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으시고 장사 지낸바 되셨다.(1월 29일 오후 예배)
성 경 : 마가복음 15:33-47(신약 85)
 
지난 주에는 설날이라 오후 예배를 드리지 않았습니다. 요즘 날씨가 많이 추워져서 불편한 점이 많이 있는데 추운 날씨지만 주님의 은혜로 건강을 잘 유지하고 마음에는 주님이 주시는 평안이 늘 함께 하는 복된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예수닙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예수님을 조롱하는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로마의 군인들은 자신들에게 맡겨진 임무를 수행하긴 했지만 예수님을 희롱하고 조롱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지나가는 사람들이 조롱했고,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조롱하고 희롱했습니다. 심지어 십자가에 같이 달린 죄수들도 예수님에게 욕을 했습니다.
 
며칠 전 만해도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라고 외치던 무리들은 간곳이 없고 온통 조롱하고, 희롱하고, 욕하고, 비난하는 사람들 뿐이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구레네 사람 시몬은 억지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에 오르고 그 후로 그의 집안이 예수님을 믿는 신실한 집안으로 하늘의 복을 누렸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은 그 이후의 이야기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장사지낸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시간으로 오전 9시에(제 삼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오후 12시부터(제 육시) 온 지대가 캄캄해지고 금요일 오후 3시(제 구시) 십자가에서 운명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 기록된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죽으시고 장사지낸바 되셨다.” 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1.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
4복음서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는 장면을 기록하고 있는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하신 말씀은 일곱 말씀으로 나타나고 있고 우리는 이것을 가상칠언 즉 십자가 위에서 하신 일곱 말씀이라고 합니다.
 
1)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눅 23:34)
2)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눅 23:43)
3)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보라, 네 어머니라. (요19:26-27)
4)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마 27:46; 막 15:34; 시 22:1)
5) 내가 목마르다. (요19:28)
6) 다 이루었다. (요19:30)
7)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눅 23:46)
 
이 중에서 마가는 4번째 하신 말씀을 기록했습니다. 에수님께서 십자가의 고통 중에서 하나님 아버지에게 이렇게 하소연하듯 외치셨습니다.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33-34절을 보면
15:33 “제육시가 되매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하더니”
15:34 “제구시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지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를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이 구절은 시편 22:1절에 예언된 말씀인데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고통 중에 큰 소리로 하나님을 향해 외치셨습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예수님께서 이렇게 외치신 것은 제 구시 쯤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전 9시에 십자가에 달려 고통 당하신 예수님은 오후 3시에 운명하셨는데 이 말씀은 운명하시기 직전에 하신 말씀 가운데 하나입니다.
 
예수님은 하루 종일 십자가에서 고통을 당하시면서 피를 흘리셨고 또한 중동의 뜨거운 태양 아래서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십자가에 달려 고통 당하시는 예수님께서 정오부터 뜨거운 태양 아래 너무 큰 고통을 겪으시기 때문에 온 땅을 어둠으로 덮으셨습니다.
 
예수님은 6시간 십자가에서 고통을 당하시면서 너무 견디기 힘든 고통 속에서 하나님께 외치신 것입니다. 나에게 왜 이런 고통을 겪게 하십니까? 왜 내가 이 고통 속에서 죽어야 합니까? 그런 외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이렇게 십자가에서 고통을 당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버리셨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외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독생자이시지만 모든 인간의 죄를 대신 짊어진 속죄의 어린 양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죄를 대신 짊어진 희생의 양으로 죽게 하신 것입니다.
 
의로우신 하나님의 눈에 온 인류의 죄를 대신 지신 즉 우리의 모든 죄가 예수님에게 전가된 것이기에 하나님께 버림 받으신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 고통의 외침은 우리를 향한 외침이기도 합니다. 고통 중에서 바라본 인간들의 모습은 자신들의 죄를 대신 짊어졌음에도 손가락질을 하고 욕을 하고 침을 뱉고 회롱하고 조롱하면서 낄낄거리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이런 우리들의 모습을 보시면서 예수님은 끝까지 사람들을 저주하거나 원망하지 않으시고 하나님께 고통을 호소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죄악 가운데 있을 때에 예수님은 엘리엘리 라마사박다니를 외치십니다. 우리는 나를 향해 저주하지 않으시고 비판하지 않으시고 중보하시는 기도인 엘리엘리 라마 사박다니를 기억하고 성령의 음성으로 들어야 합니다.
 
