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하신 예수님(2월 5일 오후 예배)
성 경 : 마가복음 16:1-20(신약 85)
 
사복음서 중에서 가장 먼저 기록된 복음서가 마가복음이라고 일반적으로 이야기 합니다. 마태복음은 마가복음을 기본 자료로 해서 기록했을 것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입니다.
 
마가복음은 간략하게 기록했다면 마태복음은 마가복음을 기초로 해서 조금 더 자세하게 기록했을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 보면 마가복음은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에서 핵심적인 내용을 기록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오늘 살펴보려고 하는 16장은 9절부터 20절까지 괄호로 묶어 놨는데 그 이유는 오래되고 권위 있는 사본에는 이 부분이 없고 초대 교회의 유명한 교부들 중에서도 이 부분을 인용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고 역사학자인 유세비우스도 이 부분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괄호로 표시한 것입니다.
 
권위 있는 사본에는 없는 내용이기 때문에 누군가가 추가했거나 편집한 내용일 수 있다고 보고 괄호로 묶어 놓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부분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습니다.
 
마가복음 16장은 예수님께서 사망 권세 이기시고 부활하신 것과 승천하신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부활하신 예수님”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1. 기대하지 않았던 부활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 앞에 오늘날의 표현으로 한다면 멘붕에 빠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예수님의 죽으심을 보면서 제자들은 도망을 갔고 예수님의 가족들이 나서서 장례를 치룰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리마대 사람 요셉과 니고데모를 통해서 예수님의 장례를 치루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따르던 여인들은 자신들이 예수님의 장례를 위해서 아무 것도 하지 못한 것이 너무 서운해서 나름대로 준비를 해서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가서 전혀 기대하지 못했던 소식을 듣게 되는데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무덤에 간 여인들은 향품을 준비해서 갔습니다. 1-2절을 보면
16:1 “안식일이 지나매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가서 예수께 바르기 위하여 향품을 사다 두었다가”
16:2 “안식 후 첫날 매우 일찍이 해 돋을 때에 그 무덤으로 가며”
 
여인들이 향품을 준비한 것은 예수님의 장례에 자신들이 참여하지 못했기 때문에 아리마대 사람 요셉과 니고데모가 정성껏 장례를 치루었겠지만 자신들도 예수님의 장례를 위해서 뭔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아리마대 사람 요셉과 니고데모가 미처 준비하지 못한 향품이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여인들은 예수님을 무덤에 안치하는 것을 보고 와서 향품을 사서 준비했습니다. 누가복음에는 여인들이 예수님의 무덤에 갔다고 안식일이 시작되기 전에 향품을 준비한 것으로 기록했습니다.
 
여인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기대하면서 무덤으로 간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장례를 마무리 하기 위해서 간 것입니다.
 
여인들이 무덤에 도착했을 때 돌이 옮겨져 있었습니다. 3-4절을 보면
16:3 “서로 말하되 누가 우리를 위하여 무덤 문에서 돌을 굴려 주리요 하더니”
16:4 “눈을 들어본즉 벌써 돌이 굴려져 있는데 그 돌이 심히 크더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돌아가시던 날 예수님을 무덤에 장사 지내는 것을 보았고 향품을 준비해서 갔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무덤이 굴인데 굴 입구를 큰 돌로 막아 놓았기 때문에 무덤에 들어갈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여인들은 예수님의 무덤에 큰 돌로 막혀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덤에 갔을 때 무덤의 문을 열고 들어가서 예수님의 시신에 향품을 발라드릴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무덤으로 가면서도 걱정을 하면서 갔습니다. 누가 우리를 위해서 무덤 문에서 돌을 굴려줄 수 있을까? 제자들이라도 같이 가면 제자들이 돌을 굴려줄 수 있을 것 같은데 돌을 옮길만한 힘이 없는 여인들까지 무덤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걱정을 했습니다. 누가 무덤의 돌을 옮겨줄 수 있을까? 여인들은 무덤에 가도 예수님의 시신에게 향품을 발라드릴 수 없기 때문에 그냥 이쯤에서 포기하자 할 수도 있지만 돌이 막혀 있는 것을 알고도 무덤으로 갔습니다.
 
여인들은 자신들이 돌을 옮길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무덤까지 갔습니다. 그런데 무덤에 도착해 보니까 무덤을 가로막고 있던 돌이 옮겨져 있었습니다. 그 돌은 심히 큰 돌이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믿음으로 나아가면 무덤의 돌이 옮겨지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우리에게 역사가 일어나지 않는 이유 중에는 중간에 포기하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능한 것 같아서 가는 것을 포기하면 돌이 옮겨진 것과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여인들은 부활 소식을 듣고 무서워하며 도망갔습니다. 5-8절까지를 보면
16:5 “무덤에 들어가서 흰 옷을 입은 한 청년이 우편에 앉은 것을 보고 놀라매”
16:6 “청년이 이르되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
16:7 “가서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르기를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거기서 뵈오리라 하라 하는지라”
16:8 “여자들이 몹시 놀라 떨며 나와 무덤에서 도망하고 무서워하여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더라”
 
