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10월 9일 낮 예배 설교)
디모데 후서 2:1-15(신약 342)
 
오늘은 교회를 위해서 헌신하기로 결단하신 두 분에 대해서 투표를 하는 날입니다. 부재자를 위한 투표도 카카오톡에서 익명 투료로 실시했습니다. 투표하는 사람이 투표한 내용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오픈 카톡이라 혹시 내가 투표한 거 아는 거 아니야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무도 모르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겠는데 새롭게 주님의 나라와 교회를 위해서 헌신하시기로 결단하신 분들을 투표하는 날에 두 분의 헌신자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이고 오늘 여기에 모인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믿음으로 구원받은 성도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서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낮고 낮은 자리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내어주셨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성도가 되었다면 이제는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을 위해서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위해 살아가면서 우리가 하는 일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살아가야 하고 하나님 앞에 섰을 때 부끄러움 없는 일꾼으로 인정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부끄러움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가 되어야 하는데 예수님은 부끄러움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을 받는다는 것과 관련해서 눅 9:26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자기와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으로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하고 예수님을 믿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우리는 큰 소리로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을 전하고, 우리를 위해서 베풀어 주신 은혜를 찬양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복음은 감추어진 것이 아니라 세상에 드러난 것입니다.
 
교회는 모든 것을 은밀하게 하는 곳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은밀하게 역사하시지 않습니다. 교회도 은밀하게 비밀스럽게 신앙생활을 하지 않고 공개적으로 하는 것이고 우리는 누구 앞에서도 떳떳하고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주님의 나라와 교회를 위해서 일하는 모든 성도들은 내게 맡겨주신 일을 감당함에 있어 부끄러움이 없는 일꾼으로 교회에서도 인정을 받고 하나님께도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바울 사도를 통해서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가 되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을 중심으로 해서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 이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우리를 위해서 베풀어 주신 은혜가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로 부끄러울 것이 벗는 일꾼으로 서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1. 예수 안에 있는 은혜 가운데서 강하라
1절을 보면 “내 아들아 그러므로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가운데서 강하고” 우리가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그리고 우리의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은혜 가운데 살아가는 것입니다. 특별히 바울 사도께서는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가운데서 강하게 될 때 어떤 상황에서도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한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가운데서 강하게 됨으로 인해서 어떤 일이든지 감당할 수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디모데에게 그리고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가운데서 강하게 되라고 말씀하면서 우리가 은혜 가운데서 강하게 되어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고 말했습니다. 2절을 보면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
 
이 구절을 현대어 성경으로 보면 “그대는 내게서 들은 것을 모든 사람들에게 가르칠 사명이 있습니다. 그러니 내게서 들은 이 위대한 진리를 그 스스로 믿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전할 수 있는 그런 충실한 사람들에게 가르치시오.” 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바울 사도께서 디모데에게 너는 많은 증인들 앞에서 내게 들은 것 내가 너에게 전하고 가르쳐준 것을 증거하고 또한 너의 가르침을 받고 훈련을 받은 사람들이 그 말씀을 전할 수 있도록 하라는 말입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너는 내가 너를 훈련해서 세운 것처럼 너도 다른 사람들을 훈련 시켜서 너와 같이 말씀을 가르치는 일을 하게 하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일꾼이 된다는 하는 것 중에는 가르치는 것이 포함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은사는 다르고 달란트는 다르지만 모든 그리스도의 일꾼들은 우리에게 주신 은혜를 가지고 다른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해주고 신앙생활에 대해서 가르쳐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용기가 필요하고 담대함이 필요한데 우리에게 용기와 담대함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가운데 강해질 때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에게서 받은 은혜로 강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다른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쳐야 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가운데서 강해진 성도는 예수님의 좋은 병사로 고난을 받아야 합니다. 3-4절을 보면
2:3 “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
2:4 “병사로 복무하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병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가운데서 강하게 되어서 그리스도의 좋은 병사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병사가 되기 위해서는 병사가 될 수 있는 요건이 갖추어져야 합니다. 아무나 데려다가 병사를 만들 수 없습니다.
 
요즘 러시아가 군대 동원령을 내려서 남자들이 러시아 탈출한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급하니까 나이가 되는 남자들은 아무나 데려가 전쟁터로 보내려고 하고 그에 대한 저항이 심한 것 같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병사가 되어야 하는데 그냥 병사가 아닌 좋은 병사가 되어야 합니다. 좋은 병사란 전쟁을 잘 수행할 수 있는 유능한 병사라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좋은 병사가 되는 것은 우리가 예수님 안에 있는 은혜 가운데서 강해질 때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먼저 성령을 주시고 또한 은혜를 주시고 그 안에서 강해진 그리스도의 좋은 병사가 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병사는 자유가 없고 병사로서 살아가는 것은 한편으로는 고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바울은 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가 되어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자고 말했습니다.
 