고통의 외침을 하신 예수님께서 요한복음의 기록에 의하면 아버지의 내 영혼을 아버지의 손에 부탁하나이다. 라고 말씀하시면서 운명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운명하시자 성소의 휘장이 찢어졌습니다. 37-38절을 보면
15:37 “예수께서 큰 소리를 지르시고 숨지시니라”
15:38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니라”
 
십자가 위에서 6시간 동안 달리셔서 물과 피를 다 흘리셨습니다. 그리고 운명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 성전 안에 있는 성소의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었습니다.
 
성전은 성소와 지성소로 분리가 되어 있고 성소와 지성소 사이에 휘장이 있는데 이 휘장을 열고 들어갈 수 있는 것인 대제사장 뿐이었지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는 순간 성소의 휘장이 위로부터 찢어짐으로 누구든지 지성소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고통당하시고 온몸이 찢기신 고통을 당하심으로 하나님과 우리와의 사이를 가로막는 휘장 즉 담을 헐어버리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누구든지 하나님의 은혜와 보좌앞에 담대하게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엡 2:14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예수님의 죽으심을 바라본 많은 사람들 중에 백부장이 예수님을 향해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라고 고백했습니다. 39절을 보면 “예수를 향하여 섰던 백부장이 그렇게 숨지심을 보고 이르되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
 
여기에 기록된 백부장은 사형 집행관의 일을 맡았던 이방 로마 관리였을 것입니다. 나중에 빌라도가 이 사람에게 예수님의 죽음에 대해서 확인을 했을 것입니다.
 
로마 사람인 백부장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니었지만 십자가 상에서 고통 중에서도 끝까지 인내하시면서 사랑을 보여주신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 감동을 받은 것입니다. 다른 죄인들을 고통 중에 예수님을 비난하고 욕하고 고통 중에서 울부짖으면서 죽어가고 있었지만 예수님은 용서를 비는 기도를 하시고, 오른쪽에 달린 죄인에게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고통을 당할 때 본심이 드러나고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고 합니다. 백부장은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았지만 예수님 같은 사람이 없었고 예수님의 최후의 순간에서 감동을 받았고 이분은 정말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2. 마지막까지 예수님을 따른 여인들
예수님께서 잡히시고 사형 판결을 받으시는 상황에서 지난 3년간 예수님을 따라다녔던 제자들은 다 도망을 갔습니다. 제자들의 입장에서 예수님을 잡아서 죽이는 무리들이 자신들도 잡아서 죽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잡히시고 사형판결을 받으시고 골고다 언덕으로 오르시는 길과 십자가에 달려서 고통당하시는 그 현장에 여인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무덤에 장사지내는 곳에서 여인들이 있었습니다.
 
여인들은 골고다로 울면서 따라갔습니다. 눅23:27 “또 백성과 및 그를 위하여 가슴을 치며 슬피 우는 여자의 큰 무리가 따라오는지라”예수님께서 사형 판결을 받으시고 로마 군인들에게 희롱을 당하시고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길에 여인들은 울면서 따라갔습니다.
 
구레네 사람 시몬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가는 그 길에 여인들은 계속해서 울면서 예수님을 따라갔고 예수님은 그들을 향해서 나를 위해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해서 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인들은 예수님의 죽음의 현장에 있었습니다. 40-41절을 보면
15:40 “멀리서 바라보는 여자들도 있었는데 그 중에 막달라 마리아와 또 작은 야고보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있었으니”
15:41 “이들은 예수께서 갈릴리에 계실 때에 따르며 섬기던 자들이요 또 이 외에 예수와 함께 예루살렘에 올라온 여자들도 많이 있었더라”
 
요 19:25 “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그 어머니와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섰는지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는 그곳에 멀리서 또는 십자가 아래에서 예수님이 고통당하시는 것을 직접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여인들은 같이 고통을 느끼고 같이 아파하고 그 현장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조롱하고 욕하고, 침을 뱉고 손가락질을 하던 사람들은 예수님을 바라보며 우는 여인들에게도 비슷하게 했을 것입니다. 야 너희가 믿는 예수를 봐라 지금 십자가에서 저렇게 처참하게 죽어가고 있지 않냐?
 