여인들이 무덤에 간 이유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기 위해서 간 것이 아니라 죽어 있는 예수님에게 향품을 발라드리기 위해서 간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전혀 생각도 못했던 소식을 듣게 됩니다. 흰 옷을 입은 청년 즉 천사를 의미하는 것으로 천사가 예수님의 부활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기뻐하며 찬송을 한 것이 아니라 몹시 놀라며 떨면서 무덤에서 나와서 도망을 갔습니다. 그리고 무서워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듣고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무서워하고 도망을 갔습니다. 여인들이 기대한 것은 부활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2. 믿지 못하는 제자들
여인들은 예수님의 무덤에 갔다가 부활 소식을 듣고 무서워하면서 도망을 갔습니다. 그리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나타나셨는데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사람들의 증언을 들은 제자들이 믿지 못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셨습니다. 9절을 보면 “예수께서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에 살아나신 후 전에 일곱 귀신을 쫓아내어 주신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보이시니”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가장 먼저 만나주신 분은 막달라 마리아입니다. 이것은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에 공통적으로 기록했습니다. 예수님은 막달라 마리아에게 제일 먼저 나타나셔서 만나주셨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일곱 귀신이 들어서 고통을 당했으나 예수님께서 귀신을 쫓아내 주셔서 정상적인 생활을 하게 되신 분으로 누구보다도 예수님의 은혜를 크게 받은 분이었고 그래서 예수님의 무덤으로 누구보다 아픈 마음으로 왔던 분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막달라 마리아는 제자들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다고 증언했지만 믿지 않았습니다. 10-11절을 보면
16:10 “마리아가 가서 예수와 함께 하던 사람들이 슬퍼하며 울고 있는 중에 이 일을 알리매”
16:11 “그들은 예수께서 살아나셨다는 것과 마리아에게 보이셨다는 것을 듣고도 믿지 아니하니라”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이 모여서 슬퍼하며 울고 있는 곳으로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셨다고 증거하면서 내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다고 증언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 있던 사람들 즉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것과 막달라 마리아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다는 것을 믿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실 것과 부활하실 것에 대해서 이미 말씀하셨지만 여인들도 제자들도 믿지 못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이 듣고 싶어하는 것만 듣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죽으실 것과 다시 살아나실 것을 말씀하셨지만 제자들도 여인들도 믿지 못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신 것은 기억도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시골로 가던 두 제자에게 나타나셨고 그들이 제자들에게 증언했지만 믿지 않았습니다. 12-13절을 보면
16:12 “그 후에 그들 중 두 사람이 걸어서 시골로 갈 때에 예수께서 다른 모양으로 그들에게 나타나시니”
16:13 “두 사람이 가서 남은 제자들에게 알리었으되 역시 믿지 아니하니라”
 
누가복음에 의하면 이 두 사람은 엠마오로 가는 길이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두 사람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을 보면서 낙심한 상태로 엠마오로 가던 길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들은 가던 길에서 돌아서서 예루살렘으로 와서 제자들에게 우리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다고 증언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역시 믿지 않았습니다.
 
3.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증언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들었지만 제자들이 믿지 못했습니다. 그런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을 꾸짖으셨습니다. 14절을 보면 “그 후에 열한 제자가 음식 먹을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사 그들의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시니 이는 자기가 살아난 것을 본 자들의 말을 믿지 아니함일러라”
 
막달라 마리아와 두 제자의 증언을 듣고 믿지 못하는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에 대해서 꾸짖으셨습니다.
 
마음이 완악하다는 말은 마음이 굳어 있다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망권세 이기시고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들었음에도 제자들의 마음이 굳어 있어서 부활 소식을 믿지 못한 것입니다.
 
마음이 굳어 있으면 믿음이 약해지고 믿지 못하는 상태가 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겔 11:19 “내가 그들에게 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영을 주며 그 몸에서 돌 같은 마음을 제거하고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
 
겔 36: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성령님이 오셔서 우리의 굳은 마음, 완악한 마음을 부드럽게 하사 믿게 하십니다. 성령 충만을 받는다는 것은 완악하고 굳어 있던 마음이 부드러운 마음이 되어서 믿음 안에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마음을 부드럽게 하셔서 믿게 하시고, 일상생활에서도 온유한 마음으로 살아가게 하시고, 성도로서 성도답게 살아가게 하십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말씀하시면서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를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5-18절까지를 보면
16:15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16:16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16:17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16:18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부활하신 예수님은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으로 제자를 삼으라고 말씀하시면서 복음을 전할 때 믿는 자들에게 즉 복음을 전하는 자들에게 이런 표적이 따를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 이름으로 즉 부활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새 방언을 말하게 되고 뱀을 집어 올리고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않을 것이고 병든 자에게 손을 얹은즉 나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행전 28장에 바울 사도가 멜리데 섬에서 뱀에 물렸지만 해를 받지 않았습니다.
 
종종 교만한 사람들이 말씀을 잘못 이해해서 어리석은 시도를 하다가 죽거나 다치거나 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일부로 독을 마시고, 뱀에게 물리고 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런 상황에 처하게 되도 지켜주신다는 말씀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이런 표적을 주십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선포할 때 귀신이 물러갈 것이고, 질병이 고침을 받고 복음을 전하다가 고난을 당할 때 지켜주시고, 안전하게 보호해 주십니다.
 
마지막으로 승천하신 예수님은 성령님을 통해서 제자들과 함께하사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언하셨습니다. 19-20절을 보면
16:19 “주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신 후에 하늘로 올려지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니라”
16:20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언하시니라”
 
19절과 20절은 사도행전의 이야기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40일간 계시다가 승천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고, 오순절날 성령이 임하심으로 사도들이 권능을 받아서 예루살렘과 온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되었습니다.
 
사도들과 성도들이 복음을 전할 때 성령님께서 친히 함께 하셔서 표적과 기사를 행하게 하셨고 그 역사로 말미암아 복음이 증거되었습니다. 우리는 오늘날도 사도행전 시대와 같은 성령의 역사가 나타남을 믿습니다.
 
우리가 전도할 때 복음을 전할 때 성령님께서 함께 하셔서 표적과 기사가 부활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망 권세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이름을 의지하고 성령 충만을 받아서 귀신을 물리치고, 모든 병에서 고침을 받고 기도하고 간구하는 일들이 이루어지되 표적과 기사가 나타나고 하나님의 기적을 이루어가는 참빛 교회 모든 성도가 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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