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하지 않으면 그대로 되리라(10월 9일 주일 오후 예배)
성 경 : 마가복음 11:12-25(신약 73)
 
마지막 사역을 위해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님께서 성전에 들어갔다가 다시 베다니로 제자들과 함께 오셨습니다. 그리고 하루가 지난 다음에 다시 베다니에서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오늘 말씀에서는 베다니에서 예루살렘을 가시던 중에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없는 것을 보시고 다시는 열매를 맺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시고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예루살렘에 들어가신 예수님은 성전으로 가셔서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내쫓으면서 성전을 청결하게 하시면서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인데 너희가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녁 무렵이 되어서 예수님은 다시 베다니로 돌아가시는 길에 베드로가 오전에 예수님께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를 보니까 뿌리채 말라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베드로가 그 일에 대해서 예수님에게 이야기하자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믿으라고 말씀하시면서 누구든지 마음에 의심하지 않고 믿으면 그대로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계속해서 예수님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면 그대로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오늘 말씀에서 의심하지 않는 믿음으로 구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대로 이루어지는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렇게 해야 하나님께서도 너희의 허물을 사해 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중요한 것은 의심하지 않고 믿는 구하는 것입니다.
 
기도를 많이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의심하지 않는 것입니다. 진정한 믿음으로 기도하는 것은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의심하지 않으면 그대로 되리라” 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1. 말라버린 무화과나무
성경에서 이해하기 쉽지 않은 상황들에 대한 기록들이 있는 경우들이 있는데 오늘 무화과나무에 대한 이야기도 조금은 이해하기 쉽지 않는 장명입니다.
 
이 이야기가 전개되는 것을 보면 예수님께서 시장하셨습니다. 12절을 보면 “이튿날 그들이 베다니에서 나왔을 때에 예수께서 시장하신지라” 예수님게서 베다니에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이었는데 아마도 식사를 하시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배가 고프심을 느끼면서 길을 가시는 중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지만 인간으로 오셨기 때문에 우리와 똑같이 배고픔을 느끼신 것입니다. 그래서 배고프신 예수님이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시장하신 것은 몇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습니다. 베다니에서 식사 때에 아무도 드실 것을 드리지 않아서 식사를 못하셨을 수도 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열렬한 환영을 받으시는 했지만 베다니에서 예수님에게 제자들이 식사를 제대로 차려드리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식사는 하셨지만 너무 바쁘게 움직이시고 이런저런 일들을 하시느라 시장하셨을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 주변에는 항상 사람들이 따라다니기 때문에 그 사람들 때문에 바쁘게 움직이셔야 했을 수도 있고 그래서 시장하셨을 수도 있습니다.
 
또 하나의 가정은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르기 때문에 베다니에서도 예수님의 제자들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 주변에 몰려들었기 때문에 제대로 식사를 못하신 상황일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 중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기 때문에 제자들이 식사할 시간도 없었다고 기록한 것을 볼 때 이때의 상황도 그런 상황이었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배가 고프신 상황에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던 중에 무화과나무를 발견했는데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없었습니다. 13절을 보면 “멀리서 잎사귀 있는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혹 그 나무에 무엇이 있을까 하여 가셨더니 가서 보신즉 잎사귀 외에 아무 것도 없더라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
 
예수님께서 무화과나무를 발견하시고 무화과나무의 열매가 있으려나 하고 가까이 가셨습니다. 그런데 무화과나무가 잎은 무성한데 열매가 없었습니다. 여기서 마가는 이때는 무화과의 때가 아니라고 설명했습니다.
 
무화과 열매가 맺히는 시기가 아니기 때문에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무화과 열매가 맺히는 시즌이면 당연히 열매가 있었겠지만 열매를 맺는 시즌이 아니기 때문에 열매가 없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셨습니다. 14절을 보면 “예수께서 나무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 먹지 못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이를 듣더라”
 
무화과 열매가 맺히는 시즌이 아닌데 열매가 없는 것을 보신 예수님께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셨는데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 먹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랬더니 정말로 19-20절에 보면
11:19 “그리고 날이 저물매 그들이 성 밖으로 나가더라”
11:20 “그들이 아침에 지나갈 때에 무화과나무가 뿌리째 마른 것을 보고”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시면서 나무에 열매가 없을 것이라고 말씀하셨고 저녁이 되어서 베다니로 오는 중에 제자들은 무화과나무가 말라버린 것을 발견했습니다.
 
