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계명은 나의 즐거움 입니다.(10월 30일 낮 예배)
시편 119:129-144(구약 894)
 
시편 119편은 176절로 되어 있는 긴장입니다. 성경 중에 가장 긴 장인 119편의 중심 내용은 “주님의 말씀”, “주님의 계명”, “주님의 법”,“주님의 법도” 이런 단어들을 중심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119편을 통해서 주시는 메시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즐거워하고, 주님의 계명과 법과 법도를 따라서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복을 누리는 비결이라는 내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대 사회는 정보와 지식의 홍수의 시대라고 할 만큼 엄청난 양의 정보와 지식이 있습니다. 인터넷에 들어가서 내가 알고 싶은 내용을 검색해 보면 다양한 정보들이 검색이 되고 그와 관련된 다양은 지식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많은 정보와 지식들이 있다고 해도 진정한 행복과 영혼의 구원과 영원한 생명에 대한 말씀은 오직 성경을 통해서 알 수 있고 성경만이 구원과 영생과 진정한 행복에 대해서 알게 해 주고 있습니다.
 
특별히 시편 119편은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유익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얻게 되는 하나님의 은혜를 노래하고 있습니다. 시인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긴 노래를 하고 있고 오늘은 그중 일부인 129-144절까지를 중심으로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시인은 오늘 본문에서 주의 계명은 나의 즐거움입니다. 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누리게 됩니다. 아무리 바빠도 하루에 한 구절의 말씀이라고 읽고 묵상하면서 살아간다면 우리의 삶은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로 채워지게 되고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참된 즐거움을 누리게 됩니다.
 
오늘 시인의 노래를 중심으로 해서 “주의 계명은 나의 즐거움입니다.” 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전체적으로는 긴 노래이지만 오늘은 긴 문장 중에서 짧은 부분을 선택해서 말씀을 나누려고 하는데 오늘 말씀에서 우리가 받을 수 있는 은혜는
 
1. 주의 말씀은
시인은 하나님의 말씀은 나에게 있어서 이런 역사를 한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항상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성경에 기록된 글자나 문자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이 우리 안에 들어왔을 때 말씀의 역사가 나타나게 됩니다.
 
지금은 모르겠는데 80-90년 대에 말의 중요성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졌습니다. 그때에 발표된 것을 보면 우리가 하는 말이 파장이 되어서 그 파장의 역사가 실제가 될 수 있다는 발표들을 많이 했었습니다. 그래서 말을 조심해야 하고 말을 할 때 분명한 신념을 가지고 해야 한다는 이야기들이 많았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입으로 선포하는 것이 중요한데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입으로 읊조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할 때 그 말씀이 우리에게 실제로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할 때 그 말씀이 능력으로 우리에게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시인은 자신이 경험한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믿기 때문에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주의 증거들은 놀라우므로 내 영혼이 이를 지키나이다. 129절을 보면 “주의 증거들은 놀라우므로 내 영혼이 이를 지키나이다.”
 
여기서 증거라는 단어가 가장 많이 사용된 것은 법궤에 넣은 돌비인 십계명을 의미하는 단어로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여기서 증거들이란 의미는 하나님의 말씀인 계명인 의미가 강하게 내포되어 있습니다.
 
주의 증거들은 즉 하나님이 주신 계명의 말씀들은 놀라운 것입니다. 이런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현대어 성경에서는 주님의 가르침이라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받은 하나님의 말씀은 놀라운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모든 말씀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역사가 나타나기 때문에 놀라운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놀라운 말씀이기 때문에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야 합니다.
 
시인은 내 영혼이 이를 지킨다고 고백하고 있는데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킵니다. 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놀라운 진리가 담겨 있고 놀라운 권능으로 역사하십니다. 그 말씀을 잘 지키는 성도가 진정한 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또한 주님의 말씀은 우둔한 사람들을 깨닫게 합니다. 130절을 보면 “주의 말씀을 열면 빛이 비치어 우둔한 사람들을 깨닫게 하나이다.” 이 구절의 의미는 문이 열리면 우리가 그 집안이나 성안으로 들어가듯이 하나님의 말씀이 열리면 우리는 말씀 안으로 들어간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열면 말씀 안에서 빛이 비추어서 우리가 들어갈 수 있도록 한다는 의미이고 이것은 결과적으로 우둔한 사람들을 깨닫게 해 주신다는 의미입니다.
 