주변에 있는 사람 사람들이 여인들을 향해서 비난하고, 저주하고, 욕하고 비웃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인들은 그들을 두려워하지도 않았고, 오직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던 것입니다.
 
장사 지내는 곳에도 있었습니다. 47절을 보면 “막달라 마리아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 둔 곳을 보더라”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예수님을 시체를 빌라도에게 달라고 요구하고 예수님의 시체를 가져다가 장사를 지냈습니다.
 
여인들은 아라마대 사람 요셉이 예수님을 장사지내는 묘지까지 따라가서 모든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여인들은 다양한 신분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모두 예수님에게 은혜를 받았기에 처음부터 끝까지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예수님을 섬김 분들입니다.
 
3. 예수님의 장례를 치룬 아리마대 사람 요셉
갑작스럽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는 상황이 되었기에 제자들은 모두 도망을 갔고 예수님은 사형을 당한 것이기에 누구도 나서서 예수님의 장례를 치룰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의외의 인물이 등장을 해서 예수님의 장례를 치루게 되는데 아리마대 사람 요셉입니다. 이 사람에 대해서 마가복음에 소개된 것을 보면 존경받는 공회원입니다. 43절에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와서 당돌히 빌라도에게 들어가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이 사람은 존경 받는 공회원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
 
당시 유대 사회의 최고 의결기관이자 자치기구인 산헤드린 공회의 회원인 요셉은 공회원들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고 예수님을 죽게 만든 것도 그런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그런 공회원들과는 다르게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분이었다는 것입니다.
 
칭찬받는 사람이 되는 건 쉬울 수 있지만 존경받는 사람이 되는 건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런데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 분이었고 공회원이었습니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사람이었습니다. 43절 끝부분에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와서 당돌히 빌라도에게 들어가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이 사람은 존경 받는 공회원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
 
하나님 나라를 기다린다는 것은 메시아 대망 사상을 이야기 하는 것이고 하나님 나라가 임하기를 간절히 소원하며 살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9:38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예수의 제자이나 유대인이 두려워 그것을 숨기더니 이 일 후에 빌라도에게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기를 구하매 빌라도가 허락하는지라 이에 가서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니라”
 
요한은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예수님의 제자이지만 유대인들을 두려워해서 숨겼다고 기록했고, 마가는 그런 요셉을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는 사람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마태는 그도 예수님의 제자라고 기록했습니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과 같은 사람을 우리는 숨은 그리스도인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사람들 앞에서 자신이 그리스도인인 것을 드러내지는 않지만 마음으로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의미하는 표현인데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숨은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돌아가시게 되자 더 이상 숨은 그리스도인이 아닌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교회를 박해하는 곳에는 숨은 그리스도인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때가 되면 순교를 각오하고 자신이 그리스도인인 것을 드러내고 복음을 전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숨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빛을 발하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의 장례를 치루었습니다. 44-46절까지를 보면
15:44 “빌라도는 예수께서 벌써 죽었을까 하고 이상히 여겨 백부장을 불러 죽은 지가 오래냐 묻고”
15:45 “백부장에게 알아 본 후에 요셉에게 시체를 내주는지라”
15:46 “요셉이 세마포를 사서 예수를 내려다가 그것으로 싸서 바위 속에 판 무덤에 넣어 두고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으매”
 
숨은 그리스도인이었던 요셉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는 광경을 보면서 자신이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이라는 것을 드러냈고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님의 시체를 요구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시체를 가져다가 자기가 준비한 무덤에 장사를 지냈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장례를 위해서 아리마대 사람 요셉을 미리 준비하신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서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인해서 우리의 죄 문제가 해결되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되었고 구원받은 성도요 영생을 얻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장례를 지내는 과정에서 구레네 사람 시몬을 준비하셔서 십자가를 지게 하셨고 아리마대 사람 요셉과 함께 요한복음에 의하면 니고데모를 준비하셔서 예수님의 장례를 치루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구레네 시몬이 되고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가 되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서 필요한 사람들을 준비해 주셔서 우리를 돕게 하시고, 우리가 서로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모든 성도들을 위해서 하나님이 필요한 모든 것을 준비하셔서 언제나 부족함이 없게 하셔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쓰임 받게 하시는 복을 누리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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