계속해서 병사로 복무하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다고 말씀하는데 군인은 자기 생활이 없고 정해진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를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병사로 소집하신 그분을 위해서 살아가야 합니다.
 
승리자의 관을 얻어야 합니다. 5-6절을 보면
2:5 “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하지 아니하면 승리자의 관을 얻지 못할 것이며”
2:6 “수고하는 농부가 곡식을 먼저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가운데서 강하게 되어 승리의 관을 얻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승리자의 관을 얻기 위해서 경기하는 사람 즉 운동선수들은 정해진 규칙을 지키면서 경기를 해야 합니다.
 
아무리 좋은 성적을 거두어도 규칙대로 하지 않으면 실격이 됩니다. 우리가 주님의 나라를 위해서 살아가는 성도로서 성경의 규칙을 지키고 말씀에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언제나 말씀 안에서 최선을 다하며 살아갈 때 마침내 주님 앞에 섰을 때 승리의 관을 받게 됩니다.
 
같은 이치로 농부가 수고하여 농사를 지을 때 그 수고한 것의 대가를 받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말씀하면서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에게 주어진 영적 농부로 수고할 때 수고한 것에 대가를 받게 되고 하나님 앞에서 상급의 면류관과 칭찬을 받게 됩니다.
 
이 말씀은 수고하지 않는 농부는 거두어 들일 곡식이 없다는 말이고, 수고하지 않는 성도는 하나님께 받을 상이 없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섰을 때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인정을 받고, 각자 주님을 위해 헌신 상을 받게 되고, 수고한 것에 대한 대가를 얻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2. 범사에 총명을 주신다.
우리가 주님 앞에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서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 즉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가운데 강하게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고 두 번째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범사에 총명을 주시는데 하나님이 주시는 총명으로 우리에게 맡겨진 일을 감당해야 한다고 말씀했습니다.
 
7절을 보면 “내가 말하는 것을 생각해 보라 주께서 범사에 네게 총명을 주시리라” 주께서 우리에게 범사에 총명을 주시는데 여기서 총명이란 단어의 의미는 이해력, 통찰력이란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총명 즉 이해력과 통찰력을 주셔서
 
다시 사신 그리스도를 기억하게 하십니다. 8절을 보면 “내가 전한 복음대로 다윗의 씨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라”
 
복음의 핵심은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셔서 우리의 죄를 위해서 죽으셨다가 삼일 만에 부활하셨다는 것이고, 예수님은 다윗의 씨로 즉 이스라엘 사람들이 기대하던 메시아로 오셨다는 것을 기억하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이 주시는 총명으로 복음을 이해하고 깨달아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죽으셨다는 것을 오늘날 현대인들이 쉽게 이해할 수 없습니다. 2천 년 전에 유대 땅 예루살렘에서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의 죽음이 우리의 죄와 무슨 상관이 있다는 것인가?
 
또한 예수님이란 분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것이 오늘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는 것인가? 이런 질문을 할 수 있고 믿을 수 없는 것이 일반적인 것입니다.
 
이것을 이해하고 깨닫고 믿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주시는 총명 즉 이해력과 통찰력이 있을 때 가능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범사에 총명을 주심으로 복음을 믿을 수 있고,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이 나와 관련이 있고, 예수님이 그리스도 이심을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범사에 총명을 주심으로 깨닫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9절을 보면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가 죄인과 같이 매이는 데까지 고난을 받았으나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아니하니라”
 
바울은 지금 자신이 옥중에 있다는 것을 말하면서 내가 옥중에 있는 것은 복음으로 말미암아 즉 복음을 전함으로 이렇게 죄인과 같은 모습이 되어 감옥에 갇혀 있다고 말합니다.
 
나는 복음을 위해서 갇혀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인 복음은 매이지 않는다. 즉 갇히거나 제한을 당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은 어떤 상황에서도 자유롭게 역사하신다는 의미입니다.
 
일반적으로 볼 때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감옥에 갇히게 되면 복음을 전하는 길이 막히고 하나님의 말씀이 막힌 것 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나는 갇혀 있어도 복음은 막히지 않았고 하나님의 말씀은 어떠한 제약도 받지 않고 역사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총명을 가진 사람들은 이 사실을 알고 복음으로 인해 매였다고 해도 결코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하고 복음을 전할 수 있다는 의미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막을 권력과 권세는 세상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권세를 이해하지 못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막히고 제한을 당한 것처럼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습니다. 오늘도 그 말씀은 역사하십니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갇힌다 해도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살아서 역사하십니다. 복음을 전하는 길도 결코 막히지 않고 다양한 방법으로 전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범사에 총명을 주셔서 어떤 상황에서도 참을 수 있고 마침내 구원을 영원한 영광과 함께 받게 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0절을 보면 “그러므로 내가 택함 받은 자들을 위하여 모든 것을 참음은 그들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원을 영원한 영광과 함께 받게 하려 함이라”
 