무화과 시즌이 아니기 때문에 열매가 없었다고 기록한 마가는 그런데 예수님께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시매 무화과나무가 말라버렸다고 기록을 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이해하기 쉽지 않은 내용입니다. 무화과가 열릴 시즌이 아니기 때문에 열매가 없음에도 예수님이 저주하셔서 무화과나무가 말라버렸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셨을까? 이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이야기를 해석하는데는 여러 가지 추측들이 있습니다. 일반적인 해석은 시즌이 아니라고 해도 예수님께서 원하실 때 열매가 있어야 하는데 없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저주하신 것이라고 해석을 합니다. 이 해석은 누구든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위해서 항상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준비하지 않으면 예수님께서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찾을 수 없었던 것처럼 우리를 사용하시려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지 못하기 때문에 버려질 수 있다고 해석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의 추측은 시즌은 아니라고 해도 무화과는 작은 열매라도 맺고 있는데 그 나무는 시즌 아닐 때에 열리는 작은 열매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해석하는 것입니다.
 
무화과 잎사귀는 무성한데 작은 열매도 없기 때문에 예수님은 그 나무를 저주하셨고 저주하신대로 나무가 말랐다는 것입니다. 이 해석은 우리의 신앙이 잎만 무성하고 열매가 없는 신앙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로 해석을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어떤 깨달음을 주시려고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것인지 모르지만 그 다음의 이야기와 연결해서 보면 모든 것을 믿고 선포하면 그대로 된다는 것을 말씀하시기 위한 의도라고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2.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다.
오늘 말씀에서 두 번째 이야기는 예수님께서 성전을 청결하게 하시면서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인데 너희가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다고 책망하신 내용입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에 들어가셨을 때 성전에 장사꾼들이 있었습니다. 15절을 보면 “그들이 예루살렘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며”
 
예수님께서 성전에 들어가셔서 발견한 것은 성전에서 물건을 팔고 돈을 바꾸어 주는 환전상들이 돈을 바꾸어 주었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나름대로는 타당한 이유가 있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유월절을 지내기 위해서 제물을 멀리서부터 끌고오기 보다는 성전안에서 제물을 사서 드릴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라고 할 수도 있고 성전에서 사용하는 돈이 다르기 때문에 환전이 필요했고, 디아스폴라들도 환전이 필요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성전의 이방인의 뜰에 장터를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당시 대제사장은 상인들이 장사할 수 있도록 허락하는 대신에 리베이트를 받았고 그래서 성전은 짐승들의 소리와 짐승들의 배설물로 인한 악취가 나고 소란하고 시끌벅적한 상황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장사꾼들을 내쫓으셨습니다. 15-16절을 보면
11:15 “그들이 예루살렘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며”
11:16 “아무나 물건을 가지고 성전 안으로 지나다님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은 돈을 벌어서 좋고 대제사장은 리베이트를 받아서 좋고, 먼 지역에서 온 순례객들은 제물을 먼 곳에서부터 끌고 오지 않고 성전에서 사서 드려서 편하고, 일석 삼조라고 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예수님은 그런 장사꾼들의 상을 엎으시고 내쫓으셨습니다.
 
성전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곳인데 한쪽에서 장사꾼들의 소리와 짐승들의 소리와 악취가 나게 만든 것은 성전을 더립힌 것입니다. 또한 성전에서 장사를 하고 이익을 남기고 그것을 뇌물로 바치고 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물건 값이 다른 곳보다 비싸고 순례객들에게 피해가 가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상황을 강도의 소굴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예배드리는 곳이 강도의 소굴과 같이 된 것에 대해서 책망을 하시면서 다 내쫓으시고 성전을 청결하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곳이 장사하는 곳이나 세상 즐거움이나 세상의 이야기를 나누는 곳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7절을 보면 “이에 가르쳐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하시매”
 
예수님은 거룩한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혔다고 장사꾼들을 몰아내셨고, 그리고 그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선포하셨습니다.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는 말씀은 예레미야 7:11절을 인용하신 것입니다.
 
