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이 나타났다.(12월 18일 오후 예배)
성 경 : 디도서 3:1-9(신약 350)
 
오늘은 대림절 세 번째 주일이고 다음 주는 성탄절입니다. 지금까지 오후에 마가복음을 살펴보았는데 근래에 살펴본 마가복음의 내용은 예수님의 수난 이야기이기 때문에 성탄절을 앞두고 예수님의 수난 이야기는 잠시 접고 성탄의 은혜와 관련된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오늘 말씀은 바울 사도가 디도에게 보낸 편지의 결론에 해당하는 부분인데 바울은 디도에게 우리가 예수님을 믿기 이전에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언급한 다음에 죄인이었던 우리들을 위해서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나타났다고 선포했습니다.
 
우리는 원래 죄인이었지만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으로 구원받은 성도가 되었기에 이제는 과거에 살아왔던 삶에서 돌아서서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거룩한 성도다운 삶을 살아가야 한다고 말씀했습니다.
 
성탄을 준비하면서 우리가 가져야 할 마음 자세는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을 세상에 나누며 살아가고자 하는 마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탄의 계절에 우리가 어떤 마음의 자세로 살아가고 실천해야 할 일들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오늘 말씀에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봉독한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이 나타났다.” 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려고 하는데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나타났고 우리는 그 자비와 사랑의 은혜를 받은 성도답게 살아가야 하는데
 
1. 온유함으로 나타내자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이 교회를 볼 때 또는 열심 있는 성도들을 볼 때 어떻게 느낄까요? 아마도 불신자들이 바라보는 그리스도인들은 매우 강한 이미지로 비춰 질 수 있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신학을 공부하면서부터 만났던 영적인 지도자들의 모습에서 느꼈던 것은 카리스마적인 리더십이고 아주 강한 모습들이었습니다. 제가 만났던 대부분의 지도력을 가지신 분들에게서 받은 인상은 강력한 이미지였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신앙의 연륜이 있으시고 믿음이 좋다고 교회 안에서 인정받는 분들의 일반적인 모습도 온유하고 사랑이 많은 모습이라기 보다는 강한 이미지가 더 많았던 것 같습니다.
 
오늘 성경은 우리들의 그런 모습을 되돌아보게 하는 말씀입니다. 성령의 강력한 임재하심이 있고, 영적으로 강한 능력을 가졌다고 할지라도 세상을 향해서 우리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에 대해서 바울 사도는 모든 사람에게 온유함을 나타내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의 은혜를 입은 사람들로 하나님께 받은 그 자비와 사랑과 은혜를 세상에 나타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선한 일을 행해야 합니다. 1절을 보면 “너는 그들로 하여금 통치자들과 권세 잡은 자들에게 복종하며 순종하며 모든 선한 일 행하기를 준비하게 하며”
 
이 편지는 바울 사도가 디도에게 보낸 편지이고 목회서신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디도에게 목회자로 성도들에게 이렇게 가르치라고 말하고 있는데 너는 성도들에게 통치자들과 권세 잡은 자들에게 복종하고 순종하라고 가르치라고 말했습니다.
 
성경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바라보는 시각이 다른데 성경을 순수하게 그래도 이해하면 믿는 자들이 정부나 권력에게 대항해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정부의 방침을 인정하고 따르는 것이 순수한 성경적인 이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의 신앙이나 신학은 보수적이기 때문에 성경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믿고 실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측면에서 정부가 진보적이든 보수적이든 교회는 정부의 정책을 신뢰하고 따라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을 경험한 성도는 세상 속에서 투쟁하고 쟁취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복종하고 순종하는 자세를 지녀야 한다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싸워야 할 대상은 어둠의 권세 잡은 자입니다.
 
엡 6: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여기서 통치자들과 권세들은 세상의 통치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악한 영의 세력들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통치자 권세의 원어적 의미는 “눈에는 보이지 않는 세상의 악한 지배자들과 강력한 존재와 이 세상을 지배하는 어둠의 왕들과 영적 세계에 있는 무수한 악령들” 이란 의미입니다.
 
세상의 통치자는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것입니다. 교회는 세상의 법을 무시하고 인정하지 않고 하나님 나라의 법만을 따른다고 말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렇게 말하는 것은 성경의 근본정신을 이해하지 못한 것입니다.
 
