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2월 19일 오후 예배)
성 경 : 요한복음 1:14-28(신약 142)
 
요한 사도는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고 선포하면셔 요한복음을 시작했습니다. 요한은 공관복음보다 늦은 시기에 요한복음을 기록하면서 공관복음에 기록된 일반적인 내용은 생략하고 이 글이 쓰여 지던 시대의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해서 이해하고 믿을 수 있고, 이단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게 하려는 의도로 요한복음을 기록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요한은 당시 철학에서 사용하던 로고스라는 단어를 예수님에게 적용하면서 너희가 말하는 로고스는 곧 그리스도이신데 그분은 세상이 창조되기 이전에 존재하셨고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시라고 소개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생명의 빛으로 오셔서 참빛을 우리에게 비추어주셨는데 사람들은 빛을 알지 못하고 영접하지도 않았으나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선포했습니다.
 
요한은 우리의 출생성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믿음이 중요하다는 것을 이야기 했습니다. 선민 유대인이냐 아니냐가 하나님의 자녀의 조건이 아니라 누구든지 믿는 자 즉 이방인이나 유대인이나 구분이 없는 믿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고 선포했습니다.
 
오늘 말씀은 생명의 빛으로 오신 말씀이신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에게 하늘의 은혜와 축복이 임하게 되었다고 선포하면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게 우리에게 임했다고 선포했습니다.
 
오늘 본문을 중심으로 해서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1.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요한 사도는 앞에서 로고스이신 그리스도께서 생명의 빛으로 나타나셨다고 선포했습니다. 그리고 말씀이신 그리스도께서 사람을 입으시고 세상에 오셔서 우리 가운데 거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가운데 거하시므로 즉 사람으로 오셔서 우리와 함께 하심으로 우리가 누리는 은혜와 축복이 있다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았다고 선포했습니다. 14절을 보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초대교회 당시에 이단들 중에 ‘가현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가현설은 ‘그리스도가 인간으로 오신 것처럼 보였으나 육체로 오시지 않았으며 그의 수난도 하나의 가상이었다.’고 주장했던 영지주의의 주장입니다.
 
예수님이 성육신 하신 것은 실제로 있었던 일이 아니라 그런 것처럼 보였을 뿐이라고 말하는 가현설에 대해서 요한 사도는 말씀이신 그리스도는 실제로 인간을 입고 세상에 오셔서 우리와 함께 하셨다고 말한 것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함께 하시므로 말미암아 우리를 그의 영광을 보았다고 말하면서 우리가 본 그의 영광은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가운데 거하실 때 우리가 그분과 함께 생활할 때 그분에게서 영광이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그의 영광이란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능력으로 기적을 행하시고, 말씀을 가르치시고, 변화산에서 변화되시고 한 모든 것에서 영광이 나타났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의 삶의 모든 영역에서 영광이 나타났는데 그 영광은 하나님의 독생자의 영광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에게서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영광이 나타난 것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18절에서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우리에게도 그리스도의 영광의 흔적이 나타나야 합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난 것처럼 우리는 어느 곳에서 그리스도의 흔적을 나타내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갈 6:17 “이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났는데 그 영광은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으로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다고 말합니다. 14절을 다시 보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가 누리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독생자의 영광을 통해서 나타난 것으로 그리스도의 영광이 우리에게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것으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은혜라는 말은 우리가 무엇인가를 하지 않았음에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모든 것을 말하는 것으로 가장 큰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우리의 죄를 사해주시고,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여하는 구원 받은 성도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진리는 어원적으로 ‘가리워져 있지 않음’을 의미합니다. 이 말은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는 의미로서 아무 것도 가려지거나 감추어진 것이 없이 있는 그대로 드러난다는 의미인데 여기서는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은 진리이기에 어느 것 하나 거짓이나 감추어진 것이 없다는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비밀스럽게 하시는 분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드러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도 비밀스럽고 은밀하게 하신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십자가에서 죽게 하셨습니다.
 
17절을 보면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충만하다는 말은 차고 넘치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은혜와 말씀의 진리는 차고 넘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풍성하게 차고 넘치게 채워주십니다.
 
롬 15:13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2. 네가 누구냐?/ 나는 아니라
요한 사도께서 말씀이신 그리스도께서 인간을 입으시고 오셔서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하나님의 독생자의 영광이 임했고 그 결과 은혜와 진리가 충만했다고 기록한 다음에 침례 요한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19절을 보면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네가 누구냐 물을 때에 요한의 증언이 이러하니라”
 
침례 요한에게 와서 질문하는 사람들의 질문에 대해서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대답했습니다. 19-20절을 보면
1:19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네가 누구냐 물을 때에 요한의 증언이 이러하니라”
1:20 “요한이 드러내어 말하고 숨기지 아니하니 드러내어 하는 말이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한 대”
 
사람들이 침례 요한에게 네가 누구냐? 라고 질문했습니다. 그들의 질문은 당시 요한이 침례를 베풀면서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선포하자 많은 사람들이 요한에게 가서 회개하고 침례를 받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요한을 찾아와서 침례를 받게 되자 많은 사람들이 마음에 이분이 그리스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보낸 사람들의 그런 마음을 알았기 때문에 요한에게 너는 누구냐? 라고 질문한 것이고 요한은 그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알기 때문에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대답했습니다.
 
이단들은 자신들이 그리스도라고 성경을 왜곡하면서 자신을 드러내려고 하지만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사역을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단호하게 이야기 했습니다.
 
