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3월 5일 주일 오전예배 설교)
요한복음 3:1-21(구약 824)
 
요한복음에만 등장하는 니고데모라는 분의 이름의 뜻은 ‘승리한 백성’, ‘백성의 정복자’란 뜻이며 바리새인이며 산헤드린 공회의원으로 구원의 진리를 배우기 위해 한밤중에 예수님을 찾아와 중생(거듭남)의 진리를 배웠고, 그 후 신실한 제자가 되었습니다.
 
니고데모는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 소집된 산헤드린 공회에서는 정당한 심문 없이 죄인을 죽이는 것은 불법이라 하여 간접적으로 예수님을 옹호하기도 했습니.(요 7:50-52)
 
십자가 달려 돌아가신 예수님을 아리마대 사람 요셉에 장례를 치룰 때 비싼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리트라쯤 드려 예수님의 죽음을 애도하기도 했습니다.(요 19:39)
 
오늘 말씀은 니고데모가 한 밤 중에 예수님을 찾아온 것으로 시작이 됩니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와 대화를 하시면서 예수님께서 오신 목적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해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말씀을 들었고, 예수님은 많은 기적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니고데모는 예수님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니고데모는 예수님에게 대해서 알고 싶었고 예수님에게 말씀을 듣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당시 유대 사회의 지도자였기 때문에 사람들이 많을 때 찾아와서 예수님과 대화를 하거나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부담스러웠습니다.
 
그래서 한 밤중에 몰래 예수님을 찾아왔던 것입니다. 1-2절을 보면
3:1 “그런데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지도자라”
3:2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이르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요한은 니고데모를 소개할 때 밤에 예수님을 찾아왔던 니고데모라고 소개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당시 그리스도인들 중에 자신이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것을 의도적으로 지적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요한 사도는 핍박받는 시대에 숨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자신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는 것을 당당하게 드러내라는 의미로 밤에 찾아온 이라는 표현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숨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빛으로 나타나는 그리스도인이 됩시다.
 
오늘 예수님과 니고데모의 대화를 중심으로 해서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은
 
1. 거듭나야 한다.
한 밤중에 예수님을 찾아온 니고데모에게 예수님은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은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구원받은 성도로 영생을 얻은 성도로 살아가기 위한 조건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한 밤 중에 예수님을 찾아온 니고데모에게 담대한 신앙을 요구하신 것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찾아올 때 한 밤 중에 몰래 찾아온 니고데모에게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은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당당하게 살아가라는 의미를 담아서 말씀하신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거듭난다는 말은 다시 새롭게 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즉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사람으로 변화된다는 의미와 함께 다시 태어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성도가 된다는 것은 거듭나는 것입니다.
 
즉 그리스도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다는 것은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새것이 되는 것입니다. 고후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예수님은 한 밤 중에 찾아온 니고데모에게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3절을 보면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거듭난다는 표현에 대해서 전통적으로 유대인들은 이방인이 유대교로 개종하면 그를 중생한 자 즉 거듭난 자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선택받은 백성인 유대인들조차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인간의 노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에 의해서, 어느 한 부분만이 개선되는 것이 아니라 전체 본성이 새롭게 되는 사건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거듭난다는 것은 새로운 존재로 다시 태어난다는 의미로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므로 새로운 피조물로 다시 태어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거듭나지 않으면 즉 예수님을 영접하고 구원받은 성도로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기 이전의 나와 예수님을 믿은 이후의 나는 완전히 변화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기 이전을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이라고 묘사했습니다. 엡 4:22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거듭난다는 것은 옛사람은 벗어버리고 새롭게 지음을 받은 새 사람을 입는 것입니다. 엡4:23-24
4:23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4: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습니다. 거듭나야 우리의 눈이 열리고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쓰고 있던 세상의 안경을 벗어야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습니다.
 
