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을 언도한 빌라도(1월 8일 오후 예배)
성 경 : 마가복음 15:1-15(신약 83)
 
★ 행복의 문 ★

오늘 당신이 만나는 사람에게
웃음을 활짝 지어도 손해 볼 것은 없습니다.

고맙다고 말해도
손해 볼 것은 없습니다.

훌륭하다고 칭찬해도
손해 볼 것은 없습니다.

함께 일하는 것이 즐겁다고 말해도
손해 볼 것은 없습니다.

그렇게 말하면 그 말이 당신에게
두 배로 메아리가 되어서 돌아오기 때문입니다.

오늘 당신이 나가는 일터와 하는 일에 대해서
감사한 마음을 가져도 손해 볼 것은 없습니다.

그 감사하는 마음이 일과 일터로부터
당신을 더 높은 곳으로 인도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당신과 한솥밥을 먹는 가족에게
따뜻한 웃음을 보여도 손해 볼 것은 없습니다.

수고한다. 고생한다. 라고 말해도
손해 볼 것은 없습니다.

그 따뜻한 말과 웃음이
바로 행복의 문을 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을 웃음으로 시작하고
감사하는 당신이 손해 볼 것은 없습니다.

당신이 나 때문에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이 나 때문에
행복할 수 있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금 년에는 사람들을 만날 때 웃는 얼굴로 만나고 고맙다고 말하고, 훌륭하다고 칭찬하고, 항상 따뜻한 말과 얼굴로 대했으면 좋겠습니다. 인상을 쓰면서 짜증 나는 말투로 그렇게 밖에 못해라고 말하지 말고 은혜를 소금으로 고르게 함 같은 언어생활 슬기로운 언어생활을 하며 살아갑시다.
 
성탄절과 송구영신 예배로 인해서 마가복음의 말씀을 몇 주 나누지 못했는데 오늘은 다시 마가복음의 말씀을 계속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지난 번에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신 후에 잡히셨고 산헤드린 공회에서 심문을 받으신 이야기까지 나누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대제사장의 뜻에서 심문을 받으실 때 베드로는 세 번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했습니다. 그리고 닭 우는 소리를 듣고 예수님께서 네가 닭 울기 전에 나를 부인할 것이라고 하신 말씀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통곡했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대제사장을 비롯해서 유대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넘겨주고 빌라도의 손으로 십자가 처형을 받게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유대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넘겨주었고 빌라도는 결국에 예수님에게 사형을 언도한 내용입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1. 빌라도가 심문했습니다.
14장에서는 예수님께서 잡히셔서 공회에서 심문을 받으시고 재판을 받으시는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유대 지도자들의 산헤드린 공회는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넘겨주고 빌라도는 예수님을 심문하게 되는데
 
유대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넘겨주었습니다. 1절을 보면 “새벽에 대제사장들이 즉시 장로들과 서기관들 곧 온 공회와 더불어 의논하고 예수를 결박하여 끌고 가서 빌라도에게 넘겨 주니”
 
대제사장들을 비롯해서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자신들이 예수님을 죽이지 않고 빌라도에 의해서 죽게 만들기로 결의를 했습니다. 자신들이 예수님을 죽이면 종교재판이 되는데 이것은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이 유대 종교지도자들에게 반발할 수 있기 때문에 자신들이 종교재판으로 죽이지 않고 빌라도에게 넘겨주고 빌라도가 판결하게 한 것입니다.
 
빌라도가 예수님을 재판을 해서 유죄로 확정하게 되면 예수님은 로마의 반역죄로 다스리게 되거나 로마 법에 대해서 처벌을 받는 것이기 때문에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유대인들에게 비난을 덜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따라서 자신들의 방법대로 예수님을 죽이지 않고 로마의 법을 이용해서 정치적인 방법으로 예수님을 죽이므로 자신들의 책임을 모면해 보려는 의도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의 비난을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유대 종교자들에 의해서 빌라도에게 넘겨진 예수님에 대해서 빌라도가 심문을 했습니다. 2절을 보면 “빌라도가 묻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 말이 옳도다 하시매”
 
빌라도는 유대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자신의 재판에 넘기게 되자 가장 궁금했던 점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하고 유대인의 왕이라고 하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에 그 점에 대해서 질문을 했습니다.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그러자 예수님께서 네 말이 옳다고 대답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빌라도의 질문에 대해서 네 말이 옳다고 대답하셨는데 이것은 빌라도의 질문에 대해서 그렇다고 대답하신 것입니다. 당시 로마가 임명하지 않은 왕이 있다면 그것은 로마에 반역하는 것인데 예수님은 내가 유대인의 왕이라고 묻는 너의 말대로다. 라고 대답하신 것입니다.
 
