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이 있도다.(2월 26일 주일 오전예배 설교)
시편 32:1-11(구약 824)
 
지난 수요일이 재의 수요일이고 사순절이 시작되었습니다. 사순절(Lent)은 ‘길이(length)’를 의미하는 앵글로 색슨어 ‘lencten’에서 유래한 말로, 봄의 기간을 나타냅니다. 사십 일은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사탄의 유혹을 이겨내고, 공생애를 준비하신 기간입니다.
 
사순절은 다가올 부활절을 대비하여, 회개하고, 금식하며, 준비하는 시간입니다. 또 자신의 신앙을 검토하고 성찰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근래에는 미디어 금식을 하거나 탄소 중립 실천 운동을 실천하는 방법으로 사순절을 지내기도 합니다.
 
현대인들은 바쁜 생활을 하고 있어서 금식을 하거나 특별히 구별된 시간을 갖거나 하는 것이 쉽지 않은 상황이긴 합니다. 우리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들을 정하고 그 일을 함으로 의미 있는 사순절을 보낼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해마다 사순절 신약 일독하기를 하고 있는데 금 년에도 가능하면 모든 분들이 신약성경 일독에 참여했으면 좋겠습니다.
 
32편은 51편과 함께 다윗의 일생일대의 실수인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불의한 방법으로 강탈한 사건을(삼하11장)배경으로 한 과거 회상적인 시입니다. 일반적으로 6, 32, 38, 51, 143편을 회개시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본문의 내용에는 회개뿐만 아니라 감사(3-8)와 지혜(1, 2, 9-11)의 요소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다윗은 나단 선지자의 책망을 듣고 나서 자신의 죄에 대해서 철저하게 고백하면서 하나님의 도움을 간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은 자신이 지은 죄를 보면서 하나님 앞에 철저하게 회개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죄에 대해서 철저하게 회개하는 다윗은 진실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기도를 하면서 하나님은 죄를 고백하는 모든성도들의 기도를 반드시 들어주셔서 죄를 용서해 주시고 그 간구하는 기도에도 응답해 주신다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 앞에서 복 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노래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일까요? 물론 성경에는 복 있는 사람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기록했습니다.
 
그런데 성경 전체를 통해서 복이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중요한 것은 죄 문제가 해결되는 것입니다. 복이 있기 위해서는 죄 문제가 해결되어야 하는데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공로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사순절 첫 번째 주일을 맞이해서 다윗의 찬양을 중심으로 “복이 있도다.” 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복이 있다고 노래한 것은 결과적으로 죄의 문제를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심으로 우리에게 복이 임한다는 의미로 노래했습니다.
 
1. 이런 사람은 복이 있도다.
다윗은 자신이 지은 죄로 인해서 고통 가운데 있음을 고백했습니다. 3-4절을 보면
32:3 “내가 입을 열지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32:4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빠져서 여름 가뭄에 마름 같이 되었나이다.(셀라)”
 
얼마나 고통스럽고 힘든 상황인지를 묘사하고 있는데 종일 신음할 정도로 고통스러운데 주의 손이 나를 누리기 때문에 진액이 빠져서 여름 가뭄에 마름 같이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큰 고통을 느끼고 있다는 고백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의 죄로 인해서 이런 고통을 당하고 있는데 이 고통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복을 누리게 되었음을 노래한 것인데 다윗은 이런 사람은 복이 있다고 노래하면서
 
정죄를 당하지 않는 사람이 복이 있다고 노래했습니다. 1-2절을 보면
32:1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
32:2 “마음에 간사함이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허물이란 단어의 히브어의 의미는 ‘반역 곧 하나님께로부터 떠남’을 의미하며, ‘반항, 고의적인 범죄’ 등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허물이란 단어는 구약에서 죄를 가리키는 가장 뜻깊은 단어로, 그것의 신학적 의미는 ‘하나님께 대한 반역’이란 의미입니다.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를 범한 죄는 하나님에 대한 반역이고 하나님을 떠난, 고의적인 범죄라는 의미입니다. 자신이 그런 고의적인 범죄를 저질렀지만 하나님께서 자신의 허물을 사해 주심으로 복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죄란 단어는 ‘표적을 빗나가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죄란 의무를 이행하지 못했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성도가 성도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못하는 것이 죄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 단어입니다.
 