어두운 상황이었는데 빛이 비춰줌으로 인해서 밝히 보고 들어가거나 나가거나 하듯이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빛이 되어서 바른길을 가게 하시고, 빛 가운데 걸어감으로 실족하지 않게 하신다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우둔한 사람이란 말의 의미는 ‘단순한, 순진한, 마음이 열린’을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우둔한 사람은 마음이 완악한 상태로 제 고집을 부리는 사람이 아니라 순수하고 열린 마음을 가진 사람이란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순수하고 열린 마음을 가진 사람들에게 빛이 되어서 진리의 길을 알게 되고, 진리의 빛의 인도를 받아서 영원한 생명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시인은 계속해서 나의 발걸음을 주의 말씀에 굳게 세워주소서 라고 간구했습니다. 133절을 보면 “나의 발걸음을 주의 말씀에 굳게 세우시고 어떤 죄악도 나를 주관하지 못하게 하소서”
 
공동번역으로 보면 “당신 약속에 힘을 얻어 꿋꿋이 걷게 하시고 악이 나를 이기지 못하게 하소서”
 
우리말 성경으로 보면 “내 발걸음을 주의 말씀에 따라 인도하시고 어떤 죄도 나를 다스리지 못하게 하소서”
 
시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굳게 의지하며 살아갈 때 어떤 유혹도 이기고 악에게 굴복당하지 않고 오직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노래한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말씀의 인도를 받는 삶을 살아가면 우리가 죄를 따라 살아가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의 인도를 받으며 살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걸음이 하나님의 말씀 위에 굳게 서게 되고, 하나님의 말씀만을 따라 살아가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2.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시인은 하나님의 증거는 놀라워서 내 영혼이 지킨다고 노래하고 하나님의 말씀은 빛으로 임하셔서 우둔한 사람을 깨닫게 해서 진리 안에 살게 하시고, 우리의 발걸음은 하나님의 말씀 위에 굳게 서서 죄의 길을 따르지 않아야 한다고 노래하면서 하나님께서 내게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시인은 주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들에게 베푸시던 은혜를 베푸소서라고 노래했습니다. 132절을 보면 “주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들에게 베푸시던 대로 내게 돌이키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이 구절의 문자적인 의미는 ‘당신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들에게 내리시던 판결을 따라서’입니다. 이 구절의 원문적인 의미는 ‘주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들에게 은혜를 내리시던 경우처럼’ 이란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과거에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들에게 내려주셨던 은혜를 지금 하나님의 이름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도 내려달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시인은 판결이란 의미를 사용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이름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판결하셨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판결을 받은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사랑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사랑하고, 성령님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는 인정을 받은 성도로 하나님이 과거에도 하나님의 이름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주셨던 그 은혜를 오늘 우리에게 내려주시는 줄 믿습니다.
 
계속해서 시인은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전통적인 생각인 주의 얼굴을 종에게 비추소서라고 고백했습니다. 135절을 보면 “주의 얼굴을 주의 종에게 비추시고 주의 율례로 나를 가르치소서”
 
이 구절은 민 6:24-26을 생각나게 하는 구절입니다. 주일 낮 예배 후에 축도하기 전에 이 구절을 매주 선포하는데 시인도 같은 의미로 하나님께서 얼굴을 비춰주시기를 간구하고 있습니다.
민 6:24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민 6:25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민 6:26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하나님께서 얼굴을 숨기시면 재앙이 시작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얼굴빛을 비추시면 그곳에 은혜가 임하고, 그 사람에게 은혜가 임하고, 그 가정과 사업체와 직장에 은혜가 임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그 얼굴을 참빛교회에게 비추시고, 참빛 가족에게 비추시고, 참빛 사업체와 직장에 비추셔서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누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리는 참빛 가족이 될 줄 믿습니다.
 
시인은 하나님의 은혜를 고백하면서 주님의 계명은 나의 즐거움입니다. 라고 고백했습니다. 143절을 보면 “환난과 우환이 내게 미쳤으나 주의 계명은 나의 즐거움이니이다.”
 
이 구절을 현대어 성경으로 보면 “어려움과 걱정으로 마음 졸이나 주님의 명령은 나의 기쁨입니다.” 라고 번역했습니다.
 