교회는 기도하는 집입니다. 물론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지만 언제든지 교회는 기도하는 곳이란 의미입니다. 우리는 언제든지 교회에 와서 기도할 수 있습니다. 물론 기도는 어디에서나 할 수 있지만 더 깊은 기도를 할 수 있는 곳이 교회이기에 우리는 늘 교회에서 모여 기도하기를 힘쓰고 또한 개인적으로도 교회에 와서 기도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장사꾼들을 내 쫓으시는 광명을 본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감동을 받은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죽으려고 했습니다. 18절을 보면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듣고 예수를 어떻게 죽일까 하고 꾀하니 이는 무리가 다 그의 교훈을 놀랍게 여기므로 그를 두려워함일러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장사꾼들을 통해서 상당히 많은 리베이트를 받았는데 예수님이 쫓아내시는 것을 보고 화가 났을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감동을 받고 놀라워하는 것을 보고 시기심으로 가득찼습니다.
 
그래서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을 죽여야겠다. 즉 없애버려야겠다고 생각을 한 것입니다. 종교는 있는데 믿음이 없는 것이고 종교는 있는데 하나님이 없는 모습이 대제사장과 서기관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런데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자신들의 목적달성을 위해서 하나님을 위해서라는 명분과 종교의 거룩성을 지키기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예수님을 죽이려는 음모를 꾸미게 된 것입니다.
 
3.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예루살렘 성전을 정결하게 하신 다음에 저녁 무렵에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베다니로 내려 오셨습니다. 그런데 길에서 아침에 저주하신 나무가 마른 것을 보고 베드로가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랐나이다. 하고 이야기 하자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믿으라고 말씀하시면서 의심하지 않고 기도하면 받는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무화과나무가 마른 것을 본 제자들에게 믿고 의심하지 않으면 그대로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3절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예수님은 오전에 저주한 무화과나무가 마른 것을 본 제자들에게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고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않으면 그대로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산이 옮겨져서 바다에 던져진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지만 그렇게 될 수 있다고 믿고 선포하면 그대로 될 수 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하나님은 창조주이시기 때문에 창조주 하나님을 믿고 믿음으로 선포하는 일들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루어주실 것이라고 믿고 의심하지 않으면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어떤 일이 이루어지길 간절히 원하면서도 의심하는 마음이 있다면 아무리 기도해도 그 일들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은 반드시 이루어주신다는 확신을 갖고 의심하지 말고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계속해서 기도하고 구한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4절을 보면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믿음으로 선포한 것이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고 마음으로 의심하지 않고 기다리면 그대로 된다고 말씀하신 예수님께서 계속해서 그것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믿음의 기도가 필요하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무엇을 구하든지 구하는 것 즉 기도하는 것이 이루어질 것을 믿고 기도하고 기도한 것을 주실 것이라고 분명하고 믿고 의심하지 않고 흔들리지 않는다면 그대로 이루어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기도가 없어서 이루어지지 않는 것보다 기도는 많이 하는데 의심하거나 또는 믿지 못하면서 기도하기 때문에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더 많을 수 있습니다. 기도하는 것에 대한 확신을 갖고 기도하는대로 이루어짐을 믿고 기도할 때 우리가 기도하고 확신한 것을 반드시 이루어주실 줄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믿음의 기도를 위해서 필요한 것은 용서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5절을 보면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믿음의 기도에 대해서 말씀하시면서 우리가 기도하기 전에 먼저 다른 사람을 용서해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믿음의 기도보다 먼저 선행되어야 할 것이 사람을 사랑하고 용서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5장 산상수훈에서도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전에 예물을 드리기 전에 먼저 형제와 화해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마음에 미움이 가득한 채로 기도하는 것을 하나님은 기쁘게 받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먼저 다른 사람을 용서하고 다른 사람과 화해하고 하나님 앞에 믿음으로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의 죄와 허물을 용서해 주시고,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 앞에 올리워져 응답받는 것입니다.
 
먼저 가정에서부터 시작해서 서로 용서하고 사랑하고, 직장과 사업체에서 그리고 이웃과의 관계에서 교회 공동체에서 서로 용서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믿고 구하는 모든 기도에 응답해 주십니다.
 
하나님의 전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입니다. 언제든지 주님 앞에 나와 기도하되 입으로 선포한 것이 이루어질 것을 믿고 의심하지 않고 믿음의 기도를 드릴 때 구하는대로 이루어지는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오늘 이 약속의 말씀을 경험하고 이 말씀을 의지해서 기도함으로 놀라운 기적을 경험하는 응답받는 기도자의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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