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2월 12일 오후 예배)
성 경 : 요한복음 1:1-13(신약 142)
 
요한복음은 공관복음보다도(50-70년) 한 세대(90년) 더 지나서 기록되었습니다. 예수님과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의 산 증인은 더 이상 세상에 없고 복음을 부모나 조부모로부터 전해 들어야만 하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거기다 교회에는 이단들이 침투해서 순전한 복음이 전파되는데 많은 훼방을 놓았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과 행하신 일과 십자가 사건에 대해선 공관복음이 이미 기록하고 있기에 이젠 예수님이 누구였는지 어떤 일을 행했고 예수님의 사역이 인간에게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지에 대한 더 구체적인 해설을 새로운 세대에 해주어야 했습니다.
 
무엇보다 예수님의 하나님 아들 되심, 주님의 인성과 신성중에 신성에 대한 신학적으로 확실한 변증이 필요했습니다.
 
사도 요한은 그래서 이미 공관복음에 기록된 내용은 거의 다 생략했습니다. 대신에 특별히 일곱 기적을 엄선해서 각 기적마다 예수님이 메시아로서 인간에게 베푸신 특정한 은혜와 권능을 강조했습니다.
 
나아가 예수님 스스로 유대인들과의 신학적 논쟁을 통해서 신성을 변증한 내용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공관복음이 주님의 가르침을 주로 설교와 비유의 형식으로 기록한 반면에 요한복음은 주님과 유대인과의 토론한 내용을 기록했습니다.
 
유대인 종교지도자들은 유대 절기에 맞추어 예루살렘에 올라오신 예수님에게 신학적 시비를 걸었고 주님은 그 질문들에 답변하면서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증거 했습니다.
 
요한복음은 그래서 각 절기가 갖는 의미에 맞추어서 메시아로서 행하신 기적과 역할들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자연히 요한은 예수님이 세 번의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올라오셨다고 기록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공관복음은 예수님의 가르침과 사역을 실제 일어났던 그대로 기록했다면, 요한복음은 공관복음이 구체적으로 다루지 않았던 주님의 하나님 아들 되심을 변증하는 책입니다.
[출처] 기독일보 https://www.christiandaily.co.kr/news/98128#share
 
마태, 누가복음은 예수님의 탄생이야기로부터 시작한다면 요한복음은 예수님이 누구이신가를 이야기 하면서 그분은 하나님이시다는 말씀으로 시작을 합니다. 공관복음은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인간으로 오셨다는 것으로 시작했다면 요한은 원래 그분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으로 시작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봉독한 1장 1-13절까지를 중심으로 해서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 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려고 하는데 요한은 먼저 하나님이신 예수님에 대해서 소개하면서 우리가 인간을 입고 오신 예수님을 믿을 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선포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1. 말씀이신 예수님
요한 사도는 예수님을 소개하면서 말씀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우리 신앙에서 중요한 것은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셨고, 우리는 선지자들과 예수님과 사도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고 들었고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요한 사도가 말하는 말씀이란 의미는 우리가 듣거나 입으로 선포하는 말의 의미를 뛰어넘어서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은 언제나 말씀으로 우리에게 임재하신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이시라고 선포하면서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 고 선포했습니다. 1절을 보면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여기서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는 말의 의미는 천지가 창조되기 전에 말씀이 계셨다는 의미입니다.
 
현대어 성경은 “천지가 창조되기 전, 아무것도 존재하기 전에 말씀이 계셨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이시며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그분은” 이라고 번역했습니다.
 
요한이 사용한 “말씀”에 해당하는 헬라어 ‘로고스’는 헬라사회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었던 말입니다. 헬라철학에서 로고스는 사물의 배후에 있는 영원한 질서이고 우주적 법칙으로 이해했습니다.
 
헤라클레토스는 로고스를 우주의 질서를 유지하는 원리로 보았고, 플라톤에게 로고스는 단순히 어떤 개인적 기능이 아니라 그보다 더 크고 충만한 법칙이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로고스를 인간 덕의 원천으로 보았습니다. 스토아 철학자들은 로고스를 우주적 원리로 보았습니다.
 
세계의 이성적 질서와 우주적 이성은 로고스 안에 표현되어 있으며 로고스는 인간에게 지식을 주는 법칙으로 이해했습니다. 만물이 로고스에서 나오고 로고스로 되돌아간다는 것입니다.
 
로고스는 단순히 말씀이라는 한정적 표현이 아니라 세상의 원천이고 모든 것의 시작이자 끝이라는 의미로 당시에 이해되었다고 합니다. 따라서 요한 사도는 당시에 잘 알려진 로고스의 개념을 그리스도에게 적용해서 철학자들이 말하려고 하는 로고스는 곧 그리스도이시다라고 소개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로고스 즉 모든 것의 원천이신데 그분은 천지를 창조하시기 전에 이미 존재하셨다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성탄절 이후에 존재하신 분이 아니라 우주 만물이 창조되기 이전에 이미 계신 분입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셨는데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습니다. 2절을 보면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태초에 즉 천지가 창조되기 전에 말씀이신 예수님께서 존재하셨는데 예수님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는 말은 하나님과 하나 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말씀이신 예수님은 서로 하나가 되어서 존재하셨다는 것입니다.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은 천지를 창조하기 이전에 같이 계셨습니다. 하나님에 의해서 예수님이 태어난 피조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요한 사도는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함께 하셨을 뿐만 아니라 말씀이신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시라고 말했습니다. 초대 교회 때부터 삼위일체를 부정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오늘날도 삼위일체를 부정하고 오직 예수님만 존재하신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 구절에서 말씀이신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다라는 것을 인용하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요한 사도께서는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이 하나이라는 삼위일체론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초대교회 당시에 삼위일체를 부정하는 사람들에게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 그리고 성령 하나님은 하나이시다. 라고 말한 것입니다.
 
