4절을 보면 “주 여호와께서 학자들의 혀를 내게 주사 나로 곤고한 자를 말로 어떻게 도와 줄 줄을 알게 하시고 아침마다 깨우치시되 나의 귀를 깨우치사 학자들 같이 알아듣게 하시도다.”
 
여기서 학자들의 혀를 주신다고 표현했는데 학자들은 ‘익숙한, 가르침을 받는’이란 의미로 여기서는 ‘가르치는 자’라는 의미로 우리말 성경은 이 구절을 “주 여호와께서 내게 가르치는 혀를 주시고 어떻게 하면 지친 사람을 말로 되살릴 수 있는지 알게 하신다. 아침마다 내 귀를 깨워 주셔서 마치 제자를 대하듯 들려주신다.” 라고 번역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곤고한 자들을 말로 위로해 주시고 격려해 주신다는 의미입니다. 곤고한 자의 문자적인 뜻은 ‘지친 자’인데 죄의식으로 눌려 있는 자 혹은 무거운 짐을 지고 견딜 수 없어 하는 자 등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말씀으로 상처받은 영혼들을 위로해 주시고, 절망하는 사람들에게 위로와 힘을 주십니다.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듣고 묵상할 때 말씀으로 위로를 받고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마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말로 위로하게 하시고 또한 아침마다 깨닫게 하십니다. 4절을 다시 보면 “주 여호와께서 학자들의 혀를 내게 주사 나로 곤고한 자를 말로 어떻게 도와 줄 줄을 알게 하시고 아침마다 깨우치시되 나의 귀를 깨우치사 학자들 같이 알아듣게 하시도다.”
 
이 구절을 공동번역으로 보면 “주 야훼께서 나에게 말솜씨를 익혀주시며 고달픈 자를 격려할 줄 알게 다정한 말을 가르쳐주신다. 아침마다 내 귀를 일깨워주시어 배우는 마음으로 듣게 하신다.”
 
이 말은 두 가지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성육신하셔서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아서 하나님의 뜻대로 공생애 사역을 하신다는 의미와 함께 성도들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아침마다 말씀으로 깨닫게 하신다는 의미가 담긴 구절입니다.
 
성령님께서 아침마다 말씀으로 우리를 깨닫게 해 주시고,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서 말씀을 통해서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게 하실 줄 믿습니다.
 
오실 그리스도께서 거역하지 않고 물러가지도 아니하겠다고 예언했습니다. 4-5절을 보면
50:4 “주 여호와께서 학자들의 혀를 내게 주사 나로 곤고한 자를 말로 어떻게 도와 줄 줄을 알게 하시고 아침마다 깨우치시되 나의 귀를 깨우치사 학자들 같이 알아듣게 하시도다.”
50:5 “주 여호와께서 나의 귀를 여셨으므로 내가 거역하지도 아니하며 뒤로 물러가지도 아니하며”
 
오실 그리스도에게 학자들 같이 알아듣게 하심으로 인해서 그리스도는 하늘 아버지께서 하시는 말씀에 절대 순종하시는데 어떤 상황에서도 거역하지도 않으시고 뒤로 물러가지도 않으시고 하늘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일에 순종하신다고 말씀했습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할 때 눅 22:42 “이르시되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십자가를 앞두고 간절히 기도하신 예수님은 이 잔을 옮길 수 있으면 옮겨주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즉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옵소서 기도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예언한 것처럼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에 절대 순종하셔서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순종하심으로 우리에게 본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벧전 2:21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3. 나를 도우신다.
세 번째 주제는 고난받으실 종이신 그리스도를 하나님께서 도우신다는 말씀입니다. 두 번째 주제에서 학자의 혀를 주셔서 곤고한 자를 말로 위로하게 하신다고 말씀했고, 아침마다 깨우치게 하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 듣고 순종하게 하셨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순종하신 그리스도를 하나님께서 도우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받으시지만 부끄러워하지 않으신다고 예언했습니다.
 