환난은 육체적 고통을 뜻하고, 우환은 억압적이고 긴박한 상황으로 말미암은 각종 심적 고통을 뜻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환난과 우환이란 표현은 몸과 마음이 지칠 때로 지키고 고난을 받는 상황이라 현대어 성경대로 하면 어려움과 걱정으로 마음 졸이고 노심초사하는 상황을 말하는 것으로 다르게 말하면 피할 곳이 없는 진퇴양난의 상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상황이 나에게 왔으나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환난과 우환 속에서도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환난과 우환이 완전히 사리진 것은 아니지만 환난과 우환 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계명을 믿으므로 즐거움을 누리면서 환난과 우환을 이길 수 있다는 고백입니다.
 
3. 주의 말씀을 사모하고 사랑합니다.
시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은혜받기를 구했고,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사랑한다고 고백했습니다. 성도는 말씀을 사모해야 합니다. 또한 말씀을 사랑해야 합니다. 말씀을 사모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말씀의 능력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시인은 주의 계명들을 사모합니다. 라고 고백했습니다. 131절을 보면 “내가 주의 계명들을 사모하므로 내가 입을 열고 헐떡였나이다.” 사모한다는 말은 간절히 바란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간절한 마음으로 듣기 원하고, 그 말씀을 마음에 담기 원하는 마음을 의미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기 때문에 입을 열고 헐떡였다고 고백합니다. 입을 열고 헐떡였다는 말은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을 표현한 것입니다.
 
마치 무엇인가를 먹기 원하는 사람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있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우리는 매일 영적 배고픔을 느끼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 듣기를 사모해야 합니다.
 
세상에서 수없이 많은 정보를 대하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이 없이 살아가면 나도 모르게 세상 정보와 지식이 내 마음을 사로잡게 되고 우리는 그 안에 갇히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영의 양식으로 삼아서 매일 말씀 안에서 하나님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은혜와 은총을 누리는 삶을 살아가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주의 말씀이 순수함으로 사랑합니다. 140-141절을 보면
119:140 “주의 말씀이 심히 순수하므로 주의 종이 이를 사랑하나이다.”
119:141 “내가 미천하여 멸시를 당하나 주의 법도를 잊지 아니하였나이다.”
 
여기서 순수하다는 말은 용광로에서 제련하여 순수한 것을 얻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세상의 지식이나 더러운 것이 조금도 섞이지 않는 용광로에서 제련한 것처럼 순수한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순수하기 때문에 그 말씀을 사랑하고 그 말씀의 법을 잊지 않고 말씀 안에서 살아가겠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의 말씀은 순수합니다. 거기에는 어떤 거짓이나 잘못된 것이 들어가 있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물을 넣으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믿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순수한 말씀에 내 생각의 불순물을 넣고, 거짓 진리의 불순물을 넣고, 여러 가지로 오염을 시키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순결하고 깨끗하고 순수합니다. 우리는 말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맛있는 양념을 넣을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에 여러 가지 양념들을 첨가해서 듣기 좋게 만들고 그럴듯하고 호기심이 생기게 만들어가는 양념을 친 말씀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순수한 말씀은 때론 맵기도 하고, 짜기도 하고, 내 마음에 회초리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런 순수한 마름을 그대로 받는 사람이 진정한 복을 누리게 됩니다. 양념없는 말씀을 사모합시다. 양념 없는 말씀을 통해 영혼이 잘되고, 강건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참빛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시인의 결론적인 고백은 나로 하여금 깨닫게 하사 살게 하소서라는 고백입니다.
142절을 보면 “주의 의는 영원한 의요 주의 율법은 진리로소이다.”
144절을 보면 “주의 증거들은 영원히 의로우시니 나로 하여금 깨닫게 하사 살게 하소서”
 
하나님의 율법은 즉 주의 율법은 진리이고 하나님의 말씀의 증거들은 영원히 의롭기 때문에 나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과 율법으로 깨닫게 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깨달은 말씀을 붙잡고 살아가게 하옵소서라고 고백했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깨닫는 것은 우리의 힘만으로는 안 되기 때문에 성령님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마음을 열어 깨닫게 하셨습니다. 눅 24:45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요 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오늘 시인은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과 말씀의 도와 법도를 노래한 시편 119편을 통해서 하나님의 계명 즉 말씀이 나의 즐거움이 됩니다. 라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즐거움이 되고,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힘과 능력이 되어 환난과 우환이 왔을 때도 말씀으로 즐거움을 얻게 되고 말씀으로 환난과 우환이 은혜와 복이 되는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말씀이 나의 즐거움입니다. 이 고백이 저와 여러분의 고백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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