말씀이신 예수님은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3절을 보면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창세기1:26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천지 창조의 이야기를 기록하면서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들 때 우리라는 복수를 사용하셨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함께 천지를 창조하신 것으로 해석을 합니다. 예수님은 성부 하나님과 함께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2. 참 빛이신 예수님
예수님은 말씀이시고, 천지가 창조되기 전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하나님과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라고 소개한 요한 사도는 예수님은 어둠의 세상에 빛으로 오셨다고 소개했습니다. 예수님만이 유일한 빛이고 참 빛이 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참빛 되신 예수님은 생명의 빛으로 오셨습니다. 4절을 보면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현대어 성경은 이 구절을 “그분 안에 영원한 생명이 있고 이 생명은 모든 인류에게 빛을 주신다.” 라고 번역했습니다.

예수님은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습니다. 따라서 예수님 안에 생명이 있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생명을 얻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영원한 생명으로 오셨는데 생명은 사망의 그늘과 어둠을 물리치는 빛입니다. 죽음은 어둠이고 흑암이지만 생명은 어둠을 밝히는 빛입니다. 따라서 요한 사도는 예수님께서 생명이시며 생명을 빛으로 우리에게 임하셨다고 선포한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님의 생명의 빛으로 우리에게 오셨고 우리가 그 빛 안에 거할 때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생명으로 오셨고 흑암을 비추는 빛으로 오셨지만 어둠은 깨닫지 못합니다. 5절을 보면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요한 사도는 예수님의 공생애를 옆에서 직접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게 할 때의 상황도 다 알고 있었습니다. 시간이 많이 지난 다음 요한은 그 당시의 상황을 돌아보면서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사망의 흑암 속에 빛으로 오셨는데 사망에 묶여 있던 어둠에 속한 사람들은 예수님이 비추어주신 생명의 빛을 깨닫지 못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죽게 만들었다. 이렇게 이야기 한 것입니다.
 
요한은 그들이 깨닫지 못했다고 말한 것은 그들이 예수님이 빛으로 오신것과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오신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의미로 말한 것입니다.
 
어둠에 있는 사람들은 그들의 마음이 화인 맞아서 빛을 볼 수 없습니다. 딤전 4:2 “자기 양심이 화인을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
 
어둠에 있는 양심이 화인 맞은 자들은 눈이 가려져서 거짓과 진실을 구별하지 못하지만 예수님은 참 빛으로 오셔서 각 사람에게 비추십니다. 6-9절까지를 보면
1:6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
1:7 “그가 증언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언하고 모든 사람이 자기로 말미암아 믿게 하려 함이라”
1:8 “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언하러 온 자라”
1:9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예수님은 죽음의 어둠에 묻힌 세상을 위해서 생명을 주시는 빛으로 오셨지만 사람들이 깨닫지 못했다고 말하면서 침례 요한은 그 빛을 증언하기 위해서 와서 빛을 증거했지만 침례 요한은 그 빛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요한은 빛을 증거하러 온 사람이지만 예수님은 친히 어둠과 흑암의 세상이 참 빛으로 오셔서 모든 사람들에게 비춰주셨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우주를 태양계라고 합니다. 태양계에는 태양이 비추는 빛을 반사체들인 달과 별들이 받아서 비추는 것입니다.
 
우리가 밤에 달과 별을 보면 마치 빛이 비추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태양의 빛을 받아서 반사하는 것입니다. 태양계의 참 빛은 태양이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알기 전까지 달 빛, 별 빛을 믿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만이 참 빛이십니다. 예수님이 비추시는 빛을 우리는 받아서 세상에 전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빛으로 오셔서 생명을 주신다고 말씀하고 계속해서 우리가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믿을 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예수님을 참 빛으로 보내셨지만 세상은 그를 알지 못했습니다. 10절을 보면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예수님은 하나님으로 세상을 창조하셨기에 창조 전부터 계셨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세상이 창조되었지만 사람들은 예수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신 것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본디오 빌라도의 손에 죽게 만든 것입니다.
 
어느 시대나 사람들은 자신들이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자신들의 생각이 항상 옳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유대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넘겨주면서 한 사람이 죽는 것이 낫다고 말하면서 예수님을 죽게 만든 것을 합리화시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11-12절을 보면
1:11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자기 땅에 오셨다는 것은 이스라엘에 오심을 의미하는 것이고 당연히 영접해야 할 이스라엘이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지만 누구든지 그가 누구이든지 예수님을 믿는 그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권세를 주셨다는 것은 원래는 자격이 안 되지만 자녀가 되는 특권을 주셨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될 자격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영접하고 믿으므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당연한 권리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님을 희생의 제물로 내어주시고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인간으로 오셔서 버림받고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가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 특권을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받은 성도들은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입니다. 13절을 보면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 즉 특권을 얻게 된 것은 혈통이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난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하나님의 은혜로 난 자가 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성도가 되고 직분자가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입니다. 즉 우리가 원래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특권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는 죽음의 어둠에 갇힌 자들이었지만 생명의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믿으므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누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롬 8:17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하나님의 상속자가 된 우리들이 고난을 받을 수 있습니다. 고난이 있다는 것은 상속자라는 증거라는 것입니다. 지금 어렵고 힘든 과정을 겪는 성도들이 하나님의 상속자로 진정한 은혜와 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녀의 특권과 상속자의 특권을 누리는 참빛 교회 모든 성도가 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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