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과 진리로 예배하라(3월 12일 주일 오전예배 설교)
요한복음 4:1-26(신약 147)
 
사마리아는 이스라엘의 수도였으나 북이스라엘의 호세아 왕 때에 앗수르의 살만에셀 5세에게 포위 공격을 받았고(왕하17:3-6; 18:9-10) 그 3년째 되던 해(B.C.722년) 사르곤 2세에게 멸망당했습니다.
 
이때 북이스라엘 지도층은 앗수르 제국 내 고산에서 메대 지방에 이르는 여러 지역으로 끌려갔고, 동시에 앗수르의 관리들과 그 백성은 사마리아로 들어와 살면서 자연스럽게 잡혼이 이뤄짐으로써 혈통의 순수성을 상실하고, 신앙도 변질되었습니다.
 
이런 역사적 배경 때문에 유대인은 사마리아인을 이방인과 동일하게 취급하여 멸시하였습니다(요4:9; 8:48). 그래서 유대인들은 북방으로 여행할 때에 가까운 사마리아를 통과하지 않고 요단 동편 베레아 지역으로 멀리 우회하여 지나갔습니다.
 
일반적으로 유대인들 특히 바리새인들은 유대에서 갈릴리로 갈 때나 반대로 갈릴리에서 유대로 갈 때 사마리아를 거쳐서 가면 빨리 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마리아를 돌아서 갔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은 유대에서 갈릴리로 가시면서 사마리아를 우회하지 않으시고, 사마리아를 거쳐서 갈릴리로 가시는 길을 선택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를 돌아서 가시지 않고 사마리아를 거쳐서 가신 것은 하나님은 차별하지 않으시는 분이시고 누구에게나 복음의 기회가 열려 있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성 중에 수가라 하는 동네에 도착을 하셨습니다. 이곳에서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서 대화를 하시면서 영과 진리로 예배하라는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영과 진리로 예배하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1. 예수님께서 우물가에 앉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요단강에서 침례를 받으시고 사역을 시작하셨는데 2장에서 유월절에 예루살렘 성전을 정화하셨고 3장에서 니고데모와 대화를 하셨는데 이것은 유대에서 이루어진 일이고 4장에서는 유대를 떠나서 갈릴리로 가시는 도중에 일어난 일을 기록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유대를 떠나 갈릴리로 가시는 도중에 사마리아 수가 성에서 잠시 머무시게 되는데 수가성에 도착하신 예수님께서 우물곁에 앉으셨는데 예수님께서 피곤하여 우물 곁에 그대로 앉으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6절을 보면 “거기 또 야곱의 우물이 있더라 예수께서 길 가시다가 피곤하여 우물 곁에 그대로 앉으시니 때가 여섯 시쯤 되었더라”
 
요한은 예수님께서 피곤하셔서 우물 곁에 그대로 앉아계셨다고 기록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면서 많은 사역을 하셨기 때문에 육체가 피곤함을 느끼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완전한 성육신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시지만 인간으로 오셨기 때문에 우리가 피곤을 느끼는 것과 같이 예수님도 피곤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피곤하셔서 우물가에 앉아계신 시간이 제 육시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제 육시는 정오를 말하는 것입니다. 오전에 출발을 해서 정오에 수가라는 마을에 도착하셨기 때문에 피곤하셨다는 것입니다.
 
오전에 날이 뜨거워지기 전에 출발을 해서 정오에 도착을 했는데 아직 점심을 잡수시기 전이었습니다. 8절에 보면 “이는 제자들이 먹을 것을 사러 그 동네에 들어갔음이러라” 제자들은 먹을 것을 사기 위해서 갔고 예수님은 혼자 피곤하신 채로 우물가에 앉아계셨던 것입니다.
 
점심 때가 돼서 허기진 상태이시기도 하고 오전에 걸어서 오셨기 때문에 피곤하시기도 한 상태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같은 몸을 입고 계셨기 때문에 우리가 느끼는 것을 그대로 느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지금 우리가 어떤 상태인지 잘 아십니다. 우리가 피곤하고 지쳐 있을 때에 예수님은 나도 피곤해서 앉아서 쉬고 있을 때가 있었다고 말씀하시면서 우리를 안식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쉬지도 않고 일하라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힘든 것도 아시고, 피곤한 것도 아시고, 부족한 것도 아십니다. 그래서 늘 우리에게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나와서 주님 품 안에 안길 때 진정한 쉼과 안식을 얻을 수 있습니다.
 