계속해서 우리는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를 준비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성도들에게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 위해서 항상 준비하라고 가르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모든 선한 일은 모든 착한 일을 말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착함과 의로움을 증거 하는 곳입니다. 성탄을 준비하면서 그리고 새로운 해를 준비하면 우리 마음에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 위해서 준비된 마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범사에 온유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내야 합니다. 2절을 보면 “아무도 비방하지 말며 다투지 말며 관용하며 범사에 온유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낼 것을 기억하게 하라”
 
이 구절을 현대어 성경으로 보면 “남을 헐뜯거나 싸움을 하지 말고, 올곧은 자세로 모든 사람에게 예의 바르게 대하도록 가르치시오.”
 
공동번역 “그리고 누구를 헐뜯거나 싸움질을 하지 말고 온순한 사람이 되어서 모든 사람을 언제나 온유하게 대하도록 가르치시오.”
 
하나님은 바울 사도를 통해서 오늘날 교회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제발 싸움질을 하지 말고 상대방을 헐뜯지 말고, 용서하고, 관용을 베풀면서 항상 온유하게 즉 예의 바르게 대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도 세상에서도 우리는 이렇게 살아가야 합니다. 작은 실수나 잘못을 보고 참지 못하고 비판하고, 책망하고, 나와 다름에 대해서 이해하지 못하고 내 생각이 무조건 옳다고 생각하는 자세를 내려놓아야 합니다.
 
잘못하는 것이 보여도 자비와 사랑의 마음으로 용서하고 이해하는 너그러움과 넓은 마음이 필요합니다. 이런 마음이 우리가 가져야 할 마음입니다.
 
바울 사도는 왜 우리에게 이런 마음과 자세가 필요한가 하면 우리도 전에는 똑같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3절을 보면 “우리도 전에는 어리석은 자요 순종하지 아니한 자요 속은 자요 여러 가지 정욕과 행락에 종 노릇 한 자요 악독과 투기를 일삼은 자요 가증스러운 자요 피차 미워한 자였으나”
 
앞에서 우리는 모든 선한 일을 하고, 범사에 온유함을 나타내야 한다고 말한 바울은 왜 우리가 그렇게 해야 하는가 하면 우리도 예수님의 사랑을 입기 전에는 즉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교회밖에 있는 불순종하는 자들과 똑같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과거에 우리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였고, 말씀에 순종하지도 않았고 그래서 마귀에게 속은 채로 살아왔고, 여러 가지 정욕과 행락 즉 욕심과 쾌락의 종 노릇을 하며 살았고 악독과 투기 즉 악한 마음으로 질투하고 살았던 가증스러운 사람이었으며 서로 미워하며 살아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 우리의 모습이 이런 모습이었기에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그런 모습을 보고 비판하고 정죄하고 싸우지 말고 관용하고 온유함으로 대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2.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이 나타났다.
바울 사도는 디도에게 그리고 오늘 우리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성도로 범사에 모든 사람에게 온유함을 나타내라고 권면한 다음에 우리가 그렇게 살아가야 할 이유에 대해서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이 나타났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에 대해서
 
우리의 행위로 구원받은 것이 아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4-5절을 보면
3:4 “우리 구주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이 나타날 때에”
3:5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바울 사도는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이 나타난 것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은 구원으로 나타났는데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은 우리가 행한 의로운 행위가 아니라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은 구원받을 만한 의로운 행위를 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과 씻음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는 것입니다. 긍휼은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마음으로 우리가 죄로 인해서 죽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긍휼히 여기셔서 자비와 사랑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중생의 씻음이란 우리의 죄가 씻김을 받아서 중생에 이르게 된다는 의미로 하나님의 사랑이 예수님의 성육신으로 이루어졌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로 우리의 죄가 씻음을 받고 중생한 그리스도인이 되었음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입니다. 우리가 의로운 사람이고 착하게 살아왔기에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으로 독생자 예수님이 오셔서 우리를 씻어주심으로 이루어진 은혜입니다.
 
구원받은 우리에게 성령을 부어주셨습니다. 5-6절을 보면
3:5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3:6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그 성령을 풍성히 부어 주사”
 
하나님께서 자비와 사랑으로 우리의 죄를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어주셔서 구원받은 성도가 되게 하시는데 이 과정에서 성령의 새롭게 하심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구세주로 고백할 때 성령이 아니고는 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믿을 때 성령님이 우리 안에 오셔서 도우신 것이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고백한 성도들에게 성령님이 임하시는데 우리는 그것을 성령 세례라고 말하고, 성령 충만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구원 받은 우리들에게 성령을 풍성히 부어주셔서 성령 충만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게 하십니다. 예수님이 나의 구세주이심을 믿고 주님을 바라볼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풍성히 부어주십니다.
 