바울 사도는 내가 지금 감옥에 갇혀 있고 복음을 전함에 있어 많은 시련과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모든 것을 참으면서 복음을 위해 살고 있는 것은 마침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구원을 받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한 영광을 얻게 될 것을 알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총명으로 즉 이해력과 통찰력으로 미래에 일어날 일 즉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에 우리가 받게 될 은혜와 축복에 대해서 알게 되고 그것을 믿기 때문에 오늘의 시련을 견딜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내일 일도 모르는 것이 인생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정말로 내일 우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총명을 받은 사람들은 지금 당장 나에게 어떤 일이 일어난다고 해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고 또한 마지막 날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에 참여할 것을 알기에 지금 어떤 상황에서도 담대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 당장의 현실이 아닌 미래를 볼 수 있는 믿음의 눈을 갖게 되고 결국에 승리하게 될 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하며 살아가는 참빛 가족이 되시기 바랍니다.
 
3.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받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가운데 강한 성도가 되고 범사에 주시는 총명으로 살아가는 성도들은 결국은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을 받게 됩니다.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받게 되는 성도들은
 
주와 함께 죽었으면 함께 사는 것을 믿습니다. 11-12절을 보면
2:11 “미쁘다 이 말이여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요”
2:12 “참으면 또한 함께 왕 노릇 할 것이요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라”
 
복음의 진리를 깨달아 알고 믿는 사람들은 누구나 나는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 나도 죽었음을 믿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부활하실 때 우리도 사망 권세 이기시고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다시 살아남을 믿습니다.
 
우리는 주님과 함께 죽고 주님과 함께 다시 살아남을 믿는 의식으로 침례식을 행합니다. 우리가 침례를 받는 것과 과거의 나는 주님과 함께 죽고 그리스도 안에서 주님과 함께 다시 살아 새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고백하는 의식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위한 신실한 일꾼으로 서기 위해서 이 믿음이 필요합니다. 나는 주님과 함께 죽었고 주님과 함께 다시 태어난 거듭난 성도가 된 것입니다. 이제는 내가 아니라 주님을 위해 살고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주님을 위해서 사는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과 함께 죽었고 다시 살아남을 믿고 살면서 참고 인내할 때 주님과 함께 왕 노릇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앞에서 말한 구원과 영원한 영광과 함께 받는 것과 같은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그리스도의 영광이 참여하게 함께 왕 노릇 하게 될 사람들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믿는다면 말다툼을 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3-14절을 보면
2:13 “우리는 미쁨이 없을지라도 주는 항상 미쁘시니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으시리라”
2:14 “너는 그들로 이 일을 기억하게 하여 말다툼을 하지 말라고 하나님 앞에서 엄히 명하라 이는 유익이 하나도 없고 도리어 듣는 자들을 망하게 함이라”
 
미쁘다는 말은 신실하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신실하지 못하지만 예수님은 신실하십니다. 우리는 언제나 우리 하나님은 신실하시고 우리 예수님을 진실하심을 믿고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진실하시고 신실하시기 때문에 교회 안에서 말다툼을 하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당시 교회에 들어온 이단들과 논쟁하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교회에 들어온 이단들과 논쟁하는 것은 아무 유익이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단들로부터 성도들을 보호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단들과 말다툼을 해본들 결론도 나지 않고 아무 유익도 없기 때문에 그런 자들과 논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 이유가 아니더라고 교회에서 말다툼을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성도들이 할 일이 아닙니다. 오늘 한국교회 안에 다양한 종류의 다툼들이 있습니다. 다툼을 일으키는 사람들은 자신들은 진리를 수호하기 위해서 그렇게 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진리를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다툼을 일으키는 분들이 정말 진리를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라고 할지라도 오늘 성경은 교회 안에서 말다툼을 일으키지 말라고 분명하게 경고했습니다.
 
다툼과 분쟁을 일으키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부끄러울 것이 없는 신실한 일꾼으로 서기 위해서 다투지 말고 서로 관용하고 이해하고 하나 되기를 힘써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해야 합니다. 15절을 보면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라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를 바로 알아야 하고 또한 바른 진리를 가르치고 전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고 총명을 주셔서 말씀을 분별하게 하시고 진리를 알게 하십니다.
 
우리가 진리를 분별하고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를 분별해서 그 말씀을 따라 살고 그 말씀을 전하며 살아갈 때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로 강하게 되어 부탁한 것을 지키고 그리스도의 병사가 되고 승리자의 관을 쓰는 성도가 되고 하나님이 주시는 총명으로 진리를 알아서 어떤 상황에서 그리스도를 위한 신실한 일꾼이요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받는 참빛교회 모든 성도가 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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