다윗은 자신이 한 나라의 왕으로 하나님이 세운 지도자로서 의무를 성실하게 이행하지 못한 죄로 인해서 고통을 당했는데 하나님께서 자신의 죄를 가려주셨기에 복이 있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계속해서 다윗은 마음에 간사가 없고 정죄를 당하지 아니한 사람이 복이 있다고 노래했는데 간사라는 단어는 ‘기만, 거짓, 간사, 이중성’ 등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 동안 하신 것 중에 가장 통렬한 책망은 “말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마 23:3)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교활함과 이중성 곧 간사함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마 23:5)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마 23:33)고 무서운 선고의 말씀을 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간사가 없고 정죄를 당하지 않는 사람이 복이 있다고 했는데 이 표현은 사람은 허물과 죄가 있고 간사함이 있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허물과 죄와 간사함을 덮어주셔서 즉 가려주시고 정죄하지 않으심으로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말을 다른 측면에서 보면 죄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복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허물과 죄가 없는 사람이 아니지만 하나님께서 허물과 죄를 가려주시고 정죄하지 않으심으로 복 있는 삶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순절을 지내면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그리스도의 고난으로 우리의 죄가 가려졌고 우리에게 정죄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자신의 죄를 자복하는 사람이 복이 있다고 노래했습니다. 5절을 보면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악을 사하셨나이다.(셀라)”
 
다윗은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고통을 당하는 상황에서 스스로 자신의 허물과 죄를 깨달았고 하나님께 정죄함을 받지 않아야 복이 있는데 자신은 지금 죄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서 이런 고통을 당한다는 것을 깨닫고 스스로 하나님 앞에 자신의 허물을 즉 스스로 하나님을 반역하고 고의 지은 죄를 자복한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자복이란 죄를 인정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자신의 죄를 구체적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허물을 자복하고 자신의 죄악을 숨기지 않고 고백했더니 하나님께서 죄악을 사해주셨다고 고백했습니다.
 
요일 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죄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을 허물과 죄를 자복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해주십니다. 우리의 죄가 사함을 받으면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죄 사함을 받는 것이 복이 있는 것이고 또한 기도하는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6절을 보면 “이로 말미암아 모든 경건한 자는 주를 만날 기회를 얻어서 주께 기도할지라 진실로 홍수가 범람할지라도 그에게 미치지 못하리이다.”
 
‘경건한 자’는 하나님과 언약 관계에 있는 언약 백성을 의미하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고백한 성도를 의미합니다. 경건한 자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이므로 언제든지 죄를 회개하기만 하면 사죄의 은총을 받을 수 있습니다.
 
경건한 자는 하나님을 만날 기회를 얻어서라는 말은 ‘하나님을 반드시 만나야만 될 그때 그때마다’ 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반드시 만나야 한다는 사인을 주시는데도 하나님을 찾지 않으면 버려지게 됩니다.
 
반면에 하나님이 주시는 사인이 민감해서 언제든지 사인이 오면 하나님을 찾고 기도하면 어떤 시련이 오더라고 하나님이 손안에서 형통하고 복된 결과를 얻게 됩니다.
 
하나님을 찾으라는 사인을 지나치지 않고 하나님께 민감한 영적 사람이 되고 하나님을 찾고 찾는 기도의 사람이 됩시다.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기로를 외면하지 않으시고 반드시 응답하시고 건져주십니다.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님을 내어주시면서 우리가 하나님을 찾기를 기다리십니다. 주님을 찾고 기도하는 참빛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2. 기뻐하고 즐거워하자
다윗은 고통 속에서 이 때가 하나님을 만날만한 때라고 깨닫고 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어주셨다고 고백했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허물과 죄를 고백했더니 사해 주셨고 그래서 정죄를 당하지 않게 되었고 복을 누리게 되었음을 선포했습니다.
 
이어서 하나님을 기뻐하고 즐거워하자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기뻐하고 즐거워하기 위해서 훈계를 따라야 합니다. 8절을 보면 “내가 네 갈 길을 가르쳐 보이고 너를 주목하여 훈계하리로다.”
 
이 구절을 현대어 성경으로 보면 “주께서 이르신다. ‘너희가 마땅히 가야 할 길을 내가 몸소 너희에게 가르치리라. 너희에게서 내 두눈을 떼지 않고 너희에게 어떻게 해야할지 말해 주리라.’”
 
이 구절은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주신 말씀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내가 네가 가야 할 길을 가르쳐 보여주고 너를 훈계한다고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은 다윗에게 내가 너를 주목하여라고 말씀하셨다고 했는데 주목하여 라는 말은 선생님이 학생들을 주목하듯이 친절한 마음으로 죄인들의 생활 하나하나를 바라보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비록 죄 가운데 있지만 하나님은 선생님이 학생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듯이 다윗을 주목하여 보시면서 훈계하셨다는 것입니다. 훈계란 단어는 조언하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훈계하셨다는 것이고 훈계를 따라서 살아감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누리게 되고 그러므로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무지한 말이나 노새같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9절을 보면 “너희는 무지한 말이나 노새 같이 되지 말지어다 그것들은 재갈과 굴레로 단속하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가까이 가지 아니하리로다.”
 