빌라도는 나름대로 예수님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가 알고 있는 예수님은 로마 정부에 대항하거나 독립운동을 하신 것이 아니고 천국 복음을 전하시고 병자를 고치시는 것과 같은 신앙적인 일만 하셨습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유대인의 왕이라는 대답을 하셨지만 반역죄를 처형할만한 근거나 증거들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망설이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자 대제사장들이 여러 가지로 고발을 했습니다. 3절을 보면 “대제사장들이 여러 가지로 고발하는지라”
 
대제사장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고발했는지를 기록하지는 않았습니다. 빌라도는 대제사장들과 유대 지도자들이 고발하는 내용을 들으면서 그중에서 죄가 될만한 내용이 분명하지 않다고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대제사장들은 예수님께서 로마의 법을 어기고 반역을 도모한다는 주장을 해야 하고 그에 대한 증거를 제시해야 하지만 그런 내용들이 별로 없었을 것입니다. 대제사장들은 자신들의 종교적인 관점에서 이야기 했을 것이고, 그래서 빌라도는 예수님에 대해 어떤 죄라는 언도를 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빌라도는 대제사장들의 고발을 듣고 예수님에게 그에 대해서 변호할 기회를 주었지만 예수님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4-5절을 보면
15:4 “빌라도가 또 물어 이르되 아무 대답도 없느냐 그들이 얼마나 많은 것으로 너를 고발하는가 보라 하되”
15:5 “예수께서 다시 아무 말씀으로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빌라도가 놀랍게 여기더라”
 
빌라도는 예수님을 심문하면서 죄가 될만한 증거를 찾지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대제사장들이 여러 가지로 고발을 하자 예수님에게 스스로 변호할 기회를 주었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이 죄가 없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고 그래서 예수님 스스로 자신의 무죄를 말하게 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빌라도의 말에 침묵하시고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2. 빌라도는 예수님을 놓으려고 했습니다.
대부분의 죄인들이 재판을 받을 때 자신은 죄가 없다. 억울하다. 이렇게 반응하는데 예수님은 대제사장이 고발하는 것을 듣고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침묵하셨습니다. 그 광경을 본 빌라도는 놀랍게 여겼습니다.
 
일반적으로 볼 수 없는 광경이었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을 재판에 넘긴 것은 대제사장이 시기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10절을 보면 “이는 그가 대제사장들이 시기로 예수를 넘겨 준 줄 앎이러라”
 
빌라도는 예수님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었고 대제사장과 유대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시기한다는 것도 파악했을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재판에 넘긴 유대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예수님을 없애려고 한다는 것도 알았을 것입니다.
 
따라서 빌라도는 어떻게 해서든 예수님을 놓아주려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27:19 “총독이 재판석에 앉았을 때에 그의 아내가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저 옳은 사람에게 아무 상관도 하지 마옵소서 오늘 꿈에 내가 그 사람으로 인하여 애를 많이 태웠나이다 하더라”
 
빌라도의 아내가 빌라도 예수님을 재판하고 있는 상황에서 사람을 보내서 예수님을 옳은 사람이라고 말하면서 그의 재판에 대해서 상관하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빌라도의 아내는 꿈에 그 사람 즉 예수님으로 인해서 애를 많이 태웠다고 말하면서 상관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빌라도는 자신이 생각하기에 예수님은 죄가 없는데 대제사장이 시기 때문이라고 생각했고 아내가 간곡하기 예수님의 일에 상관하지 말라고 전해옴으로 갈등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빌라도는 예수님을 사면해 주려고 했습니다. 6-9절까지를 보면
15:6 “명절이 되면 백성들이 요구하는 대로 죄수 한 사람을 놓아 주는 전례가 있더니”
15:7 “민란을 꾸미고 그 민란중에 살인하고 체포된 자 중에 바라바라 하는 자가 있는지라”
15:8 “무리가 나아가서 전례대로 하여 주기를 요구한대”
15:9 “빌라도가 대답하여 이르되 너희는 내가 유대인의 왕을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하니”
 
빌라도는 예수님을 처형하기보다는 명절에 죄인 중에 한 사람을 놓아주는 오늘날의 표현으로 사면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런 제도를 이용해서 예수님을 놓아주려고 생각했습니다.
 
마침 이스라엘 백성들도 빌라도에게 전례에 따라서 사면을 단행해 달라고 요청을 했습니다. 빌라도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예수님을 놓아주려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물었습니다. “내가 유대인의 왕을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빌라도는 예수님은 유대 지도자들의 시기로 잡혀 온 것이기 때문에 일반 국민들은 예수님을 놓아달라고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너희에게 놓아줄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놀랍게도 무리들이 예수님을 놓아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바라바를 놓아달라고 했습니다. 11절에 “그러나 대제사장들이 무리를 충동하여 도리어 바라바를 놓아 달라 하게 하니”
 
빌라도가 당황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수님을 놓아달라고 할 줄 알았는데 빌라도를 놓아달라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복음서에서는 그 이유에 대해서 대제사장들이 무리들을 충동했다는 것입니다.
 