피곤해서 앉아계시던 예수님은 사마리아 수가라는 동네에서 살고 있으면서 물 길러 온 여인에게 물 좀 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7절을 보면 “사마리아 여자 한 사람이 물을 길으러 왔으매 예수께서 물을 좀 달라 하시니”
 
오전에 걸어서 사마리아에 오신 예수님은 피곤하신 상태였고 배고프신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목이 마르신 상태였습니다. 우물곁에 계시기는 했지만 물을 마시기 위해서는 물을 떠서 드시기 위한 도구들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물을 마시지 못하신 것 같습니다.
 
일반적으로 물을 길러 오는 사람들은 해가 진 다음에 물을 길러 오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런데 여인은 정오에 뜨거운 태양 볕 아래에 물을 길러왔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물을 길러 오지 않는 시간을 택해서 왔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목 마르시던 차에 물을 길러 온 여인을 보시고 물을 우물에서 길어서 물동이네 담고 있는 것을 보시고 물을 좀 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인은 유대인이신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사람인 자신에게 물을 달라고 하니까 의외라는 듯 대답했습니다.
 
9절에 보면 “사마리아 여자가 이르되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하니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하지 아니함이러라”
 
앞에서 역사적인 배경을 잠깐 설명드렸는데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이방인 취급을 했기 때문에 상종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유대인이신 예수님께서 자신에게 물을 좀 달라고 하자 여인은 의와해 하면서 물어 본 것입니다. 당신이 유대인인데 사마리아 사람인 나에게 물을 달라고 하느냐 면서 물을 드리지 않으려고 한 것 같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네가 구하면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0절을 보면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예수님은 여인에 유대인인 당신이 사마리아 사람인 나에게 물을 달라고 하느냐면서 물을 드리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너에게 물을 좀 달라고 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네가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고 그가 너에게 생수를 주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은 네가 내가 누구인지 알고 나에게 구하면 내가 영원한 생수를 너에게 주었을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자 여인은 11절에 “여자가 이르되 주여 물 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당신이 그 생수를 얻겠사옵나이까?”
 
여인은 예수님께서 네가 구하면 생수를 주었을 것이라고 말씀하시자 그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기에 주여 물 길을 그릇도 없으시면서 이 깊은 우물에서 어떻게 생수를 구해서 주실 수 있습니까? 하고 질문을 했습니다.
 
여인의 반응은 우리의 일반적인 반응입니다. 주님 그게 어떻게 가능해요? 이 우물은 깊은데 물을 길을 그릇도 없는데 어떻게 물을 주실 수 있어요? 우리가 그렇게 질문하고 반응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이런 질문을 하는 여인과 우리들에게 예수님은
 
2.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으리라
예수님께서 네가 나에게 구했으면 생수를 주었을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에 대해서 여인은 물을 길을 그릇도 없으면서 어떻게 생수를 준다고 하십니까? 하고 물었을 때
 
예수님은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2-13절을 보면
4:12 “우리 조상 야곱이 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셨고 또 여기서 자기와 자기 아들들과 짐승이 다 마셨는데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
4:1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예수님께서 내게 구하면 생수를 주리라고 말씀하신 것에 대해서 여인은 어떻게 물을 주실 수 있느냐고 물으면서 당신이 야곱보다 큽니까? 이렇게 질문을 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물을 한 번 마시면 그것으로 갈증이 영원히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거나 상황에 따라서 계속해서 갈증을 느끼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마시는 물은 영원히 목마르게 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먹는 양식도 역시 우리를 영원히 배부르게 하지 못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먹고 마시는 것은 불완전하다는 의미입니다. 우리에게 영원한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은 제한적으로만 만족을 주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에게 영원한 만족을 주고 영원히 만족함을 누리게 하는 것은 없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목마르고 시간이 지나면 배고프고 시간이 지나면 부족함을 느끼는 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내가 주는 물은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4절을 보면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예수님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인데 그 이유는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날과 같이 수도가 없던 시절에 물을 품어 올리는 펌프라는 것을 사용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펌프로 물을 길어 올리려면 먼저 마중물을 넣어주어야 합니다. 펌프 안에 물이 없는 상태에서 펌프질을 열심히 해 봐야 물은 올라오지 않습니다. 거기에 한 바가지 정도의 마중물을 붓고 나서 펌프질을 하면 밑에 있던 물을 끌어 오려서 펌프에서 물이 계속해서 나오게 됩니다.
 