말이나 노새같이 되지마라는 말은 결코 완고하게 행동하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말이나 노새는 강제적인 구속력이 없이는 다스릴 수 없는 완고한 짐승으로서 잠언에서는 미련한 인간에 비유됩니다.
 
완고한 짐승들에게는 주인의 매가 기다릴 뿐이듯 회개할 줄 모르는 완고한 죄인들에게 임할 것은 하나님의 진노의 채찍뿐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완악한 마음 상태로 살아가면 하나님의 채찍이 있지만 성령안에서 부드러운 마음이 되어 회개하고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입게 되면 기뻐하고 즐거워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호와를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합니다. 11절을 보면 “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마음이 정직한 너희들아 다 즐거이 외칠지어다.”
 
11절을 현대어 성경으로 보면 “바르게 사는 이들아, 여호와라는 이름만 들어도 기뻐하여라. 기뻐 마구 뛰어라. 마음 올곧게 먹는 이들아, 기쁨으로 마구 소리 질러라.”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성도로 하나님의 이름을 듣기만 해도 기쁨이 넘치고 즐겁게 뛰면서 찬양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이름을 들어도 아무런 감동이 없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이름을 들어도 감동이 없는 무감각한 신앙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을 듣는 것만으로도 기쁨이 넘치고 즐겁게 찬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살아있다는 것은 반응하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살아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이름을 듣고 기쁘고 즐겁게 반응합니다. 하나님으로 인해 항상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기도하는 성도가 복이 있는 성도입니다.
 
3. 받을 복
허물과 죄로 인해 고통당하던 다윗이 자신의 허물과 죄를 자복함으로 하나님께서 죄를 가려주시고 사해주심으로 복을 누리게 되었다고 고백했는데 다윗은 회개하고 받는 복에 대해서 노래했습니다.
 
홍수가 범람해도 미치지 못합니다. 6절을 보면 “이로 말미암아 모든 경건한 자는 주를 만날 기회를 얻어서 주께 기도할지라 진실로 홍수가 범람할지라도 그에게 미치지 못하리이다.”
 
여기서 ‘홍수의 범람’ 은 갑작스런 재앙에 대한 상징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갑작스런 재앙이 올지라도 여호와께 나아가 죄를 자복하고 간구하는 자에게는 그 재앙이 감히 미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다르게 표현하면 어떠한 환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구원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는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자연재해가 오기도 하고, 사건과 사고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진실한 믿음으로 살아는 의로운 성도들이라면 그리고 하나님을 만날 기회를 얻어서 진심으로 기도하는 성도라면 그런 상황에서도 항상 보호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지진이나 화산 폭발이나 해일과 같은 자연 재해에 목숨을 잃은 사람들이 다 믿음이 없는 죄인들이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믿는 사람들과 자연 재해나 사건과 사고로 어려운 상황에 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진실한 믿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는 성도는 그런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특별한 보호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참빛 성도들이 자연재해나 사건과 사고를 당하는 상황에서도 항상 선한 능력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전능하신 팔로 보호받는 삶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환난에서 보호하십니다. 7절을 보면 “주는 나의 은신처이오니 환난에서 나를 보호하시고 구원의 노래로 나를 두르시리이다.(셀라)” 하나님은 우리이 은신처 즉 피난처시며, 반석이시기에 우리가 두려워 할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를 보호해 주시고, 우리가 어떤 상황에 처하게 되든지 구원해 주시고 지켜주십니다. 시 121:6 “낮의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아니하리로다.”
 
인자하심이 두르십니다. 10절을 보면 “악인에게는 많은 슬픔이 있으나 여호와를 신뢰하는 자에게는 인자하심이 두르리로다.” 이 구절을 현대어 성경으로 보면 “못된 짓만 일삼는 것들에게는 겪느니 모두 괴로운 일. 그러나 여호와 굳게 굳게 믿는 이들은 한결같이 따스한 사랑으로 끊임없이 주께서 보살피시리니”
 
인자하심으로 두르신다는 말은 언제나 따뜻한 사랑으로 보살펴주신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어떤 시련과 역경이 온다고 해서 하나님은 언제나 따스한 품 안에 우리를 품어주시고, 주님의 사랑 안에서 살아가게 하십니다.
 
우리에게 주신 가장 큰 복은 죄와 허물의 사함을 받는 것입니다. 죄와 허물로 인해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던 우리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를 힘입어 죄와 허물의 사함을 받고 가리움을 받아서 하나님께 나아갈 자격을 얻게 되었습니다.
 
참빛 가족 모두 주님의 은혜로 홍수가 범람하는 상황에서도, 환난의 상황에서도 항상 안전하게 보호를 받고 언제나 하나님의 따뜻한 품안에서 행복한 삶을 살아가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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