6-8절 까지를 보면
50:6 “나를 때리는 자들에게 내 등을 맡기며 나의 수염을 뽑는 자들에게 나의 뺨을 맡기며 모욕과 침 뱉음을 당하여도 내 얼굴을 가리지 아니하였느니라”
50:7 “주 여호와께서 나를 도우시므로 내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내 얼굴을 부싯돌 같이 굳게 하였으므로 내가 수치를 당하지 아니할 줄 아노라”
50:8 “나를 의롭다 하시는 이가 가까이 계시니 나와 다툴 자가 누구냐 나와 함께 설지어다 나의 대적이 누구냐 내게 가까이 나아올지어다.”
 
이사야 선지자는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받으실 수난에 대해서 예언을 했는데 때리는 자에게 등을 맡기고 수염을 뽑는 자들에게 뺨을 맡기고 모욕과 침 밷음을 당하게 하신다는 것이고 이런 상황이 오게 되면 수치심을 느끼고 절망감을 느끼지만 그리스도께서는 수치를 느끼지 않으시기 때문에 얼굴을 가리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인간을 입고 오셨기 때문에 우리가 느끼는 감정을 똑같이 느끼시지만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에 그런 상황에서도 수치감을 느끼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우리를 위해서 죽으시는 것이기에 하나님 앞에 절대 순종하면서 모든 상황을 이기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믿는다면 우리가 믿음으로 인해 핍박을 받을 때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에 아무도 정죄할 수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9절을 보면 “보라 주 여호와께서 나를 도우시리니 나를 정죄할 자 누구냐 보라 그들은 다 옷과 같이 해어지며 좀이 그들을 먹으리라”
 
예수님께서 산헤드린 공회에서 빌라도에게 넘겨졌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에게서 아무 죄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처형 판결을 받으신 것은 죄가 있어서가 아니었습니다.
 
산헤드린 공회에서도 예수님의 죄를 찾아서 정죄한 것은 아닙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에게 죄가 없음을 알았지만 정치적으로 어쩔 수 없이 십자가 처형을 언도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직접 목격한 백부장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눅 23:47 “백부장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이 사람은 정녕 의인이었도다 하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에 정죄할 자가 없다고 예언했고 백부장은 그리스도는 정영 의인이었다고 고백했습니다. 바울은 롬 8:31“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고난 받으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에 수치를 당하지 않고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라고 예언한 이사야는 결론적으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여호와의 이름을 의뢰하면 의지하라고 선포했습니다.
 
10-11절을 보면
50:10 “너희 중에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종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자가 누구냐 흑암 중에 행하여 빛이 없는 자라도 여호와의 이름을 의뢰하며 자기 하나님께 의지할지어다.”
50:11 “보라 불을 피우고 횃불을 둘러 띤 자여 너희가 다 너희의 불꽃 가운데로 걸어가며 너희가 피운 횃불 가운데로 걸어갈지어다 너희가 내 손에서 얻을 것이 이것이라 너희가 고통이 있는 곳에 누우리라”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구원에 이르게 하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의뢰하고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는 거입니다.
 
의뢰한다는 말의 의미는 신뢰한다. 믿는다. 라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신뢰하고 믿어야 합니다. 우리를 위해 인간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믿어야 합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죄 사함과 구원을 받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해방시켜 주시고 구원과 영생에 이르게 하기 위해서 오셨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의지한다는 말은 기댄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부활하신 예수님에게 기대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겪는 많은 어려움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에게 기대하고 의지할 때 부활하신 주님의 능력으로 모든 상황이 감사와 복이 되는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인간을 입고 오신 예수님께서 고난 받으심을 기억하면 지내는 고난 주간에 예수님의 고난을 도우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예언한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을 기억하면서 우리가 주님의 이름을 믿고 의지하며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언제나 우리를 도우심을 믿고 예수님의 이름을 의뢰하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참빛교회 모든 성도가 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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