예수님은 내가 주는 물은 영적 마중물이 되어서 너에게 영생을 주고 그 영생의 물이 네 안에 들어가서 계속해서 영적인 생명을 주시는 영생의 물을 끌어 올리게 한다는 의미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이 영원한 생수의 마중물이 되는 것이고 성령으로 기름 부음을 받는 것이 영원한 생명의 마중물이 되어서 우리 안에서 생명의 물이 계속해서 흘러나오고 그로 인해서 우리의 영혼은 갈증을 느끼지 않게 되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주시는 생수 즉 말씀과 성령과 은혜의 생수를 마심으로 끊임없이 생수가 넘쳐나는 삶을 살아가는 참빛 교회 모든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여인이 주여 그런 물을 내게도 주소서라고 고백합니다. 15절을 보면 “여자가 이르되 주여 그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으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말씀에 대해서 여인은 완전하게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단지 영원하도록 물이 솟아나리라고 말씀하신 것에 대해서 그러면 더 이상 물을 길러 오지 않아도 되니까 나에게 그 물을 달라고 한 것입니다.
 
계속되는 대화에서 여인은 남편이 다섯이나 있지만 지금 있는 남편도 너의 남편이 아니라는 말을 하신 것으로 볼 때 여인은 다른 사람들이 물을 길러 오지 않는 시간에 물 길러 온 것으로 볼 수 있고 자신의 삶이 떳떳하지 못하기 때문에 물을 길러 오지 않아도 되게 해달라고 요청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여인은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여인에게 너는 왜 그렇게 사냐고 책망하시거나 지금 당장 너의 잘못된 삶을 바꾸라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여인이 지금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 아픔을 아셨을 것입니다.
 
그래서 여인을 책망하시거나 하신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오늘날도 우리의 아픔을 아시고, 우리가 겪는 슬픔도 아십니다. 그리고 책망하고 그렇게 살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나는 너의 아픔을 알고 너의 눈물을 안다고 말씀하고 우리에게 생수를 주십니다.
 
3. 영과 진리로 예배하라
예수님은 물을 달라고 말씀하신 것을 시작으로 여인에게 복음을 전하신 것입니다.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아픔을 가진 여인과 대화를 하시면서 너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 앞에 영과 진리로 진실된 예배를 드리는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지금 필요한 것은 영과 진리로 진실한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여인에게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6-21절까지를 보면
4:16 “이르시되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오라”
4:17 “여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4:18 “너에게 남편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4:19 “여자가 이르되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4:20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4:21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예수님은 여인이 지금 어떤 상황인지 이해하셨습니다. 그리고 여인이 당신은 선지자 이신 것 같습니다. 라고 이야기 하면서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 즉 유대인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고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이 말은 여인은 자신의 삶이 지금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지만 하나님 앞에 예배 드리고자 하는 열망이 있다는 고백을 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사는 것이 너무 힘들고 어렵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예배하고 싶습니다. 어떻게 해야 되나요? 그런 의미가 담긴 고백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어디에서 예배 드리는가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네 마음에 하나님을 예배할 마음이 준비 되었는가가 중요한 것이라는 것을 말씀하시면서 하나님을 예배할 때가 왔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지금은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이고 하나님을 간절히 찾을 때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지금은 하나님을 더 간절히 찾을 때입니다. 지금은 하나님을 예배하기를 힘써야 할 때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고 은혜의 보좌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예수님은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22절을 보면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라”
 
예배에 대해서 관심을 보인 여인에게 예수님은 하나님을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고 말씀하신 다음에 너희는 알지 못하고 예배를 드리지만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인은 하나님을 예배하고자 하는 열망은 있었지만 그가 알고 있는 예배의 대상은 참 하나님이 아니었기 때문에 예수님은 어디서 예배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 예배드려야 하는가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시고, 우리가 예배드려야 할 유일한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우상에게 예배하거나 다른 신에게 예배드리지 않고 오직 하나님에게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예배의 대상을 바로 알고 드리는 예배가 진정한 예배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은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23-24절을보면
4:23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4: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에게 하나님은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신다고 말씀하시는데 이렇게 예배하는 자는 예배의 대상을 바로 알고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자라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영은 일반적으로 성령으로 이해하는 단어인데 여기서는 영이신 하나님을 성령안에서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진리는 성실과 정직이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영과 진리로 예배한다는 것은 성령 충만한 가운데 영이신 하나님을 만나는 영의 예배를 드리는데 성실하고 진실하게 즉 거짓됨이 없이 몸과 마음과 정성을 하나로 모아서 예배드린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사마리아의 여인의 아픔을 어루만져 주시면서 영과 진리로 하나님을 온전히 예배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픔도 눈물고 아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어루만져 주시면서 나는 너를 찾고 있다고 말씀하시면서 하나님을 찾고 영과 진리로 예배하면 내가 너를 만나줄 것이고 너에게 영원한 생명의 생수를 주어 영생의 길로 인도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예배의 대상은 오직 하나님이심을 알고 오직 하나님께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참빛 교회 모든 성도가 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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