이 땅에 속한 육의 안경을 벗고 하늘에 속한 신령한 눈이 열려서 하나님의 나라를 보게 되고, 그 나라의 은총을 이 땅에서도 누리는 참빛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거듭나는 것에 대해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4-7절을 보면
3:4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3: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3:6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3:7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우리가 거듭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 믿음으로부터 거듭남은 시작됩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고백한 성도는 물로 거듭나게 되는데 여기서 물로 거듭남에 대해서 요일 5:6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이시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증언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물은 그리스도의 보혈과 침례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물과 피를 다 쏟으셨습니다. 그 피로 우리가 죄사함을 받고 구원 받은 성도가 되었습니다. 따라서 물로 거듭난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 씻음을 받았고 그 증거로 침례를 받는 것을 의미한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성령으로 거듭난다는 것은 구원받은 성도가 성령으로 세례받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한 성도가 간절히 사모할 때 오순절날 임하신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임하십니다.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시면 우리는 성령께서 우리를 도우셔서 진리 가운데 살아가게 하시고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나게 하시는 것입니다. 성령을 받기 전에 두려움에 쌓여 있던 제자들이 성령을 받고 순교를 두려워하지 않은 것처럼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시면 우리는 과거와 다른 성령으로 변화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성도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성도가 되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고 하나님 나라의 은총을 누리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2. 인자도 들려야 하리라
예수님은 거듭남에 대해서 말씀하시면서 우리의 거듭남을 위해서 친히 나무에 달리셔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니고데모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거듭남에 대해서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아시고
11-13절까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3:11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우리는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언하노라 그러나 너희가 우리의 증언을 받지 아니하는도다.”
3:12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3:13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니고데모가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으로 내가 하늘에서 내려와서 하늘에 일을 말하는 것인데 너는 아직 믿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신 다음에 예수님께서 하실 일에 대해서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4절을 보면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예수님은 민 21:4-9의 내용을 들어 자신의 구속 사업 즉 하늘의 일을 설명하셨습니다.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 생활 가운데서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하다가 불뱀에 물려 죽게 되었을 때 모세가 장대 위에 매달아 놓은 놋 뱀을 쳐다본 사람은 살아날 수 있었습니다.
 
이 사건은 그리스도께서 십자rk에서 돌아가실 것과 그 십자가의 예수님을 바라보고 믿는 자는 구원을 얻게 될 것임을 예표하는 것입니다. 이는 놋뱀 자체가 어떤 치유의 능력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말씀하신대로 나무에 달린 놋뱀을 쳐다봄으로 치유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장차 예수님께서 십자가 달려 돌아가실 것과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는 자들이 죄 사함과 구원을 받게 된다는 것을 모형적으로 보여주신 사건이었고 모세가 죽어가는 백성들을 위해 하나님께서 명령하신대로 놋뱀을 나무에 단 것처럼 예수님께서도 친히 나무에 달리실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달리심으로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5절을 보면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광야에서 놋뱀을 나무에 달고 그것을 쳐다보는 사람들이 고침을 받은 것처럼 십자가에 달리실 예수님께서 누구든지 십자가에 달린 그를 믿으면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나무에 달리시기 위한 것이고 예수님께서 나무에 달리신 것을 보고 믿는 자들에게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해서 오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그를 믿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는 자는 구원을 받고 영생을 얻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친히 나무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믿는 것입니다.
 
3. 아들을 보내신 이유
예수님은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처럼 인자도 들려야 하리라고 말씀하시고 그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보내신 이유에 대해서 말씀하시는데
 
세상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16절을 보면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여기서 이처럼이란 말은 ‘극진히’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극진히 즉 너무나 사랑하셔서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하나 밖에 없으신 독생자 예수님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처럼이란 단어의 또 다른 의미는 ‘이런 방법으로’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을 우리에게 보여주시는데 이런 방법으로 사랑을 보여주셨다는 것으로 그 사랑의 방법은 독생자 예수님을 주시는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귀한 것을 내어주시면서까지 세상을 향한 사랑을 보여주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신 것은 하나님의 이같은 사랑 즉 말로 다 할 수 없는 극진한 사랑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보내신 것은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증거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을 사랑하셨고, 하나님의 손으로 친히 만드신 인간을 너무나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보내주셨습니다. 우리에게 오신 예수님은 세상을 사랑하신 하나님의 증거입니다.
 
아들을 보내신 것은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서입니다. 16-17절을 보면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3: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고 멸망하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구원하시기 위함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에 멸망하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믿는 사람들은 종종 하나님께서 이 악한 세상을 왜 아직 멸망시키지 않으신 것인가? 이렇게 생각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세상은 점점 악해지는 것 같은데 왜 하나님은 세상을 심판하지 않으시는가요? 이렇게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 하나님은 세상을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함이라고 대답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신 목적은 멸망이 아니라 살리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종말의 때에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것도 이 세상을 멸망하시기 위한 것이라기보다 천국을 열어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창조하신 세상을 멸망시키기보다는 세상을 지키시고 보전하시길 원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심판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보내신 것은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따라서 그 이름을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습니다. 18-21절까지를 보면
3:18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3:19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3:20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3:21 “진리를 따르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신 것은 심판을 위해서가 아니라 구원을 위해서라고 말씀하시고 심판은 믿지 않으므로 받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어 심판을 받지 않고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구원 받고 영생을 얻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우리가 할 일은 모든 영혼이 예수님을 믿어 심판에 이르지 않고 멸망하지 않고 구원 받고 영생에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는 너무나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난 성도로 영생을 얻었기에 영생의 소망을 품고 살아가고 모든 사람이 구원에 이르도록 전도하며 살아가야 할 줄 믿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망하는 걸 원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은 우리가 하늘의 복을 누리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참빛 모든 가족이 하늘의 복을 누리는 복된 삶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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