하나님은 그 은혜로 우리는 영생의 소망을 따라 상속자가 되었습니다. 7절을 보면 “우리로 그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상속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그의 은혜로라는 말은 앞에서 말씀하신 구원과 성령을 풍성히 부어주심을 말하는 것으로 이렇게 구원받고 성령 충만을 받은 성도들에게는 영생의 소망을 따라 상속자가 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가 되시고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상속자의 자격을 갖게 된 것입니다. 롬 8:17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엡 3:6 “이는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상속자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됨이라”
 
3. 아름답고 유익한 것을 지키라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으로 우리가 구원받은 성도가 되었고, 성령 충만을 받았으며, 상속자가 되었기 그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말하면서 우리가 말씀하신 것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은 아름답고 유익한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아름답고 유익한 것을 지키라고 말하면서 이 여러 것에 대하여 굳세게 말하라고 권면했습니다. 8절을 보면 “이 말이 미쁘도다 원하건대 너는 이 여러 것에 대하여 굳세게 말하라 이는 하나님을 믿는 자들로 하여금 조심하여 선한 일을 힘쓰게 하려 함이라 이것은 아름다우며 사람들에게 유익하니라”
 
이 여러 것은 앞에서 말한 것들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범사에 온유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내고, 구원받은 성도요, 성령 충만한 상속자가 되었다는 것을 말하는데 굳세게 말하라고 강조했습니다.
 
굳세게 말하는 것은 이단들이 거짓 교리와 가르침을 가지고 교회로 들어와서 성도들을 미혹하는 것에 대항해서 진리의 말씀을 담대하게 전하라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당시에서 거짓 교사들과 이단들이 교회를 혼란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진리를 굳게 잡고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과 구원의 은혜를 분명하게 전해야 한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이단의 유혹에 넘어가지 말고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은 조심하여 선한 일을 힘써야 한다고 다시 강조하고 있습니다. 8절을 보면 “이 말이 미쁘도다 원하건대 너는 이 여러 것에 대하여 굳세게 말하라 이는 하나님을 믿는 자들로 하여금 조심하여 선한 일을 힘쓰게 하려 함이라 이것은 아름다우며 사람들에게 유익하니라”
 
조심하여 선을 행하라는 것은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 거짓 교사들이 와서 잘못된 진리로 유혹하는 것에 대해서 그리스도인들은 항상 선한 일을 힘쓰므로 이단의 잘못된 가르침을 이길 수 있습니다.
 
초대교회 뿐만 아니라 지금도 이단들은 선한 일을 힘쓰는 것보다 자신들이 주장하는 교리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자신들의 교리를 따르면 무슨 짓을 해도 천국에 간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런 잘못된 교회를 따르지 말고 항상 선한 일을 힘쓰는 것이 그리스도의 올바른 삶의 자세라고 강조한 것입니다.
 
또한 교회 밖의 불신자들이 그리스도인들이 선한 일을 힘쓰는 것을 보고 예수님을 믿을 수 있게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말과 행실은 복음을 증거 하는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말과 행실에 선한 일을 힘써야 합니다.
 
무익하고 헛된 것을 버리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9절을 보면 “그러나 어리석은 변론과 족보 이야기와 분쟁과 율법에 대한 다툼은 피하라 이것은 무익한 것이요 헛된 것이니라”
 
현대어 성경으로 보면 “쓸데없이 족보 이야기나 온당치 않은 논쟁에 말려들지 마시오. 유대인의 율법을 지키는 일을 두고 토론이나 싸움을 하지 마시오. 그런 일은 아무런 가치도 없고 오히려 해를 가져올 뿐입니다.”
 
교회는 성령으로 하나 되고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야 하는데 이상하게도 작고 사소한 문제를 가지고 싸우고 갈라서고 하는 일을 너무 쉽게 하고 있습니다. 진리를 왜곡하는 것이 아닌 것을 가지고 싸우는 것은 쓸데없는 것이고 헛된 것입니다.
 
여기서 족보 이야기로 인한 분쟁과 율법으로 인한 다툼을 피하라고 권면하는데 이런 것들이 그렇게 목숨 걸고 싸울 만큼 중요한 것이 아닌데 사소한 것에 목숨 건다는 표현처럼 진리가 아닌 사소한 것으로 인해서 싸움과 다투고 분쟁하는 것은 무익하고 헛된 일입니다.
 
성탄의 계절이 별로 중요하지 않는 것 때문에 싸우거나 다투지 말고 서로 용서하고 덮어주고 나와 다름을 인정하고 함께 더불어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증거 하는 사랑으로 하나 되는 성탄절을 만들어 갑시다.
 
성탄을 앞두고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의 은혜나 느껴지고 우리가 받은 자비와 사랑을 말과 실천으로 세상에 나누고 베풀며 살아가는 따뜻하고 서로 행복한 성탄을 만들어 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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