충동했다는 말은 선동했다는 말입니다. 대제사장은 무리들에게 바라바를 놓아달라고 하라고 선동했습니다. 바라바라는 사람에 대한 정보가 성경에는 더 이상 없습니다.
 
바라바의 죄에 대해서 누가복음 23:19절에 “이 바라바는 성중에서 일어난 민란과 살인으로 말미암아 옥에 갇힌 자러라” 고 기록했습니다. 일반적인 해석은 바라바가 로마 정부를 상대로 독립운동을 했다고 해석을 합니다.
 
성중에 일어난 민란과 살인은 로마 정부를 대항한 독립운동이었을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편에서는 빌라도가 예수님과 바라바 둘 중에 한 사람을 사면해 주려고 했다는 점에서 로마를 상대로 한 독립운동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어쨌든 빌라도는 사면 대상으로 두 사람을 선정했고 대제사장과 지도자들은 무리들을 선동해서 바라바를 놓아달라고 외치게 만들었습니다.
 
3. 빌라도가 사형을 언도했습니다.
빌라도는 가능하면 예수님을 풀어주려고 노력을 했지만 결국 십자가 처형 판결을 했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에 대한 최종 결정을 하기 전에
 
무리들에게 유대인의 왕을 어떻게 하랴? 고 질문했습니다. 12절을 보면 “빌라도가 또 대답하여 이르되 그러면 너희가 유대인의 왕이라 하는 이를 내가 어떻게 하랴?”
 
빌라도는 고민을 많이 했을 것입니다. 자신이 보기에 예수님은 죄가 없다는 것을 알지만 그리고 아내가 사람을 보내서 예수님에 대해서 관여하지 말라고 했지만 자신은 로마에서 이스라엘을 감독하라고 보낸 총독이기 때문에 그곳에 모인 사람들의 의견을 완전히 무시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다수의 사람들이 원하지 않는 일을 하면 큰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빌라도는 사람들의 의견을 물은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물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쳤습니다. 13-14절을 보면
15:13 “그들이 다시 소리 지르되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15:14 “빌라도가 이르되 어찜이냐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하니 더욱 소리 지르되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하는지라”
 
유대 지도자들에게 의해 선동을 당한 무리들은 바라바를 사면해 달라고 외치고 예수님을 어떻게 할까 하고 물었을 때 십자가에 못 박으로 외쳤습니다.
 
우리는 군중심리라는 표현을 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모였을 때 자기 생각을 하기 보다는 많은 사람들이 외치는대로 따라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 군중 심리를 대제사장들이 이용한 것이고 사람들은 그것이 옳은일인지 아닌지 구별하지 못하고 외쳐댄 것입니다.
 
항상 다수의 의견이 옳은 것은 아닙니다. 때론 군중심리에 휩싸여서 잘못된 결정을 하게 할 때도 있습니다. 특히 영적으로는 사탄이 군중심리를 이용해서 하나님을 대적하게 하는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결국 빌라도는 무리에게 만족을 주고자 예수님에게 사형 언도를 했습니다. 15절을 보면 “빌라도가 무리에게 만족을 주고자 하여 바라바는 놓아 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
 
총독은 정치적인 판단을 해야 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무죄한 것을 알지만 빌라도는 어쩔 수 없이 정치적인 결정을 하게 됩니다. 마 27:24절에 보면 “빌라도가 아무 성과도 없이 도리어 민란이 나려는 것을 보고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이르되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
 
사람들의 감정이 격해지면서 자칫하면 민란이 일어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고 마태는 기록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빌라도는 스스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생각하고 바라바를 놓아주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판결했습니다.
 
자신이 관할하는 지역에서 폭동이 일어난다면 여러 가지로 문제가 되기 때문에 일단은 무리를 안정시킬 필요가 있었고, 유대 지도자들과도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야 하리 때문에 예수님에게 죄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십자가에 못박으라는 판결을 한 것입니다.
 
세상은 이렇게 영적인 문제를 정치적으로 풀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성도로 우리의 신앙적인 문제는 세상적인 방법이 아닌 신앙적인 방법을 해결해야 합니다.
 
살아가면서 나에게 불리한 상황이 오고 불이익을 당할 것 같은 상황이 온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믿음의 결단을 하고 의로운 길을 따라가야 합니다. 주님은 고난이 와도 의로운 길을 선택하고 따라가는 사람들에게 복을 주십니다.
 
2023년 주님이 원하는 길, 의로운 길,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드러내는 길을 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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