요한 정도의 사역을 하면 스스로 그리스도처럼 행동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침례 요한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그리스도의 길을 준비하는 역할을 한 것이고 자신은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단호하게 말한 것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의 희망은 그리스도가 오시는 것입니다. 오랜 기간 힘든 시간을 보냈던 유대인들은 그리스도가 오셔서 자신들을 그 모든 고통 속에서 건져주시길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요한이 나타나서 침례를 주니까 많은 사람에게 침례를 받으면서 요한이 그리스도인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일반 유대인들과 달리 그리스도가 오시는 것을 별로 달가워하지 않았습니다. 자신들이 누렸던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아야 하기 때문에 그리스도가 오시는 것을 반기지 않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요한을 그리스도라고 생각하는 것을 알기 때문에 요한에게 네가 누구냐? 라고 질문한 것이고 그들의 생각을 아는 요한은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대답한 것입니다.
 
나는 엘리야나 선지자가 아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21절을 보면 “또 묻되 그러면 누구냐 네가 엘리야냐 이르되 나는 아니라 또 묻되 네가 그 선지자냐 대답하되 아니라”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보낸 사람들이 요한에게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면 네가 엘리야냐 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요한은 나는 엘리야가 아니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그럼 네가 그 선지자냐라고 물었습니다. 침례 요한은 나는 아니라고 대답했습니다. 여기서 그 선지자냐라고 물은 것은 ‘우리가 기다리던 그 선지자’라는 의미로 모세가 ‘나와 같은 선지자’ 가 올 것이라고 말한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 선지자는 그리스도를 의미하는 것이지만 어쨌든 요한에게 엘리야냐라고 물었을 때 아니라고 대답했고 그럼 그 선지자냐라고 물었을 때도 역시 나는 아니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요한은 자신이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나는 엘리야도 그 선지자도 아니라고 대답한 것입니다.
 
요한이 나는 아니라고 대답하자 그럼 우리를 보낸 사람들에게 가서 너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대답해야 하느냐고 묻자 침례 요한은 광야에서 외치는 자라고 대답했습니다.
 
22-23절을 보면
1:22 “또 말하되 누구냐 우리를 보낸 이들에게 대답하게 하라 너는 네게 대하여 무엇이라 하느냐”
1:23 “이르되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 하니라”
 
종교 지도자들의 보냄을 받은 사람들은 요한이 그리스도도 아니고 엘리야나 그 선지자도 아니라고 대답을 하자 그럼 우리를 보낸 사람들에게 네가 누구라고 대답해야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요한은 나는 이사야 선지자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사 40:3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
 
요한은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대로 나는 주님의 길을 준비하기 위해서 광야에서 외치라고 보냄을 받았다고 말하면서 나는 외치는 자의 소리라고 말했습니다. 자신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대언자일 뿐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3.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요한은 종교 지도자들이 보낸 사람들에게 나는 아니라고 대답한 다음에 그들에게 나는 그분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할 존재라고 대답을 하는데
 
종교 지도자들이 보낸 사람들이 너는 어찌하여 세례를 베푸느냐? 고 물었습니다. 25절에 “또 물어 이르되 네가 만일 그리스도도 아니요 엘리야도 아니요 그 선지자도 아닐진대 어찌하여 세례를 베푸느냐”
 
너는 스스로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했고, 엘리야나 그 선지자도 아니라고 했는데 그럼 왜 세례를 베푸는 것이냐? 라고 질문했습니다. 침례를 준다는 것은 특별한 일이기 때문에 그렇게 질문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침례는 메시아 대망사상과 관련이 있습니다. 메시아가 오시면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는 기대를 하고 있었고 침례를 주는 것은 과거의 나를 벗고 새 사람을 입는다는 의미가 있기 때문에 너는 무슨 자격으로 침례를 주는 것이냐는 의미로 질문한 것입니다.
 
그들이 질문에 대해서 요한은 너희가 알지 못하는 한 사람이 섰으니라고 대답했습니다. 26절을 보면 “요한이 대답하되 나는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너희 가운데 너희가 알지 못하는 한 사람이 섰으니”
 
요한은 너는 왜 침례를 주느냐고 질문한 것에 대해서 나는 물로 침례를 베풀지만 앞으로 오실 분이 있는데 그분은 너희가 알지 못하는 분이라고 말했습니다.
 
요한은 뒤에 가서 나는 물로 침례를 주지만 그분은 성령으로 침례를 주신다고 전했습니다. 요한은 너희는 그분을 알지 못한다고 말했는데 그 이유는 그분에 대해서 나는 성령님을 통해서 들어서 알고 있지만 너희는 하나님께서 계시를 주시지 않았기 때문에 모른다는 것입니다.
 
요한은 계속해서는 나는 그분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고 말했습니다. 27-28절을 보면
1:27 “곧 내 뒤에 오시는 그이라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하더라”
1:28 “이 일은 요한이 세례 베풀던 곳 요단 강 건너편 베다니에서 일어난 일이니라”
 
신발끈이란 당시 유대인들이 도보 여행시 착용하였던 신발(가죽 샌들)의 끈을 가리키는 것으로 유대 풍습에 의하면 주인은 초대한 손님이 방문하면 자기 집에서 가장 천한 종을 시켜 손님의 신발끈을 풀고 발을 씻기게 하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침례 요한의 고백은 자신을 그리스도에 비할 때 가장 비천한 종의 자격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고백한 것입니다.‘너는 네게 대하여 무엇이라 하느냐’는 진상 조사단의 물음에 대해 침례 요한이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계속 증거하는 형식으로 답한 것은, 자신의 사역을 메시아의 사역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자신이 메시아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미천한 존재였지만, 메시아의 앞길을 예비하는 선구자라는 직분은 그 누구에게도 비길 수 없는 영광스럽고 기쁜 것임을 요한은 자부하고 있었음에 분명합니다.
 
요한 사도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신 그리스도로 인해서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게 우리에게 임했음을 선포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복된 삶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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